마법서생 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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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71화
171화
볼일 보고 후원을 지나가던 운아영이었다. 두충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정광은 이미 횅하니 사라진 뒤였다.
“크윽, 아영!”
괜히 서러웠다. 하필 이런 모습을 아영에게 보이다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별거 아니야.”
그래도 남잔데, 우는 표정을 보이기는 그랬다. ‘남자가 운다고 아영이 얼마나 무시할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충은 고개를 젓고는 간단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뭐야?”
운아영이 빽 소리 지르더니, 두충의 파랗게 물든 얼굴을 바라보고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우호호호! 정말 도장님이 두충에게 쩔쩔맸단 말이지?”
자기는 서러워 죽겠는데 웃는 운아영이다.
야속한 한편으로, 운아영이 대소를 터뜨리자 두충도 은근히 기분이 나아졌다. 말하다 보니 정광의 표정이 생각난 것이다.
얼굴이 뻘게진 말코 정광!
두충이 이를 악물고 코웃음을 쳤다.
“흥! 다음에는 아예 백 명, 천 명 앞에서 놀릴 테니 두고 봐, 말코 도장!”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진용과 유태청만이 남았다.
남궁환은 정광이 술대접한다니까 신이 나서 따라갔다.
둘만 남자 진용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던 중에 봉황거를 만났습니다.”
“봉황거를? 그럼 화아도……?”
진용은 유태청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화예령이란 분도 계셨습니다.”
순간 유태청의 눈매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그것은 격동이었다.
하긴 수십 년간 만나지 못했던 딸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어느 아비가 격동하지 않을까.
진용은 유태청이 마음의 격동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유태청의 표정이 다시 편안해지자, 그제야 봉황곡의 여인들과 추혼신마 무리들 간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늘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예령의 부상 소식을 전했다.
“화 곡주께서 천혈교의 추혼신마에게 상당한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그 말에 유태청이 눈을 부릅떴다.
“얼마나……?”
“다행히 요혈은 비켰습니다. 좋은 약이 있으니 열흘 정도면 나을 거라 하셨습니다.”
“후우…….”
유태청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뜬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지금 어디 있는가?”
“일단 탕마단이 있는 수경산장에 가 계시라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그냥 물러서실 분이 아닌 듯했습니다.”
유태청의 굳은 안색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겠지. 설청의 성격을 닮은 아이였으니까.”
“만나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용이 망설이며 입을 열자 유태청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네가 수경산장에 가봐야 할 테니 내 편지를 그 아이에게 전해주게. 당분간 움직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고, 그곳에 그냥 있으라 전하게.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난 다음에 만나봐야겠어.”
진용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어르신께서는 안 가실 겁니까?”
“내가 가면 구파의 원로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네.”
그럴지도 모른다. 마도의 싹이 커지기 전에 싹둑 잘라 버리겠다며 기고만장해 있는 그들이다. 십절검존의 거주를 반길 리 없었다. 그리되면 또 한 명의 윗사람을 모셔야 할 테니까.
더구나 힘 잃은 십절검존은 더욱 껄끄럽기만 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우리 일행 중에는 마도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네. 그들이 분명 트집을 잡을 게야. 그건 좋은 일이 아니지. 하니 그럴 바에는 몇 명만 그곳으로 가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네. 이쪽에선 비류명과 서문조양, 저쪽에선 제갈민과 석무심을 연락조로 활용하면 될 것 같군.”
역시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미처 진용이 생각하지 못한 점을 유태청이 짚어냈다.
진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분이 직접 찾아오겠다고 하실지도 모르는데…….”
“허,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함부로 나선단 말인가? 괜한 위험만 자초할 뿐이야. 자네가 어떻게든 막아주게나.”
꼭 엄한 아비가 철부지 딸을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진용은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속으로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르신께선 남궁 어르신하고 검을 연구하시면서 이곳에 계십시오.”
2
진용이 그를 본 것은 우연한 일로 인해서였다.
아홉 명으로 줄어든 일행이 수경산장으로 가기 위해 객잔을 나섰을 때였다. 봉두난발의 장한이 골목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건달패 하나가 그를 발로 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침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진용이 고개를 들다 그 광경을 봤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정광이 먼저 봤으면 당장 쇠신발부터 날아갈 상황이었다.
물론 진용이라고 해서 가만두지는 않았다.
진용은 땅에 굴러다니는 자그마한 돌 조각 하나를 가볍게 발로 찼다.
딱!
“켁!”
건달패가 머리를 쥐어 잡고는 정신없이 비틀거렸다.
그때였다. 봉두난발의 장한이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런데 봉두난발로 가려져서 그렇지 어디선가 본 얼굴 같지 않은가?
오래지 않아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용은 세 걸음을 걷기도 전에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한구양?”
진용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진용의 신형이 골목으로 사라졌다.
“어? 고 공자!”
정광이 진용이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다 갑자기 빽 소리쳤다.
“뭐? 한구양?”
정광도 골목으로 사라졌다.
앞서 걷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그들도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자는 진용의 생각대로 한구양이었다.
남궁도와 남궁현을 가볍게 상대하던 그였다. 더구나 흑암수로 풍유승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사람일 거라 추정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한구양이 골목 구석에서 건달패의 발길질이 받고 있는 신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진용은 재빨리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가 많기는 하지만, 깊은 상처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내상이었다.
진용이 그의 맥문을 잡고 진기를 집어넣었다. 그러다 황급히 손을 떼었다.
“우웩!”
한구양이 한 사발의 피를 토해낸 것이다.
“어떻게 당했기에…….”
온전한 심맥이 없었다. 혈도는 곳곳이 막혀서 진기 유통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당했는지 유태청이 당했을 때보다 못하지 않았다.
산송장, 한구양의 상태가 딱 그러했다.
진용은 다시 한번 조금 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미미한 진기를 한구양의 몸속에 흘려 넣었다.
한구양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 세르탄이 소리쳤다.
‘마기가 움직인다!’
진용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세르탄의 말대로였다. 자신의 진기가 조금씩 파고들자 한 줄기 암울한 느낌의 기운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기! 바로 흑암수의 마기였다. 느낌이 풍유승에게서 뽑아낸 마기와 동일했다.
어쩌면 여태껏 죽지 않고 버틴 것이 바로 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계속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할지 일순간에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그러자 세르탄이 다시 소리쳤다.
‘뭐 해? 다 뽑아내 버려!’
‘그럼 죽을지도 모르는데?’
‘죽으면 어쩔 수 없지 뭐.’
세르탄이 마족답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용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진용은 일단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태로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우선 진기를 집어넣어서 상태를 알아볼 생각이니 주위를 감싸주세요.”
사람들이 재빨리 진용을 에워쌌다. 봉두난발의 장한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였다.
진용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자 즉시 마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마기는 격렬히 반발하며 진용의 손길을 피해 달아났다. 그 바람에 한구양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러는지, 마기가 달아나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 막혀 있던 혈맥들을 뚫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마기가 달아나는 속도는 늦어지고, 진용의 진기는 더 빨라졌다.
반 각도 되지 않아 사방으로 달아나던 마기가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진용의 손을 통해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빨려든 마기는 모두 세르탄에게 맡겨 버렸다.
세르탄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서 ‘더! 더!’를 외쳐 댔다.
생각보다 한구양의 몸속에 있는 마기는 매우 강력한 기운이었다. 하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일 정도이니, 거의 살아 있는 생물이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었다.
소림에서의 일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한구양의 몸속에 있는 마기와 소림에서의 마령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세르탄, 소림에서의 마령하고 같은 마기야?’
정신없이 마기를 빨아들이던 세르탄이 어물쩡 대답했다.
‘어? 글쎄, 비슷한 것 같은데? 거 이상하네…….’
일각이 지나자 한구양의 몸속에 있던 마기가 거의 다 소멸되었다.
염려했던 한구양의 몸은 생각보다 더 나아져 있었다. 막혔던 혈도가 대부분 뚫린 덕분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약한 심맥이었다.
진용은 가늘게 뛰는 한구양의 맥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손을 떼었다.
동시에 한구양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며 벌어졌다.
“누… 구……?”
“정신이 드십니까?”
“나를…… 만… 붕…….”
한구양이 어렵게 입을 떼었다. 가까이 있던 진용만이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구양의 말을 들은 진용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만붕(萬鵬). 단 두 글자였다. 그 두 글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진용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만붕성.
진용이 굳은 표정으로 한구양에게 물었다.
“혹시, 만붕성으로 데려다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한구양의 고개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그렇다는 말이다.
진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그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이 너무나 급하기 때문이지요. 일단 몸을 추스르고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한구양은 다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다시 정신을 잃은 것이다.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사도굉이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후려쳤다.
“이런, 멍청한 놈!”
사람들이 어이없는 눈으로 사도굉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슈? 머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정광이 별꼴 다 본다는 듯 말했다.
사도굉이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에휴…… 오죽장이라는 말을 듣고도 몰랐으니 맞아도 싸지.”
“오죽장? 아! 한구양이 자신의 집이라던 그곳 말이오?”
“그래, 오죽장. 아니지, 오죽원은 바로 만붕성의 뒤쪽에 있는 후원을 가리키는 말이야. 실제 이름이 오죽원은 아니고, 오죽이 많이 난다고 해서 옛날 사람들은 그곳을 오죽원이라고 불렀지. 지금은 그곳에 만붕성이 들어서서 장원이 생겼으니 오죽장이라 부른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저 한구양이라는 사람이 만붕성의 사람이다, 그 말이오?”
정광의 물음에 진용이 입을 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한데 사도 선배님, 혹시 구양무경의 가족 중에 구양한이라는 이름이 있습니까?”
“구양한? 구양무경의 아들 이름이 구양한인데……. 맙소사!”
사도굉이 홱 고개를 돌리고는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한구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놈이 바로 구양무경의 아들인 구양한이었군.”
진용이 말했다.
“아마 강호에 나와서 이름과 성을 뒤바꿔 사용했나 봅니다.”
“허! 그런 일이…….”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진용이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자가 구양한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이자를 살려야 합니다.”
“왜? 자네는 구양무경을 죽여야 한다며?”
정광이 뚱한 눈으로 물었다.
“첫 번째 이유는 구양한과 암흑마련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함이고, 둘째는 대체 누가 구양한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정보를 알게 된다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음… 옳은 말이네. 그걸 알면 만붕성을 상대하는 데 엄청난 힘이 될 거야.”
일단은 한구양이 아닌 구양한을 유태청이 있는 객잔으로 옮겼다. 아무래도 수경산장으로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양한을 데려가자 유태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더니 곧 크게 반색했다.
그 역시도 진용과 마찬가지로 만붕성을 상대할 수 있는 굵은 빛줄기가 보였다 생각한 것이다.
구양한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어쩌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돌파구가 생길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