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68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68화
168화
“아는 목소린가?”
정광이 물었다.
“도장님, 생각 안 나요?”
“모르겠는데?”
하긴, 그때 당시 정광은 침을 흘리며 여인들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니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빨리 가보죠.”
“누군데 그래?”
정광이 진용을 따라가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용이 말했다.
“봉황거가 저기 있나 봅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봉.황.거! 가세!”
정광이 똑똑 부러지게 말하더니 휭 몸을 날렸다. 진용보다 더 급한 몸짓이었다.
진용은 고개를 내두르며 신형을 날렸다.
남궁환은 이미 정광을 따라 언덕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언덕 위에 올라가자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스산한 황토 바람이 누렇게 불어대는 황무지에 한 대의 마차가 서 있었다. 백여 장의 거리. 생각대로 봉황거였다.
마차를 중심으로 전면에 빙 둘러서서 혈의인들을 맞이하고 있는 여인들의 숫자는 근 삼십여 명. 선혈에 물든 채 쓰러져 있는 여인들의 숫자만도 이십여 명에 달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전의 젊은 여인들은 몇 보이지 않고, 대부분이 삼십대 이상의 미부들이었다.
개중에는 사십대로 보이는 중년 여인들도 몇 명이 마차에 바짝 붙어 긴장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절정의 기세를 뿜어내는 고수들이었다.
그녀들조차 얼마나 치열한 격전을 벌였는지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싸움은 폭발 직전의 소강 상태였다.
수하들이 쓰러져 있는데도 봉황곡의 여인들은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적이 강하다는 말이었다.
은서령이 마차의 문 옆에 서서 그들을 지휘하는데, 서리서리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그녀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그리고 은서령의 옆에는 흰구름처럼 너울거리는 궁장을 입고 손에는 눈처럼 하얀 검을 한 자루 든 중년여인이 오연히 서 있었다.
‘누구지?’
비록 주위의 선혈로 인해 퇴색되어 있었으나, 그녀의 전신에선 누구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할 위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용은 문득 화인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인화…….’
한순간 진용의 눈매가 살짝 이지러졌다.
화인화의 얼굴과 초연향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 것이다. 초연향의 행방을 알지 못해 미칠 것 같던 때가 엊그제였거늘.
‘참으로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저놈들, 누구지?”
정광이 진용의 상념을 깨뜨리며 입을 열었다.
봉황곡의 여인들을 공격한 자들은 피처럼 붉은 혈의를 입고 있었다. 숫자는 이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그 숫자만으로도 봉황곡의 여고수들을 충분히 누를 수 있을 만큼 하나하나 고수 아닌 자가 없었다.
처음으로 보는 자들이었다.
“천혈교의 놈들일까?”
정광이 물었다.
그럴지도 몰랐다. 이곳은 신양이 지척인 곳. 게다가 붉은 무복이 아닌가 말이다.
“개 같은 놈들! 천혈교의 놈들이냐?”
그때 피로 물든 어깨를 움켜쥔 소련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혈의를 입은 자들 중 맨 뒤에서 뒷짐을 진 자세로 서 있던 노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마차 안의 어린 계집이다. 그녀만 우리를 따라간다면 너희들은 그냥 보내주겠다.”
“건방진 늙은이!”
성질을 이기지 못한 소련이 이를 갈며 눈을 부라렸다. 순간 미간을 찌푸린 노인이 손을 흔들었다.
“물러서라, 소련!”
은서령이 다급히 소리쳤다. 상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진용도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늦은 뒤였다. 환상타공지로 공간을 가를 겨를조차 없었다.
쾅!
“컥! 끄으으!”
소련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단 일장으로 소련을 튕겨낸 혈의노인이 마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끌끌, 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강제로라도 데려가는 수밖에. 봉황신녀 화인화, 주군의 여인으로 그대를 데려가고자 한다. 영광으로 알아라!”
동시에 혈의노인 뒤에 서 있던 혈의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이런! 가죠.”
진용도 급히 신형을 날렸다. 봉황곡 사람들에게만 맡겨놓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정광과 남궁환이 뒤질세라 몸을 날렸다.
백의궁장여인의 입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혼세십팔마로 이름이 높던 추혼신마가 호화사자로 전락했을 줄은 미처 몰랐군요!”
“내 정체를 알았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말이 떨어졌을 때는 이미 혈의인들이 봉황곡의 여인들을 덮치고 있었다.
“합공해서 상대해!”
은서령이 채대에 잔뜩 내공을 주입하고는 싸늘하게 소리쳤다.
이미 한차례의 접전으로 적의 강함을 뼈저리게 느낀 터였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유리한 점은 숫자가 많다는 것. 그러나 그마저도 얼마나 오래갈지 미지수였다.
그때 백의궁장여인이 대기를 얼릴 듯한 한기를 뿜어내며 손에 든 하얀 검을 내밀었다.
“추혼신마, 얼마나 강한지 보자!”
하얀 검강이 그녀의 검첨에서 피어났다.
마차를 향해 다가가던 추혼신마 오지량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너는 봉황선자와 어떤 사이더냐?”
백의궁장여인이 말했다.
“내가 바로 당대의 봉황선자 화예령이다!”
그녀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검첨에 뭉친 하얀 검강이 빗살처럼 뻗어나갔다.
절정에 이른 검강탄기!
처음으로 추혼신마 오지량의 눈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오지량의 만월처럼 휘어진 도에서 새파란 도강이 일더니, 화예령의 백색 검강을 그대로 갈라 쳤다.
쩌정!
두 사람이 일검을 겨루고 동시에 일 장 가까이 물러섰다. 어느 쪽도 이득을 보지 못한 상태.
추혼신마 오지량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과연 봉황곡주!”
봉황선자라는 이름은 대대로 물려지는 이름. 그 이름만으로도 눈앞의 화예령이 봉황곡주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본 오지량이었다.
“흥! 네놈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와라!”
화예령이 자신을 얻었는지 냉랭하게 소리쳤다.
“흐흐흐, 좋아. 본좌의 진정한 무서움을 보여주마.”
오지량이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신형을 날렸다. 새파란 도강이 신월처럼 피어난 만도를 앞세우고서.
그와 동시, 화예령의 백색 검에서도 다시 하얀 검강이 죽 뻗었다.
쾅! 콰광!
검강과 도강이 부딪치고, 순식간에 서너 번의 번갯불을 토해냈다.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것을 잘 아는 화예령이나, 물러서는 순간 자신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 생각하는 오지량이나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방원 이 장이 강기의 회오리에 휘말려 드는 것은 찰나간이었다.
두 사람의 싸움에는 누구도 끼어들지 않았다. 끼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사이 싸움은 혼전으로 치달았다.
혈의인들을 맞이한 봉황곡 여인들의 입에서는 벌써부터 간간이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서령은 채대를 휘두르며 구멍 난 곳을 메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은서령이 두 명의 혈의인에게 합공을 받는 바람에 마차에서 조금 멀리 떨어졌을 때였다. 은봉단의 여인들을 거꾸러뜨린 세 명의 혈의인이 갑자기 허공으로 몸을 날리더니 곧바로 봉황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막아!”
은서령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자신은 혈의인 둘을 상대하느라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황. 곡주인 화예령은 추혼신마에게 손발이 묶여 있다.
봉황호법들도 달려드는 혈의인들을 상대하느라 몸을 뺄 수 있는 자가 없다.
이를 악다문 은서령은 혼신의 공력으로 채대를 휘둘렀다. 두 명의 혈의인이 견디지 못하고 서너 걸음 물러선다.
돌아서면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망설일 틈이 없었다.
‘한 팔 정도는 내준다!’
그때였다.
쾅! 쾅! 쾅!
은서령이 미처 신형을 돌리기도 전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허공이었다.
은서령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고 공자!”
순간 그녀의 입에서 한숨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혈의인 셋이 훌훌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봉황거 위에는 한 사람이 천장처럼 서서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고진용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가볍게 손을 들더니 검지로 허공을 죽 내리긋고는 주먹을 불쑥 내밀었다.
쾅!
갑자기 뒤쪽에서 북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은서령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잠시 머뭇거린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혈의인이 가슴이 뭉개진 채 허공을 날고 있었다.
‘맙소사!’
싸우던 와중에 신경을 다른 데 썼다는 부끄러움보다 놀람이 앞섰다.
그때 진용이 허공을 응시하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천혈교의 마인들은 오늘 아무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진용의 목소리가 나직하면서도 뚜렷하게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절대음 중의 천공음(天空音)이 펼쳐진 것이다.
일순간, 봉황곡의 여인들을 공격하던 혈의인들이 갑자기 비틀거렸다.
마기에 심신이 찌든 그들이 정심한 무공을 익힌 봉황곡의 여인들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였지만 그 정도면 봉황곡의 여인들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셋을 셀 시간도 되지 않아 전황이 급격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쇠신발을 들고 날뛰는 정광의 손에 서너 명의 혈의인들이 속절없이 머리가 깨져 나가자 혈의인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물러서기에 급급했다.
“원시천존, 무량수불! 때려죽일 놈들! 이리 오너라! 이 도사님께서 염라대왕께 보내주마!”
하지만 봉황곡의 호법들조차 움직임을 멈추고 뒤로 물러서게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남궁환이 그 주인공이었다.
“여자들을 죽인 걸 보니 나쁜 놈들이구나! 그럼 용서할 수 없지!”
남궁환의 철검에서 뭉게구름 같은 기운이 넘실거릴 때마다 소리없이 혈의인들이 쓰러진다.
다섯 명의 혈의인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 오지량은 당황하며 물러서기에 바빴다.
‘대체 저놈들은 누구야!’
그때 또다시 진용의 음성이 오지량의 귀청을 파고들었다.
“추혼신마 오지량! 천혈교의 주구! 죽음을 눈앞에 둔 자가 무슨 욕심이 있어 세상에 기어나오셨소!”
“헉!”
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화예령의 백색 검강이 코앞에 다가오거늘!
하지만 그는 혼세십팔마 중의 한 사람 추혼신마 오지량이었다.
입술을 깨문 오지량은 짜릿한 통증으로 인해 정신이 들자 혼신의 힘을 다해 뒤로 물러섰다.
“크윽! 어떤 놈이 사공을……!”
휘잉!
화예령의 검이 앞섶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지량은 급급하게 다시 일 장을 물러섰다.
순간 한줄기 뇌전이 하늘을 시퍼렇게 물들이며 떨어져 내렸다.
쩌저적! 쾅!
오지량의 몸뚱이가 이 장 밖으로 튕겨졌다.
본능적으로 방어한 덕분에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에 오지량의 입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화예령이 튕겨진 오지량을 따라 신형을 날렸다. 그녀의 백색 검에서 피어난 눈처럼 하얀 검강이 오지량의 가슴을 파고들자 오지량이 가까스로 몸을 뒤틀었다.
찰나의 순간, 화예령이 이를 악물고 오지량을 향해 돌진했다.
미처 진용이 멈추라는 말을 할 시간도 없었다.
“꺼억!”
“으음.”
두 사람이 엉키듯이 들러붙었다.
언뜻 오지량의 등 뒤로 피를 머금은 백색 검이 하얀 이빨을 드러낸 것이 보였다.
하지만 화예령도 결코 편안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녀의 악다문 입술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는 말.
이를 악다문 화예령이 피에 젖은 입으로 말했다.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내 딸을 데려갈 수는 없어, 늙은이…….”
“끄으으……. 지독한…… 년…….”
오지량이 눈을 까뒤집으며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의 손에 만도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앞에 내려선 진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도의 행방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예령, 그녀의 가슴에 만월처럼 휘어진 만도가 반쯤 꽂혀 있었다.
뚝. 뚝. 뚝!
만도의 날을 따라 흘러내린 피가 황토를 붉게 적셨다.
“어머니!”
화인화가 마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달려왔다.
화인화가 달려오자 진용은 화예령의 가슴을 향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진용의 손짓에 화예령의 가슴에서 빠져나온 만도는 화인화가 보지 못한 사이 소리 없이 땅바닥에 박혀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손짓에 화예령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빠르게 멎어갔다.
화예령의 눈이 진용을 향했다.
무리를 하다 보니 그 충격으로 움직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슴에 박힌 도를 빼내야 하는데도 빼내지 못하고 있었다.
인화가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놀랄까?
그런데 눈앞의 서생이 모든 것을 해결해 버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네.”
“고마워요, 고 공자.”
화예령을 마차 안에 눕히자 화인화가 눈물을 닦으며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이 물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대답은 누워 있던 화예령이 했다.
“십절검존을 만나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