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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167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167화

 

167화

 

 

 

 

 

 

 

팽가의 사람들 중 등에 유독 커다란 도를 메고 있는 중년인이 조용히 팽기한을 불렀다.

 

팽기한이 뒤돌아보자 그가 말했다.

 

“배가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가시지요.”

 

팽기한이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중, 너는 이 공자가 누군지 아느냐?”

 

팽전중은 힐끔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진용은 그저 별 볼일 없는 서생일 뿐이었다. 벽력도라 불리는 숙부가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로 생각될 정도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저 청년이 숙부님의 말상대가 될 자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전에 내가 천암산에서 어떤 청년을 만났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나 모르겠구나.”

 

“예, 들었습니다. 하면……?”

 

“여기 고 공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때 많은 도움을 받았었지.”

 

팽전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진용의 모습을 보니 팽기한이 받았다는 도움도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팽기한이 그때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순전히 진용의 겉모습이 낙방한 서생의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가하게 그때의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그럼 내 생각을 들어보겠느냐?”

 

“말씀하시지요.”

 

“나에게 저 배를 타고 회하를 건너는 것과 이 앞에 있는 고 공자를 사귀는 일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고 공자를 택할 것이다.”

 

팽전중뿐이 아니라 팽가의 모두가 놀란 눈으로 팽기한을 응시했다.

 

“왜? 말도 안 되는 말 같으냐?”

 

“숙부님, 제가 어찌 감히 숙부님의 사귐을 방해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단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그래서 그런 것이다.”

 

“예?”

 

팽기한은 깊어진 눈으로 팽전중을 바라보고는 진용에게 물었다.

 

“고 공자,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아는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조금 이상한 감을 느끼던 차였다.

 

“탕마단에 합류하기 위해서 오신 줄 알았습니다. 한데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군요. 혹시…… 화령옥 문제로 오신 것 아닙니까?”

 

팽기한이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고 공자군. 맞네. 우리는 화령옥 때문에 왔네.”

 

화령옥은 가짜였다. 

 

그럼 처음부터 가짜였을까, 아니면 중간에 바꿔치기 된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가짜였다면 이들이 화령옥의 문제로 여기에 올 이유가 없다.

 

그럼 누가 바꿔치기 했을까?

 

그때 또 한 가지 의문이 화령옥에 대한 의문과 겹쳤다.

 

진용이 뜬금없이 물었다.

 

“천제성의 성주를 찾아가시는 겁니까?”

 

천제성은 천혈교의 움직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혈혈구마 모두가 천암산에 모여든다는 것까지도. 위지홍을 비롯한 온건파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화령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요마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화령옥만큼 좋은 미끼는 없었을 테니까.

 

팽기한은 물론이고, 팽전중과 옆에서 묵묵히 오가는 말을 듣고 있던 팽가의 장로들마저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팽기한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요마는 죽기 전까지 화령옥이 가짜인지도 모르고 죽었다는 것을 어르신도 알고 저도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도 호가장에서는 분명 진품을 넘겼다고 했을 겁니다. 그럼 누군가가 바꿔치기 했다는 말밖에 안 되는데……. 하면 누가, 왜, 바꿔치기를 했을까요?”

 

진용이 잠시 말을 끊고는 차가운 냉소를 머금었다.

 

“저는 천제성의 성주를 만나봤습니다. 천제성에 많은 변화가 있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천제성에서는 혈혈구마 모두의 움직임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것과 화령옥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만일 요마의 행적이 갑자기 사라졌다면, 그런데도 그를 꼭 끌어내고자 한다면 어르신께선 그를 어떻게 끌어내시겠습니까?”

 

“…미끼를 쓴다?”

 

“그 와중에 그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 있다면요?”

 

팽기한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하니 굳었다.

 

“그럼 진짜 화령옥은 천제성에 있겠군.”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가장 많다고 할 수 있지요.”

 

“으음…….”

 

팽기한이 끝내 깊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자 진용이 물었다.

 

“한데 천제성에 찾아가려는 정확한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자네가 알 바 없네!”

 

미간을 찌푸린 팽전중이 차갑게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팽기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호가장을 찾아갔더니 장주인 호병승이 이런 말을 하더군.”

 

“숙부님!”

 

“물러서라. 고 공자의 말을 듣고도 모르겠느냐? 이 일에 대해 우리보다 고 공자가 더 많이 알고 있지 않느냐? 도움을 청해도 모자랄 판이다. 쉬쉬할 때가 아니야.”

 

팽기한이 강한 어조로 말하자, 팽전중은 진용을 향해 눈을 한 번 부라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물러섰다.

 

“미안하네. 아직 조카가 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게나.”

 

그 말에 붉어진 얼굴로 홱 고개를 돌리는 팽전중을 무시하고 팽기한이 말을 이었다.

 

“여중이 도착하기 하루 전 화령옥을 사겠다는 사람이 하나 나섰다고 하네. 이미 거래가 이루어졌다면 얼마든지 웃돈을 얹어서라도 구입하겠다고 말이야. 처음에는 어느 부유한 상단의 부인이 구하려는 줄 알고 ‘아무리 거액을 내밀어도 팽가에서는 화령옥을 팔지 않을 거요’라고 말했다고 하네. 그런데 그날 호가장을 찾아온 손님 중 하나가 그를 알아본 모양일세. 그가 나중에 호병승에게 말하길, ‘저 사람이 바로 천제성에 물품을 대는 낙양의 부호 길만중이오’라고 했다더군.”

 

아마 그를 조사해 봤을 것이다. 웃돈을 얹어주려 할 정도라면 그만큼 절실하다는 뜻.

 

“그런데 말이야, 우연하게도 그날 저녁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고 하더군. 갑자기 마사(馬舍)에 불이 났는데, 말들이 날뛰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하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화령옥이 바꿔치기 되었는데, 전날 저녁에 우연히 마사에 불이 났다? 

 

어느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길만중을 조사해 보셨겠군요.”

 

팽기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양에 가봤지. 한데… 죽었더군. 호가장에 다녀온 지 사흘 만에 갑자기 경기를 일으켜서 급사했다고 하네.”

 

꼬리를 잘라 버린 것 같다. 그러나 꼭 꼬리가 있어야만 몸통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천제성의 누군가가 화령옥을 빼돌렸다면 누가, 왜 빼돌렸다고 생각하십니까?”

 

팽기한이 신중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리성의 아들인 백리군학이 천추무령공을 익힌다는 말을 들었네.”

 

“천추무령공요? 그 무공을 익히는 것과 화령옥과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천추무령공은 극도의 순수를 요구하는 무공이네. 그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천추무령공을 동자공으로 알고 있을 정도지. 화령옥은 인간의 노화를 막아줄 정도의 순양지기가 함유되어 있는 물건 아닌가?”

 

그러니 천추무령공을 익히는 사람에게 화령옥은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진용은 팽기한의 말을 듣자 그들이 왜 천제성에 혐의를 두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백리군학이라…….”

 

그때 뒤에서 정광이 소리쳤다.

 

“고 공자! 배가 도착했네! 안 탈 건가?”

 

팽전중도 팽기한을 재촉했다.

 

“일단 배를 타고 건너며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음, 그럴까? 고 공자, 가세.”

 

 

 

팽가의 무사들은 모두 사십 명이 조금 넘는 숫자였다. 네 명의 장로를 빼고도 대부분이 서른에서 마흔 안팎의 무사들로, 고르고 고른 정예들로 보였다.

 

그들이 모두 타고도 배에는 스무 명 정도 탈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팽가의 무사들은 양민의 승선을 허락하지 않았다.

 

분명 온당치 않은 처사였지만 진용은 바라보기만 했다.

 

팽가의 무사들이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에게 은 한 냥씩을 나눠주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돈을 받은 양민들이 횡재했다며 좋아하는데 팽가의 무사들에게 뭐라 하겠는가. 양민들에게는 열흘 벌이에 해당하는 돈이 아닌가 말이다.

 

명문세가가 왜 명문세가인가를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배가 건너편에 도착하자 팽기한이 진용에게 제안했다.

 

“천제성 사람들을 만나는데 함께 가지 않겠나?”

 

진용이 천제성과 대판 싸운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정쩡한 상황.

 

“죄송합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진용은 돌려서 거절했다. 어쨌거나 당장은 유태청과 일행을 만나는 일이 급선무였다.

 

사실 진용이 오히려 팽기한에게 백리성을 만나는 것을 미루어 달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팽기한도 분명 그 제안을 거절할 테니까.

 

백리성이 아무리 패도를 가기로 했어도 당장 팽가를 적으로 삼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도 들었고.

 

“그들과는 곧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천혈교에 가볼 생각이니까요.”

 

“아쉽군. 자네가 있으면 힘이 될 텐데 말이야.”

 

진용과 백리성의 관계를 모르는 그로선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진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천제성의 성주가 백리성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팽기한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던 팽가의 사람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린가? 천제성주는 천무제 백리자천 아닌가?”

 

아직 모르고 있었나? 

 

하긴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정천무맹도 석무심과 사공하가 전한 단편적인 사실만 알 것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현재의 천제성주는 백리성입니다. 본인이 직접 한 말이니 결코 잘못된 정보는 아닙니다.”

 

팽기한을 비롯해 팽가의 장로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반쯤 얼이 빠진 표정의 그들을 향해 진용이 말했다.

 

“어쨌든 백리 성주를 만나거든 제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많이 안 좋은 사이니까요.”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서로 죽이지 못해 한(恨)인 사이였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비록 한이 맺힌 사이어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가 아직 자신을 건들지 않고 있는 이상은.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 나중에 보세.”

 

진용이 팽기한과 인사를 나누고 떠나자 팽가의 장로들이 물었다.

 

“저자가 천제성에 대해 어떻게 그리도 잘 아는 겁니까? 게다가 숙부님께서 그리 중히 여기시는 걸로 봐서 이름이 없는 자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굽니까?”

 

팽기한은 멀어져 가는 진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하의 젊은이들 중에서 한 손에 꼽을 만한 자라 생각했지. 그런데 이제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너무 커버렸어.”

 

“예?”

 

벽력도 팽기한이 판단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것이 팽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팽기한은 그런 의문을 품은 조카들을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무공도 나보다 강한데다, 황궁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야. 십절검존 유 노사가 그와 함께 다닌다는 소리를 언뜻 들었는데…….”

 

팽전중을 비롯해 팽가의 장로들이 눈을 부릅떴다.

 

“억! 그럼 저자가……?”

 

갑자기 팽가의 장로 중 하나인 팽효중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는 본래 소문에 귀 기울이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이번 길에도 정보를 책임지고 있다 보니 그런 사람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팽효중이 놀라자 팽기한이 그를 쳐다봤다.

 

“왜? 들어본 사람이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란 팽효중이 단말마처럼 하나의 별호를 내뱉었다.

 

“천뢰서생!”

 

팽기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천뢰서생이라… 흠, 정말 딱 맞는 별호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칠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웃음이었다.

 

 

 

 

 

3

 

 

 

 

 

신양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진용은 빠르게 달리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관도 왼쪽의 황토 언덕 너머 상당히 먼 곳에서 일장박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바람 소리에 섞인 소리는 흉험하기 그지없었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 악쓰며 외치는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처절한 비명!

 

한두 사람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수십 명이 집단으로 싸우는 상황 같았다.

 

아무래도 신양이 코앞이다 보니 천혈교와 어느 세력이 다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간간이 섞인 처절한 비명은 대부분 여인이 터뜨리는 비명이었다.

 

여인들의 연이은 비명. 강호에 별의별 일이 다 있다 해도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이 흉악한 놈들! 아악!”

 

진용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목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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