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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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64화
164화
2
남궁환은 모든 것이 신기한 듯했다.
오면서 들은 말이지만, 근 이십 년 동안 합비에서 백 리 밖으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짧고 확실하게 답했다.
“길 잊어 먹을까 봐.”
어쩐지 합비가 멀어지자 바짝 붙어서 다니더라니.
“전에 길 잊어 먹어서 찾느라 혼났거든. 사흘을 굶었어. 어떤 칼잡이하고 대판 싸우기도 했고. 겁나게 세더라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잖습니까?”
“에이, 나도 모르는 우리 집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아? 괜히 물어봐봐야 미친놈 취급만 받지.”
“…….”
그 이후로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달리기만 했다.
육안(六安)을 지나 서북쪽으로 방향을 꺾자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그곳만 넘어가면 하남이었다. 하루면 될 것 같았다.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오는 도중에 들려온 소문들이 심상치 않았다.
―무사들이 신양으로 몰려간다.
―곧 큰 싸움이 난다더라.
마음이 다급해졌다.
천제성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탕마단도 곧 신양에 당도할 듯했다.
그날 밤.
칙칙한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둘러보며 정광이 물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맞을까?”
“글쎄요…….”
진용이 자신 없는 말투로 답했다. 남궁환이 더욱 바짝 붙어 걸었다.
진용은 그를 볼 낯이 없었다. 그를 길치라 생각했는데, 자신도 길을 잃은 것 같다.
처음 가는 길이니 당연히 모를 수도 있었다.
문제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드넓은 대륙에서 길을 한 번 잘못 잡고 달리면 하루 허비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진용은 일단 실피나를 불러내서 주위에 인가가 있나 알아보라고 했다.
인가만 찾으면 그다음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실피나는 일각이 넘어서 돌아왔다.
―주인아, 저쪽에 집이 있어.
<그래? 여기서 얼마나 되지?>
―어, 산을 두 개 넘어야 돼. 근데 제법 센 인간들이 있어.
실피나가 제법 세다고 할 정도면 절정고수라는 말이다.
평범한 집은 아닌 듯했다.
<몇 명이나 돼?>
―응, 열 명 넘어.
열 명은 넘지만 스무 명은 안 되는 것 같다.
진용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 숫자라면 강호 세력의 본거지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절정고수가 그 정도 모여 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앞장서.>
실피나를 따라서 얼마를 걸었을까, 멀리서 불빛이 반짝였다.
“불빛이다!”
남궁환이 좋아서 소리쳤다.
진용이 실피나에게 물었다.
<저기야?>
―응.
“뭐 하나? 일단 가보자고.”
정광이 재촉했다.
진용이 일단 주의를 주었다.
“심상치 않은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접근하는 게 좋겠습니다.”
진용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천암산에서는 산 세 개 너머의 기운도 알아채지 않았던가.
“그래? 알았네. 노릿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사냥감을 불에 굽는 것 같군.”
정광의 코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 볼 때는 가까운 것 같았는데 십 리를 가서야 불빛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우거진 숲속에서 그들을 살펴보았다.
불빛의 정체는 모닥불이었다. 허름한 사당 앞에 피워진 모닥불은 추위 때문에 피워진 것이 아니었다.
일곱 명이 모닥불 주위에 대충 앉아 있었는데, 모닥불 위에는 가로로 굵은 나무 두 개가 불이 붙은 채 걸쳐져 있고, 그 위에서 멧돼지가 노릿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광이 꿀꺽 침을 삼키고 멧돼지를 노려보았다.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위험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이군.’
실피나가 제대로 보았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에서 사십대까지, 무공에 상당한 세월을 바친 자들이다.
사당 안에 있어 보이지 않는 자까지 모두 열두 명. 하나같이 고수 아닌 자가 없다. 둘이라면 정광도 자신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런 곳에서 태평하게 고기를 굽고 있는 걸 보니 최소한 천혈교나 삼존맹, 천제성 무사들은 아닌 듯했다.
<어떻게 할 건가?>
정광이 전음으로 물었다. 침이 잔뜩 고인 목소리였다.
<일단 부딪쳐 보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정광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진용과 남궁환도 우거진 곳에서 나와 사당을 향해 걸어갔다.
둘러서 있던 자들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돌리더니 진용 일행을 바라보았다. 입술 옆에 손톱만 한 점이 있는 자였다.
“야밤에 산행이라니, 겁이 없는 것인지 그만큼 자신이 있는 것인지……. 좌우간 이런 산중에서 사람을 보니 반갑군.”
“길을 잃었소. 꿀꺽!”
답하는 정광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훗, 어쨌든 이렇게 만났으니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소, 도장? 이리 오시구려. 고기는 충분하니까.”
또 다른 자가 짧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는 사십 전후로 인상이 날카로운 자였는데, 머리를 단정히 뒤로 넘긴 한쪽 얼굴에는 세로로 길쭉한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가 한층 그의 인상에 날카로움을 더해주었다.
정광이 모닥불 위에 시선을 집중하고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이곳까지 온 마당,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진용도 남궁환과 함께 정광의 뒤를 따라갔다.
한쪽에 자리를 잡자 대충 앉아 있던 자들 중 하나가 불쏘시개를 하던 막대기로 멧돼지를 푹 찔렀다.
“잘 익었군.”
그 옆에 있던 자가 품속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스윽!
시커멓게 탄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알맞게 익은 살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그가 다시 한번 단검을 그었다. 손바닥만 한 살점이 얇게 잘라졌다. 잘라진 살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익었군. 먹자고.”
머리를 단정히 넘긴 자가 사당을 향해 말했다.
“도 형, 어르신들을 모시고 오시구려. 고기가 다 익었소.”
말이 떨어지고 열을 세기도 전에 사당 안에서 다섯 명이 밖으로 나왔다.
세 중년인이 흑백이 확연한 두 명의 노인을 호위하는 자세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진용의 눈빛이 더욱 깊게 잠겨들었다.
‘저 두 노인은 도장님의 아래가 아니다.’
위일 수도 있다는 말.
진용은 묵묵히 기운의 흐름을 탐지했다.
아직 적의는 느낄 수 없었다. 적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당에서 나온 노인이 진용 일행을 보더니 미미하게 움찔거렸다.
“손님이 오신 것 같더니, 이분들인가?”
흑의를 입은 노인이 정광을 바라보고 물었다.
“길을 잃었다 합니다.”
머리를 단정히 넘긴 자가 별다른 감정 없이 말했다.
“그래? 대단한 분이 손님으로 오셨군.”
그 말에 정광이 고기에서 눈을 떼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정광의 눈에도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는 노도우가 더 대단한 분 같소.”
흑의노인이 피식 웃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네. 집에서 쫓겨난 늙은이가 무어 대단할까?”
그 말에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비감이 어린 표정이었다.
흑의노인이 한쪽에 마련된 자리로 가며 말을 이었다.
“배가 고픈 도사와 노인을 쫓아낼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말고 드시게나.”
이미 멧돼지의 살점은 조각조각 잘라져 가로놓인 굵은 통나무 위에 널려 있었다.
단검을 든 자의 솜씨였다. 많은 경험이 있는 듯 그는 뼈 사이에 붙은 고기까지 익은 것은 철저히 발라냈다.
정광은 흑의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뻗어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이거 드시구려.”
그러고는 남궁환에게 건네는 여유까지 보였다.
남궁환은 날름 고기를 받아 들고는 어린아이처럼 흥얼거리며 입에 집어넣었다.
“우와, 이렇게 구운 고기는 진짜 오랜만에 먹어보네. 애들은 내가 고기 굽는 걸 싫어하거든.”
눈앞에 누가 있는지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진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저들이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먼저 긴장한 자신이 우습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흑의노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집에서 쫓겨난 늙은이라…….’
그때 자리에 앉은 백의노인이 조용히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가?”
진용이 나설 틈도 없이 남궁환이 재빨리 말했다.
“나? 합비. 그런데 너는 어디서 왔지?”
동작이 일제히 멈췄다.
입에 고기를 물고 있던 사람도, 고기를 잡아가던 사람도, 하얀 수염을 쓰다듬던 백의노인도.
진용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이미 터진 일이었다. 수습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 사람 미친 사람이오’ 할 수도 없잖은가 말이다.
일단 흐르는 대로 놔두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수밖에.
그런데 백의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험, 나? 서천목산에서 왔다. 늙은이, 말이 짧구먼.”
“콜록! 컥!”
사방에서 사람들이 목을 움켜쥐었다. 누가 보면 고기에 독이라도 든 줄 알 정도다.
“너 몇 살이야?”
남궁환이 대뜸 물었다. 백의노인이 되물었다.
“그런 너는 몇 살인데?”
“나? 칠십둘. 너는?”
“…….”
백의노인은 반쯤 입을 벌린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 머리와 수염만 하얘서 잘해야 육십이 될까 생각했는데, 칠십이 넘었다니.
답답한 마음에 그냥 농담조로 시작한 것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계속 ‘너’ 할 수도 없는 일.
그는 슬쩍 정광을 쳐다봤다. 맞아? 하는 눈빛으로.
정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맞을 거요, 하는 표정으로.
“험, 생각보다 나이를 많이 드셨구만. 이봐, 저 양반께 고기 좀 드리게나.”
백의노인은 일단 한발 물러서서 고기로 무안한 상황을 무마시켰다.
그제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씹던 고기를 마저 씹고, 뻗었던 손으로 고기를 집었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참느라 온갖 인상을 다 썼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남궁환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갑자기 백의노인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근데, 서천목산에서 왔다면, 혹시 염천마곡이라는 곳 알아?”
순간, 사람들의 동작이 또 일제히 멈췄다. 정광도, 진용도.
진용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서천목산, 절정의 고수들이 끼어 있는 열두 명의 무인.
맞다! 이들은 염천마곡의 고수들이다. 그것도 전에 만났던 자들보다 훨씬 강한 고수.
‘이런, 멍청하긴!’
진용은 남이 느끼지 못하게 조용히 내력을 모았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아무도 몰랐다. 준비해 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아예 먼저 공격을 해버릴까?’
그때 남궁환의 옆에 앉아 있던, 입술 옆에 손톱만 한 점이 박힌 자가 물었다.
“왜 묻는 거요?”
“옛날에 내 친구가 거기 산다고 했거든.”
친구? 진용은 의아한 눈으로 남궁환을 쳐다보았다.
점 달린 자가 다시 물었다.
“친구의 이름이 뭐였소?”
“광.”
“…광?”
“성은 영호라고 했어.”
“영호… 광?”
“맞아! 영호광. 잘 있나 모르겠네. 하도 오래돼서…….”
“…….”
“왜 그런 눈으로 봐? 눈 아프게.”
점 달린 자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뜨여 있었다.
그자뿐이 아니었다. 둘러서 앉아 있던 염천마곡의 고수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남궁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몰라? 하긴, 그 친구 만난 게 삼십 년이 넘었지 아마? 구양 뭐시기라는 엉큼한 놈하고 어울린 후로는 한 번도 못 만났는데…….”
남궁환이 풀 죽은 목소리로 웅얼거리자, 흑의노인이 일어서서 남궁환에게 다가왔다.
진용은 슬며시 손끝에 내력을 모았다.
‘시르, 먼저 공격해서 다 죽여 버려!’
세르탄이 난리를 쳤다.
‘가만있어 봐. 태도가 좀 이상해…….’
‘이상하긴 개뿔이나…….’
그때 흑의노인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노인장께서 영호… 곡주님의 친구 분이시란 말이오?”
남궁환이 대답했다.
“어.”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나? 남궁환.”
흑의노인이 딱딱하게 굳은 눈으로 남궁환을 뚫어지게 직시했다.
진용은 그가 격동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노인장이…… 치검 남궁환?”
“맞아, 내가 치검이야. 그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지.”
남궁환이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모두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광경이 이어졌다.
흑의노인이 부르르 몸을 떨고는 천천히 남궁환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백의노인조차 흑의노인 옆에 서더니 같이 무릎을 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