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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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62화
162화
진용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마음대로 하시죠. 꼭두각시에 불과한 사람이니까.’
무언의 승낙. 정광이 씩 웃었다. 동시에 흐릿한 잔상만 남기고 풍혼이 펼쳐졌다.
“잘 모르겠으면 한번 느껴봐!”
진용은 정광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아예 말릴 생각도 없었다.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갑자기 정광의 신형이 코앞에 나타나자 남궁원의 날카롭던 인상이 한순간에 터진 부대 자루처럼 축 처졌다. 눈만 휘둥그레진 채.
그의 무공도 남궁세가의 자식이라는 자부심만큼이나 약하지 않았다. 다만 정광이 그보다 두어 수 윗길의 고수인데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끝내려는 마음에 전력을 다 끌어올렸다는 것이 문제일 뿐.
휙!
“헛!”
“어쭈, 피해?”
시끄러운 말소리와 뒤섞여 서너 번의 공격과 회피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퍽!
일격이 어깨에 떨어졌다. 그나마 남궁원이 가까스로 몸을 꺾었기 때문에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짝!
어깨를 때린 쇠신발이 튕겨지며 물러서는 남궁원을 따라가 낯짝을 후려쳤다.
세게 쳤으면 머리가 반쪽은 달아났을 것이지만, 그나마 내력을 싣지 않았기에 머리가 돌아가는 정도로 끝이 났다.
“우욱!”
그래도 충격은 만만치가 않아서 아마 별이 번쩍였을 것이다. 이가 나가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비틀거리며 물러선 남궁원이 미처 신형을 안정시키기도 전에 정광이 또 쇠신발을 휘둘렀다.
짝!
반대편 낯짝에서 물먹은 채찍이 말 등을 후려친 것처럼 짝 소리가 났다.
남궁원의 동작이 확연히 느려졌다. 눈도 반쯤 풀려 버렸다.
순간 정광이 쇠신발을 높이 들더니 냅다 후려쳐 버렸다.
뻑!
쇠신발이 남궁원의 이마에 작렬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골이 심하게 흔들린 남궁원이 흐느적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광이 주저앉은 남궁원의 이마를 톡톡 치며 말했다.
“그러게 말장난도 사람을 가려서 해야지. 누가 시켜도 그런 식으로 하면 딱 맞아 죽기 십상이라네.”
그럼 남궁원의 행동이 누가 시켜서 한 것이라는 말?
정광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진용이 월동문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뭘 알고 싶으신 겁니까?”
두 사람이 월동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한 사람은 그도 알고 있는 남궁창평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남궁창평보다 대여섯 살은 더 먹어 보이는 청수한 인상의 초로인이었다.
청수한 인상의 초로인은 남궁원을 바라보고는 혀를 찼다.
“쯔쯔쯔, 녀석. 내 언제고 그 성질 때문에 혼날 줄 알았지. 말만 전하고 오라 했더니…….”
“그러게 후를 보내자고 하지 않았소?”
“그 녀석이라고 뭐 순순히 말만 전하고 왔을 것 같은가?”
“그래도 저렇게 쭉 뻗지는 않았을 것 아니오?”
“됐네. 솔직히 말해서, 저 녀석 혼나보라고 보낸 거야.”
두 사람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진용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성질 더러운 녀석 교육 차원에서 보냈던 거였다.
‘어쩐지 세가의 자식이라는 자가 지나치게 막말을 한다 했더니…….’
그렇다고 잘못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말을 전하러 왔으면 말이나 전할 것이지 어디서…….
“전하려던 말이 뭡니까?”
진용이 묻자 청수한 인상의 초로인이 빙그레 웃었다.
“가주께서 뵙자 하시네. 가지?”
남궁창성은 남궁창훈과는 또 다른 인상이었다. 남궁창훈이 후덕한 인상이라면 남궁창성은 강인한 인상이었다.
진용은 한눈에 남궁창성이 결코 남궁창훈에 비해 못하지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천맹의 형님을 잘 안다 들었네만.”
“잘 안다기보다, 전에 정천맹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는 말이지요.”
남궁창성은 그 일에 대해 일절 모르는 듯했다.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천맹에 들어갈 때부터 남궁창훈이 그 일을 비밀에 붙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흠, 형님께서 사람 만나기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대처럼 젊은 사람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을 줄은 미처 몰랐군.”
믿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정광이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툭 쏘듯 말했다.
“원래 남궁 맹주가 만나려 했던 사람은 고 공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지 아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도장?”
“다른 사람을 만나는데, 고 공자가 함께 갔다는 말이지 뭐겠소?”
남궁창성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곁다리로 끼어 만났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만남을 가지고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말하다니.
가소로운 일이었다. 하마터면 정말 잘 아는 것으로 알 뻔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은 깔보는 말투였다.
“다른 사람이라……. 그게 누구요?”
정광은 남궁창성의 말투에 섞인 감정을 느끼고는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이 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말해도 좋다는 뜻.
정광이 한 자 한 자 못 박듯이 말했다.
“십.절.검.존. 유.태.청!”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졌다.
십절검존의 이름이 주는 무게에 숨소리조차 잦아들었다.
정광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남궁세가의 주축이라는 사람들이 몸이 굳어 말도 못하자 느긋이 그 느낌을 즐겼다.
‘흥, 어디서 사람을 무시하고 있어?’
한참 만에야 남궁창성이 힘들게 말을 꺼냈다.
“형님께서 정말 그분을 만났단 말이오?”
그제야 진용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비밀스런 만남이라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지요.”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던 청수한 장년인, 남궁창운이 의심의 눈초리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형님이 그분을 청했는데 왜 그대가 같이 갔단 말인가?”
“일행이니까요.”
일행. 단순한 한마디에 남궁세가의 군사나 다름없는 남궁창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행이라고? 그럼 제자란 말이오?”
혹시 하는 마음에 말투마저 달라졌다.
“제자는 아니지만, 그분께 배운 바가 적지 않지요.”
제자가 아니라는 말에 남궁창운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문득, 그는 얼마 전에 들려온 소문이 떠올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문이었지만, 한두 사람이 전해온 것이 아니었기에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천하에 괴이한 고수가 나타났다. 십절검존이 그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들 일행에게 적혈문이 봉문당하고, 하남과 안휘의 다섯 개 방파가 무릎을 꿇었다!
어느 순간, 그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평범한 서생의 복장을 하고 있는데, 그의 손에서 벼락이 일면 당할 자가 없다고 한다.
머릿속이 왱왱 울어댔다.
‘서생, 서생, 서생…….’
새벽에 자신을 찾아온 남궁창평의 말도 떠올랐다.
“그는 놀랍게도 엽차 잔으로 주담자를 쳐서 나에게 내상을 입혔소.”
진용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서서히 커져 간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남궁창성도, 남궁창평도, 정광도.
“왜 그런가, 아우?”
남궁창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궁창운은 가주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천뢰서생(天雷書生)!”
진용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정광도 머리를 쑥 내밀고 남궁청운에게 물었다.
“그게 누구요?”
남궁청운은 여전히 홉떠진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적혈문을 봉문시킨 것이 혹시 그대가 아니오?”
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응곡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천뢰서생이 그대…… 고 공자를 칭하는 별호라는 것을 모르신단 말이오?”
진용이 정광을 돌아다보았다.
정광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처음 들어봅니다.”
진용이 어색한 표정으로 답하자 남궁창운이 멍하니 진용을 쳐다보았다.
그때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맑은 음성으로 물었다.
“뭔데? 뭘 처음 들어본다는 거지?”
남궁환이었다. 이제 깨어난 듯 해맑은 눈에 눈곱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채였다.
“이야기했나? 나하고 같이 간다고?”
“아직 안 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하지. 창성이 조카, 나 이 젊은이하고 어디 좀 갔다 와도 되지?”
남궁창성은 정신이 없었다. 십절검존의 이름만도 놀랍기 그지없거늘, 눈앞에 있는 서생이 근래 강호를 폭풍처럼 뒤흔든 천뢰서생이었다니.
거기다 숙부마저 숨긴 무공이 엄청나다지 않던가.
“숙부님, 꼭 가셔야겠습니까?”
“어.”
남궁환의 간단한 대답에 남궁창성은 말문이 막혔다. 꼭 간다는데 뭐라 할 건가?
“그럼 언제쯤 오실 겁니까?”
“검을 완성하면 돌아오지 뭐.”
검을 완성한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말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함께 가는 사람이 천뢰서생이고, 그가 십절검존과 함께할 것이 분명한 이상 남궁환의 행보는 남궁세가에 손해가 아닐 듯했다.
남궁창운은 재빨리 남궁창성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님, 보내주시지요. 잘하면 십절검존과 천뢰서생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남궁창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을 해주셔야 합니다.”
“뭔데?”
“본 가가 원할 때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거야 쉽지. 참! 저번에 등우광인가 하는 놈이 우리 아이들을 많이 죽였다며?”
남궁창성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그 때문에 세가의 힘이 삼 할은 줄어들었다. 원로들 중 남궁환보다 나이가 더 든 남궁탁도 그때 죽었다. 형제지간인 장로들도 세 사람이나 죽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만일 정천맹주인 형님의 말씀만 아니었다면 전력을 이끌고 천혈교를 치려했을 것이다.
“맞습니다. 놈들에게 형제와 조카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남궁환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가 옛날에 그놈 가슴에 검을 꽂았거든. 그게 분해서 찾아왔나 봐. 내 다시 만나면 가만 안 둘 거다!”
모두가 벙찐 눈으로 남궁환을 바라보았다.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날 등우광은 이상한 말을 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놈들! 오늘 그가 없는 이상 너희들이 흘리는 피가 배는 많아질 것이다!”
그가 말한 ‘그’가 누군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야 알았다.
‘그’는 남궁환이었다.
자신들이 미친 노인 취급 했던, 그래서 한 달에 열흘 이상은 절대 용소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남궁환 말이다.
남궁창성도, 남궁창평도, 남궁창운도 고개를 푹 숙였다.
할 말이 없었다.
그 일이 벌어진 그날은, 남궁환이 용소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4
장원은 고요했다.
수억 관의 무게로 침묵이 짓누르고 있었다. 불길한 침묵이었다.
“제법 준비를 한 것 같군.”
적유의 입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도 결과는 변함이 없을 거외다.”
백리양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이미 장원은 물샐틈없이 포위되어 있었고, 적은 당장 구원군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십 리 이내에 무인이라곤 자신들밖에 없으니까.
설령 적들이 온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 그만한 준비쯤은 이미 해놓았다. 적들이 몰려오면 몰려오는 대로 피해가 커질 뿐이다.
남은 것은 한 가지. 적들을 최대한 빠르고 완벽하게 제압하는 것만 남았다.
“시작해 볼까?”
적유가 말했다.
“제가 선봉에 서지요.”
백리양이 답하고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뒤를 따라 비천검단의 고수들이 질서정연하게 좌우로 갈라섰다.
“정면을 친다! 천제성답게! 가자!”
백리양을 필두로 비천검단 삼십 명의 무사가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지옥을 향해!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적유의 눈에서 혈광이 번뜩이다 사라졌다.
“천제성답게라……. 후후후, 그것도 좋지.”
‘그만큼 피가 많이 흐를 테니까…….’
그는 백리양과의 거리가 백여 장으로 멀어지자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시작해라!”
순간 그의 좌우에서 백여 명의 무사가 소리없이 달려갔다.
그들이 움직임과 동시, 장원의 배후에서도 백여 명의 무사가 장원의 담을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적유가 흑의인 셋을 대동한 채 장원을 향해 움직였다.
잠시 후, 피바람이 장원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5
“지금쯤이면 천제성이 공격을 시작했겠군.”
“그럴 것입니다.”
“등우광이 버텨낼 수 있다고 보나?”
“잔혼쌍살마가 있으니 피해가 많이 나긴 해도 그럭저럭 버텨낼 수는 있을 겁니다, 태상.”
“그래, 그래야겠지. 그래야 미끼로서 완벽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상대가 너무 싱거우면 흥이 안 나는 게 인간이거든.”
공야무릉의 입가로 싸늘한 웃음이 걸쳐졌다.
쥐를 본 뱀의 웃음이었다.
“간간이 흥을 돋워주면서 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발악하는 것처럼 보여야 놈들의 간덩이가 커질 거야.”
“그만큼 경계심도 줄어들겠지요.”
“모든 것은 이곳에서 결말을 낸다.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는가?”
“날짜에 맞춰 살관(殺關)이 완성될 것입니다.”
“후후후, 좋아. 교주께선 뭐 하시고 계시는가?”
“저… 그게…… 뭔가 갈등을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태상.”
“갈등? 어리석은……. 아무래도 뭔가 변화를 줘야 할 것 같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공야무릉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숙야명.”
“예, 태상.”
“천하의 여인 중 교주의 부인이 될 만한 여인을 하나 골라라.”
숙야명의 고개가 슬쩍 들렸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태상. 마침 뛰어난 여인이 하나 있습니다. 교주님의 부인으로 더없이 어울리는 여인입니다.”
“호, 그래? 그게 누구냐?”
숙야명이 말했다.
“봉황곡의 화인화라는 여인입니다. 월음지체(月陰之體)의 여인으로, 교주님의 혈천기(血天氣)를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여인입니다. 아마 그녀라면 후사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후사라……. 하긴, 천혈교의 대를 이을 핏줄만큼 중요한 것도 없겠지. 좋다. 추혼신마 오지량을 보내 그 여인을 데려오라 해라.”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