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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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55화
155화
중앙로로 나아가자 한때 황궁이었으며 지금은 성주부로 사용되고 있는 내성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성문 앞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그러자 두 명의 관병이 앞으로 나오더니 창을 들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인가?”
진용과 정광의 추레한 행색을 본 한 관병이 눈을 부라렸다.
당연히 그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정광이었다.
정광이 손을 들어 창대를 후려쳤다.
뚝!
도검에 부딪쳐도 끄떡없는 창대가 마른 갈대 부러지듯 힘없이 꺾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관병은 멍하니 부러진 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광이 고개를 내밀며 으르렁거렸다.
“성주를 만나러 왔다. 어쩔래?”
어차피 진용이 힘자랑하겠다고 한 마당이다. 무서울 것이 없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보고만 있던 다른 두 명의 관병이 다가왔다.
“웬 놈이 감히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그들의 창을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관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 다시 세 명의 관병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 중 갑주를 걸친 장수가 옆구리의 검병에 손을 얹은 자세로 나서며 정광을 노려보았다.
“그대들은 누군데 성주님을 만나러 왔다는 것인가?”
진용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성주께 안내를 해주시겠소? 북경에서 온 사람이 만나뵙잔다고 말이오.”
북경(北京)!
단 한마디에 장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북경이라는 말이 단순히 지명을 말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더구나 진용의 무게가 실린 말투. 그것은 결코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직감이 경고를 울렸다.
황궁에서 온 자들이다. 조심해!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북경의 누구시라 전하면 되오?”
“금의위의 천호장 고진용이라 하오.”
진용이 품속에서 금의위의 영패를 슬쩍 내밀었다.
정광도 후다닥 품속을 뒤지더니, 슬쩍 영패의 끝만 보여주었다.
“나는 정광이라 하네. 험!”
순간 장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헉! 금의위!’
관리들에게는 저승사자가 바로 금의위다.
게다가 천호장이란다. 그렇다면 성주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분.
영패에는 분명 천호라는 글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정광의 영패는 끝만 봐서 모르겠지만, 두 개 다 말로만 들었던 금의위의 영패가 분명해 보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여기서?”
정광이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장수가 급히 외쳤다.
“아닙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힘자랑도 할만 했다.
소식이 얼마나 빠르게 전해졌는지 진용이 정광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성주가 서너 명의 관리와 함께 미리 나와 있었다.
남경성주 윤광한.
병부상서 윤광임의 동생이며 황후의 사촌 동생이 되는 자.
진용이 들어가자 비대한 몸집의 그가 급히 다가왔다.
“금의위의 천호께서 어인 일이신가?”
막상 묻는 그의 눈빛이 곤혹으로 물들어 있었다. 반쯤 의혹이 담긴 눈빛이었다.
‘진짜 금의위 천호 맞아? 너무 젊은데? 혹시 가짜 아냐?’
진용은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허름한 차림은 그런 의심을 받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런 의심 어린 눈빛을 바꿀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진용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영패를 꺼내 윤광한의 코앞으로 내밀며.
“역모에 관련된 일을 조사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역모!
역시 그 말 한마디에 윤광한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는 재빨리 진용이 내민 영패를 확인했다. 진짜가 분명해 보였다.
“허! 그런……. 어이쿠, 손님이 오셨는데 내가 실수를 했구먼. 이리 앉으시게나.”
진용이 자리에 앉자 정광도 그 옆에 따라 앉았다.
윤광한이 자신과 함께 서 있던 관리들을 일일이 소개시킨 이후에야 진용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삼왕의 일에 대해선 들으셨겠지요?”
“물론이네.”
“그럼 강호의 세력이 끼어들었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흠,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지.”
알고 있다니 말을 하기가 더 쉬워졌다.
“천혈교라는 곳이 삼왕과 연관되어 있지요. 한데 천화상단이 천혈교와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해서 그곳을 조사하려 합니다. 성주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만.”
천화상단이라는 말이 나오자 윤광한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천화상단이라고?”
천화상단은 천하에서 가장 큰 상단 중 하나, 아마 윤광한도 적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그가 청렴한 관리가 아닌 한은.
진용은 일단 단순히 조사 차원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천화상단처럼 거대한 상단을 저 혼자서 조사할 수도 없는 일이고……. 뭐, 일단은 의문나는 점만 조사하려고 합니다.”
“조사라면, 무엇을……?”
“얼마 전 천화상단의 아들이 하북에서 다친 몸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그 일에 천혈교의 고수들이 동원되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해서 그를 만나볼까 합니다. 제가 성주를 뵙고자 한 것은 그 일을 될 수 있으면 조용히 처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소란을 떨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윤광한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 정도로 조사가 마무리될 수 있다면, 천화상단의 둘째 아들을 성주부로 끌고 올 수도 있었다.
“그 정도야…….”
“성주께선 제가 그를 조용히 찾아볼 수 있도록 상황만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진용이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자 윤광한은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비록 상대가 금의위 천호라 하지만, 어쨌든 품위는 자신이 위가 아닌가.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디서…….’
그는 슬쩍 찔러봤다.
“그런데 고 천호도 알고 있겠지만 천화상단은 황궁에 상당한 조력자들을 가지고 있다네.”
진용이 무심히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허, 대단한 배짱이구먼.”
말은 그러면서도 비웃음이 어려 있는 눈빛이다.
‘역시 어린놈이라 겁이 없군. 저런 놈 정도야…….’
“험! 공손 도독이라 해도 천화상단을 직접적으로 건들지는 못한다네. 설마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말투에도 비웃음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진용의 목소리가 더욱 가라앉았다.
“저는 도독이 아닙니다.”
“그러니 만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걸세. 아직 나이가 어려선지 세상일을 잘 모르는 것 같군. 허허허, 세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지가 않다네. 조심할 건 조심해야 하는 법이지.”
“그들이 황궁의 힘을 이용해 제 조사를 막을 수 있다 그 말이십니까?”
“잘 아는구먼. 그러니 조심하라는 것이네. 다 젊은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이제 윤광한의 눈빛은 완연히 깔보는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죽으면 지위고 뭐고 다 소용없거든.”
진용은 그런 윤광한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며 전음을 보냈다.
<성주, 나는 말장난을 하고 싶지 않소. 어느 누구고 내 일을 방해하면 모두 잡아 가둘 것이오. 나 고진용이, 수천호령사라는 지위로 말이오.>
마지막 말이 떨어지자 윤광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진용이 가슴속에 손을 집어넣어 윤광한만 볼 수 있게 수천호령패를 삐죽 내밀자 안색이 누렇게 떠버렸다.
“그, 그것은…….”
진용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만! 더 이상은 비밀이니, 행여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 제가 성주께 죄를 묻는 일이 없도록 하시지요. 그리고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그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내어주시기 바랍니다.”
누렇게 뜬 얼굴이 급히 끄덕여졌다.
“알겠소이다, 수…… 고 천호!”
2
차가운 안개가 옷깃을 스며들었다.
어떻게 할 틈도 없었다.
하군상이 자신의 몸을 던진 순간, 초연향은 하군상의 생각을 짐작하고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안 돼요!
하지만 차가운 물이 회오리치며 그녀를 삼킨 것과 동시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득했다. 모든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차가움이 그녀의 정신조차 지배해 버렸다.
모든 것이 사라져 갔다.
움직여 물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끝이었다.
문득 그때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떠올랐다.
자신을 던지던 하군상의 결연한 표정도, 입술을 떼어내던 고진용의 붉어진 얼굴도 보였다.
꿈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은 것인가? 그럼 여기는 저승?
어쩌면 그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아직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언뜻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막이 울렁이며 목소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동시에 아득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이 심연 속으로 잠겨들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다.
고통, 답답함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때였다. 몸을 뒤척이는 그녀의 귀에 전보다는 뚜렷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어마? 움직여요, 할머니!”
여자의 음성 같다. 젊은 음성, 아니, 어린아이의 음성인가?
그런데 나에게 하는 말일까?
나른한 정신이면서도 실처럼 떠오른 의문을 붙잡고 고민하고 있는데, 무언가 따끔거리는 아픔이 느껴졌다. 아주 미미한 느낌이었다.
“곧 정신이 들 거다. 정신이 들거든 미음을 조금씩 떠 넣어주거라.”
조금 나이 먹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이제는 확실히 들렸다.
그제야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내가…… 살았구나.’
그녀가 눈을 뜬 것은 따끔거리던 통증이 시원하게 느껴질 때였다.
눈을 뜨자 희미한 잔상이 어른거렸다. 잔상이 하나로 모이는 데는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어린 소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정신이 들어요?”
초연향은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을 싸맸으니까 움직이지 말아요, 언니.”
언니? 조금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목을 싸맸다고? 목을 다쳤나?
“미음을 드릴 테니까 입을 벌려요.”
소녀가 말했다. 하지만 초연향은 입을 벌리지 않고 소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벌써 열흘이 넘었어요. 아마 할머니의 의술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예요.”
소녀가 다시 말했다.
열흘. 벌써 열흘이 지났나?
하 오라버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그래, 그랬을 거야. 분명…….
눈물이 흘렀다. 소녀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얼굴이 상하고 여기저기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았잖아요.”
얼굴이 상했다고? 초연향이 억지로 입을 열었다.
“어…….”
얼마나 다쳤어요?
그렇게 묻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다.
그때 소녀가 말했다.
“목도 많이 다쳐서 앞으로 말하는 것이 좀 힘들 거라고 했어요. 그러니 일단 몸부터 추슬러요, 언니.”
말하는 것이 힘들 거라고? 그럼…… 내가 벙어리가 된다는 말인가?
설마? 안 돼! 그건 안 돼!
오! 하늘이여!
3
진용은 남경부의 안찰사 진응겸과 함께 천화상단을 찾아갔다. 탁인효가 부상당한 것을 조사한다는 명목이었다.
뜬금없는 일이었지만,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돈이 필요해 왔는가 보군.’
총관은 사람을 시켜 진용을 탁인효의 거처로 안내하고는 진응겸을 따로 불러 열 냥짜리 금원보 열 개가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약소하지만 필요한 데 쓰시지요, 안찰사 어른.”
새파랗게 질린 진응겸이 상자를 내던지고는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나를 놀리는 건가!”
난데없는 일에 총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놈이 미쳤나?’
그때 밖을 슬쩍 살펴본 진응겸이 고개를 숙여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 멍청한 사람아, 나와 같이 온 사람이 바로 금의위야. 누구 죽는 꼴 보려고 그러나? 돈은 나중에 집으로 보내.”
진용은 정광과 함께 탁인효의 거처를 찾아갔다.
엄청난 장원의 크기만큼이나 찾아가는 길이 매우 복잡했다. 안내인이 없었다면 상당 시간 헤매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들어가시지요.”
안내인이 문을 열며 말했다.
정광을 밖에 남겨둔 채 진용은 혼자서 안으로 들어갔다. 창백한 안색의 탁인효가 왼쪽 어깨를 붕대로 감싼 채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의 왼팔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