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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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54화
154화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봐야 할 거요. 한데 무슨 뜻으로 묻는 거요?”
“염마존 영호광 곡주가 소곡주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했었지요. 그런데 어렴풋이 짚이는 것이 있더군요. 그래서 물은 겁니다.”
“……?”
이경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진용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 일에 어떤 식으로든 구양무경이 관여되어 있을 거라는 게 나와 십절검존 유 어르신의 생각이었지요.”
“십… 절… 검존?”
진용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경인이 입을 벌린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분이 저의 일행이라는 것을 몰랐습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선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곡주는 단지 절정의 고수가 몇 있으니 최선을 다해야 할 거라고만 했소.”
“그러다 죽으면 자신의 반대파들이 제거되는 것이니 그는 별다른 손해가 없겠군요.”
“그게 무슨……?”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호 곡주의 갑작스런 죽음을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정 궁금하시면 그것부터 조사해 보시지요.”
밖에서는 환하게 보이는 것도 안에서는 잘 안 보이는 법이다. 기예(棋藝)를 겨루는 데도 옆에서 보는 게 훨씬 잘 보인다 하지를 않던가.
진용의 말에 이경인은 고개를 숙인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방황의 피난처로 염천마곡을 택했다. 그러나 영호광을 존경한 것 또한 진심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진짜 무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영호광이 갑자기 죽었다. 아들처럼 여기던 제자의 손에. 그리고 그 제자인 선우청은 자신이 스승을 죽였다고 인정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의문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내막이 있을지 모른다고?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왜 죽였을까? 여인 때문이라고?
사중광은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맞춰 곡주를 찾아갔을까? 우연이라고?
선우청은 왜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자신의 죄를 쉽게 시인했을까? 죄책감 때문에?
아니다. 뭔가가 이상하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경인은 영호광의 죽음에 한 오라기의 의문이라도 있다면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 아마 한 번만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그러한 마음을 가질 사람이 자신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고진용이라는 서생이 떠나면 죽을까 하는 생각마저 했는데, 살아갈 이유가 하나 생겼다. 왠지 답답하던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살아보자.’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고진용이 보였다.
강호무림을 뒤흔들 청천 하늘이 걸어가고 있었다.
이경인은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섰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스스로가 얻지 못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난 이십 년 세월이 돌아오지 않듯이 말이다.
그는 일단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가려냈다.
그리고 이각, 그는 한쪽 구석에 여덟 구의 시신을 묻고, 기대어서라도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지도 못하는 두 사람을 어깨에 멘 채 계곡을 벗어났다.
한 시진가량이 지난 후, 피가 스며든 관도에서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율천기가 이끄는 천탁 이조와 이몽인이었다.
이몽인은 시신이 묻힌 곳을 찾아내자마자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고는 그곳에서 자신이 찾던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없나?”
율천기가 물었다.
“예, 형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아하니 몇 명이 살아서 떠난 것 같은데……. 좌우간 다행이군. 그만 정리하고 돌아가지.”
3
남경으로 가기 위해선 만붕성이 똬리를 틀고 있는 팔공산의 남쪽 산자락을 가로질러야만 했다.
돌아가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팔공산의 정상이 희미해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까지도 만붕성의 무사는커녕 뜨내기무사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하하하! 설령 그들을 만난다 해도 걱정할 것 없네. 누가 우리를 따라올 수 있겠나?”
정광이 실피나의 도움으로 날듯이 달려가며 신이 나서 한 소리 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만붕성의 이목에 드러나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아, 글쎄, 걱정 말라니까?”
안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 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꼭 그 짝이었다.
정광이 큰소리친 지 일 다경도 되지 않았을 때다. 신나게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산 아래 관도로 이어지는 곳에 몇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진용과 정광은 급히 속도를 늦추고 재빨리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 아무래도 검문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때마침 숲에서 나오던 무사 하나가 정광과 눈이 마주쳤다. 바지를 추켜올리는 것이 숲 속에서 일을 보고 나오던 중인 듯했다. 그는 산에서 날듯이 내려오는 정광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멈추시오!”
관도와 이어진 곳에 서 있던 자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정광의 표정이 입천장에 가시 박힌 호랑이처럼 일그러졌다.
“저것들은 또 뭐야?”
“만붕성의 무사들 같은데요?”
모두 열 명. 붕샌지 참샌지 모를 새 한 마리가 그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만붕성의 무사들이다.
‘젠장! 왜 하필이면 지금 나타나는 거야?’
정광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다 때려눕히고 싶었다.
그때 이제는 완연히 속도가 늦춰진 두 사람을 향해 만붕성의 무사들이 다가왔다.
다가오던 자들 중 옆구리에 덜렁덜렁 칼을 매단 청의장한이 예리한 눈빛을 번뜩이며 진용을 살펴보았다.
“본인은 만붕성 순찰당의 제이향주인 부건우라 하오. 두 분은 어디서 오시는 길이시오?”
알아서 뭐 하게!
정광이 눈을 부라렸다.
진용은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재빨리 먼저 나섰다.
“우리는 합비에 가는 사람이외다.”
진용을 한참 살피던 부건우의 시선이 굳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잔뜩 굳은 눈으로 뚫어지게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좌우에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무사들이 의아한 눈으로 자신들의 상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부건우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애써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합비를 가려면 부지런히 가야겠구려. 통과!”
처음에 정광을 보고 소리를 질렀던 무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향주님, 저자들을 검문하지 않으실 겁니까?”
“방금 했잖은가! 통과!”
부건우가 자신의 눈치없는 수하를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며 빽 소리쳤다.
어쨌든 통과라고 했으니 그 자리에 서 있기도 뭐했다.
“고맙소.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소.”
진용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건우의 곁을 지나쳤다.
<그대의 판단이 열 명의 목숨을 살렸소. 부디 끝까지 그리하길 바라겠소.>
동시에 진용의 전음이 부건우의 귀청을 울렸다.
흠칫, 어깨를 떤 부건우는 이미 이 장의 거리를 두고 빠르게 멀어지는 진용의 등을 바라보았다.
전음이 뜻하는 의미는 하나였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향주님, 정말 저들을…….”
부건우는 홱 고개를 돌려 불만 섞인 말투로 자신의 판단에 토를 다는 수하를 바라보았다.
‘정말 죽고 싶냐? 저자가 정말 그자라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야, 이 멍청아!’
사신이 방금 전 자신들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는 것도 모르고는 공연히 나서는 수하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향주냐, 네가 향주냐?”
“그거야…….”
“그럼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다행히 사신은 잠깐 사이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숨을 길게 내쉰 부건우는 갈등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고를 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있다가 할까?
그러다 시간을 끌었다는 게 들키면?
마침 얄밉기만 한 수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서생과 도사, 그 그림에 그려진 자들과 같은 자들인 것 같은데…….”
어쩌면 이놈이 고자질할지도 모르겠군.
부건우는 수하를 향해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래서 보낸 것이다, 멍청아! 본 성에 연락…….”
그때 또다시 진용의 음성이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 하지 마시오.>
그가 부르르 떨며 억지로 말을 이었다.
“……연락하기도 전에 우리 모두 죽었을걸? 너희들을 살리려 한 내 마음을 이제 알겠어?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까? 명령을 어긴 죄로 감옥에 넣을지도 모르는데, 연락할까, 하지 말까?”
그제야 향주의 고심을 알고 감격한 수하가 말했다.
“향주께서 저희를 살리기 위해 그리하셨는데 어찌. 걱정 마십시오. 저희는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봐! 안 그래?”
“맞아! 그럼!”
“대체 누굴 봤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새끼들, 눈치는 빨라 가지고…….’
7장. 그 시간에 나는……
1
당나라 때는 금릉(金陵), 남송 때는 건강부(建康府), 원나라 때는 집경로(集慶路), 그러다 명이 건국하며 도읍지로 정하고 처음에는 응천부(應天府)로 불린 곳. 그곳이 바로 남경(南京)이다.
북경으로 천도한 지금도 남경은 배도(陪都)로써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더구나 장강이 감싸고 흘러서 양주와 함께 중원 동부의 경제를 주무르는 곳이 또한 남경이다.
진용이 정광과 장강을 건너 성곽이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백 리를 휘감고 있는 남경에 들어선 것은 정양을 떠난 지 사흘 만이었다.
천화상단의 위치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쉬웠다.
남경성에 들어서기 전부터 천화상단의 표식이라 할 수 있는 천화(天花), 모란꽃이 그려진 거대한 깃발을 단 상선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남경성 서북대로를 따라가면 바로 그 천화가 그려진 거대한 대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곳이 바로 천화상단의 장원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성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서북대로로 향했다.
이제 남은 기간은 칠 일. 어찌 생각하면 충분히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쳐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천혈교가 천화상단을 놔두고 구룡상방과 거래를 텄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개도 안 믿을 말이다.
삼존맹의 영역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웃기는 말이다. 그런 놈들이 자신들의 당당함을 보이겠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남궁세가를 친단 말인가?
한마디로 삼존맹이고 뭐고 그들이 하고 싶으면 하는 자들이 바로 천혈교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천화상단과 천혈교는 연결이 되어 있다고 봐야 했다.
일단 진용은 천화상단이 잘 보이는 객잔의 이층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며 천화상단을 살펴보았다.
“굉장하군.”
정광이 홀짝 술잔을 거친 수염 사이로 털어 넣고는 입을 열었다.
진용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과거 수많은 나라의 도읍이어선지 고색창연한 장원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천화장원은 그러한 곳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대문에 그려진 화려한 모란 때문이었다.
화려한 모란이 그려진 거대한 대문의 양옆으로는 두 개의 쪽문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정광이 술병을 거꾸로 세우고는 남아 있는 술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짜내더니, 술 방울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쳐들어가서 만나는 게 낫지 않을까?”
무작정 쳐들어간다? 과연 정광다운 생각이다.
“시끄럽게 해서 좋을 일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지. 그럼 저녁에 몰래 숨어들어 갈까?”
숨어들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 넓은 장원의 어디에 탁인효가 있을까? 아마 그를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앞세우고 들어가지.”
그 말에 진용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앞세우고 들어간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진용이 벌떡 일어섰다.
“가죠!”
정광이 재빨리 마지막 잔을 털어 넣었다.
진용은 객잔을 나서자마자 중앙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광이 의아한지 고개를 돌려 천화상단과 진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디 가는 건가?”
“성주를 만나러 갑니다.”
“성주? 남경성주?”
“예.”
“왜?”
“힘자랑하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