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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미스 5화

무료소설 카르미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카르미스 5화

 제2장 혼동 (2)

 

“오! 한 번에 나왔네?”

시체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이빨을 들어 올린 나는 이내 퀘스트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전사 길드장 보모스를 찾아갔다.

“흐음. 생각보다 일찍 왔군.”

“운이 좋았죠. 여기 오크의 이빨입니다.”

“음…….”

나에게 오크의 이빨을 받아든 보모스는 한동안 유심히 관찰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테스트에 합격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럼. 검사로 전직시켜 주마. 스킬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검사스킬이 네 개 주어지며, 이후 자네의 능력과 전투 스타일에 맞춘 한 개의 검사스킬이 따로 추가되네. 전직하겠는가?”

“네.”

“좋아! 이것을 받게.”

보모스가 내민 것은 평범하게 생긴 롱소드였다.

저게 바로 전직하면서 받는 무기로, 각 직업에 걸맞은 스탯 상승이 붙어 있기 때문에 초반에 상당히 유용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롱소드를 건네받은 나는 순간, 전직을 알리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전직 무기 ‘검사의 롱소드’를 획득하였습니다.]

[1차 직업 ‘검사’로 전직합니다. 일부 능력치가 추가 되었습니다.]

[전직에 따른 보너스 스탯이 5포인트가 주어집니다.]

[새로운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오오오!”

드디어 1차 전직을 마친 나는 서둘러 추가된 능력치와 스킬을 살펴보려 했지만,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삑-! 이현중님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로그아웃 하시면 카운트 없이 나가실 수 있습니다.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응? 누나인가?”

고가의 캡슐답게 전화나 누군가의 방문 등을 알 수 있도록 특별한 센서도 같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가스가 새거나 불이 나도 그것을 감지하고 알려준다는데, 확실히 비싼 만큼 편하긴 편했다.

“로그아웃~!”

 

[판타지 월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캡슐을 나오자마자 거실에 달려 있는 인터폰을 바라보았다.

“엥?”

이 밤에 찾아올 사람이라고는 누나나 태현이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현이는 일본으로 유학 갔으니, 당연히 누나가 찾아왔을 거라 예상했는데, 찾아온 이는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저, 저게 또 무슨 꿍꿍이로…….”

인터폰 화면에 비치는 얼굴은 바로 오늘 아침 그만둔 회사의 전무이사. 그 망할 여자였다.

“훗! 이젠 나도 꿀릴 것 없지.”

어차피 그만둔 회사. 더 이상 상사 눈치 볼 것도 없었다.

덜컹!

“꺅~!”

당당히 현관문을 열어젖힌 나는 놀라 당황하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후후, 임수정. 네가 무슨 일로 날 찾아왔지?”

“…….”

여상사의 이름이 임수정이었지만, 지금까지 사장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사장 다음가는 위치다 보니 다들 전무님이라고만 불렀지, 누가 이름을 부르겠는가?

하지만 이제 꿀릴 것 없는 나는 당당히 이름을 부르며 반말로 일관하였다.

“저, 저기…….”

“음?”

바락바락 소리치며 화낼 줄 알았던 나는 눈앞의 여인. 임수정이 의외로 저자세로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약 먹었냐?”

“무, 무슨 소리예욧!”

“아, 깜짝이야. 아니면 아니지. 왜 소리를…….”

역시나 커다란 고함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한마디 하려다 멈칫하고는, 또다시 의심스런 어조로 물어보았다.

“언제부터 약 먹었냐?”

“안 먹는다니까요!”

“흐음…….”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임수정은 약도 안 먹었는데 나한테 존대를 쓸 여자가 아니다. 그렇게 결론지은 나는 귀찮다는 듯 손짓하며 말하였다.

“다음에 약기운 떨어지면 다시 와라.”

“이익! 자꾸 그럴 거예요?”

뭐, 장난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기도 했다.

사실 수정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그만두고 나서 아버지에게 많이 혼났겠지. 이래봬도 사장님은 날 가장 신용했으니.

결국 날 다시 데려오라고 했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저렇게 저자세에 존대까지 쓰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래봤자 안쓰럽다기보다 통쾌하다는 감정이 더 컸다. 어차피 다시 회사에 나갈 생각도 없었기에 내 말투는 자연적으로 차가워졌다.

“어이, 이제 볼 일 없으니까 괜한 고생하지 말고 가라.”

“그, 그러지 말고…….”

“썅! 꺼지라니까?”

“…….”

내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주변 이웃들이 창밖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지자 괜한 오해를 사기 전에 서둘러 문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다.

하지만…….

쾅!

“꺅~!”

“헉?”

있는 힘껏 문을 닫으려던 내 시도는 수정이 한쪽 발을 들이댐과 동시에 무산되고 말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수정의 발목이 더 문제였다.

“어, 어이! 괜찮아?”

“아, 아악~!”

문 앞에 쓰러진 채 고통을 호소하던 수정은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회, 회사에 다시… 아얏~!”

독한 년. 어떻게 저 지경이 되고도 저런 말이 나오는 걸까?

“회사는 안 간다. 아니, 이미 다른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에 못 간다. 그나저나 발목 좀 보자.”

“아, 안 돼요! 회사에 다시 복귀… 아얏!”

고통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날 설득하려던 수정은 내가 퉁퉁 부운 발목을 잡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안 되겠다. 일단 병원으로…….”

“싫어요! 제발 회사에 다시 나와 주세요! 네?”

“난 분명 싫다고 말했다.”

“안 그러면 병원도 안 갈 거예요!”

뭐 이런 황당한 여자가 다 있어? 위기를 기회로 잡는 사람이 현인이라 하지만, 이 여자는 절대 아니다. 내겐 그저 독한 년일 뿐.

“독한 년.”

“…….”

음. 실수로 생각을 말해버렸다. 뭐, 상관없으려나?

“흐윽…….”

어이, 너 지금 아파서 우는 거 맞지? 내 말에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아무리 네가 싫어도 여자를 울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흑흑…….”

“윽!”

젠장!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이러면 저 독한 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 달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여자의 무기는 눈물이라더니, 진짜 그 말 그대로였다.

“어휴… 알았다. 회사 나갈 테니, 일단 병원부터 가자.”

“흑… 진짜죠?”

“그래. 나갈 테니, 병원에…….”

“그럼 아까 그 말도 취소해요.”

“무슨 말? 아, 독한 년이라고 한 거?”

“훌쩍… 네.”

“너 독한 거 사실이잖아.”

“제 어디가요!”

“발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할 말 계속하는 게 독한 거지. 그럼 아니냐?”

“그건… 혀, 현중 씨가 자꾸 안 가겠다고 해서…….”

“웃기고 있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존댓말 써라.”

“네? 그런 게 어디…….”

“싫으면 말고. 나야 안 나가면 그만인데 뭐.”

“아,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그래야지. 그리고 난 계속 반말할 거다.”

“그, 그건 안 돼요! 저도 회사 이미지가…….”

“그럼 독한 전무님이라고 불러줄까?”

“…그냥 반말 하세요.”

‘오호? 이것 봐라?’

설마 반말까지 허락할 줄은 몰랐기에 속으로 상당히 놀란 나는 겉으로 태연한 척 계속 조건을 붙였다.

“앞으로 쓸데없는 일로 나 부르지 마라. 커피도 알아서 타 먹고.”

“…네.”

“대학 안 나왔다느니, 그런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알아서 해.”

“아, 알겠어요.”

“타당한 이유 없이 야근시킬 생각도 말고.”

“네.”

“점심시간 때 도시락 심부름도 직접 해. 다른 직원 시키든가.”

“네.”

“외근 나가면 무거운 짐 나한테 몰아주지 말고 스스로 들어.”

“네…….”

“친구랑 전화할 때 옆에서 쫑알대지 말고.”

“…….”

“사무실에서 손톱 깎은 거 나한테 버리라고 하지 마.”

“…….”

“중간에 담배 피러 나가면 내 책상 어질러놓지 말고.”

“…….”

“괜히 짜증나는 일 있다고 말도 안 되는 트집 잡지 마.”

“…….”

“화장한다고 거울 들고 있도록 하지 말고…….”

“자, 잠깐만요!”

“아직 수십 개 더 남았는데?”

내 말을 들은 수정은 얼굴을 창백히 굳히며 물어왔다.

“그, 그렇게 말하면 제가 너무 나쁜 여자 같잖아요.”

“내가 틀린 말 한 적 있어? 있으면 정정하지.”

“…….”

단호한 내 말에 수정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전부 사실인데 고칠 게 뭐 있겠는가?

그나저나 사장님께 혼나도 단단히 혼났나 보군.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이야.

“알았어요. 앞으로 현중 씨 힘든 일은 안 시킬게요.”

“흠… 뭐, 좋아.”

아직 말할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편한 회사생활이 보장되었기에 만족한 나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웬만하면 야근이 없을 테니 판월을 할 시간도 많을 테고, 시간이 지나면 시세도 많이 떨어진다고 했으니 어차피 조만간 취직자리를 구해야했다. 때문에 이왕 이렇게 된 것 다시 회사에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병원으로 가지.”

“아, 저기. 그, 그게…….”

“응?”

또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발목을 보니 꽤 부어 있는데, 아프지 않나? 이상하게 아까부터 비명도 안 지르던데.

“벼, 병원은 제가 알아서 갈게요. 현중 씨는 내일부터 회사에…….”

“그 발목으로 혼자 가겠다고?”

“바, 바로 아래 차 세워놨어요.”

“흐음…….”

저 발목으로는 액셀 밟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자꾸 빼려는 태도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수상하다.

“가만 있어봐.”

“네? 아, 자, 잠깐. 꺄악~!”

나는 그대로 수정의 발목을 잡고 부은 곳을 바라보았다.

“꺅~! 아파요! 소, 손 좀!”

수정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지만, 내 손은 가차 없었다. 이윽고 부츠를 벗기고 발목을 감싼 레깅스를 걷어 올리자 그 실체가 드러났다.

툭!

휙~!

부었을 거라 생각한 발목에서 무언가가 떨어졌고, 순간, 날렵한 수정의 손놀림이 떨어진 무언가를 낚아채 품으로 집어넣었다.

“…….”

“…….”

나와 수정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황당함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다면, 수정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린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목덜미까지 붉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슴패드?”

움찔!

“봐, 봐, 봐, 봤어요?”

워낙 순식간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여성들이 사용하는 패드 5장이 겹쳐 있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아, 그럼 자세히 본 건가?

아무튼, 발목에 저런 장치(?)를 해두었다는 것은, 내가 화내며 문을 닫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진짜 독한 년.”

“…….”

내 말에도 수정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딱히 반박할 여지도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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