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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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46화
146화
척혈신마라는 이름에 걸맞은 도식이었다. 진용조차 눈빛이 굳어질 정도의 위력.
하지만 이보다 더한 경우의 공격을 몇 번이나 감당해 본 진용이다. 척등의 척혈팔도 정도에 물러서기에는 진용이 그동안 상대한 적들이 너무나 강한 자들이었다.
진용의 두 손이 태극을 그리며 휘돌았다.
끝내 이를 악다문 척등의 입술이 터지며 짧고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오고, 일순간 수십 줄기의 붉은 도강으로 이루어진 도막이 구렁이 똬리 틀듯이 뭉쳐졌다.
진용의 두 손이 열십 자로 그어졌다.
붉은 도막이 종잇장처럼 찢겨지고, 척등의 입에선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으…….”
그가 신음을 토하며 뒤로 물러서자 진용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좌수가 척혈신도를 걷어냈다. 이어서 우수가 척등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쾅! 와직!
엉겁결에 들어 올린 팔이 마른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척등의 몸뚱이는 철벽에 부딪친 쇠 구슬처럼 튕겨졌다.
그런데도 서로의 몸을 묶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의 거리가 석 자에서 벌어지지를 않았다.
진용이 척혈신도를 움켜쥔 채 신형을 날린 때문이었다.
척등이 상황을 감지하고 도를 놓으려 했을 때는 이미 허공에서 한 바퀴 휘돈 진용의 뒤꿈치가 팔랑개비 휘돌 듯 척등의 어깨뼈를 부수며 떨어져 내리고 있을 때였다.
콰직!
“크억!”
땡그랑!
척혈신도가 주인의 손을 떠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척등도 이 장 밖으로 튕겨져 나뒹굴었다.
진용이 꿈틀거리며 일어서려는 척등을 바라보면서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이긴 것 같군요.”
여전히 흔들림없는 목소리.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로 둘을 십 초 만에 눕히고, 다른 상대를 찾아 몸을 돌리던 율천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자신도 척등을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십여 초 만에 이길 수는 없다.
얼핏 본 척혈팔도의 위력이라면 삼십 초 이상은 겨뤄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런 척등이 십 초도 안 되어 무너지다니.
진용을 바라보는 율천기의 눈 가장자리가 가늘게 진동했다.
‘비무를 포 형 다음에 하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일이군.’
한 시진 후, 적혈문의 정문에 경첩이 떨어진 문짝이 대충 걸쳐졌다. 그리고 한가운데 한 장의 방문이 나붙었다.
[적혈문은 십 년간 봉문(封門)한다.]
2
한줄기 노성(怒聲)에 만붕전이 뒤흔들렸다.
“뭣이라? 적혈문이 어떻게 되었다고? 봉문?”
“좀 전에 지급으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고진용이 적혈문을 쳤다고 합니다. 그들 일행 중에는 벽월 율천기를 비롯해 십여 명의 고수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구양무경의 노한 모습에 공은수는 간이 오그라들고 폐가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가 행방을 감춘 것은 기껏해야 보름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 시간에 십여 명의 절정고수라니! 게다가 뭐라? 벽월 율천기?”
“아마도 십절검존이 힘을 쓴 듯…….”
갑자기 구양무경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굳어졌다. 급변하는 구양무경의 기세에 공은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유태청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라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다.
단, 예전의 그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거의 죽기 직전이라 했다. 선천진기마저 흩어져서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라 했다. 그저 죽음만 기다리는 힘없는 노인이 바로 십절검존 유태청인 것이다.
천제성에서 보내온 정보도 그러했고, 자신이 파악한 정보 또한 그러했다.
‘그사이 나도 모르게 내가 너무 천제성의 정보에 기대고 있었던 건가?’
기껏해야 보름이었다, 염천마곡의 일을 처리하고 천인효에 신경을 쓴 시간은.
그런데 천인효는 아직 처리하지도 못했고, 만붕사벽 중 하나인 적혈문이 봉문을 당했다.
단 보름 만에 일어난 실수치고는 너무도 피해가 컸다.
‘내가 너무 자만한 것인가?’
구양무경은 화를 억누르며 서서히 냉철함을 찾아갔다.
한참 만에야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처음처럼 싸늘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공은수를 바라보며.
“현재 놈의 진로는?”
“전력을 다해 쫓고는 있습니다만, 괴이하게도 어떻게 우리의 움직임을 아는지 미리 알고 귀신같이 피하고 있어서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천제성의 움직임은?”
“그들은 천혈교의 초청에 응한 뒤 그들을 치기 위해서 은밀히 본 성의 고수들을 움직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선지 고진용을 뒤쫓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정천무맹은?”
“정천무맹은 이미 탕마단을 일차로 소집해서 신양으로 출발시켰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오백 명 정도라 합니다. 곧 이차, 삼차 탕마단이…….”
“흥! 그것 하나는 뜻대로 흘러가는군.”
구양무경의 눈에 점차 불꽃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천제성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천혈교의 무서움을 모르는 한 그들은 낭패를 볼 수밖에 없어. 문제는 정천무맹이야. 그들의 저력은 생각보다 대단하거든.”
공은수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구양무경이 일어섰다.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순서겠지. 공 각주!”
“예, 주군!”
“사중광에게 고진용을 맡겨라! 염천마곡을 휘어잡기 위해서라도 뭔가 사건이 필요한 시점이야. 미적거리는 놈들을 모조리 동원하라고 해.”
“존명!”
“그리고 천인효를 제거한다. 천자 이호에게 서신을 보내라. 일양회를 접수하라고 해!”
공은수의 처박혔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마침내 때가 된 건가? 삼존맹이 하나로 뭉칠 때가?
불꽃이 이는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는 구양무경을 공은수는 감격에 물든 눈빛으로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즉시 거행하겠나이다!”
3
“둘 중 하나를 택해라! 봉문을 하겠는가, 아니면 전멸을 당할 건가?”
귀응곡주 양천생은 피눈물을 뿌리며 무릎을 꿇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수하들의 신음과 비명이 귀청을 찢을 듯이 울리고 있었다.
반 시진 전 한 대의 마차가 곡구에 들어섰다 했다. 막아선 수하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는 보고를 받고 자신이 나갔을 때는 이미 마차가 귀응각 앞에 당도해 있었다.
곡구에서 귀응각까지의 거리는 오 리. 그 사이에 수백 명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 사람이 시커먼 몽둥이를 들고 달려든 지 십 초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무릎이 꿇렸다.
믿을 수 없게도 귀응곡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반 시진에 불과했다.
“봉문…… 하겠소.”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신뿐만이 아니고 이미 네 개의 문파가 자신처럼 반 시진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사실을.
심지어 만붕사벽 중 하나인 적혈문마저 이틀 전 한 시진 만에 봉문 당했다는 사실을.
5장. 대포객잔
1
정양(正陽)으로 가는 길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마치 별개의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날씨 한번 끝내주는군.”
하늘에는 실낱같은 구름 한 점도 끼어 있지 않았다. 너무 파래서 콕 찌르면 푸른 물이 쏴아, 쏟아질 것만 같았다.
적당한 세기로 옷깃을 문지르며 스쳐 지나가는 실바람에 절로 눈꺼풀이 감길 지경이다.
두충은 마부석에서 실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다 옆자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류명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양반, 무사라는 사람이 졸기는…….’
문득 장난기가 동했다.
두충은 손을 살짝 들어 올려 때리는 시늉을 해봤다. 확!
순간, 번쩍! 비류명이 눈을 뜨고는 가슴에 품고 있던 구류도의 도병을 잡는다.
피식, 두충의 입가에 실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호! 제법인데? 그 와중에도 긴장을 풀지 않다니.’
그때 반대쪽에 앉아 있던 사마조양이 지나가듯이 말했다.
“언젠가 비 형에게 장난을 걸었다가 손모가지가 잘린 친구가 있었지, 아마?”
비류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목을 자르려고 했는데, 손목을 갖다 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
두충의 고삐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렸다.
‘지미…… 겁주기는…….’
장난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설마 장난 한번 했다고 손목을 자르기야 할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이후로 두충은 장난으로라도 비류명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말없이, 비류명에게 장난도 걸지 않고 마차만 몰던 두충이 그들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도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졸렸다. 너무 졸렸다. 비류명과 사마조양에게 장난을 걸 수도 없으니 더 졸렸다. 그래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데 그들이 보였다.
세 사람이 서로를 부축한 채 숲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스님들이었다.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그들이 스님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박박 깎은 머리, 노란 승복. 그런데 언젠가 본 모습들이다.
두충이 졸음을 떨치고 놀라 소리쳤다.
“어? 저들은…… 혹시 소림의 스님들 아냐?”
그 말에 덜컹, 마차 문이 열리고 곧바로 진용과 정광이 마차를 나섰다.
두충은 두 사람이 마차를 나서자 급히 마차를 세우고는 손을 들어 우측의 숲을 가리켰다.
“고 공자님, 저기…….”
진용은 마차로 인해 일어난 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측의 숲을 바라보았다.
두충의 말대로였다. 스님 셋이 숲에서 나오고 있었다.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몰골로.
“가보죠.”
진용 일행이 다가가자 소림승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진용 일행을 쳐다보았다.
“혹시 소림에서 오신 분들이 아니신지요?”
진용은 물음을 던지면서 스님들을 살펴보았다. 부축을 받으며 기대서 있는 중년승의 머리에 찍힌 여섯 개의 계인이 그가 소림승이며 그 지위 또한 그리 낮지 않음을 말해주었다.
중년승은 다가온 자들이 적이 아님을 느꼈는지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반장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빈승은 소림의 효정이라 하오. 시주는 뉘신지?”
진용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소생은 고진용이라 합니다.”
진용의 말이 떨어지자 효정은 물론이고 곁의 두 소림승마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고진용!”
“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우리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효정이 멍하니 진용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당연히 알고 있지요. 빈승은 사부님의 명을 받아 고 시주와 유 노시주를 찾고 있었소이다.”
“예? 저를요?”
진용은 일단 효정을 비롯한 세 명의 소림승을 마차로 데려왔다. 그들은 마차 안에 앉아 있는 노인이 유태청임을 알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치료부터 하고 이야기를 나누세.”
입을 열려는 그들을 유태청이 말렸다.
중년승 효정의 상세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정신력으로 버티고는 있을 뿐 지금 당장 쓰러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동안의 경험으로 마차에는 적지 않은 약재가 구비되어 있었다.
일각이 흘렀다. 상처를 물로 씻어내고 금창약을 바른 후 깨끗한 천으로 동여맸다.
간단하게나마 치료를 하고 나자 마음이 안정된 효정이 그간의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성승을 해친 효망이 신양 부근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소림이 둘로 나뉘어 탕마단과는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요양이 효정에게 십절검존을 찾으라 했다는 말까지.
비밀이라 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요양이 모든 것을 말하라 했다는 것이다. 십절검존의 도움을 얻으려면 사실대로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 나을 거라며.
“그 후에 저희는 사부님의 명을 받고 고 시주와 유 노시주를 찾아다녔습니다. 무려 한 달 넘게 헤매었지요.”
“저를 무슨 일로 찾으신 겁니까?”
진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효정이 숨을 가다듬고 요양의 말을 전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장문인께선 이번 일로 두 가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너무 위험한 계획이지요. 해서…… 만약 소림이 위급해지면 소림을 도와주십사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유 노시주와 고 시주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저나 유 어르신에게 소림을 도울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효정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사부님의 명이니 그리 전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 생각했지요. 하나, 이제는 사부님의 명이 아니라도 빈승이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 시주, 소림을 도와주시오.”
효정의 눈이 온화하니 빛을 발했다.
진용은 그 눈빛이 특이하다 생각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눈빛. 부탁을 하면서도 결코 흔들림없는 눈빛이다.
‘소림에 또 다른 거인이 있었구나.’
진용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효정의 무공 또한 어쩌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림은 잠을 자지도, 늙지도 않았다 했던가?
새삼 유태청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리하지요. 소림과 아주 무관한 관계도 아니니 말입니다.”
효정은 그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진용의 허락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 진용이 물었다.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