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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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44화
144화
하군상도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연향은 바다를 벗하고 살아온 여인. 물질을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그런 계획을 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선 한 가지 난관을 넘어야만 했다.
삼혼신마!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자연이 숲에 펼쳐 놓은 어둠의 그물망을 가르며!
죽을힘을 다해 이십여 장을 더 가자 안개가 어둠조차 집어삼킨 계곡이 보였다.
하군상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삼혼신마의 살기 띤 기운이 바로 뒤에서 느껴진다.
이 장? 삼 장? 제기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그때다. 언뜻 회오리 같은 기운이 두 사람을 에워싼다. 부드러우면서도 끈적끈적한 기운.
‘섭물공?’
아직도 초연향을 포기하지 않은 것인가?
하군상의 눈이 빛났다.
삼혼신마가 일수만 펼쳐도 두 사람은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가 초연향을 살리려 한다.
강자의 자신감인가? 아니면 오만인가?
그가 펼친 섭물공에 몸이 딸려가려 하자, 초연향이 자신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팔을 타고 전해지는 파들거림이 필사적이다.
하군상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남자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어머니의 원한을 풀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차피 모르고 지냈던 일이었다.
‘혹시 또 알아? 향 매가 살아나면 갚아줄지. 그래, 분명히 향 매는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았을 거야!’
그는 보다 편해진 마음으로 초연향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이제 더 이상의 여유가 없다.
놈이 초연향을 포기할지도 모르는 일. 그러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행히 목적지가 바로 코앞에서 뿌연 안개 주단을 깔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차앗!”
하군상은 남은 힘을 모조리 긁어모아 초연향을 앞으로 던졌다.
“하 오라버니!”
초연향이 계곡을 향해 날아가며 경악성을 내질렀다.
“가시오! 살아서 꼭 고 형을 만나셔야 하오!”
하군상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초연향에게 소리치고는 하얀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돌아서자 악귀의 얼굴을 한 삼혼신마가 바로 앞에 보였다.
하군상은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쌍권을 내질렀다.
“어디 한번 죽여 봐!”
그러자 삼혼신마가 구부린 손가락으로 그의 권세를 찍어 흐트러뜨리더니 손목을 휘돌리며 두 팔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마지막 힘을 내쏟은 하군상의 무공으로는 삼혼신마의 일 초식조차 견뎌낼 수가 없었다.
뚜둑! 두 팔이 거꾸로 꺾어지며 부러져 버렸다.
이어 삼혼신마의 두 손에서 뻗친 장력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괘씸한 놈! 네놈이 감히!”
옷자락이 스러지고, 가슴살이 뭉개지며, 인간으로선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하군상은 웃음을 지우지 않고 삼혼신마를 노려봤다. 이제 삼혼안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이제 보니 미친 개눈깔 같군! 언제고 고 형이 네놈의 개눈깔을 뽑아버릴 거다, 늙은이!”
입에서 핏물이 튀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까짓 것 죽기밖에 더 하겠어?
“고 형이 누군지 알아? 네까짓 늙은이는 단숨에 통닭처럼 튀겨 버릴 수 있는 사람이지!”
“이 찢어 죽일 놈이!”
삼혼신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바닥을 뒤집었다.
퍼억!
만 근 바위조차 짓뭉갤 수 있는 거력이 하군상을 가랑잎처럼 날려 버렸다.
하군상은 날려가는 와중에도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크크크……. 개눈깔, 내가 먼저 지옥에 가서 기다리마. 그때는…… 내가 선배…….”
그의 목소리는 희미한 여운만 남긴 채 스러지고, 달빛에 은은히 빛나는 뿌연 안개가 그를 통째로 삼켜 버렸다.
4장. 반격
1
안휘 팔공산의 만붕성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등천각(騰天閣), 남쪽에는 용검문(龍劍門), 북쪽에는 혈도방(血刀퇍), 서쪽에는 적혈문(赤血門)이 있었다.
구양무경을 수족처럼 따르는 사대문파. 사람들은 그들을 만붕사벽(萬鵬四壁)이라 불렀다.
그중에서도 동쪽의 적혈문은 구양무경이 하남에 세력을 뻗치기 위해 직접 나서서 끌어들인 만붕성의 전초기지였다.
그러니 만붕성으로선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사월이 반쯤 지난 늦봄의 어느 날이었다.
만붕성을 따른 이후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적혈문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진용 일행이었다.
그들은 예고도 없이 적혈문에 들이닥쳤다. 난데없는 폭풍을 동반하고서.
휘이익, 쾅!
근원을 알 수 없는 폭풍이 오직 한곳으로만 집중되어 불었다 싶은 순간, 커다란 적혈문의 정문 문짝이 통째로 뜯겨져 날아갔다.
정문을 지키던 위사들도 함께 날아갔다.
실피나가 펼친 윈드스톰의 위력이었다.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정광만이 진용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그때 진용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태연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두 위사, 그대로 밀고 들어가요!”
들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키던 자들도 다 날아가 정문은 텅 비어 있었으니까.
두충은 어깨를 펴고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고삐를 흔들었다.
“이랴!”
지난 몇 달 사이 그의 간담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까짓 삼존맹, 천제성과도 싸웠는데 적혈문 정도야!
물론 등에 진 보따리 속의 벽력탄을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틀리면 던져 버리지 뭐!
마차가 이제는 문짝조차 달려 있지 않은 정문을 통과하자 비류명과 서문조양이 마부석에서 내려섰다.
그제야 적혈문의 안쪽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웬 놈이냐?”
“문이 부서졌다! 적이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다 말고 멈칫, 걸음을 멈추고는 마차와 문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삼 장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거대한 정문의 문짝. 그리고 그 주위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는 수문위사들.
무슨 일이지? 대체 저 마차는 뭐야?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마차의 문이 열렸다.
진용을 비롯해 정광과 사도굉이 마차를 나오자 사람들의 눈이 그들에게 고정되었다.
적혈문의 무사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귀도당의 부당주인 윤문오라는 자였다.
“누군데 감히 본 적혈문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그는 소리를 지르며 재빠르게 상황을 살펴보았다.
대체 저 문짝이 왜 저곳에 있는 것이지? 저놈들은 뭐야?
진용은 마차를 나오자마자 실피나를 바라보았다. 실피나는 허공에 떠서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잘했다. 에휴! 문을 열라고 했더니 아예 부숴 버렸군.
<들어가 있어, 실피나.>
실피나가 사라지자 진용이 앞으로 나섰다.
“척 문주께선 안에 계신가요?”
“문주님? 안에 계시긴 하다만, 무슨 일로 문주님을 찾는 것이냐?”
진용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율천기와 포은상이 조원들을 이끌고 정문으로 들어섰다.
모여든 적혈문의 무사들도 어느새 백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마차를 가운데 두고 팽팽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적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진용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는 적혈문의 무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윤문오가 미간을 씰룩거렸다.
평범한 서생인 것은 분명한데, 눈이 마주치자 왠지 모르게 전신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다. 더구나 서생을 따라 마차에서 나온 도사와 노인,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빙 둘러선 열한 명의 무인들.
결코 어느 하나 고수 아닌 자들이 없다. 그것도 엄청난 고수들.
‘도대체 이놈들은 뭐야? 겁나게 센 놈들 같은데…….’
그가 뭐라 말을 하려는데 한 사람이 무사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섰다. 그가 냉랭하게 소리쳤다.
“문주님께선 한가한 분이 아니시다! 더구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자를 반길 분도 아니시다!”
사십대의 중년인. 왼쪽 눈에 안대를 한 그를 향해 윤문오의 고개가 숙여졌다.
“귀도당 부당주 윤문오가 신혈당주를 뵈오.”
“대체 무슨 일인가? 왜 저자들을 저대로 놔둔 건가? 일단 잡아! 잡아서 족쳐!”
진용의 뒤에 서 있던 정광이 피식 웃었다.
“눈깔이 하나 없으니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군.”
사도굉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쯔쯔, 말을 해도 꼭. 너 같으면 외눈깔에게 눈깔 없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냐?”
외눈깔, 독안검귀 홍상규의 외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이런 개 같은 놈들이! 뭐 하나, 윤 부당주!”
하지만 정광은 꿈쩍도 하지 않고 같잖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아따 그놈, 성질 더럽게 급하네.”
사도굉이 그런 정광을 째려봤다.
“그러게 왜 외눈깔이라고 놀려? 저 외눈깔, 화났잖아!”
“으아아! 내가 책임진다, 다 죽이란 말이다!”
적혈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더니 조심스럽게 마차를 에워쌌다.
그들도 덤벼들고 싶었다. 감히 적혈문에 쳐들어와서 당주를 놀리다니!
더구나 독안검귀 홍상규의 더러운 성질을 모르는 그들이 아니다.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혹독한 책임 추궁이 뒤따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단 열일곱 명. 그러나 백칠십 명이 서 있는 것보다 더한 위압감이 느껴진 것이다.
적혈문의 무사들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수하들이 망설이자 홍상규의 눈길이 수하들을 향했다.
그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눈앞에 있는 놈들은 강하다. 자신조차 한 명을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도 이곳은 적혈문. 무사들의 수도 압도적이다.
“쳐! 죽여!”
그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무사들도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용 일행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리고 단 일각, 적혈문의 널따란 연무장은 백 수십 명이 내뱉는 신음 소리로 가득 찼다.
드르르륵!
신음을 흘리는 사람들 사이로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누구도 마차를 막지 않았다. 막을 자도 없었다. 진용이 걸어가고, 마차가 그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백수십 명을 눕혀 버린 삼탁의 무인들이 그 뒤에 늘어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안쪽에서 적혈문의 간부들이 놀란 표정으로 뛰쳐나왔다.
몇 명의 호위를 거느리고 선두에 서서 달려나온 자가 호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모두 멈춰라!”
적혈신마(赤血神魔) 척등.
현 나이 쉰둘. 그는 서른한 살에 적혈문을 물려받고, 구양무경에게 패한 서른다섯 이후 십칠 년간을 만붕성의 동쪽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 십칠 년 동안 그는 자신이 택한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남들이 왜 신생 세력인 만붕성에 고개를 숙이냐고 비웃어도 그냥 웃어넘겼다.
그러다 삼존맹이 결성되며 천하삼대세력으로 떠오를 즈음이 되어서야 그는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호랑이 꼬리와 고양이 꼬리도 구분 못하는 눈뜬장님이 아니라네.‘
너희들은 모두 눈뜬장님이다, 그 말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사람 보는 눈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였건만, 그런 그조차도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서생을 보고 도무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입은 옷은 서생복이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있는 서생이 절대 평범한 서생이 아니라는 데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그래서 머리가 더 아팠다.
“그대는 누군가?”
진용은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고진용이라 합니다.”
그런데 묘하다. 척등의 표정을 봐선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의외로군.’
결론은 한 가지. 구양무경은 자신에 대한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방계의 대문파들에게조차.
그렇다면 오직 만붕성만이 자신의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말.
하긴 황궁과 적대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휘하 문파들 중 흔들리는 자들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척등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온 것인가?”
“문주께서 만붕성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 없는지 알아보러 왔습니다.”
어이없는 말이었다. 잠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느닷없이 쳐들어와서 수하들을 때려눕히고 한다는 말이 만붕성과의 관계를 끊어라? 그대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적혈문도 처음부터 만붕성과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만일 본 문주가 자네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어쩔 셈인가?”
진용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적혈문은 오늘부로 봉문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