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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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43화
143화
“헛! 이놈이!”
콰광!
삼장 삼권이 맞부딪치고, 주르륵, 미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 송구염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하군상은 반탄력을 이용해서 재빨리 몸을 날려 초연향의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송 대협! 우리의 일은 나중에 해결합시다!”
송구염은 하군상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군상에게 신경을 쓸 정신조차 없었다.
상황이 괴이하게 흐른다.
이제는 자신들의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송구염은 초조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사이 하군상은 급히 초연향의 손목을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세 장한 중 두 명이 쓰러지자 우측에 구멍이 뚫렸다.
절벽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 앞에는 혈룡단이 몰려오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벗어날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다. 누군가의 전음이 들려왔다.
<우리가 막는 동안 빠져나가시오!>
정체를 숨기려는지 낮게 깔린 목소리다. 절벽 위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다면 절벽 위에서 송구염의 수하들을 처리한 자는 적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런데 기이한 느낌.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같다.
<어서 가시오! 놈들이 오고 있소!>
전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생각났다.
하지만 하군상은 놀란 표정을 지을 시간도 없이 초연향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혈룡단의 살귀들이 먹물처럼 시커먼 숲에서 어둠에 젖은 모습으로 스멀거리며 빠져나오고 있었다.
츠르릉! 그들의 손에 도, 검, 삭, 창, 각양각색의 병기가 들리자 살기가 달빛조차 얼려 버리며 내려앉았다.
“향 매! 잠시 실례하겠소!”
하군상은 초연향의 허리를 끌어안고 신형을 날렸다.
두 번을 도약하자 어둠에 물든 숲이 두 사람을 삼켜 버렸다.
뒤쪽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송구염이 혈룡단과 싸우는 것인가? 아니면 절벽 위의 그가?
하긴,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자신이 할 일은 오직 하나!
하군상은 숲으로 뛰어들자마자 초연향을 안은 채로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할퀴고, 가시덩쿨이 옷을 찢으며 온몸을 긁어대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여 장을 나아갔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앞을 막지 않았다.
하군상은 더욱 힘을 내 앞으로 달려갔다.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어제 본 계곡까지만 갈 수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하군상만의 희망이었다.
“클클클! 너희들이 갈 곳은 없다!”
일 장 높이의 바위를 타 넘고 두 그루의 커다란 소나무를 돌아가려는데 오싹 소름 돋는 음성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걸음을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 사람이 소리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어둠이 그 세 사람 주위로 더욱 몰려드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었다, 혈룡단의 뒤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던 자들.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던 자들.
초연향의 이가 악다물렸다.
“으악!”
“이 더러운 놈들!”
멀리서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송구염의 노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하군상과 초연향은 눈도 깜짝할 수 없었다. 거미줄에 걸린 새끼 나방처럼.
세 사람 중 하나가 두 사람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여전히 느릿한 걸음걸이다.
“정말 귀여운 계집아이야. 듣던 대로 아주 묘한 눈인걸?”
언뜻 보기에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보다 훨씬 더 먹은 것처럼도 보이는 괴이한 자였다.
특히 검은색인지 붉은색인지 노란색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 정도로 사이하게 생긴 눈동자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사이한 삼색안(三色眼)을 지닌 그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를 따라가자.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누, 누구…… 시죠?”
“켈켈켈켈! 과연, 과연 대단한 계집이야. 나의 삼혼안(三魂眼)을 정면으로 보면서 질문까지 하다니.”
입술을 잘근 깨문 초연향이 다시 물었다.
“주령 언니가 보냈나요?”
“클! 그깟 계집이 나에게 오라 가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천혈교에서 오신 분이 아니시던가요?”
뜻밖이었는지 삼색안의 괴인이 탄성을 발했다.
“호! 역시 굉장해! 어떻게 알았지?”
“그보다, 왜 저를 살려서 데려가려 하시는 거죠? 구룡상방에선 죽이라 했을 텐데요.”
“흐흐흐…….”
괴인은 초연향을 조용히 응시하더니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떠냐? 쓸 만할 거라고 했지? 그래도 이 계집을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느냐?”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로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던 두 회의인 중 하나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명을 받은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사령호법(邪靈護法).”
“흥! 너희들이 나와 함께 움직이는 이상 명은 내가 내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야.”
“물론 그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초연향과 괴인의 대화가 이어지고 잠시 괴인이 눈을 돌리자, 하군상은 멍했던 정신이 조금 드는 듯했다.
‘이, 이런 실수를!’
그는 혀끝을 이빨 사이에 집어넣고 지그시 깨물었다. 머리 꼭대기로 치솟는 통증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때마침 전음이 귀청을 울렸다.
<뭐 하는 건가, 멍청하게! 내가 공격할 테니까 그녀를 데리고 도망가!>
확실했다. 전음의 주인은 역시 그였다.
탁인효!
‘젠장, 저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고맙긴 하지만 빚지면 갚아야 하잖아! 꼴 보기 싫은 놈에게 도움받긴 싫은데…….’
겉 표정은 그래도 속마음은 감지덕지다.
‘좋아! 탁인효가 움직이면 함께 놈들을 치고, 놈들이 물러서면 그 기회를 이용해 빠져나간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 절벽 위에서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군상은 땅을 박찼다. 거의 동시, 절벽 위에서 날개 펼친 독수리처럼 호선을 그리며 네 명이 날아 내렸다.
“켈!”
삼색안의 괴인이 그걸 보더니 묘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가볍게 한 발을 내딛으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와 하군상 사이의 대기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오그라들었다.
“크억!”
일 장의 간격을 두고 하군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콰직!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어둠 사이로 조각나 흩어진다.
젠장! 엄청나군! 일격조차 피하지 못하다니!
“악! 하 오라버니!”
초연향의 어둠을 찢는 비명이 적막을 뒤흔들었다.
핏물을 뿜어내며 튕겨진 하군상은 두어 바퀴 땅바닥을 구르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따다당!
허공에서 울리는 폭죽이 터지는 듯한 굉음!
고개를 들자 탁인효와 그의 동료로 보이는 세 명의 신형이 사방으로 튕겨지고 있었다.
하군상은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물러서서 경악한 눈으로 괴인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조금 전에 괴인이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삼혼안을…….”
경악한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부릅떠졌다.
“마, 맙소사! 당신은 삼혼신마(三魂神魔)…….”
그의 악다문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뼈가 부러진 가슴의 통증조차 놀람으로 인해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도의 하늘이라는 혼세십팔마(混世十八魔) 중 육사(六邪)에 이름을 올린 전대의 노마. 십여 년 전 마제 등우광에게 패한 후 죽었을 거라 소문난 자.
그런 삼혼신마가 앞에 있다.
절망이 온몸을 엄습했다. 가슴의 통증이 심혼을 갉아댔다.
주령아, 하주령아! 너는 대체 어찌하려고 이런 자들을 끌어들였단 말이냐!
하군상이 절망감에 휩싸여 삼혼신마를 바라보고 있을 때다.
튕겨져 나간 탁인효와 그 일행이 다시 삼혼신마 일행을 향해 짓쳐들었다.
삼혼신마의 눈에 혈광이 번뜩였다.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한 번의 공격으로 탁인효 일행을 물리친 자들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때 탁인효가 소리쳤다.
“가! 가란 말이야! 이들은 나를 죽이지 못해! 그러니 하 형은 향 매를 데리고 도망가!”
“탁 형!”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하오, 향 매! 으아아!”
탁인효가 비명 같은 외침을 토하며 삼혼신마를 공격했다. 죽음을 각오한 공격이었다.
하군상은 어렴풋이 탁인효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나서서 하주령을 적극적으로 막았다면, 하다못해 초연향을 데리고 구룡상방을 떠났다면 적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것이 가슴 아픈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어쩌면 삼혼신마는 탁인효를 죽이지 않을지도 몰랐다. 구룡상방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 아니라면, 천화상단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 또한 높았다.
죽느냐 사느냐가 찰나에 결정되는 상황.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하군상은 한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쥐고 한 손으로는 초연향의 몸을 옆구리에 끼었다.
초연향이 순순히 그에게 몸을 맡겼다.
하군상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신형을 날렸다. 그를 주시하고 있던 회의인도 소리없이 움직였다.
탁인효와 함께 온 세 중년인이 그들을 막아섰다,
쉬이익!
듣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한기가 돋는 귀명이 그들을 휩쓸었다.
“컥!”
“크으윽!”
두 중년인이 쥐어짜는 신음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찰나의 순간, 하군상의 신형이 검은 장막이 둘러진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걸 본 삼혼신마가 노성을 지르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탁인효를 덮쳤다.
“건방진 놈! 내가 장사꾼 따위를 두려워할 줄 알았단 말이냐!”
구부린 좌수의 손가락이 탁인효의 검날을 움켜쥐고, 시뻘겋게 변한 우수가 허공을 쥐어뜯었다.
삼혼신마가 전력을 다한 일수는 가공했다. 첫 번째 격돌에서 심한 내상을 입은 탁인효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쩡!
검날이 부서져 흩뿌려지고,
우드득, 퍽!
탁인효의 한쪽 팔이 피분수를 뿜으며 뜯겨졌다.
“크어억!”
한줄기 비명에 정신없이 달리던 하군상이 눈을 부릅떴다.
신음이 아니다. 비명이다. 처절한 비명!
누가 죽었을까? 설마 탁인효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 돼! 삼혼신마가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그를 죽일 수는 없어!
하지만 자신이 없다. 상대는 삼혼신마. 천화상단이라는 이름이 과연 그를 막아줄 수 있을까?
‘바보 같은 탁 형! 제발 살아 있으라구! 그래야 빚을 갚지!’
하군상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가슴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둔중한 망치가 통째로 꽂힌 것만 같다.
게다가 잔떨림이 느껴지는 초연향. 그녀가 울고 있다.
뭔가를 본 것인가? 아니면 비명 소리만으로 비명의 주인이 누군가를 안 것인가?
제기랄!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멈추면 끝장이다!
‘조금 만 더, 조금만…….’
땅을 딛는 발에 울림이 느껴진다. 목적지가 지척이다.
그때, 뒤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기운이 전신으로 느껴졌다.
‘젠장! 놈이다, 삼혼신마!’
하군상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찢어진 입술에서 새어 나온 비릿한 핏물로 순식간에 입 안이 가득 채워졌다.
탁인효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삼혼신마의 기운만이 느껴지는 상황.
하군상이 달리는 와중에도 초연향에게 빠르게 말했다.
“향 매, 조그만 더 가면 계곡이 있소.”
전날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다 계곡을 봤었다. 자신이 방향을 잘못 잡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가면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인데도 안개가 끼어 있었소. 아마 지금쯤이면 밤안개가 그때보다도 더 짙게 끼어 있지 않을까 싶소.”
태양이 중천으로 떠오를 즈음이면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개다.
그런 안개가 해가 지기 전까지 끼어 있었다니.
하군상이 잘못 봤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쯤 그곳에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가 끼어 있을 게 분명했다. 어둠과 조화를 이룬 유난히 짙은 밤안개가.
삼혼신마가 과연 그토록 짙은 밤안개를 뚫어볼 수 있을까?
초연향은 그제야 하군상이 왜 길을 아는 것처럼 망설임없이 달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곳까지 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초연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우리는 살 수 있어! 꼭 살아야 돼!
하군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훅, 훅, 게다가 안개 사이로 보이는 아래쪽에는 시퍼런 물살이 제법 세차게 흐르고 있었는데, 계곡물이 절벽 사이로 흐르고 있었소. 그곳이라면…… 어쩌면…….”
그러고 보니 초연향의 귀에도 언제부턴가 은은히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 삼혼신마를 만났을 때도 들렸던 것 같다. 워낙 긴장한 터라 미처 생각을 못했을 뿐.
초연향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거친 숨소리. 각오로 다져진 굳은 눈빛.
입술 가장자리를 비집고 흘러나온 핏방울이 볼을 따라 흐르면서 땀과 뒤섞이자 비릿한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결코 역겹지 않은, 아니, 감격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향기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공연히 저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초연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곳으로 뛰어들 건가요?”
“향 매는 어떻게 하겠소? 내 생각에는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은데?”
초연향이 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밖에 없다면, 하는 수 없죠. 죽을 때 죽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