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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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42화
142화
그녀는 지난 보름 동안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천 번도 더 불러봤다.
얼굴은 셀 수도 없이 그려봐서 이제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눈에 선할 정도였다.
참을 수 없이 가슴이 아프면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그렸다.
과연 볼 수 있을까? 만날 수 있을까? 만나지도 못하고 죽으면 어쩌지?
죽음을 생각하자 문득 교주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아버지, 할아버지, 상아…….
모두들 자신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리석다고 할까? 아니면 잘했다고 힘내라고 할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뚝뚝 덜어지는 눈물방울에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고 상아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하군상은 불쏘시개로 모닥불을 뒤적이다 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초연향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만 지나면 바로 보정이오. 그곳에서 마차를 한 대 구합시다. 그럼 좀 나을 것이오.”
초연향은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해요. 아마 구룡상방에선 우리를 잡기 위해 거금을 걸었을 거예요.”
“그래도 향 매가…….”
“저는 참을 수 있어요. 어떻게든 석가장까지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가야 해요. 그곳에 도착하면 도지방의 강상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가 우리를 도와줄까?”
“강상두는 자신을 총방에서 쫓아낸 하주령에게 한을 품고 있어요. 직접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해도 약간의 편의는 봐줄 거예요.”
“그렇게만 된다면야 안양의 진 방주를 찾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소마는…….”
“오라버니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아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비록 무공을 본격적으로 익히지는 않았지만, 기초적인 심법은 꾸준히 수련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예요.”
“후, 어쩔 수 없지. 그럼 조금만 참으시오. 향 매의 의지가 그리도 강하니 우리는 분명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
하군상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초연향의 계획이 자신의 계획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다만 초연향의 몸이 견딜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었던 것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천 리는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초연향이 굳은 의지를 내보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군상은 뒤적이던 모닥불에 마른 나뭇가지를 더 얹었다.
그때였다.
하군상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향 매, 물러서!”
쐐액!
초연향이 급히 몸을 틀자 한 자루 강전이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어둠을 가르고 화살이 날아왔다.
하군상은 들고 있던 불쏘시개를 급히 휘둘렀다.
따닥!
감각적으로 화살을 쳐낸 하군상이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냐?!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어둠 속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흐, 제법이군. 밤인데도 화살을 쳐내다니.”
“그대들은 누군데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냐?”
“우리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고. 어때? 죽이지 않고 데려갈 테니 순순히 묶여주는 게?”
또 다른 자의 목소리였다. 하군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적어도 두 사람 이상……. 셋… 아니, 넷이다!’
느껴지는 인기척으로 봐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은 네 사람이었다.
셋은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초연향만 아니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설사 셋이라 해도.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자신에 비해 약한 자가 아니었다.
하군상은 진기를 돌려 공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오신 분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이만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으르렁거리는 하군상의 말투에 어둠 속에서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한 셋과 중년인 하나. 생각대로 네 명이었다.
하군상과 초연향이 있는 뒤쪽은 높이가 십 장에 달하는 절벽이니만큼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배인 표정들이었다.
하군상은 초연향의 앞을 가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때 중앙에 있던 중년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전신에서 묵직한 기운이 밀려왔다.
‘권장을 쓰는 자. 쉽지 않겠군.’
움켜쥔 주먹에 힘을 주며 하군상이 물었다.
“무슨 일로 저희를 찾아오신 겁니까?”
“목적은 한 가지네. 자네와 저 여인을 잡아가는 것.”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보아하니 강호에 이름이 꽤 알려지신 분 같은데, 무공도 모르는 여인을 잡으러 오시다니요?”
중년인의 미간에 주름이 그어졌다.
“황금 천 냥의 액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네.”
황금 천 냥!
‘빌어먹을! 지독한 계집!’
“황금 천 냥이 명예를 집어던질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하군상의 비꼬는 말투에 중년인의 미간에 그어진 주름이 몇 개 더 늘었다.
“더구나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니 어쩔 수가 없네. 이해하게나.”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대체 어디 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대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네. 어떤가, 순순히 잡혀주는 것이?”
“훗! 아마 쉽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그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대는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거란 말이외다. 설사 그대가 구파일방에 비견될 정도의 대문파에 속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지요. 크크크, 감히 그의 여인을 건드리려 하다니…….”
빠르게 이어진 하군상의 말에 그는 냉소를 지었다.
“흥! 그따위 헛소리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생각했는지 뒤를 보지도 않고 명령을 내렸다.
“쳐라! 죽여도 좋다! 단, 계집은 될 수 있으면 사로잡아라!”
세 사람과 어우러진 싸움은 십여 초가 지나자 우열이 드러났다.
그들은 결코 하군상의 적수가 아니었다.
만일 하군상이 초연향에게 신경만 쓰지 않았다면 벌써 승부가 났을지도 몰랐다.
세 사람이 형편없이 몰리자 마침내 중년인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무엇엔가 놀란 표정이다.
“네놈은 권마 호필군과 어떤 사이냐!”
그가 달려들며 일장을 날렸다. 강맹한 격공장이 하군상을 뒤덮었다.
갑작스런 중년인의 말에 하군상은 눈을 부릅뜨고 쌍권을 교차시켰다.
콰광!
주르륵 뒤로 물러선 하군상이 몸을 바로잡고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선사를 아는 것이오?”
“선사? 그놈이 죽었단 말이냐? 흥! 어차피 내가 죽일 놈이었는데 잘됐군. 내 후배를 핍박하는 것 같아 마음이 꺼려졌는데, 그놈의 제자라면 망설일 것이 없지. 나는 송구염이라 한다. 그놈은 내 동생을 죽였으니 나는 그놈의 제자인 너를 죽여야겠다! 죽거든 지옥에 찾아가서 네 사부에게 따지거라!”
“송구염? 그럼 당신이 월혼장 송구염이란 말이오?”
고수일 거라 생각은 했다. 그러나 설마 하니 하북에서도 장법으로 유명한 월혼장 송구염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젠장! 하필이면 사부와 원수진 자를 만나다니!’
급한 가운데서도 사부가 원망스러웠다. 협상할 여지조차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화를 내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송구염이 쌍장을 흔들며 그의 장기인 월혼십팔장(月魂十八掌)을 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군상도 자신이 그동안 죽어라 연마해 온 귀전십삼권(鬼戰十三拳)을 전력으로 펼쳐 냈다.
콰과광! 쩌정!
모닥불이 사방으로 튀고, 필생필사의 의지를 담은 두 사람의 기운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초연향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 절벽에 등을 붙이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주위를 훑어보았다.
하군상과 송구염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한쪽으로 옮겨가자 세 사람이 슬며시 초연향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뒤는 절벽, 피할 곳이 없다. 그녀는 암울한 표정으로 비칠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세 사람과의 거리가 삼 장으로 줄었다. 한 번만 몸을 날리면 초연향을 잡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도 그들은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이미 덫에 갇힌 쥐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암울함이 절망으로 변했다.
이제 끝인가?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고 공자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인가?
그때였다. 앞쪽 숲이 끝나고 잡풀만 우거진 건너편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스치듯 보였다.
그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는 백여 장.
그들의 모습이 달빛 아래 드러나자 그녀는 그들의 복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 저들은……?”
어둠처럼 짙은 흑의, 가슴에는 붉은 용.
그녀는 그 복장을 어릴 적 해룡선단에서 본 적이 있었다. 십 년 전 구룡상방이 해룡선단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비밀리에 사람을 파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온 자들이 바로 그러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지옥의 살귀라 칭해졌던 자들, 구룡상방의 척살조, 혈룡단이 바로 저들이었다.
‘응?’
떨리는 눈으로 혈룡단을 바라보던 초연향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자세히 보니 그들뿐이 아니다. 느긋한 자세로 혈룡단의 후미를 따라붙은 자들이 또 있다.
느긋한 걸음걸이.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지고 온몸이 굳어진다.
그들을 본 초연향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저들은 누군데 저토록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는 걸까?’
혼신의 힘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그들을 살펴보았다.
혈룡단의 기운조차 장난처럼 여겨질 정도의 가공할 기운이 그들에게서 풍겨져 나온다. 바로 죽음의 기운이!
저런 자들이 어떻게 이곳에 오는 걸까. 하주령이 어떻게 저런 자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주령과 죽음의 기운을 지닌 가공할 고수들.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서, 설마 저들이?’
그사이 세 장한이 이 장 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하군상이 아니라 더한 고수가 온다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그녀가 악을 쓰듯 말했다.
“혈룡단이 오고 있어요! 아마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려 할 거예요! 어서 피해요!”
그녀에게 접근하던 세 사람 중 활을 메고 있던 장한이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엉뚱한 수작 부리지 마라. 그들이 왜 우리를 죽인단 말이냐?”
“제발 믿어줘요! 그들은 우리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어서 피해야 해요!”
“흥! 네년이 무슨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초연향이 입술을 깨물고 입을 열었다. 이미 혈룡단은 숲 속으로 들어서서 반쯤 왔을 터였다. 시간이 없다.
“혈룡단뿐만이 아니란 말이에요. 천혈교의 무사들까지 왔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피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구요!”
“천혈교?”
처음으로 활을 멘 장한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가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피잉!
그때 한줄기 섬광이 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헛! 어떤 놈이냐!”
대답 대신 다시 두 줄기의 섬광이 절벽 위에서 날아들었다.
“컥!”
거치도를 빼 들고 두리번거리던 장한이 선혈이 솟구치는 목을 움켜잡고 빙글 돌며 쓰러졌다.
그제야 활을 멘 장한은 초연향의 말을 상기하고는 대경해 소리쳤다.
“송 당주! 놈들이 우리까지 죽이려 하는 것 같소!”
두 사람은 일류고수라 할 수 있는 사람들. 제아무리 싸움에 열중했어도 초연향의 말을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어진 비명과 외침은 그들의 정신을 흐트러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군상을 밀어붙이고 있던 송구염의 동작이 잠시 잠깐 흔들렸다. 그사이 하군상은 오권을 번개처럼 휘두르고는 재빨리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게 무슨 소린가?”
송구염이 눈길은 하군상에게 둔 채 수하에게 물었다.
“산 형이 당했습니다!”
활을 멘 장한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때 송구염이 홱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고는 소리쳤다.
“탕소, 조심해! 위다!”
탕소라는 자가 위를 향해 번개처럼 활시위를 당기고는 급히 몸을 굴렸다.
파바박!
세 자루의 수리검이 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크읍!”
짧은 신음. 솟구치는 피분수.
송구염의 입술이 짓이겨졌다.
“웬 놈들이냐!”
찰나의 기회였다. 하군상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