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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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38화
138화
유태청을 비롯한 몇 사람만이 고개를 끄덕일 뿐 나머지 사람들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진용을 지켜봤다.
그렇게 진용이 선 둘레에 글을 다 새겼을 때다.
스르르…….
갑자기 안개가 끼는 듯하더니 진용과 포은상의 모습이 안개에 가려지기 시작했다.
“억! 뭐야?”
“어어? 무슨 일이지?”
“이건 사기다, 사기야!”
“안 돼! 보여줘!”
정광이나 사도굉마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에 놀라 소리쳤다.
“이런! 그때는 안개가 끼지 않았었는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다시 긴장한 눈으로 안개에 둘러싸인 삼 장 원 안을 주시했다.
쿠르릉!
천둥이 치더니 소리없이 안개가 들썩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욱한 안개는 선이 그어진 삼 장 밖에 머무를 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마치 뿌연 백색 장막을 두른 듯.
포은상은 의외의 상황에 놀라 물었다.
“기문진인가?”
그는 거듭 놀란 가운데에서도 침착함을 찾기 위해 자신의 북명곤을 움켜쥐어야만 했다.
진용이 말했다.
“그와 비슷한 것입니다. 너무 요란하면 방성이 들썩거릴 테니 자칫 적들의 눈에 띌 수가 있거든요. 해서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일리있는 말. 포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 부담없이 비무할 수 있겠어.”
그는 말을 하며 천천히 북명곤을 들었다.
길이는 석 자에 못 미친다. 그러나 마치 한 자루 거대한 봉이 자신을 짓이길 듯이 다가오는 듯하다.
진용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려 작게 원을 그렸다. 북명곤의 기운이 그의 커다란 손 그림자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찰나 포은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좋군, 좋아! 내 최선을 다하겠네. 자네가 펼친 진이 무사히 견뎌주었으면 좋겠군.”
진용도 눈빛을 더욱 깊게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해서 펼쳤으니 어느 정도는 견뎌줄 겁니다. 그래도 모르니 오 초로 하지요.”
“오 초라……. 좋네. 그 정도면 서로를 알아보기에 족하겠지.”
말이 끝남과 동시, 포은상이 한 발을 내디디며 곤을 불쑥 내밀었다.
거대한 해일이 진용을 집어삼킬 듯이 밀려들었다.
진용이 손을 뻗어 원을 그리며 좌우로 휘돌렸다. 해일이 용틀임을 하며 두 손을 따라 휘돌았다.
진용이 한 발을 나아가자 해일의 방향이 틀어졌다.
콰과과과과!
펼쳐진 마법진이 진저리를 치며 흔들린다.
기세 대 기세의 대결. 그러나 그것은 한 번으로 족했다. 서로의 능력을 알기 위함이었으니 굳이 두 번 펼칠 필요도 없었다.
언뜻 포은상의 눈에 놀람이 떠올랐다.
맨손으로 자신의 공격을 비틀어 버린 진용에 대한 놀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어질 놀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가네!”
포은상은 북명곤을 들어 허공에서 땅으로 삐침을 내치듯이 내리그었다.
시커먼 곤강에 하늘과 땅이 이어지며 대기가 갈라졌다. 그 동선에 진용이 서 있었다.
진용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엄청난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곤강을 향해 두 손을 쳐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타아!”
짧은 기합성!
건곤천단심법이 가득 실린 진용의 손이 좌우로 흔들렸다.
순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북명곤이 튕겨지며 미끄러지고, 전면 가득 커다란 손 그림자가 푸른빛을 발하며 밀려간다.
너무도 단순한 대응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일격. 이어진 상대의 변화무쌍한 공격!
포은상은 자신이 아껴둔 절초를 꺼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남겨진 공격은 사 초! 아니, 기수식까지 빼면 삼 초다.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북명칠곤(北冥七棍)!
자신이 유태청에게 지고 나서 이십 년간 다듬어온 절기였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절기를 유태청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북명칠곤을 유태청도 아닌 새파랗게 젊은 사람에게 펼칠 줄이야!
문제는 북명칠곤을 펼치긴 해도 승세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
“하! 북명명진(北冥鳴振)!”
그가 진용의 시퍼런 손 그림자를 아우르며 북명곤을 휘두르자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들리는 것은 수만 마리 벌 떼의 날갯짓 소리.
느껴지는 것은 무쇠조차 부숴 버릴 정도의 가공할 압력.
진용의 두 손이 하늘과 땅을 가리키더니 느린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건곤뇌섬파(乾坤雷閃破)!
벼락이 넘실대며 어둠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일순간 포은상의 표정이 해쓱하니 굳어졌다. 시퍼런 뇌전의 가공할 파괴력에 자신이 펼친 곤강의 막이 찢어지고 있었다.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밀릴 수는 없다!’
그는 동시에 두 가지의 초식을 병행해 펼쳤다.
그의 곤끝에서 돌개바람이 일더니, 어둠이 하나의 채찍처럼 뭉쳐 진용을 후려쳐 간다.
어둠의 채찍을 부수며 신수백타의 춤을 추는 진용. 그의 가슴을 향해 곤강으로 이루어진 묵창 하나가 일직선으로 뻗쳤다.
진용은 무심히 건곤을 그리며 돌던 두 손 중 우수를 앞으로 뻗어 한 자 크기의 원을 그렸다.
찰나간에 그려진 십여 개의 원이 하나로 겹친다.
그때였다! 허공이 뻥 뚫리더니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고오오!
어둠이 빨려든다.
채찍처럼 휘돌던 기운조차 휘돌며 빨려든다.
묵창이 그 여파에 주춤거린다.
그제야 진용이 좌수를 들어 상대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인 진공의 한가운데로 일권을 밀어 넣었다.
뇌전이 묵창을 집어삼킨 채 눈부시게 폭발했다.
번쩍! 콰아앙!
북명곤에서 만들어진 어둠의 창이 산산이 부서졌다.
진용의 우수에서 파생된 진공도 모든 것을 소멸시키며 사라졌다.
“음…….”
“욱!”
남은 것은 두 사람의 묵직한 신음 소리와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뿐.
쩌저저적!
두 사람을 감싸고 있던 마법진조차 기운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진용은 이를 악물고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직시했다.
포은상의 눈이 격렬히 떨리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눈빛. 물리적인 충격과 정신적인 충격을 동시에 받은 눈빛이다.
서로가 두 걸음씩 물러섰다. 겉으로 보면 비슷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신은 이 초식을 섞어 펼쳤고, 상대는 일 초였다.
포은상의 악다문 이 사이로 억눌린 음성이 새어 나왔다.
“내가…….”
그때 진용이 포은상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굉장했습니다.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군요.”
마법진이 무너지자 안개도 스러지고 있었다. 포은상의 이 사이로 새어 나오던 말도 스러졌다.
진용이 다시 말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넓은 곳에서 다시 한번 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이를 지그시 깨문 포은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패배를 자인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상대는 진심이다. 배려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다시 해보고 싶었다. 드넓은 곳에서 자신의 북명칠곤을 마음껏 펼쳐 보고 싶은 것이다.
“좋… 네. 그때는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장소가 넓으면 아무래도 나의 북명곤이 더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네.”
진용이 창백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그럼 저도 오늘 못 보여 드린 것을 마저 보여 드리죠.”
포은상도 터진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기대하지. 아마 쉽지 않을 거야.”
안개는 스러진다 싶더니 순식간에 걷혀 버렸다.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유태청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비겼구먼.”
그의 입가에도 흐릿한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알든 모르든 조용히 유태청의 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모르던 사람들도 안면을 트고 친해졌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어느 방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무공에 일생의 대부분을 바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유태청이 그러한 사람들만을 심사숙고해서 골라 모았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공이라는 공통된 매개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었다.
그러니 심심할 수가 없었다. 심심하기는커녕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고 투닥거리기 일쑤였다.
물론 심한 싸움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무인, 작은 싸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아가 정광의 목에 무등을 탄 채 말했다. 조그맣게.
“저 할아버지, 아니, 저 아저씨들은 왜 싸워? 싸우면 나쁜 사람들이라고 그랬는데……. 도사 아저씨, 저 아저씨들 나쁜 사람들이야?”
그 말에 작은 싸움도 사라졌다. 대신 비무가 생겼다. 각자가 자신의 성취를 보이고, 그 성취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 비무였다.
판정관은 상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와! 멋지다! 아줌마에게 저 아저씨 고기 많이 주라고 해야지!”
그러면 그 상에 고기가 많이 나왔다. 숙수의 솜씨가 좋아서 맛도 훌륭했다. 누가 감히 따질 수 있을까?
결국 천하의 절정고수들이 보다 나은 음식을 위해 묘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유치하다고?
옆 상에 맛있는 음식 나오는데, 내 상에는 풀만 나와 봐! 그런 말이 나오는가!
여섯 명이 한 탁자에서 식사를 한다. 그래서 세 개의 조가 생겼다. 조장은 탁주라 불렀다. 천하유일의 묘한 명칭이었다.
그들은 시간만 나면 서로의 무공에 대해 논의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각자의 무공을 다듬었다. 상아에게 어떻게 하면 멋지게 보일까 궁리를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밝은 얼굴들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유태청이 가끔씩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정도에서 무리(武理)에 대한 강론을 하기도 했다.
무공을 펼치지 못한다 해서 머릿속에 있는 무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유태청은 강했다.
단 며칠.
사람들은 그 며칠이라는 시간이 지난 몇 년에 못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4
추진상의 관사에 머문 지 보름째 되는 날, 벽월(劈月) 율천기를 끝으로 유태청이 청한 사람 중 열한 명이 모였다.
두 명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한 명은 이미 죽었다며 서신이 되돌아왔다. 그래도 유태청이 예상했던 열 명보다는 한 명이 많았다.
율천기는 마침 진용이 밖에 나가 있던 중에 와서 비무를 벌이지 않았다.
그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열 명 중 일곱 명이 진용과 비무를 벌였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포은상만 빼고 모두가 진용의 십 초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들은 한결같이 믿기로 했다.
―진용이라는 청년은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다!
믿지 않으면 자신들이 초라해진다.
율천기도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진용을 보자마자 비무 신청을 하려 했다. 그러나 포은상이 잠깐 보여줄 게 있다며 억지로 끌고 나가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각 후, 포은상을 따라갔던 그가 돌아와서 진용을 향해 말했다.
“포 형이 할 때 나도 하겠네.”
사람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율천기를 바라보았다.
율천기는 그들의 눈빛을, 자신이 그들 대신 진용을 꺾어주기를 바랐는데 비무를 미루자 실망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로선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 십은 중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벽월 율천기 아닌가!
‘친구를 곤란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해하게나들.’
조금 전 잠깐 나갔을 때였다. 포은상은 그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몇 마디 말만 했을 뿐이었다, 조용히.
“그가 나와 다시 붙기로 했는데, 만일 그가 자네에게 크게 다치면 나는 기회가 없잖은가? 자넨 나중에 내가 재비무를 한 다음에 하게나.”
그 말에 그는 포은상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비무를 미룬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의 속도 모르고.
그러니 패배한 사람들의 속마음은 더더욱 알 리가 없었다.
-벽월까지 깨지면 우리가 패한 것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데! 정말 아쉽군!
유태청이 불러들인 사람이 열한 명, 진용 일행이 여덟 명. 모두 열아홉 명이었다. 그들이 진용과 유태청을 중심으로 둘러서자 크게 느껴졌던 방 안이 꽉 찬 느낌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더해지자 방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이미 한 사람 한 사람 유태청이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터. 그러니 모두 유태청이 자신들을 불러 모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사람 이탈자가 없었다. 유태청이 무공을 잃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용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과연 십절검존이다. 그야말로 그가 은거하기 전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노인이 강한 것은 무공 때문만이 아니라 하더니…….’
진용은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강한 노인, 유태청이 말했다.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네. 그저 나를 믿거든, 잠시 나에게 시간을 맡기라 했을 뿐이야. 물론 천혈교나 삼존맹, 천제성 등을 상대해야 할 거라는 말 정도는 해놨네. 그러니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서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