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37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37화
137화
3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무렵 두 사람이 찾아왔다.
기지개를 켜며 막 방을 나서선 북리종은 그들을 보고는 못 본 척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웃음을 꾹 참고.
두 사람도 문 옆에 서서 진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전날 서 있었던 딱 그 자리다.
그들은 자신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섬전쌍객(閃電雙客) 조씨 형제. 자신처럼 무도에만 전념하느라 어느 문파에도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절정에 든 지 오래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어제만 같았어도 저 두 사람이 합공하면 천하의 십천존이라도 곤욕을 면치 못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 오늘은 아니었다.
‘웃기지도 않은 소리지!’
그때 방문 앞에선 그의 귓가에 말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권각이군.”
역시 자신이 한 말과 비슷했다. 문득 그다음 말이 궁금했다.
저 괴물이 뭐라 했더라?
“유 어르신을 찾아오셨습니까?”
아, 맞아! 저 말이었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자네가 말한 사람이…….
“……십절검존이시라면 맞네. 그전에 자네의 권각을 한번 보고 싶군.”
‘크크크…….’
북리종은 입을 틀어막고 속으로 웃었다.
어쩌면 저리 똑같지?
자신이 당한 일은 까마득히 잊은 채 북리종은 다음에 벌어질 일을 고대하며 조용히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땅바닥을 긋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강맹한 기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선을 얼마나 넓게 그어놨을까? 두 사람이니 더 넓게 그어놨겠지?’
어제 싸우기 전 진용이 말했다.
“이곳은 장소가 좁습니다. 그러니 선을 그어놓고 하지요.”
“그것도 좋지. 나가는 사람이 지는 걸로 하세.”
멍청하게도 자신은 그리 말했다.
말도 안 된다고, 싸우는 데 한계를 두는 법이 어디 있냐고 강력하게 우겼어야 했거늘.
자신이 찬성하자 진용은 직경 삼 장 크기의 원을 그었다. 그 정도면 어떠냐 하면서.
물론 자신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도를 빼 들었다.
그렇게 비무가 시작되었는데, 결국 자신은 삼 장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고, 그만큼 더 맞았다.
‘염병할! 으이그, 멍청한 놈!’
그가 원한 맺힌 삼 장 원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시작하지요.”
진용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비무가 시작되었다.
북리종은 귀를 쫑긋 세운 채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격전을 벌이는 소리가 마당의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그들 역시 선을 그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나가지 않기 위해서 죽어라 버틸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십여 번의 부딪침이 대기를 울리며 퍼져 나갈 즈음이었다.
콰광! 퍽! 쨍그랑!
둔탁한 굉음이 터지고, 누군가의 무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섬전비검 조관의 검일 것이다. 동생인 섬전무영수 조덕은 무기를 쓰지 않으니까.
북리종은 슬쩍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뒹굴고 있는 조관이 보였다. 그런 상태에서도 선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버둥거린다.
‘진짜 재밌군. 버둥거리는 조관을 볼 수 있다니!’
북리종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의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는 까마득히 잊은 채.
둘째인 조덕은 이미 선 밖으로 튕겨 나가 있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니 당하고도 믿기지 않은가보다.
그제야 북리종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 놀란 것처럼 크게 소리치며.
“아니, 이게 누구야! 조 형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 북리종을 보고 조씨 형제는 후다닥 일어섰다.
진 건 진 거고, 남 앞에서, 그것도 자신들과 호적수인 북리종 앞에서 약한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는 자네는 웬일인가?”
“나? 나야 어르신이 불러서 왔지.”
“우리도…….”
대답을 하던 조관이 뭘 봤는지 씩 웃었다.
“어째 자네 얼굴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군.”
북리종은 움찔했지만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동경에 얼굴이나 비춰 보고 말하게.”
그제야 조관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똥 묻은 놈이 재 묻은 놈을 놀린 꼴이 아닌가!
‘빌어먹을!’
문득 든 생각에 조관이 물었다.
“그럼…… 자네도……?”
북리종은 갑자기 가슴이 쓰렸다.
‘내가 왜 나왔지? 괜히 나왔군. 안에서 그냥 구경이나 할걸.’
그때 방 안에서 유태청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있지 말고 들어들 오게나.”
세 사람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진용을 찾으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진용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조관이 처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그 괴물은 누군가?”
북리종이 일그러진 얼굴로 답했다.
“잘 알고 있으면서 묻나? 그는… 괴물이야.”
* * *
진용은 유태청으로부터 올 사람들에 대한 인상착의를 미리 들었다. 그 후 실피나를 시켜 방성 일대를 돌게 했다. 물론 인상착의를 미리 주지시켜서.
그리고 그들이 나타나면 미리 마당에서 신수백타를 펼치며 그들을 끌어들였다.
유태청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무도에 전념하느라 강호방파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했다. 그런 그들이 신수백타를 보고 그냥 지나갈 리 만무한 일.
무공을 익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혹할 정도의 멋진 무공이 신수백타가 아니던가.
생각대로였다. 한판 붙자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건양도 북리종이 그랬고, 섬전쌍객 조씨 형제가 그랬고, 그로부터 세 시진 후에 나타난 귀명마검(鬼鳴魔劍) 위도경이 그랬다.
그다음부터는 간단했다.
솔직히 그들의 무공이 대단하긴 했지만, 그동안 자신이 싸워온 자들 중에는 그들보다 강한 자들이 많았다.
특히 백리성과 천강오령위는 그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고수였다. 그러니 힘 조절을 해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어제 구전수(九電手) 소진호를 상대할 때까지는 그랬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그는 아침 일찍 불쑥 찾아왔다. 실피나를 불러내기도 전이었다.
진용이 정원에 핀 모란을 보며 초연향을 걱정하고 있을 때 무거운 기운이 입구 쪽에서 전해졌다.
진용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세르탄도 느꼈는지 조금 긴장한 투로 말했다.
‘시르, 대단한 인간이 왔다. 쉽지 않겠는데?’
그 말대로였다. 전해지는 기운은 지금까지 상대한 사람들과 차원이 달랐다.
누굴까? 누군데 저런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걸까?
유태청이 올지 모르겠다 말한 사람 중 두 사람이 있다. 유태청조차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
어느 정도는 자신을 낮춰 말한 것일 테지만, 진용은 유태청의 말만으로도 그 두 사람의 강함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십은 중의 두 사람이라 했지?’
십은(十隱).
무도에 심취해 강호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초절정의 고수 열 사람을 말함이다. 개중 몇 명은 십천존에 비견되는 절대고수일 거라는 것이 강호의 정설이었다.
느낌대로라면 아마 그들 중에 하나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문을 두드렸다.
탕탕!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진용이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을 열자 그가 보였다.
그의 모습은 독특했다. 덕분에 유태청이 말한 이름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북천산인 포은상?’
오십 초반의 나이. 큰 키에 헐렁한 갈색 장포를 입고, 옆구리에는 재질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몽둥이 하나.
‘북명곤(北溟棍).’
유태청의 설명대로라면, 저 검은빛이 반질거리는 몽둥이가 바로 북명곤이었다.
“곤의 크기가 석 자 이내로 줄어 있다면 조심해야 하네.”
유태청은 그리 말했었다.
그런데 석 자가 안 되는 듯하다. 어림짐작으로도 한 치 정도가 모자라 보인다.
진용은 말없이 서너 걸음 물러섰다.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도 그는 진용을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더니 물끄러미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은 순간적으로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굳이 다른 것으로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거산(巨山)이 담겨 있는 그의 눈만 봐도 되었다.
강한 자다!
“어린 친구, 이곳에 혹시 유태청이라는 분이 계신가?”
눈에 거산을 담은 그가 물었다.
“유 어르신은 안에 계십니다. 혹시 포 대협이신가요?”
진용이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묘한 눈으로 진용을 응시했다.
“오랜만이군. 이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 긴장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근 한 달 만이군요.”
“무엇이 말인가?”
“포 대협처럼 강한 분을 만난 지 그 정도 되었다는 말이지요.”
포은상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만들어졌다.
아무리 봐도 자랑하려 한 말은 아니다. 그런데 공연히 신경이 쓰인다.
자신처럼 강한 자라 했다. 자신이 알기에 자신만큼 강한 사람은 이 넓은 강호 천지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대체 이 어린 친구는 누굴 말하는 것일까? 아니, 자신의 능력을 정말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포은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 달 전이라……. 그와 싸웠나?”
“맛보기로만 싸웠죠.”
맛보기? 싸움에도 맛보기가 있나?
포은상은 은근히 대화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만인지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십 년? 이십 년?
다시 물었다.
“이겼나?”
“이기지도, 지지도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맛보기였으니까요.”
“그게 누군가?”
그에 대한 대답은 방문이 열리며 다른 사람이 했다. 유태청이었다.
“아마 고 공자는 천제성의 백리성을 말하는 걸 거네. 하지만 그와 싸운 것 말고도 더 치열한 싸움을 몇 번 했지.”
그는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포은상의 곤을 바라보았다.
석 자에서 조금 빠지는 길이. 유태청의 눈빛이 보일 듯 말 듯 살짝 흔들렸다.
‘전보다 강해졌군!’
포은상 역시 말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백리성이라고? 천제성의 제검전주 백리성?’
더구나 그와의 격전에 비견될 정도의 치열한 싸움을 몇 번이나 했다고 하지를 않는가.
포은상은 이대로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단은 유태청에게 인사를 먼저 올렸다.
“유 노사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녕하셨습니까?”
“와줘서 고맙네. 이십이 년 만인가?”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군요. 괜찮으시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그리고 다시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자신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 청년. 얼마나 강할까?
그 마음은 진용도 마찬가지였다.
절대의 경지에 이른 고수. 십천존에 비견할 만한 고수. 유태청이 그리 말했다.
자신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포은상은 강하다!
자신의 능력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백리성과 잠깐 손을 마주한 것이나, 삼존맹의 고수들, 그리고 흑의복면인들과 생사를 걸고 싸웠던 것과는 또 다른 승부욕이었다.
자신도 강호인이 다 된 것만 같다.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훗, 아버지를 찾겠다고 나온 내가…….’
그래도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대해가 담긴 눈과 거산을 담은 눈이.
“어떤가? 가볍게…….”
“괜찮으시다면 한 수…….”
동시에 두 사람의 입이 열렸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지 기다렸다는 듯 방문이 벌컥벌컥 열리고 열기에 가득 찬 눈빛들이 두 사람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두 사람은 마치 자신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눈빛에 개의치 않고 마당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찌이이…….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한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거의 동시 다발적으로 몇 군데서 나왔다. 그러니 창피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머릿속은 오직 진용이 그리고 있는 금이 얼마나 크게 그려지는지를 나름대로 추측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선이 직경 삼 장 크기로 그어진다.
순간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절대의 고수들이 삼 장 안에서 싸운다!
그것만으로도 절로 손에 땀이 찼다.
무시무시한 광경이 눈에 선하니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선을 긋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진용이 선을 다 긋고는 선 밖에 뭔가 알아볼 수 없는 글을 쓴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