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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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36화
136화
여섯 번째 서(序)
한중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걷기만 했다. 물이 있으면 건너고, 산이 있으면 올랐다.
‘여긴 어딜까?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 거지?’
한바탕 피를 보고나서부터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있다.
꼭 자신이 사라져 가는 것만 같다.
자기가 왜 걷는지, 하다못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조차 알지를 못했다. 그냥 걸을 뿐이었다. 발길이 가는 대로 그냥…….
그런데 이상하다. 꼭 언젠가 걸어본 길처럼 느껴진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머리를 움켜쥔 채 눈을 부릅떴다.
미칠 것만 같다!
자신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그를 미치게 한다. 이 길도, 저 앞에 보이는 기암절벽들도.
“내가 왜 피를 뒤집어쓰고 여길 걷는 거지?”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인다.
‘그냥 가! 너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 세상을 피로 덮어버려! 반쪽을 찾지 못하면 너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괴물일 뿐이야!’
“나의 반쪽? 세상을 피로 덮어버리라고?”
가만, 너는 누구야?
누가 말 좀 해줘! 이제는 내 이름도 생각이 안 나!
“으아아아아! 대체 내가 누구냔 말이야!”
‘너는 휼탄! 세상을 피로써 지배할 혈신이다!’
그는 끝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아냐! 나는 휼탄도, 혈신도 아니야!”
그때였다.
화르르륵!
그의 전신 모공에서 시뻘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피보다 더 붉어 보이는 기운. 악마의 입김이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지옥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이 이러할까.
무엇이고 붉은 안개에 닿는 것은 가루로 부서져 흩날렸다.
콰과과과! 우지끈! 쩌저적!
아름드리 생나무가 통째로 부서지고, 천 근 바위도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반경 십 장이 폐허가 되어버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너무도 가공할 광경에 주위의 모든 산 것들이 공포에 떨고, 기암절벽에 뿌리를 박은 채 천 년을 살아온 노송조차도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봤다.
그러길 반 각. 그를 중심으로 십 장 반경을 지배하고 있던 붉은 안개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털썩!
동시에 그도 낫에 잘린 보릿대처럼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루가 지났다.
쏴아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장대비가 쏟아진다. 온 세상을 다 쓸어내 버리려는 듯이.
콸콸콸콸!
삽시간에 불어난 계곡의 거센 물줄기가 쓰러져 있는 그를 덮쳤다. 그러더니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커다란 바위에 내동댕이쳤다.
퍽! 바위에 머리를 거세게 부딪친 그의 몸이 바위를 타고 도는 물결을 따라 휘돌았다.
그때였다. 그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손 하나가 물 밖으로 솟구쳤다.
솟구친 손은 밀가루에 젓가락을 쑤셔 박듯 바위를 뚫고 틀어박혔다. 그리고 잠시 후, 바위에 손가락을 박은 그가 비칠거리며 일어났다.
가공할 기운이 그의 몸 주위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그의 주위를 휘돌던 물길이 그를 피해 돌아 흘렀다. 떨어지던 장대비도 그만은 피해 쏟아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크크크……. 우하하하!”
광소는 반 각가량을 이어지다 천천히 잦아들었다.
순간 시뻘건 눈빛이 빗줄기 사이로 쏟아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의 눈 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광기에 일렁이던 눈빛이 점차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를 세차게 턴 그가 느릿느릿, 어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누구면 뭔 소용이냐. 이제부터 내 이름은 율단이다, 율단. 크흐흐흐……. 좋아, 일단 내 힘의 반쪽을 찾자. 반쪽을 찾고 나서 내 세상을 만드는 거야. 새로운 내 세상을. 우흐흐흐, 성은 신도(新道)가 좋겠군. 가자, 신도율단!”
순간 그의 내면에서도 무엇인가가 소리쳤다.
‘그래, 가자! 신도율단! 크하하하! 그 이름도 괜찮군!’
쿵!
그가 발을 구르자 그의 몸은 삼십 장 절벽 위를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절벽을 넘어 사라졌다.
그가 사라졌음에도 장대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다.
모든 비밀을 덮어버리려는 듯. 그렇게…….
* * *
태백산을 벗어나려는데 엎드려 있는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모두가 시뻘건 혈의를 입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가 걸음을 멈추자 마치 신께 앙복하는 자세로 그들이 외쳤다.
“혈신이시여, 재림을 앙축하나이다!”
저자들은 뭐야? 어떻게 혈신이라는 이름을 아는 거지?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하신 혈신을 신들은 수백 년을 기다려 왔사옵니다! 신들을 이끌어주소서!”
너희들을 이끌어달라고? 수백 년을 기다려 온 것은 가상한데, 나는 아직 할 일이 있어.
그는 갑자기 허공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혈신이시여!”
혈신의 수하를 자청한 자들이 놀라 외쳤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외침에 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반쪽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때까지 그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피에 미친 괴물일 뿐.
“크크크, 내 반쪽을 찾는 게 우선이다! 너희들이 나를 따르고 싶다면 그만한 준비를 하고 기다려라!”
우르릉,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자들이 일제히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기다리겠나이다, 혈신이시여!”
1장. 모여드는 사람들
1
“아무래도 동창에서 그 일을 대충 무마하려 했던 모양이오. 아마 육 천호가 알지 못했다면 그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소. 육 천호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구룡상방에 찾아갔지만, 그들은 잘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소. 분명한 것은 내가 떠나올 때까지도 그 두 사람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이오.”
“동창이? 그들이 나 몰라라 했단 말이지요?”
말을 하는 진용의 눈빛은 짙은 먹빛을 띠고 있었다. 송시명이 그런 진용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동창은 전부터 구룡상방과 관계를 맺고 있었소. 우리 금의위에도 줄을 대려 했지만, 도독께서 워낙 철저한 분이라서…….”
그는 말을 하면서도 묘한 생각이 들었다.
동창이 불쌍하게 생각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
진용의 한없이 깊게 가라앉은 눈을 보자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왕효, 그 늙은 구렁이 같은 작자가 구룡상방과 손을 잡고 있었단 말이지? 나를 향해 수작을 부린 것은 이해해 줄 수도 있어. 그러나 이번 일은 분명히 당신이 잘못한 거야.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당신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거다, 왕효!’
다시 솟구치려는 분노를 가라앉힌 진용은 무심히,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십니까?”
“그게… 오리무중이오. 북경에서는 그들이 구룡상방의 눈길을 피해 몸을 숨길 곳이 없소. 그런데도 그들의 행방이 밝혀지지 않았소. 아마 북경을 빠져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소만…….”
아직 잡히지 않았다면 실낱같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두 사람의 행방을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다.
진용의 머릿속으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라면…….’
풍림당의 운가명, 백마성의 혁우청, 팽가의 팽기한, 개방의 방산 분타.
진용은 조금이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라면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모두 서신을 써서 추진상에게 전했다. 초지급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손에 열 냥짜리 황금을 쥐어 주며.
내용은 동일했다.
[구룡상방이 쫓고 있는 초연향과 하군상의 행적을 찾아주시오! 찾는 대로 방성의 현령에게 보내주시면 나 고진용, 은혜 잊지 않겠소!]
두 사람의 용모파기는 자신이 직접 그렸다. 봉사만 아니라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세밀히 그렸다.
다만 대가는 적지 않았다. 적절한 대가는 그들이 알아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들은 진용의 능력을 일부분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 개방조차도 지금쯤이면 진용에 대한 정보가 한 다발은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진용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위험에 빠진 초연향을 구해주고 싶은데, 당장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스럽기만 했다.
‘하주령! 너는 그녀에게 아무 일이 없기만을 빌어야 할 것이다!’
2
아침 해는 무심하게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떠올랐다.
해가 뜨자마자 송시명이 밤을 지새운 진용을 찾아왔다.
“식사를 하고 나면 바로 출발할까 하오, 수천호령사. 백인검문으로 가는 길에 사문인 무당에도 좀 들러볼 생각이오. 그러려면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소.”
무당? 송시명의 사문이 무당이었던가?
미처 몰랐던 일이다.
그런데 무당이라는 말을 듣자 진용은 문득 공손각에게 받은 서신이 생각났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의 이름까지.
진용은 품속을 뒤져 서신을 꺼내 들었다. 서신은 꾸깃꾸깃 구겨지긴 했지만 다행히 찢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진무사께선 이 서찰을 가지고 한 사람을 찾아봐 주십시오. 그분의 이름은 선우신광. 강호에선 독행귀자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도독의 친우 분이라 하셨지요. 그분을 보거든 저를 찾아오라 전해주십시오. 공손 도독이 그리 말했다고 하면 될 겁니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 더구나 선우신광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듯했다.
사도굉이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해서 월조옹이라 불린다면, 그는 혼자 움직이기를 좋아해서 만박귀(萬博鬼) 독행귀자(獨行鬼子)라 불렸다.
다만 사도굉과 마찬가지로 성격이 괴팍해서 지금까지 어느 문파도 그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
올지 안 올지는 모른다. 그러나 공손각의 말대로라면 절대 거절 못할 이유가 있다 했으니 올 가능성이 더 많았다.
송시명이 떠난 그날 오후.
진용은 한 시진에 걸쳐 신수백타를 펼치고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좋은 무공이군. 지금까지 많은 권각법을 봐왔지만, 그렇게 변화무쌍한 권각법은 처음이군.”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사십이 조금 넘어 보이는 중년인이 보였다.
정광과 비견되는 호안, 듬직한 체구, 등에 너비가 한 뼘은 될 듯한 대도가 매여 있는 자.
‘첫 번째 손님이 왔군.’
일각 전부터 느껴진 기운의 주인이었다. 그때부터 그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 진용의 생각이었다.
자신은 그를 알고도 신수백타를 멈추지 않았다.
본다 해서 진체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숨겨진 무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보다 더 확실한 이유는, 자신이 상대에게 그것을 보라고 펼쳤다는 것이다.
걸려들길 바라면서.
“유 어르신을 찾아오셨습니까?”
중년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자네가 말한 분이 십절검존이시라면 맞네. 그러나 그전에… 자네를 먼저 알고 싶군.”
진용은 조용히 웃음을 머금었다.
‘성질 좀 있어 보인다 했더니 역시나군.’
하루 종일 무저의 늪으로 가라앉은 것 같던 기분이 조금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저도 대협을 알고 싶군요.”
중년인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마음에 드는 친구군. 나는 북리종이라 하네. 우리 한번 화끈하게 즐겨보도록 하세!”
진용이 씨익 웃었다.
제대로 걸려든 것 같다.
“화끈하게라……. 거 좋죠.”
반 각이 지났을 무렵, 중년인 건양도(乾陽刀) 북리종은 유태청과 마주 앉았다. 약간 몸을 비튼 자세로.
그를 본 유태청이 기이한 눈빛으로 물었다.
“오랜만이군. 한데 어째 몸이 말이 아니구먼. 내가 잘못 부른 듯하이.”
북리종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눈가에 그려진 푸른 점도 함께 일그러졌다.
터진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쓱 닦으며 그가 말했다.
“입구에서 괴물을 만나는 바람에…….”
유태청의 입가에 매달린 웃음이 커졌다.
“허허허, 혹시 그 괴물이 서생복을 입고 있지 않던가?”
“누굽니까? 난생처음 저에게 절망을 안겨준 그 친구는.”
“고진용이라고 하지. 너무 실망할 것 없네. 내가 멀쩡하다 해도 자신할 수 없는 친구거든.”
유태청의 말이 떨어진 순간 북리종은 눈을 부릅뜨고 가늘게 떨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제 칼을 맨손으로 잡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그게 어디 사람입니까? 손은 또 얼마나 큰지…….”
그 정도 말은 해야 자신의 패배가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더구나 유태청 옆에 붙어 있는 덩치 큰 아름다운 여인은 고개까지 끄덕이지를 않는가 말이다.
“고 공자가 확실히 사람 같지는 않죠. 그걸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고 공자와 싸우려 하지 않아요.”
북리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디서 그런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