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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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33화
133화
“칠월 첫째 날이 회갑이다. 오란 소리는 아니니까, 그냥 알고만 있어! 어서 가! 보기 싫으니까!”
마차에 발을 올리던 사도굉이 씨익 웃었다.
‘그럼 그렇지, 제까짓 놈이!’ 하는 표정이었다.
두 눈에 뿌옇게 낀 안개만 아니라면 악동의 표정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썩을 놈, 좋은 말로 하면 오죽 좋아?”
누가 뭐래도 둘은 친구였다.
진용 일행이 탄 마차가 생사원을 떠나자, 세 군데서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싸울 적은 없었지만, 보는 눈은 그들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힘차게 서쪽과 남서쪽으로 날아가던 전서구들이 채 십 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각자가 날아가던 방향을 이탈해서 한곳으로 밀려갔다. 저항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의 강풍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일각이 되기도 전에 세 마리가 모두 하나로 뭉쳐지고 말았다.
―오호호호! 얘들아, 나랑 같이 주인에게 가자! 성질이 고약한 주인이니까 얌전해야 돼!
뭉쳐진 세 마리의 전서구가 뒤엉켜서 날아가는 광경은 진풍경이었다. 당하(唐河)에서 사냥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던 장이가 입을 쩍 벌릴 정도로.
“세상에 어찌 저런 일이!”
3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진용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실피나.”
실피나를 부르자 툭, 세 마리의 비둘기가 반쯤 정신을 잃은 채 발 앞으로 떨어졌다.
―얘들이 맞아? 새들이 많아서, 주인 말대로 다리에 통 매단 애들만 잡아 왔는데.
비둘기들의 발에는 자그마한 통이 매달려 있었다. 전서구가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 마리를 예상했는데 세 마리다.
“수고했어. 이제 가서 쉬어.”
진용은 실피나를 쉬도록 하고는 세 마리의 다리에 매달린 전서구 통을 떼어냈다.
[목표물 이동 중. 지시 바람.]
[유태청이 살아났음. 지켜본 바에 의하면 무공을 잃은 듯함. 계속 뒤를 따르겠음.]
첫 번째는 삼존맹. 두 번째는 천제성인 듯했다.
진용은 세 번째 전서통을 한참 바라보다가 통속에서 작게 접힌 서신을 천천히 꺼냈다. 서신을 펼치는 진용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건 어디로 보내는 거지?”
[삼존맹과 천제성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음. 대책이 필요함. 혈신을 위하여.]
괴이한 뜻이 담긴 서신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들은 삼존맹과 천제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덕분에 진용 역시 전에 자신이 품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자신조차도 믿기 힘든 하나의 가정마저 세울 수 있었다.
-제 삼자가 삼존맹과 천제성을 이용하고 있다!
진용은 그 생각을 하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어느 누가 삼존맹과 천제성을 농락하고 있는 것인가?
천혈교? 정천무맹? 아니다. 제 삼자는 자신조차 짐작할 수 없는 자들이다.
마지막 문장.
혈신을 위하여!
이건 무슨 뜻일까?
손에 들려 있던 서신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데도 진용은 눈을 감은 채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잡기 위해 심력을 쏟았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찾지 못한 지금 그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고 공자!”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숲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진용은 눈을 뜨고 몸을 돌렸다.
“차근차근 파고들어 가다 보면 보이겠지.”
4
따사로운 햇살.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야.
진용 일행이 탄 마차는 은은한 향내가 흐르는 들판을 가로질러 천공 높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나아갔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북으로 올라가 정천무맹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천혈교가 있는 신양 쪽으로 갈 것인지.
석무심과 사공하는 떠나기 전, 언제든 정천무맹으로 오라 했었다.
나쁜 제안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정천무맹은 당금 무림을 움직이는 가장 커다란 축이니까.
그러나 진용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정천무맹이 꺼려졌다.
크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목적을 이루기가 힘들다. 더구나 정천무맹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연합한 세력. 이전투구를 벌이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면 자칫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단독으로 움직이기도 쉽지가 않았다. 천혈교는 제쳐 두고라도, 삼존맹과 천제성이 눈엣가시 같은 고진용을 그냥 놔둘 리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암중의 그림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상황.
그에 반해 자신의 힘은 황궁의 지위와 곁에 있는 몇 명의 고수들이 전부다.
약간이라도 힘이 되어줄지 모르는 백마성은 너무 멀리 있고, 봉황곡은 도와준다는 보장이 없다.
자신이 설령 십천존의 일인과 맞대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고 해도 혼자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계산이 나올 뿐.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강호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넓고, 벗겨도 벗겨도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양파만큼이나 복잡했다.
드넓은 들판의 끝이 보일 무렵, 유태청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찌할 생각인가?”
자신의 갈등을 눈치 챈 듯하다.
진용은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들판을 바라보다 담담히 대답했다.
“저의 목적은 우선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버지를 찾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동창의 수상한 움직임을 알아내서 자칫 황궁에 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지요. 그 일이 원만하게 처리된다면 그 다음에 구양무경을 칠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천무맹으로 가면 아무래도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저에겐 그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면, 혼자 움직이겠다는 말인가?”
“우선은 그리할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정천무맹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서로 도울 건 돕는 정도로 절충할 생각이지요.”
“흠, 하긴……. 사실 정천무맹은 생각보다 상당히 배타적인 세력이지. 아마 개인이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네. 그나마 자네의 신분이 있으니 그들도 무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진용은 개인적인 일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황궁이 나서는 걸 반겨할 무림인들이 아니니까.
그러나 아버지와 관계된 일이라면 달랐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지위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우선은 강호의 흐름에 따라가며 그들의 힘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탕마단이 움직이면 천제성이나 삼존맹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천혈교와 손을 잡지 않은 이상은. 그 와중이면, 비록 직접적인 참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기회가 생길 거라 생각합니다.”
진용이 무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유태청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꺼내놓았다.
“사람들을 모아보면 어떻겠나?”
“사람들을요?”
자신 역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모은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고 공자에겐 많은 수의 무사들보다 최고의 정예가 필요하네. 전에도 말했지만, 늙은이는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네. 내 말이라면 바로 달려올 사람이 몇 있으니, 일단 그들을 불러놓고 다음 생각을 해보도록 하세.”
진용은 생기가 도는 유태청을 바라보고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가 십절검존 유태청이라는 것을. 강호인 유태청 말이다.
“제가 깜박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천혈교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허허허, 남자는 자신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한 번 한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법이지. 설령 자신과의 약속이라도 말이야.”
* * *
실피나가 세 마리의 전서구를 잡아들인 것이 의외로 큰 효과를 발휘했다.
추적자들이 본 파의 연락을 받지 못하자, 작전이 변경된 줄 알고 추적의 고삐를 늦춘 것이다.
그사이 진용 일행은 빠르게 서진하며 흔적을 지워 버렸다.
마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실피나를 앞세워 무사들이 있는 곳은 최대한 피해서 움직였다.
그 바람에 실피나가 힘들어 죽겠다고 퉁퉁거렸지만, 진용은 모른 체하고 정찰 임무를 계속 맡겼다.
그런 한편으로 진용은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세르탄을 윽박질러 끝내 폭공지의 구결을 뺏어냈다.
‘세르탄, 시간도 많은데 폭공지나 배워보자고.’
‘싫어.’
‘이제부터 진짜 강적들과 싸워야 한단 말이야. 쪼잔하게 안 가르쳐 줄 거야?’
‘…….’
‘하루에 열두 번씩 뒤통수 때리면 누가 손해 볼 거라고 생각해?’
‘비겁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도 있잖아.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 죽기 싫으니 어쩌겠어?’
‘그럼… 폭공지만 가르쳐 주는 걸로 끝내는 거야?’
‘물론이지!’
뇌전의 능력 중에서 못 배운 것은 아직 써먹을 만큼 내력이 뒷받침 안 되니까 다음에 배우자고.
9장. 반풍 추량
1
방성현령 추진상은 책을 보고 있던 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자 별다른 생각 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심코 대답하고 책장을 넘기던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방문 두드리는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은 아니다. 아직 그 정도로 귀가 어두워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대답이 없다.
어느 놈이 장난하나?
하지만 누가 감히 자신의 거처에 와서 장난을 할까.
아! 하나 있군.
“상아(象兒)냐?
그는 하루 종일이라도 품에 안고 다니고 싶은 자신의 늦둥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방문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제 이름은 상아가 아닙니다.”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 추진상은 급히 고개를 들어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방문이 열리는 기척도 없었는데, 한 사람이 방 안에 서 있었다.
약관의 청년. 서생복을 입고서 건 대신 무명끈으로 질끈 머리를 묶은 청년이었다.
‘저렇게 입어도 촌티나지 않다니, 괜찮은 옷걸이군.’
흔들리는 촛불에 비친 얼굴은…….
‘흠, 내 십 년간의 경험으로 봐서, 결코 도둑상은 아닌 것 같은데…….’
약간 길어 보이는 얼굴, 턱의 각이 뚜렷하고 짙은 눈썹에 입술은 남자답게 조금 두터운 편이다.
한마디로 선이 굵은 얼굴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바라보는 눈빛에는 대양(大洋)을 담아놓은 듯 그 깊고 넓음을 짐작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눈이다.
‘정말로 좋은 눈이군. 부러울 정도야. 꼭 내 젊을 적 눈 같아.’
저런 사람이 도둑이라면 세상천지에 도둑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세상이 미치지만 않았다면.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진용을 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누가 자신의 눈을 뽑아버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처음 본 사람을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봅니까?”
담담히 입을 연 진용은 이곳에 오기 전에 들었던 방성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다.
‘특이한 사람이군. 현령 추진상이 몸집은 작아도 가슴은 태산조차 파묻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고 하더니,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르겠는걸?’
“무슨 일로 오셨나?”
추진상이 물었다.
진용은 빙긋이 웃으며 터벅터벅 걸어가 추진상의 앞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봐도 맑은 눈을 빼고 나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런 사람이 갑자기 외인이 들이닥쳤는데도 놀라지 않다니. 저 작은 몸이 다 간(肝)으로 이루어진 걸까?
“저는 고진용이라 합니다. 현령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추진상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흠, 고진용이라…… 나는 관리라 많은 돈이 없다네. 게다가 함부로 청탁도 들어주지 않지.”
그래서 온 것이라오.
“사람들도 그리 말하더군요. 제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납니다.”
“뭔가?”
“현령께서 청빈해서인지 이곳 관사는 그 크기에 비해서 사람이 별로 없더군요. 해서 빈 방을 좀 빌릴까 합니다.”
피식, 추진상의 입가에 웃음이 매달렸다
“한밤중에 들어와서 방을 빌려달라? 왜 객점으로 가지 않고? 돈이 없나?”
“돈은 좀 있습니다만, 잠시 피해야 할 눈이 좀 있어서 말이죠.”
“방은 하나만 있으면 되나?”
“아닙니다. 일행이 있으니 네 개 정도 필요합니다. 보아하니 뒤채가 비어 있는 것 같더군요. 방도 다섯 개나 되고 말입니다.”
“그럼 하루에 은자 다섯 냥이네. 방 하나에 한 냥씩.”
갑작스런 말에 진용은 말문이 닫혔다.
“…….”
“공돈은 받지 않지만, 정당한 돈은 받는다네. 설마 남의 눈을 의식한다는 사람이 식사를 밖에 나가서 할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많은 사람을 다 먹여 살릴 만큼 여유가 없다네.”
한마디로 밥은 돈을 내야 준다는 말이다.
진용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루에 다섯 냥.”
“물론 더 내면 더 좋은 음식을 준비해 줄 수도 있네.”
“그럼 열 냥으로 하지요. 몸이 아프신 노인과 여인도 끼어 있으니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추진상이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하! 이거 잘하면 상아 노리개 사줄 돈은 남을지도 모르겠군. 아예 이 기회에 부업으로 객잔을 해볼까?”
“글쎄요. 현령의 관사에서 지내려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쓰윽, 얼굴을 내민 추진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투조차 바뀐 채.
“그거야, 고 천호 같은 분이 자주 들러주면 되지 않겠소?”
일순간, 진용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은 이름만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추진상은 자신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