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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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31화
131화
두 노인의 결말이 나지 않는 기세 싸움에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일각 전, 일행은 생사원(生死院)이라는 현판이 달린 고색창연한 자그마한 장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의원이 분명한 것 같은데도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괴이한 일이었다.
“사람이 없어서 이상한가? 이상할 것 없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적으니까. 어떤 놈이 살아 나가는 사람보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은 이곳에 병을 고치겠다고 오겠나?”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보자 사도굉이 말을 이었다.
“사실 그게 오담이라는 놈의 잘못만은 아니야. 죽기 전의 환자가 아니면 아예 손도 안 대니 아예 다 죽은 놈들만 데리고 오거든. 그러니 자연 죽어 나가는 놈이 많을 수밖에.”
―죽기 직전의 환자가 아니면 치료를 하지 않는다. 치료하다 죽어도 책임을 묻지 마라.
그것이 생사괴의라는 오담이 내건 치료 조건이란다.
해괴한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일 년에 몇 명은 그를 찾아 왔고, 희한하게도 그중에 반은 살아서 생사원을 나섰다고 한다.
말 그대로 생사가 반반인 곳이 생사원이라는 사도굉의 설명이었다.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사도굉은 쾅! 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오가야!”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벌컥! 방문이 거세게 열리더니, 꾀죄죄한 데다 키마저 사도굉의 가슴팍밖에 닿지 않는 노인이 턱 밑의 염소수염을 휘날리며 튀어나왔다.
오면서 사도굉의 설명을 지겹도록 들었던 일행은 따로 듣지 않고도 그가 바로 오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담이 사도굉을 보더니 발작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오지 말랬지! 안 꺼져?”
“삼 년 만에 온 친구에게 그게 할 소리냐, 이놈아?”
“친구? 흥! 그래, 친구라는 놈이 단 하나 있는 삼촌과 조카 사이를 갈라서게 만드냐?”
“갈라서게 하긴 누가 갈라서게 했다는 거냐? 그거야 순전히 네놈이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 거지! 더구나 그게 언제 적 이야기냐?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십 년이. 그리고 이제는 네 조카 놈도 마음 풀었잖아. 그런데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냐, 못된 놈아!”
“물건 키우는 재주는 없다고 했는데도, 네놈이 헛소문을 내는 바람에 조카가 삐친 거잖아! 자기 물건만 안 키워준다고! 뭐? 오담이 물건 키우는데 도사라고? 내가 그 바람에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냐?”
“솔직히 말해봐! 못한 거냐, 안 한 거냐?”
“그거야…… 좌우간 너 때문이야! 보기 싫으니까, 꺼져!”
그렇게 싸운지 일각 째다.
진용은 더 이상 두 노인의 쓸데없는 기세 싸움을 두고만 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야 하루 종일, 아니, 한 달 내내 그러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유태청의 몸은 한시가 급한 상태였다.
동굴을 떠나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사흘. 매일 밤 진용이 건곤흡정진혼결로 진기를 다스려 맥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해 언제 불꽃이 꺼질지 몰라서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생각 외로 적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기에 사흘 만에 천 리를 이동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아껴 도착했는데, 기세 싸움으로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하지만 진용보다 먼저 운아영이 벌떡 일어서더니 사도굉과 오담 사이로 걸어갔다.
초췌해진 그녀의 얼굴에 박힌 커다란 눈에선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러자 축 늘어져 있던 두충이 만년산삼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후다닥 일어서서 운아영의 뒤를 따랐다.
사도굉과 오담의 옆으로 다가간 운아영이 빽 소리쳤다.
“계속 그러고 계실 건가요! 환자를 봐주지 않을 거예요!”
오담은 눈도 돌리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흥! 나는 저놈이 데려온 환자는 봐줄 생각이 없다! 돌아가!”
끝내 운아영의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의원이 환자를 봐주지 않겠다고요?”
챙!
그녀의 장검이 새파란 빛을 발하며 뽑혔다.
넉 자 길이의, 보기만 해도 살벌하게 느껴지는 장검을 빼 든 그녀는 좌우를 훑어보더니, 그러잖아도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입술을 깨물며 그녀가 말했다.
“어디 집이 다 부서지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하는가 보죠.”
꿈쩍도 않던 오담이 움찔하며 그녀를 곁눈질했다.
그때 두충이 말했다.
“벽력탄 하나 줄까? 아예 콩가루를 만들어 버리고 다른 의원을 찾아가자고.”
말하면서 시커먼 구슬, 벽력탄을 내밀었다.
오담의 눈이 두충의 손에 박혔다.
벽력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물건이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물건.
정광이 그의 기억을 끄집어 내주었다.
“두가야, 금의위가 민초들의 집을 벽력탄으로 날려 버렸다는 말이 도독의 귀에 들어가면 그날로 너 끝장이다.”
이제 생각났다. 하나면 고루거각도 박살낸다는 무시무시한 물건이 벽력탄이다! 거기다 뭐? 금의위?
이것들은 또 뭐 하는 물건들이야?
“그거 없어도 충분하니까 물러서! 결정해요! 할아버지를 봐주겠어요, 아니면 집이 다 부서지길 기다리겠어요!”
“내가 그따위 협박에 겁먹을 줄 아느냐?”
오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오담이었다. 여자의 한마디에 기죽을 수는 없었다.
“그래요? 좋아요! 어디 누가 이기나 두고 봐요!”
운아영이 검을 높이 들고는 오담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도 그녀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다.
오담은 일그러진 얼굴로 사도굉을 노려보았다.
“악귀 같은 놈! 친구가 조용히 사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놈! 진짜 징그럽다. 네놈 꼴 보기 싫어서라도 내가 일찍 죽어야 하는데…….”
“헹! 징그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놈아! 십절검존만 아니었으면, 내가 미쳤다고 이곳에 왔겠냐? 욕먹는 게 취미도 아닌데!”
오담은 화가 난 와중에도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십절검존이 저 환자를 이곳에 보냈다고?”
“미친 놈! 눈구멍이 대가리 속에 바람 들어가라고 뚫려 있는 건 줄 알아? 보면 모르겠냐? 저 환자가 바로 십절검존이란 말이다!”
사도굉의 비웃음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담은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입술 끝이 묘하게 비틀렸다.
저 환자가 십절검존이라고? 저렇게 형편없이 당한 늙은이가 뭐? 십절검존?
‘흥! 미친 놈! 내가 그런 말에 속을 줄 알았나 보지?’
그때!
우르릉! 갑자기 건물이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급히 고개를 돌린 오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보기보다 뼈대가 제법 튼튼한데요?”
진용이 굵은 손가락을 기둥에 쑤셔 박고는 건물을 통째로 흔들고 있었다.
우수수,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먼지 덩어리가 들보에서 떨어져 내리고, 기왓장이 들썩이며 안간힘으로 버틴다. 조금만 더 흔들면 아예 통째로 주저앉을 판이다.
“그만!”
오담은 빽 고함을 지르고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환자가 십절검존이든 아니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설사 천자라 해도 환자는 그저 환자일 뿐이니까.
하지만 이백 년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이 미친놈들에게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무지막지한 놈들! 진짜로 집을 부수려 하다니!
그는 사도굉을 보고 이를 갈았다.
“웬수 같은 노오옴! 환자를 데리고 들어와!”
오담이 고집을 굽히자, 정광이 유태청을 안아 들고서 재빨리 오담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둘 사이가 석 자 가까이까지 줄어들 즈음, 정광이 넌지시 물었다.
“정말 물건 키우는 재주가 있소?”
오담이 정광의 아래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왜? 잘라내고 큰 걸로 바꿔줘?”
“묻지도 못하나? 거참, 그 도우, 성질 뭣 같네.”
오담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젠장! 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계집이나 도사나, 다 미친놈들이잖아!’
8
미치지 않은 이상 어찌 이 일을 믿을 수 있을까?
영호광은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한 자루 꼬챙이 같은 검이 자신의 가슴을 뚫고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검끝에서 혈조를 따라 핏물이 방울져 떨어진다. 혈루시독(血淚屍毒)으로 인해 시커멓게 변색된 핏물이.
“네, 네가 어찌……?”
힘겹게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중년인을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자식이 없는 자신에겐 자식과도 같은 제자가 바로 그였다.
등이 가려울 때 긁어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그뿐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만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놓은 터였다. 오늘 역시도…….
그런데 그런 자식 같은 제자가 자신에게 독이든 차를 먹이고, 검을 가슴에 꽂았다.
하늘이 무너진들 이보다 더 충격적일까.
그 충격이 그를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나의 모든 것이…… 너의 것이거늘……. 무엇이… 부족해서……?”
중년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게 왜 초하를 욕심내셨습니까?”
“무, 무슨……?”
“그리고 욕심을 내셨으면 그냥 얻으실 것이지, 죽이기는 왜 죽였습니까?”
영호광의 눈빛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 때문이었… 더냐? 어떻게… 아, 알았느냐?”
“죽기 며칠 전 저에게 편지를 썼더군요. 차마 전해주지는 못하고 숨겨놓았지만. 우연히 편지를 발견한 그녀의 시비가 편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 저에게 전해주었지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크큭, 그런…….”
“그걸 보고 조사를 해봤습니다. 범인을 찾은 것은 일 년이 지날 무렵이었지요.”
“일…… 년?”
“저는 범인을 찾고 미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힘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누군가가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난 삼 년, 완벽한 준비를 하고 오늘 같은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천하에서 가장 강한 십천존 중의 한 분을 죽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누가……?”
“아마 사부님께서도 짐작하고 있을 테니, 굳이 그자의 이름을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영호광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시뻘게진 눈은 그의 이마에 난 붉은 점과 함께 어울려 마치 세 개의 붉은 눈처럼 보였다.
“그, 그…… 인가? 구양…… 무경?”
“역시 사부님이십니다. 맞습니다, 그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원수를 갚는 대가로 나중에 자신을 도와달라 하더군요. 결코 마다할 조건이 아니었지요.”
“어리석은…….”
“저를 어리석게 만든 것은 사부님이십니다. 그러게 왜 제자의 여자를 넘보고, 그도 모자라 죽이신 겁니까?”
그의 말투가 점점 격해졌다. 눈에서는 불길이 일었다.
“그녀의 뱃속에선 저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가 손에 잡힌 검을 갑자기 뒤틀었다. 천하에서 가장 날카롭다는 단혼혈이 옆으로 그어졌다.
보검이 아니고는 흠집도 나지 않는다는 영호광의 몸이 가로로 길게 갈라진다.
쏟아지는 시커먼 핏물!
이미 혈루시독으로 인해 고통조차 사라진 영호광은 혼신을 다해 입을 벌렸다.
“그녀가 아, 아이를……? 아, 아니…… 네가 잘못 알았…….”
“그녀가 말했지요. 저만 알고 있으라고 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아십니까? 예? 아시느냔 말입니다!”
촤악!
끝내 단혼혈이 영호광의 몸을 가르며 빠져나왔다.
그러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영호광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꼬꾸라지면서도 그는 안간힘으로 입을 열었다. 도저히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듯.
“그…… 녀… 는…… 구양… 무경이…… 음… 모…….”
선우청은 쓰러진 영호광을 바라보았다. 영호광이 쓰러지고,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자 그제야 영호광의 말이 자꾸만 귓속에서 울렸다.
무슨 뜻이지? 그녀가 구양무경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지? 음모라니?
그는 다급히 무릎을 꿇고 눈빛이 꺼져 가는 영호광의 몸을 뒤집었다. 악취를 풍기는 내장이 옆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황급히 물었다.
“사부! 그게 무슨 말이오? 음모라니? 그녀가 구양무경과 무슨 관계란 말이오?”
다른 사람이라면 백 번도 더 죽었을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십천존의 일인인 염마존 영호광이다. 혈루시독도, 단혼혈도 그의 의지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영호광이 마지막 떠나가려는 혼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그……녀…… 구양…… 간(諫)…… 그래…… 죽인…….”
선우청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말…… 어찌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믿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가 멍하니 영호광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덜컹! 방문이 열렸다.
“사형!”
갑자기 경악성이 터져 나오더니, 한 사람이 날듯이 뛰어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