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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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22화
122화
‘아무래도 건곤흡정진혼결로 흡수한 기운들까지 합쳐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 같아.’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차피 강해지려 했으니 강하면 강할수록 좋았다.
다만 지나치게 빠른 성장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가 있기에 그것이 걱정될 뿐이다. 더구나 흡수한 기운들이 대부분 마기가 아닌가 말이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에휴, 나도 모르겠다.’
진용은 검지 끝에 슬쩍 뇌전의 능력을 끌어올려 보았다. 자신의 기운이 얼마나 변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순식간에 직경이 반 치도 되지 않는 파란 구슬이 영롱하니 맺힌다.
‘흠, 괜찮군.’
형성 속도가 전보다 배는 빨라지고, 크기는 반으로 줄어들고, 색감은 훨씬 맑았다.
아마 위력도 더 강할 것이다.
‘세르탄, 실피나의 힘도 강해졌을까?’
‘글쎄, 정령이 본래 자신이 가진 기본적인 힘을 주로 사용하는 종족이긴 하지만, 계약자의 기를 이용하기도 하니까 어느 정도는 강해졌다고 봐야겠지. 더구나 실피나처럼 공격 마법을 좋아해서 제멋대로 시르의 기를 이용하는 정령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지 뭐.’
실피나가 강해지면 그만큼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잘된 일이다. 이제는 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바꿀 때가 되었다.
흑의복면인들이 분명 삼존맹의 사람들이 아닌 이상, 상대할 적은 하나가 아닌 것이다.
천혈교, 삼존맹, 동창까지. 그리고 어딘가에 또 자신이 모르는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적이 꽤 많군. 강호에 뛰어든 지 얼마나 됐다고.’
언제까지고 찾아오는 적만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 이제 기다리는 싸움은 오늘로써 끝이다.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앞으로는 자신이 찾아갈 것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진용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온기 한 점 없는 하얀 웃음이었다.
“뭐 못 볼 거라도 봤나?”
정광이 운기를 마치고 돌아서다가 진용의 웃음을 보고 물었다.
순간 진용의 웃음이 괴이하게 변했다. 진짜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도장님, 엉덩이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대로를 활보하다 나중에야 그걸 발견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요?”
정광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행여나 운기 중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차마 큰 소리로 웃지는 못하고, 다문 이 사이로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크! 아마 발밑이 진흙탕이라 해도 주저앉고 싶을 거네.”
“더구나 여자라던가, 아니면 앙숙 관계인 사람이 봤다면요?”
“푸헤헤헤! 죽고 싶겠지 뭐.”
진용은 푼수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정광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후우, 도장님, 옷부터 바꿔 입어야겠습니다.”
“어. 좀 많이 찢어지긴 했지?”
그런데 이상하다. 그것이 한숨을 쉴 정도의 일인가?
“끄.끄.끄…….”
그때 뒤에서 들리는 숨죽인 웃음소리에 정광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고개를 푹 숙인 운아영이 보이고, 그 옆에선 벌건 얼굴의 두충이 입을 틀어막은 채 곧 숨넘어갈 것처럼 끅끅대고 있었다.
분명 웃음소리였다.
문득 흑의복면인의 칼이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간 장면이 떠올랐다.
그제야 느껴지는 감각. 엉덩이가 시원하다.
‘이, 이, 이런…….’
5장. 흑암수
1
이월의 설익은 봄기운이 완연히 익어가는 그날 아침, 뿌연 안개가 휘황한 햇살에 산기슭으로 밀려 스러진다.
하지만 그날의 아침 햇살은 결코 봄 냄새를 풍기지도, 따스하지도 않았다. 아침 해가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가지 소문이 정천무맹을 뒤흔든 것이다.
―종남이 혈겁을 당했다! 백여 명의 제자가 처참하게 죽고 십여 개의 전각이 전소됐는데, 범인은 천혈교의 표식을 종남의 상청관에 꽂아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화산 분타나 다름없는 장안의 이가장이 당했다. 백 명도 넘게 죽었는데, 이가장의 대문에 핏빛 깃발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공동의 중원교두보인 백진표국이 표물을 운송하다 국주까지 죽는 대형 사고를 당했다. 심지어 쟁자수조차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더라.
소문은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정천무맹 외곽 지역까지 퍼졌다.
마침내 천혈교가 야욕을 드러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간혹, 누군가가 천혈교를 모함하기 위해서 종남과 이가장과 백진표국의 표행을 공격했다는 의견을 내놓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천둥벼락 속에서 혼자 박수 치는 소리에 불과했다.
아침부터 맹의 원로들이 정천전에 모이더니 아우성을 치듯 자기주장을 펼쳤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이오? 지금이라도 당장 출발합시다! 천제성이 곧 공격을 할 텐데 도와주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
“맞는 말이오! 천제성이 마와 대항해 싸우겠다고 나섰소. 한데 정천무맹은 앉아서 구경만 한다? 그야말로 천하의 협의지사들이 웃을 일이외다.”
“아직 정확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범인들이 천혈교의 무리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는데 서둘러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더구나 천혈교의 전력과 그들의 위치조차 분명하지가 않소이다. 대응을 조금 늦춘다고 해서 그들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거참, 시간을 다투는 일을 어찌 그리 태연하게 말하는 거요? 종남의 마음을 생각해 보셔야지.”
“이미 밀은전에서 저들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서로 자기 말만 앞세운다. 대체 언제 결론을 내리겠단 말인가!
종남의 장로 정호 진인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흥! 우리 종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소이다! 정 그러신다면 본 파만이라도 출발하겠소이다! 정 안 되면 천제성과 힘을 합쳐서라도 놈들을 응징하겠소이다!”
공동의 장로 명진자도 두 사제와 함께 입술을 깨물며 일어섰다.
“함께 갑시다!”
벌써 회의만 두 시진째다. 가슴에 쌓인 분노는 커져만 가는데 갑론을박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그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자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들이 일어서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그쳤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섰다.
“어허! 정호 진인, 명진자, 맹주께서도 생각이 있어 그러시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구려. 정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우리 화산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니 말이오.”
화산의 우명자였다. 비록 본 파가 당하지는 않았지만, 이가장의 혈겁은 화산파에게도 충격이었다.
화가 났다. 그렇다고 종남이나 공동처럼 길길이 날뛸 수는 없었다. 다음 대의 맹주 자리를 노리는 그들이기에 자칫하면 누워 침 뱉는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체면이 있지 않은가? 개도 안 물어갈 체면이.
대신 그는 종남을 말리는 척하면서 은근히 부추겼다.
무당의 영진 도장이 도호를 외우며 우명자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원시천존, 같은 도문으로서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무당도 최대한 힘을 보태리다.”
“우리 청성도…….”
“아미타불, 저희 아미 역시…….”
우명자가 남궁창훈을 바라보았다.
‘이래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냐?’ 하는 눈빛이었다.
다른 사람들, 특히 구대문파의 장로들은 모두 남궁창훈을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그를 압사시키겠다는 듯이.
그때 당가의 원로인 당상명이 입을 열었다.
“맹주, 아무래도 기다릴 시간이 없을 것 같소이다.”
남궁창훈은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대세는 저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너무 빨리 일이 터졌다. 마치 누군가가 손을 쓴 것처럼.
그런데도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십절검존이 천제성의 발걸음을 늦추고, 삼존맹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저들이 말한 대로, 화산을 필두로 종남과 공동이 움직이면 그들과의 관계를 핑계로 대부분의 문파들이 움직일 터. 더구나 오대세가 중 하나인 당가마저 은근히 저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후, 일단 타오르는 불부터 식혀야겠지.’
남궁창훈은 천천히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뒷짐 진 그의 손가락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피멍울이 손바닥 가운데 맺혔다.
‘그대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나 그 또한 그대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
만 근 바위가 들리듯 그의 입이 열렸다.
“여러분의 뜻을 내 어찌 모르겠소. 해서, 맹주령으로 탕마단을 소집하고자 하오. 각 문파에서는 일류 이상의 고수들로 오십 명의 정예 무사를 선발해 주시기 바라오. 탕마단이 소집되는 대로 총맹회의를 열겠소!”
말이 오십 명이지, 구파오가에서 모두 모이면 칠백이다. 거기에 정천무맹에 있는 정예고수들까지 합하면 일천에 가까운 최강의 무력이 쉽게 만들어진다.
빙산처럼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어마어마한 정천무맹의 잠재력이 수십 년 만에 수면 위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명이 떨어지자 근 오십여 명에 이르는 장로와 원로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주먹을 불끈 쥐고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자, 침통한 표정을 짓는 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는 자 등 그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맹주의 명에 따르겠소이다!”
희색이 만면한 자들의 입에서 커다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자신감, 정의감, 불안감, 안타까움,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경멸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한쪽 구석, 격렬한 의견이 오가는 중에도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앉아만 있던 한 명의 노승은 불호를 외우며 눈을 감았다.
요료의 명으로 정천무맹에 파견된 소림의 장로 요양이었다. 그의 감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떨렸다.
드디어 정천무맹이 움직이는 것인가? 마침내 혈륜이 돌기 시작한 것인가?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
요양은 혼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가슴으로 쉼없이 불호를 외워야 했다.
요공의 죽음을 확인한 이후, 소림은 비밀리에 장문인의 지시로 천하에 산재한 소림의 모든 제자들에게 효망을 찾을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효망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한 가지 단서는 얻을 수 있었다.
[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양에서 효망 사제로 보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변복을 해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분명 효망 사제 같았습니다.]
속가제자로 하남 아래쪽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는 수경산장의 장주 나성득의 서신에 적힌 말이었다.
신양, 천혈교가 있다는 대별산맥 남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천혈교가 효망을 사주한 곳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것이 소림의 비밀 장로 회의에서 내려진 결론이었다. 그리고 녹옥불장의 명이 떨어졌다.
“정천무맹이 움직이면 우리는 전력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정천무맹의 조직에 속해 천혈교를 상대하고, 다른 하나는 따로 움직여 효망을 잡는다.”
소림은 소림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로 했다.
소림의 과거 찬란했던 위상을 되찾는 것과 효망을 잡는 것.
요양은 너무 급박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염불을 외며 쓰러질 중생들의 명복을 비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모든 것이었다.
‘유 노사가 이곳에 왔었다고 했는데, 어딜 간 거지? 유 노사와 그 신비한 서생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법도 한데…….’
조금 일찍 찾아볼 걸, 하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지금이라도 찾아봐야겠군.’
그는 각파의 제자들이 서 있는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소란 속에서도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삼십대 중반의 승인이 보였다.
그의 제자이자, 십팔나한 중 하나인 효정이었다. 그는 효정이 결코 효망에 뒤지지 않는 재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했던가?
정천전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그의 입가에 평온한 웃음이 맺혔다.
‘저 아이라면…….’
2
하루를 꼬박 내외상을 치료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도 워낙 상처들이 깊어서 반 정도의 몸을 만든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마차가 부서진 것이 아깝긴 했지만, 그나마 말이 멀리 도망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진용은 일단 부상이 심한 사람부터 말에 태웠다.
그렇게 관운묘를 떠나 무양에서 삼십여 리 떨어진 영덕진에 이르렀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