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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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21화
121화
객점을 나서자 사방이 어둠에 잠긴 채 가끔씩 취객의 고함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하군상과 초연향은 어둠 속으로 몸을 집어넣고 잰걸음으로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성문은 잠겼을 거요.”
하군상의 침중한 목소리에 초연향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객점도 안심할 수 없어요. 보나마나 모조리 뒤질 테니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하군상이 초연향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에 비친 얼굴에 슬픔이 가득해 보였다. 문득 적당한 곳이 떠올랐다.
“고가장으로 가는 게 어떻겠소?”
초연향의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그분의 집으로 가자고요?
자신도 그러고 싶다. 하주령이 찾을 수만 없다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소망뿐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주령 언니는 고가장의 존재를 알고 있을 거예요.”
“주령이가?”
“주령 언니는 고 공자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탁인효에게 정신이 팔린 줄 알았는데……?”
초연향은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남자로서라기보다는 능력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든지. 하주령은 충분히 그런 것 때문에라도 고진용을 조사할 수 있는 여인이었다.
“음… 그럼 마땅한 곳이……. 아! 한 군데 있소!”
갑자기 하군상이 환한 표정으로 초연향을 돌아보았다.
“어딘데요?”
“금의위 천호장, 육 대인의 집!”
하군상은 진용의 부탁으로 초연향의 소식을 적은 서신을 육두강에게 직접 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육두강의 집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주령이라 해도 육 대인의 집은 생각도 못하고 있을 거요.”
육두강의 집으로 가는 길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조금만 주의해서 간다면 추밀단에 들키지 않고 갈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하군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추밀단이 아니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북경에 제법 된다는 사실을.
변대송이 바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는 골목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던 중 앞을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 중 하나가 대구룡상방의 셋째 공자라는 것을 알아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구룡상방의 셋째 공자잖아? 그런데 왜 저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거지?’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긴 그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잘난 놈들 하는 짓을 자신이 굳이 상관할 바가 무어 있으랴.
그때만 해도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기 전, 술을 한잔하기 위해 들어간 단골 주점에서 구룡상방의 무사들이 무언가를 탐문하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그의 예리하기 그지없는 잔머리가 경적을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돈이 될지 모른다!
생각은 즉각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저, 이보슈, 나리들. 혹시… 셋째 공자를 찾는 것 아니우?”
“본 적 있느냐?”
“그게…… 언뜻 본 것 같긴 한데…… 헤헤헤, 제가 술 한잔 하려고 하는데, 혹시 포상금 같은 건 없수?”
변대송이 코앞에 내밀어진 열 냥짜리 은원보를 보고 입을 나불거린 지 일각이 지났을 즈음, 하군상과 초연향은 고관들이 산다는 용등로를 지나 영호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취객들의 고함 소리도, 취객을 부르는 기녀들의 호객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기이했다. 보는 눈이 적어졌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도 기이한 느낌이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조금만 가면 육 대인의 집이오.”
그 느낌을 해소하려 쓸데없이 말도 해봤다. 그래도 전신을 기어오르는 근질거림은 사라지지를 않았다.
뭐지? 뭐가 이렇게 신경을 건드리는 거지?
처음에는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육두강의 집에서 백여 장 떨어진 서북객잔을 돌아갔을 때다.
기이한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하군상은 그제야 그 느낌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몰려드는 무사들의 기운. 느낌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젠장! 놈들이 쫓아오고 있소.”
나직이 소리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기운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지척이었다.
하군상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초연향을 재촉했다.
“이리 오시오.”
하지만 앞이 막혀 버렸다.
막 골목길을 빠져나가려는데 사방에서 십여 명의 무사가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두 사람을 에워쌌다.
“멈추시오!”
선두에 있던 자가 손을 들며 소리쳤다.
하군상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치달렸다.
“비켜라! 그대들이 감히 나 하군상이 가는 길을 막겠다는 것이냐?”
달리면서 전력을 다한 공격을 퍼부었다.
퍼버벅!
한 번의 공격에 두 명의 무사가 나가떨어졌다.
무사들은 동료가 쓰러지고 있는데도 하군상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지 마라! 셋째 공자라 해도 우리의 임무를 막으면 적으로 간주하라는 아가씨의 명이다!”
주령이가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라 했다고?
하군상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여동생은 자신을 오빠로 생각하지 않았던 듯싶다.
“비켜라,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알고도 감히 검을 들이대겠다는 것이냐!”
들끓는 심화가 두 주먹에 실렸다.
하군상은 눈을 부릅뜨고서 어물거리며 달려드는 추밀단의 무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적이라고? 좋다! 그럼 나도 그대들을 적으로 생각하겠다!’
콰광!
일권 일각이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진다.
내력이 실린 주먹에 머리가 터져 나가고, 휘돌려 친 팔꿈치에 가슴이 함몰된 채 무너진다.
추밀단의 무사들도 하군상의 공격이 거세지자 본격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도 죽고 싶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하 공자를 잡아라!”
누군가가 소리쳤다. 세 명이 한꺼번에 삼재의 방향에서 하군상을 공격했다.
적극적인 공세가 펼쳐지자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초연향마저 보호해야 하는 하군상으로선 치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 시간이 흐를수록 거꾸로 물러서기에 여념이 없다.
“초 소저를 내놓는다면 없던 일로 할 거라 하셨소, 셋째 공자!”
지켜보던 추밀단의 부단주 이청한이 소리치며 하군상을 압박했다.
“흥! 적으로 간주하라 했으면 그냥 그렇게 해! 지랄 말고!”
“꼭 피를 봐야만 하겠소?”
“지랄 말라니까!”
하군상은 냉랭히 외치고는 사위를 쓸어 보았다.
벽에 바짝 붙어 있는 초연향이 보였다.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젠장! 관청 놈들은 뭐 하는 거야? 북경의 내성에서 칼 들고 설치는 놈들이 있는데!
평상시라면 당장 달려올 관군들이 꼬리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하주령이 손을 쓴 듯하다.
“포기해요, 오라버니.”
그때 초연향이 처연한 음성으로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하군상이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어쩌면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지도 몰랐다.
하군상의 악 다문 입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욕심대로라면 뚫고 나가고 싶다. 하지만 그러다 초연향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
우라질! 고 형이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하군상이 천천히 쳐든 주먹을 거둘 때였다.
<우리가 도와주겠네. 구멍이 뚫리거든 즉시 빠져나가게.>
전음이 빠르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진호량의 목소리였다.
하군상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이 단주, 정말 주령이가 나를 죽여도 된다고 했소?”
하군상은 진호량의 움직임을 돕기 위해 상대의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상황을 알 리 없는 이청한이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공자가 초 소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나를 죽이면 주령이가 가만있을 거 같소? 흥! 입을 막기 위해서 당신들도 죽일 걸?”
“그건…….”
이청한이 머뭇거릴 때였다.
슈슈슈슉!
수십 발의 강전이 한쪽을 막고 있는 추밀단의 무사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쏘아졌다.
“으아악! 케엑!”
순식간에 다섯 명의 무사가 밑동이 잘린 볏단처럼 무너져 내린다.
“갑시다, 향 매!”
동시에 하군상이 초연향의 팔을 잡고 뻥 뚫린 포위망을 향해 내달렸다.
이청한이 놀라 소리쳤다.
“막아!”
하지만 누구도 하군상의 뒤를 쫓을 여력이 없었다.
슈슈슈슉!
또다시 하늘을 새카맣게 매운 강전이 하군상을 추격하려는 추밀단 무사들을 향해 쏘아진 것이다.
정신없이 강전을 쳐내는 추밀단의 무사들. 하지만 화살비는 좀처럼 그치지를 않았다.
“어떤 놈들이냐?!”
이청한이 노성을 토하며 화살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진 방주! 아가씨께선 오늘의 일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지레짐작을 한 이청한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러나 어디에서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 그사이 하군상은 두 개의 골목을 돈 후 초연향의 허리를 잡고 담을 타 넘었다.
삐이익! 삑!
뒤에서 급박한 호적 소리가 울렸다. 추밀단의 연락 신호였다.
시간이 갈수록 호적 소리가 넓게 퍼져갔다. 자신들의 행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 초연향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공자, 이곳에 잠시 숨어 있어요.”
“위험하지 않겠소?”
“장원의 크기나, 정원의 꾸밈을 봐서는 결코 예사 저택이 아니에요. 함부로 뒤지지는 못할 거예요.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이곳이 누구의 집인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대단한 갑부 아니면 고관의 저택이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추밀단이라 해도 함부로 수색을 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랗고 기품이 배인 정원을 지닌 장원.
하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달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구석에 몸을 숨기고 두 시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두 시진이 지나자 개 짓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수색이 멈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북경인 것이다. 누가 감히 북경을 밤새도록 들쑤실 수 있단 말인가. 그건 구룡상방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척이 사라진 듯하자 하군상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육 대인의 집으로 가기도 틀린 것 같소.”
“그럼 어떡하죠?”
하군상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는 말했다.
“남쪽으로 내려갑시다.”
“남쪽으로요?”
“그렇소. 고 형이 있는 남쪽으로 가는 거요.”
초연향의 눈이 바람에 흔들리는 수련 꽃잎처럼 잘게 떨렸다.
그래, 가는 거야. 이대로 교주로 갈 수도 없잖아?
어차피 벌어진 일.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때다. 구룡상방으로 돌아간다 해서, 자신이 죽는다 해서 모든 것이 끝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도 구룡상방은 보나마나 해룡선단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것이 뻔하다. 고립된 해룡선단으로선 해왕방을 상대할 수가 없다. 그럼 파멸이다.
‘안 돼! 그렇게 놔둘 수는 없어. 아버지, 할아버지, 상아,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는 없어! 나만의 욕심이라 해도, 어쩔 수 없어!’
이를 악문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안해요, 고 공자. 용서해 달라는 말은 않겠어요. 당신의 마음을 이용하려하는 저를. 하지만…… 저도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3
아침나절이 될 때까지 운기에만 몰두했다.
외상은 제아무리 깊어도 사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이상 보름이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내상은 다르다. 자칫 평생을 짊어지고 갈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침 해가 어스름을 밀어내고 동녘 하늘을 밝힐 무렵, 진용은 눈을 반쯤 뜨고 숨을 길게 내쉬며 내부의 기운을 점검해 보았다.
열두 번에 걸친 대주천을 행하는 사이, 텅 비어 있던 진기의 항아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우습게도 하단전과 중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기운은 전보다 더 강했다.
‘세르탄, 마왕의 기운과 마령석이 얼마나 흡수되었을까?’
‘그게… 반쯤 흡수된 것 같아. 세상에…… 괴물…….’
반이라고? 그럼 다 흡수하면 얼마나 강해지는 거지?
세르탄이 말을 흐린 괴물이라는 말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이러다 진짜 괴물이 되는 것 아냐?
‘분명해?’
‘어…… 그게…….’
세르탄이 미적거리다가 사실대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