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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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09화
109화
다섯 번째 서(序)
얼마나 지났을까?
상당한 시일이 흐른 것 같은데 동굴 속에만 있다 보니 세월을 느낄 수가 없다.
구석에 고인 물만 먹으면서 지냈는데도 배고픈 줄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넘실거리고, 손발은 자신이 배우지 않은 것들을 자연스레 펼치고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더구나 전신 곳곳에서 기어나오는 상상을 불허할 가공할 힘은 또 뭐란 말인가?
손이 움직이고, 발이 움직일 때마다 동굴이 진저리를 치며 깎이고 있지를 않는가!
제기랄! 진짜 괴물이 된 것인가?
몸도, 정신도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안 되는데… 이래선 안 되는데…….
대체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곳에 있는 게 나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어느 순간, 그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너는 대체 누구야!”
두렵다. 밖에 나가면 피를 갈구할지도 모르는 내 자신이 무섭다.
피를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전신이 짜릿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젠장! 제엔장!
‘휴우,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 수도 없는 일. 일단 나가고 보자!’
그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붉은색 장포가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저절로 날아와 그의 벌거벗은 몸을 덮었다.
그리고 붉은 폭풍이 휘몰아친다 느껴진 순간, 동굴 안에서 그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 * *
어두운 밤이었다. 유난히 붉어 보이는 달빛이 한중의 밤거리에 쏟아졌다.
그가 입은 혈포는 붉은 달빛에 더욱 붉고 찬란한 광채를 발했다. 보는 이들이 감탄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한중의 밤거리를 지배하는 흑성문의 총단 앞을 지나갈 때였다. 거들먹거리며 정문을 나서던 무사 하나가 다가오더니 그의 아래위를 둘러보고는 말을 걸었다.
“이봐! 당신 장포 멋진데? 그거 어디서 산 거야? 한 번 벗어봐. 이 어르신이 입어보게.”
속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그로선 절대 벗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안. 돼.”
단순히 그 말만 했다.
그런데 놈이 느닷없이 칼을 빼 들더니 목에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닌가!
“벗어봐, 임마. 목 떨어지기 싫으면. 덩치 좀 크다고 개기겠다는 거냐, 지금?”
옷을 벗기도 싫었고, 칼에 목이 떨어지기도 싫었다.
그때,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속삭였다.
‘저런 놈은 죽여도 돼! 죽여! 어서 죽여! 죽여서 감히 너를 무시한 죗값을 받아내란 말이야!’
동시에 그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마주칠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일순간 목에 칼을 대고 있던 놈의 안색이 새파랗게 굳어졌다. 부들부들 떠는 것이 금방 오줌이라도 지릴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그는 눈앞에 있는 놈을 죽이고 싶어졌다.
힘없는 사람에게는 서슴없이 칼을 들이대는 놈!
힘있는 사람 앞에선 벌벌 떠는 놈!
‘버러지 같은 놈이야! 죽여, 죽여 버려!’
속에 있는 놈이 또 소리친다. 그가 손을 뻗었다.
퍽!
나아간 손이 미처 그의 머리에 닿지 않았는데도 놈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머리가 터져 없어진 놈이 피분수를 뿜어내며 쓰러지고, 목에서 뿜어진 피분수가 그의 얼굴을 적시는 데도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가슴속에서는 붉은 광기가 광란하며 치솟더니 그의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피! 피를 보고 싶다. 보다 더 많은 피를! 피로 연못을 만들고 싶다!
그때 흑성문이라 쓰인 현판 아래 서서 낄낄거리며 구경하던 놈들이 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살인이다! 저놈이 부당주님을 죽였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붉은 핏빛 기운이 장원의 하늘을 뒤덮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한중의 밤하늘에 악마의 광소가 울려 퍼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놀라 문을 걸어 잠그고, 개새끼들조차 겁에 질려 머리를 구석에 처박고 꼬리를 만 채 몸을 떨었다.
공포와 광기에 찬 비명은 정확히 한 시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그 한 시진 새, 한중의 밤을 휘어잡고 거들먹거리던 흑도방파 흑성문의 총단이 핏구덩이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한중의 밤은 비명이 그친 이후로도 동이 틀 때까지 숨을 멈추었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사람들은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나왔다.
흑성문 총단의 연무장이 마치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기라도 한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는데, 전신이 뭉개진 수백 무사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그곳에 고여 혈소(血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한중 사람들은 오랜 옛날 감숙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피의 전설을 떠올리고는 몸을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어둠 속 깊은 곳에서 환희에 떠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연못에 피가 가득 차는 날이 오리니,
혈신(血神)이 재림(再臨)하리라!
1장. 오죽장에 사는 청년
1
“그래요?”
반가운 일이었다. 두충이 외면하자 정광은 코웃음 치며 방에 처박혔다. ‘나는 뭐 할 일이 없어 널 가르치려는 줄 아냐?’하면서. 그러고는 자신이 준 책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
진용은 반가운 마음에 방을 나서려다 유태청을 돌아보았다.
“혹시 가슴이 따뜻해지시거든 운기를 해서 약 기운을 퍼뜨리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음? 알았네.”
약차라 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려던 정광이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대는 것이 아닌가.
“어? 이거 전에 먹었던…….”
“도장님, 빨리 가시죠. 궁금해 죽겠습니다.”
“어, 알았네. 이상하네, 이 약 냄새는…….”
진용은 밀듯이 정광의 등을 떠밀어 방을 나갔다.
두 사람이 방을 나가자 유태청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에 들린 찻잔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정광의 말에 그는 자신이 마신 약차의 재료가 뭔지를 깨달았다.
진작 알았어야 했을 것을, 차향이 약향을 가린 데다 진용이 하도 능숙하게 연기를 하는 바람에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웃음이 나왔다.
“허허허허…….”
노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운기를 해야 약 기운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지. 명색이 소환단차인데…….”
정광이 알아냈다는 글자는 모두 다섯 자였다. 그러나 두 글자는 아직 명확히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동안 이어지지 않았던 몇 개의 글자가 하나의 문장을 이루었다.
태산을 떠난 이후 첫 번째 성과였다.
두 사람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어진 문장을 읽어보았다.
[극기합(極氣合) 환(環) 묘변동심(妙變動心)…….]
기운이 극에 이르러 하나로 합해지니 둥근 원을 이루고, 묘한 변화가 일어나니 마음이 움직인다.
언뜻 보면 단순한 자연의 묘리를 적어놓은 듯하다. 아니면 무공의 구결 같기도 하고.
그러나 정광과 진용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그 문장에 빠져들었다.
일반적으로 무공의 구결에선 동심이 아닌 부동심을 강조한다. 그런데 고대문자의 뜻에선 마음이 움직임을 말하고 있다. 그것도 기운이 극에 이르렀는데.
움직이되 움직이지 않고,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
고대문자의 뜻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의 눈에는 그 글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용의 마음에서 갑자기 한 문장이 떠올랐다.
[하나는 하늘이요, 또 다른 하나는 땅이다. 그리고 둘을 얻어 세 번째인 스스로의 몸도 깨우쳤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둘이며 셋이다. 따로가 아니며 돌고 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고, 사람의 몸이 움직이는 것 또한 그러하고, 우주의 이치가 그러하다.
건과 곤이 따로인 듯해도 멀리서 보면 결국 하나가 아니던가.
“일원(一元)을 말하는 걸까?”
정광이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진용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가로젓지도 않았다.
“일원일 수도 있고, 무극(無極)일 수도 있겠지요.”
“무극이라… 휘유, 갈수록 첩첩산중이군.”
정광의 흥분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일원만으로도 까마득하거늘, 무극이라니…….
정광은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진용의 두 눈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만 갔다.
‘무극이란 우주의 본체인 태극의 처음 상태를 말함이니…….’
두 사람이 깨우친 무리(武理)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작은 간극도 시간이 가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두 사람의 지금 상황이 그러했다. 그 차이는 말로 가르쳐 준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몸으로, 정신으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었다.
진용이 깊은 정신세계에 끝없이 침잠된 것을 보고 정광은 어깨가 축 처졌다. 새삼 진용과 자신의 차이가 느껴졌다.
하지만 일원의 길을 본 것만으로 어디인가?
정광은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기지도 못하는 놈이 어떻게 뛰겠어?’
진용을 바라보았다. 움직임이 없는 그의 몸 주위로 환한 고리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문득 운아영이 며칠 전에 물었던 질문이 생각났다.
“고 공자, 사람 맞아요?”
정광은 실소를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훗, 저게 어떻게 사람이냐?’
그는 먼지 한 톨이라도 날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진용의 깨달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최대한 조심을 하며 방을 나서는 정광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가고 또 가다 보면 보이겠지. 정광아, 정광아, 부러워하지 마라. 저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하나를 버리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이 본래 이렇게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나, 의문이 일 정도다.
그는 자신이 그러한 마음을 가짐으로 인해서 일원의 깨달음에 한 발 다가서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깨달음은 소리가 없는 법.
정광의 마음 한구석에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2
제갈운문은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밀은전 휘하 순무당을 책임지고 있는 황보진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외곽에서 엄청난 격돌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만, 아쉽게도 누가 싸웠는지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자네가 그리 말할 정도면 대단한 싸움이었나 보군.”
“그게…… 적어도 수십 명의 일류고수가 싸운 것 같습니다, 전주.”
제갈운문은 보고 있던 보고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눈을 반쯤 감았다. 그가 화가 났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이었다.
“근처에서 그러한 싸움이 있었는데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부상자가 있었을 것이 아닌가? 아니면 시신이라도 남아 있던가.”
황보진의 고개가 힘없이 숙여졌다.
“아무것도… 며칠이 되었는지 확실치 않은지라… 세밀히 조사하고는 있습니다만…….”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제갈운문이 무엇 때문인지 갑작스레 번쩍 눈을 떴다.
“며칠? 열흘이 넘지는 않았겠지?”
“그 정도는 되지 않은 듯합니다만. 감잡히는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제갈운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들이 정무관에 들어온 것이 칠 일 전이던가?’
그는 황보진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짓을 했다.
“나가서 더 자세한 것을 조사해 보게. 실오라기 하나 빠뜨리지 말고.”
“알겠습니다, 전주. 하온데…….
얼떨결에 답하는 황보진을 향해 제갈운문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명심하게. 혹시라도 발견된 것이 있거든,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되네. 알았나? 어쩌면 자네의 목이 걸린 일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만 가보게.”
황보진이 긴장한 얼굴로 방을 나가자 제갈운문의 눈에서 가느다란 신광이 번뜩였다.
‘근처에서 그러한 일을 벌일 만한 사람들은 두 무리뿐이다. 하나는 천제성의 고수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무관의 그들. 흠, 누가 되었든 변수로는 충분해.’
그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입가의 미소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이마에 주름살이 그어졌다.
‘그럼 상대는 누구지? 누가 감히 무맹의 근처에서 그들을 공격한 거지?’
그는 이마를 누르며 다시 탁자 위의 보고서에 눈을 두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꾸 일이 터지는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
과연 저 보고서는 또 어떤 파장을 몰고 올까?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몇 장의 보고서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맹주께 보고를 올리고 대책을 논의해야겠어. 어차피 천제성에 대한 것도 말씀드려야 하니…….”
3
하늘에 반쪽 달이 걸려 있는 그날 저녁, 한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진용과 유태청이 있는 방을 찾았다.
때마침 뒷간을 가기 위해 자신의 방을 나서던 비류명이 그와 마주쳤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비류명을 직시했다.
비류명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한기가 스며드는 기분에 몸이 절로 긴장되었다.
‘강한 자다!’
비류명은 긴장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겨서 진용과 유태청이 있는 방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딱딱한 물음에 초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 되게 딱딱하군. 유 노사의 일행인가?’
하지만 곧 표정을 풀고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유 노사께 뵙잔다고 전해주게나.”
보면 볼수록 강함이 절로 느껴지는 자다. 다행히 적의는 없어 보인다. 방 안의 두 분이라면 이미 상황을 느끼고 있을 터.
비류명은 다시 물었다.
“뉘신지요?”
잠시 망설이던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이름을 밝혔다.
“석장진이라 하네.”
석장진?
잠시 의아해하던 비류명의 눈매가 가늘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