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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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08화
108화
처음으로 마음이 맞았다.
도망가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숲 속을 향해. 자신들이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공을 발휘해서.
살아남은 흑의인들도 두 사람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누구도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아니, 그럴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들끓는 기운을 다스리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심지어 진용과 유태청조차도.
진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끓어오른 살기를 가라앉혔다. 살기는 두 번에 걸쳐 분출한 덕분에 이제는 자신이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두 눈에 떠 있던 붉은 기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두어 번 숨을 들이켜 급한 대로 살기를 짓누른 진용은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홍조가 서려 있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고 있지만 힘든 표정이었다.
안타까웠다. 살귀들이 비록 강하긴 하지만 전이었다면 삼초지적도 안 될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저렇게 힘들어하시다니. 아무래도 전에 입은 내상이 생각보다 더 심각했던 것 같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네.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세.”
아마 놈들의 공격이 또 있을지 걱정이 되는 듯했다. 놈들의 수장이 죽어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 진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앙 쪽을 돌아보았다.
정광이 헐떡이며 사도굉과 뭐라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글쎄 선배가 셋, 내가 넷이다니까.”
사도굉도 만만치 않게 저항하고 있었다.
“한 놈은 살아서 도망쳤잖아! 그러니 그놈 빼면 똑같이 셋이야!”
비류명과 서문조양은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마도 상관욱을 상대하며 상당한 타격을 입은 듯했다. 진용이 바라보자 두 사람의 고개가 숙여졌다.
그들은 이제야 안 것이다. 자신들과의 비무는 그저 준비운동에 불과했다는 것을.
진용은 그들을 스치고 지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법진에 의해 뒤틀린 공간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가볍게 끌어당겼다.
진의 축을 이루는 지팡이가 저절로 뽑혀 손으로 날아들었다.
순간, 푸스스스… 마법진을 이루었던 룬어들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며 흐트러졌다.
그제야 운아영이 넉 자 장검으로 앞을 한 번 휘저어 보고는 천천히 걸어나왔다. 두충도 보따리에서 슬며시 손을 빼고 운아영의 뒤를 따랐다.
운아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괴이한 형태로 꺾어진 시신. 반쯤 잘라진 시신. 머리가 부서진 시신. 그리고 흥건한 핏구덩이들…….
철혈의 여장부 같던 그녀의 얼굴조차 해쓱하니 질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진용에게 물었다.
“고 공자, 사람 맞아요?”
바닥에 널린 시신과 흥건한 피를 보면 도저히 웃을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입가에는 어색한 웃음이 맺혔다.
솔직히 그들도 궁금했다.
죽은 자들을 짐승의 밥으로 놔둘 수도 없는 일. 진용은 사람들과 함께 시신을 모두 땅에 묻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에 간단히 운기를 했다.
반 시진이 지나자 하나둘 운기를 마치고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서문조양이 일어섰다. 그는 일어서자마자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은 황금빛으로 달아오른 태양을 가슴에 안은 채 서 있었다.
눈이 부시다. 태양 때문만이 아니다.
서문조양은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진용과 일 장가량 떨어진 곳에 도착한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따르겠습니다.”
진용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나는 태양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좋다면 함께 가지요.”
“공자의 뜻대로…….”
3
태양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꼭 자신의 삶이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궁창훈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석양의 붉은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맹주, 구파의 행태를 보고만 있을 건가?”
앞에서 답답하다는 투로 직언을 올리는 친구의 말에도 머뭇거림이 없이 찻잔은 입술에 달라붙었다.
소리없이 찻물을 입에 담은 그는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 진 주름이 오늘따라 많게 느껴졌다.
“자네도 이제 늙었군.”
엉뚱한 말이 남궁창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맑은 감색 장포를 입은 오십 후반의 초로인은 어이가 없는지 입이 반쯤 벌어졌다. 남궁창훈이 말을 이었다.
“조급해한다고 해서 풀릴 일이 있고 기다려서 풀릴 일이 있네.”
“그럼 맹주 말은 지금은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이 말인가?”
“작작유여유(綽綽有餘裕)라는 말이 있지. 어떤 일을 당하여 조금도 흔들림이 없으면 그만큼 여유(餘裕)가 있고 침착(沈着)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던가.”
“나원, 정말 천하태평일세. 창궁검신이 성질 다 죽었구먼.”
“허허허, 그저 여기저기 하도 당하다 보니 이제는 좀 더 참을성이 늘었을 뿐이라네.”
“큼! 자네는 좋겠군. 욕먹어도 화가 나지 않을 테니 말일세.”
“나도 사람인데 화가 왜 안 나겠나?”
“그래, 화난다는 사람이 그렇게 여유만 부리고 있는 건가?”
남궁창훈은 빙그레 웃으며 찻잔의 둘레를 손가락으로 돌렸다.
“한 가지 일을 꾸며볼 생각이네.”
“응?”
“그래서 말인데 장진, 자네가 한 사람을 좀 만나주게나.”
“누군데 내가 직접 만나야 한단 말인가?”
“십절검존 유 노사가 정무관에 있네.”
“뭐야? 그게 사실인가?”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나 보더군. 화령관에 방을 잡아준 것을 보니. 그런데 월조옹 사도굉도 꼼짝 못하는 노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운문이 직접 확인해 본 모양일세. 분명 유 노사였다 하네.”
“이, 이런……. 어찌 그런 일이…….”
당장이라도 달려가려는 듯 벌떡 일어선 그를 향해 남궁창훈이 말했다.
“그분과 내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게나.”
“남들 모르게 말이지?”
“당연히.”
3
쾅!
분노의 발 구름 한 번에 대전이 들썩거렸다.
“어리석은 놈!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일을 벌이다니. 게다가 성공이나 했으면 몰라도, 뭐라, 실패? 죽었다고?”
구양무경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개인적인 일인지라 무영천귀를 더 투입하지 않고 만붕오로 중 두 사람과 천은단의 고수들을 보냈다. 그들과 시간을 두고 공격했다면 충분히 성사 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보고에 의하면 유태청이 무영천귀 셋을 맞아 약간의 유리함만을 보였다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 몸에 커다란 이상이 있다는 말.
생각할수록 아까운 기회를 놓친 것만 같았다. 왕효의 빈정거림이 귓전에 울리는 듯했다.
“구양 맹주도 이제 늙었나 보구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그는 부복해 있는 천밀각주를 보며 분노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암군과 암혼대가 없는 이상 그들만으로는 정천무맹의 코앞에서 놈들을 죽이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일단 놈들을 지켜보며 기다리라고 해! 어리석은 짓 하지 말라는 말도 꼭 전하고!”
“존명!”
구양무경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화를 삭일 때 나타나는 그의 버릇이었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그래, 천제성이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그렇사옵니다, 주군.”
“그들의 목표가 누구라 생각하는가?”
“겉으로는 천혈교를 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아무래도 천암산에서의 일이 우리의 짓인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군. 그들이 무영천귀의 시신을 가져갔다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을 텐데?”
구양무경의 목소리가 완연히 침착함을 되찾았다. 급격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변화에 천밀각주 공은수는 몸을 더욱 깊게 숙였다.
“옷도 그렇고 무기도 그렇고, 무영천귀가 지닌 모든 것은 모두 시중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해서 저희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거 괴이하군…….”
공은수는 고개를 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것 말고도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 더 있습니다. 주군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천밀전의 천자조를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천자조는 오직 주군만이 움직일 수 있는 자들. 심지어 천밀각주인 자신조차 그들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몇 명이나 되는지도.
“그들을? 흠, 놈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우연이 두 번 겹치면 필연이 되는 법이옵니다.”
“후후후……. 좋아. 그리 자신이 있다면 그들을 움직여라. 하나, 헛된 희생만 있어서는 안 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잘 알고 있사옵니다. 실패하면 목을 내놓겠사옵니다.”
구양무경은 물끄러미 공은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어찌 너만 할까? 너는 최선만 다하면 된다.”
“감읍하옵니다, 주군.”
공은수는 감복한 목소리로 외치며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구양무경은 그런 공은수에게서 고개를 돌려서 벽에 그려진 승천도를 바라보았다.
“천자 삼호에게도 연락을 취해라.”
갑작스런 말에 공은수의 몸이 굳어졌다.
“하오면, 그 일을 시작할 생각이시온지……?”
“천혈교의 힘이 예상보다 더 큰 것 같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힘을 우리도 갖추어야 할 터. 지금처럼 혼란할 때가 오히려 기회가 아니겠느냐.”
“과연 영명하신 판단. 즉시 수행하겠나이다.”
더 이상 구양무경이 말이 없자 공은수는 뒷걸음질로 대전을 나갔다.
텅 빈 대전을 바라보던 구양무경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각이 지나서야 침묵이 깨지고 그의 입이 열렸다.
“천하는 하나뿐. 나눠 가질 사람은 적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때다. 뒤에서 나직한 대답이 들려왔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꼭… 떠나야겠느냐?”
“천하는 넓습니다. 보지도 않고 취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녀석. 그래, 가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단, 돌아올 때 혼자 오면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후후후, 손주가 보고 싶으신가 보군요.”
“내 나이도 칠십이 넘었다. 네놈 나이도 서른이 다 되었고. 썩을 놈.”
“일 년 후에 뵙겠습니다.”
“그래…….”
그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나이 마흔이 넘어 얻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손주를 바라는 그런 아버지.
아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구양무경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강호는 네 말대로 넓다. 그 넓은 곳에서 쓴맛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천하를 경영하기 위해서라도. 후후후후…….”
4
그날 밤, 붉은 바람이 암흑 천지를 가르고 치달렸다.
하늘은 고요했다. 구름에 가려 달도 보이지 않았다.
달리는 자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누군지도 몰랐다.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명령에 따라 쓸어버리면 그뿐.
일백이십의 붉은 그림자는 그렇게 바람이 되어 세 갈래로 갈라져 달려갔다.
“혈풍이 세 군데로 불기 시작했습니다.”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곧 혈신께서 나오실 것이다. 세상이 시끄러워질 게야. 우리는 일단 준비를 해놓고 상황을 지켜본다. 그러다 그들이 비틀거리면, 그때 우리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정리한다. 신혈(神血)의 세상을 위해!”
“언제든 명만 하소서, 태사령!”
5
방 안에 옅은 듯하면서도 마음을 맑게 해주는 향기가 가득하다.
“음? 이게 무슨 차인가?”
“약차입니다.”
“약차? 향기가 좋군. 아주 좋아.”
유태청은 진용이 준 차를 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약차라서 그런지 은은한 약향이 풍겨 나오고 있다. 진하지도 않은 것이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비방으로 만든 차라 했던가? 물욕이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이 차만큼은 욕심이 날 정도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마음에 드는군. 허허허…….”
“아주 힘들게 만들었지요. 마시고 나시면 가슴이 따뜻해지실 겁니다.”
“정말 그런 것 같으이.”
유태청의 얼굴에 편안한 표정을 보니 진용도 기분이 좋아졌다.
제갈민에게 부탁해 맑은 물을 얻었다. 그리고 찻잎까지.
진용은 얻은 물과 찻잎과 한 가지 물건을 넣고서 자신의 삼매진화로 찻잔을 달궈 한 잔의 차를 만들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차를.
그런데 그걸 마신 유태청이 은근히 그 차에 욕심을 내고 있는 듯하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은 진용은 고개를 돌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화정관의 뒤쪽으로는 건물이 없고 삼 장여 떨어진 곳에 일 장 높이의 담장만이 있었다. 정무관 내에서 사람들의 출입이 가장 뜸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나마 간간이 드나들던 사람들조차 제갈민이 통제를 시킨 이후로는 보이지 않았다.
삼 일 전부터 제갈민의 배려로 그들만의 연무장이 되어버린 화정관의 뒤뜰에서 운아영과 두충이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운아영은 이미 일류고수라 칭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반면에 두충은 겨우 삼류의 딱지를 벗은 초보 검사였다.
두충이 구슬땀을 흘리며 그간 소홀했던 무공에 정진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운아영이 두충 때문에 적과 싸우지 못했다며 구박을 줬다.
남이 돌보지 않으면 살아가지도 못할 사람. 그것도 여인의 보호나 받아야 할 못난 사람. 이래서야 어디 좋아하는 여인을 지켜줄 수나 있겠어!
충격이었다.
그래, 나도 고수가 되자! 까짓것 못할 게 뭐 있어?
솔직히 가끔씩 보이는 비류명의 느끼한(?) 시선이 걱정되어서이기도 했다.
열심히 배운 동작을 반복하며 검을 펼치는 두충의 옆에는 한 사람이 느긋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사도굉이었다.
심심한지 두충이나 가르쳐야겠다고 나가더니 소리를 지르며 닦달하고 있다.
본래 정광이 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충이 받아들일 리가 만무한 일.
“누구 잡을 일 있수! 차라리 사도 어르신에게 배우겠수!”
그 한마디에 결국 사도굉이 당첨되었던 것이다.
사도굉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며칠 가르쳐 보니, 그동안 게으름을 피우느라 제대로 연무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두충의 자질이 나쁜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진용이 봐도 그랬다. 의외의 일이었다. 곁에 두고도 몰랐다니.
덜컹!
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정광이 들어왔다. 양반 되기는 틀린 사람이었다.
“고 공자.”
“예, 도장님.”
상기된 표정으로 정광이 말했다.
“글자 몇 개를 푼 것 같네. 한번 같이 봤으면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