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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103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103화

 

103화

 

 

 

 

 

 

 

부릅뜬 그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비류명이 하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태청을 보고, 천유를 보고, 그는 한 사람을 떠올린 것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전설을.

 

“사부님은… 삼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유태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그의 굴하지 않는 강인한 기상이 눈에 선한데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사부님께선 구유탈백을 완성하기 전까진 복수를 꿈도 꾸지 말라 하셨습니다만, 저는 마냥 허송세월을 보낼 수만은 없어 나왔습니다.”

 

복수? 

 

그럼 늙어서 죽은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말?

 

“그가 누구에게 당했단 말인가?”

 

비류명의 눈에서 새파란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사부의 가슴에 구멍을 뚫은 놈이 금면탈을 썼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금면탈?

 

유태청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용도 깊어진 눈으로 이를 악 다물고 있는 비류명을 쳐다보았다. 

 

한에 사무친 눈빛이 칼끝에서 부서지는 잔설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유태청이 물었다.

 

“그가 누군지 알면 찾아갈 생각이었겠지?”

 

“사부님은 어린 저를 전쟁터에서 구해주신 아버지와 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을 해한 자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생각이 없습니다, 노선배님.”

 

“네 실력으로는 그의 발끝조차 건드릴 수 없을 텐데도?”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일순간 비류명의 고개가 번쩍 쳐들렸다.

 

“혹시… 노선배님께선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유태청은 고요한 눈빛으로 비류명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용에게 물었다.

 

“어찌 생각하는가?”

 

“그의 뜻이 중요하겠지요. 단, 제 방법을 따른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비류명은 혼란스러웠다. 사도굉이 겪었던 일을 그도 똑같이 겪어야만 했다.

 

―저자는 누군가? 누구기에 십절검존 유태청이 저리 대한단 말인가!

 

그의 혼란을 익히 짐작한다는 듯 유태청이 옅은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그에게 말했다.

 

“어쩌면 너와 우리는 같은 적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따른다면 고 공자가 누군지 말해주겠다.”

 

같은 적? 

 

역시 안다는 말이다, 원수가 누군지!

 

꼭 유태청이어서가 아니었다. 비류명은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고개를 숙일 용의가 있었다. 

 

그 사람이 설사 악마라 해도!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면 설사 지옥에 뛰어들라 해도 따르겠습니다.”

 

“그럼 네 눈앞에 있는 고 공자를 따르거라.”

 

비류명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유태청은 자신이 아닌 저 젊은 서생을 따르라 한다. 그렇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십절검존 유태청이 자신할 만한 이유가.

 

“따르겠습니다.”

 

진용은 무심한 눈빛으로 비류명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잘해야 서른? 어쩌면 그도 안 되는 듯했다. 

 

게다가 마안으로 훑어본 그의 정신은 굴강하기 그지없었다.

 

‘의외로 좋은 사람을 얻은 것 같군.’

 

세르탄도 그렇게 평했다.

 

‘전사 자질이 있는 놈인데?’

 

진용은 기분이 좋았다. 

 

사람을 얻는다는 것, 그것도 괜찮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뜻밖의 장소에서 괜찮은 사람을 얻은 것이다.

 

고개를 돌리다 얼어붙어 있는 제갈민이 보였다.

 

사도굉은 제갈민을 제갈가의 방계로 뛰어난 기재라 말했었다. 세르탄도 그리 말했다.

 

‘똘똘한 인간 같은데? 좀 덤벙대서 그렇지.’

 

훗,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진용은 제갈민에게 말했다.

 

“이분의 일은 여기서 그만 했으면 합니다. 본래 이분이 잘못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걸 어떻게 당신… 공자가……?”

 

정광이 툭, 한마디 던졌다.

 

“고 공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믿어서 남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믿으슈.”

 

두충마저 별걸 다 걱정한다는 투로 말하자 제갈민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를 쥐어짜는 그에게 진용이 말했다.

 

“그리고 오늘 이 안에서 본 일은 당분간 발설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강제하려는 말투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제갈민 역시 그래서 인상을 썼다.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생각한 사람일지라도 본능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제갈민에게 진용이 전음으로 말했다.

 

<그대가 황궁의 일에 끼어들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오만.>

 

제갈민의 안색이 급변했다. 

 

제갈세가는 하북의 팽가만큼이나 황궁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가문이다. 그런 만큼 그도 황궁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하고, 잘못 말려들면 얼마나 골치 아픈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거짓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십절검존 유태청이라면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눈에 힘을 준 그가 진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공자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모든 것을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뭔가요?”

 

“사람이 더 필요하지는 않습니까?”

 

무료한 정무관 생활이 싫증나던 터였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서 눈치나 보며 지낼 바에야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다. 

 

어쩌면 앞에 있는 자가 그 끈일 수도 있었다. 백 명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을 질긴 동아줄일지, 아니면 쥐새끼만 매달려도 뚝 끊어질 썩은 새끼줄일지는 몰라도.

 

굵은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대답 여하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비웃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처럼 살기는 싫어.’

 

입을 꾹 다문 제갈민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거리며 맺힐 즈음에야 진용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선은 이곳에 있으세요. 머지않아 제갈 형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어도 같은 생각이라면 그때 만나죠.”

 

제갈민도 속으로 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습니다, 고 공자.”

 

비류명에 이어 제갈민마저 진용을 따르려 하자 세르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음, 시르에게 또 한 사람이 걸려들었군.’

 

‘걸려들기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고 봐야지.’

 

‘흥, 시르가 뭐가 좋다고…….’

 

세르탄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진용이 비류명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람을 찾으러 오셨다고 하셨던가요?”

 

비류명이 대답했다.

 

“친구가 이곳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용이 제갈민을 바라보았다.

 

“제갈 형이라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잘 알 것 같군요.”

 

“정무관에 있는 사람은 모두 육백이십육 명입니다. 이름만 잘못 기재하지 않았다면 제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에… 또, 설령 이름을 거짓으로 기재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특징만 말씀하신다면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찾고자 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한마디로 육백이십육 명에 대해 손금 보듯 안다는 말이다.

 

정광과 사도굉, 두충이 한마디씩 했다.

 

“보기보다 똑똑하군.”

 

“제갈세가의 기재였다니까.”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선 안 되겠군요.”

 

제갈민이 두충을 쏘아보았다. 꼭 말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충이 제일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너도 그리 잘나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두 사람이 눈싸움을 하고 있는 사이 비류명이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서문조양이오. 키는 나보다 조금 크오만, 몸은 빼빼 말라서 광대뼈가 유독 심하게 튀어나와 있소이다. 그리고 코에서 오른쪽 뺨을 타고 기다란 칼자국이 나 있소.”

 

제갈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칠 일 전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름은 서문조양이 아니고, 양조문… 흠, 그러고 보니 이름을 거꾸로 썼군요. 어쨌든 그는 수명관 이십삼호 방에 있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직접 찾아가겠습니까, 아니면 이리 오라 할까요?”

 

그때 진용이 끼어들었다.

 

“옆에 방이 하나 있다면 그곳을 거처로 삼으면 되겠군요.”

 

그제야 방에 생각이 미친 제갈민이 급히 말했다.

 

“그럴 게 아니라 금성관에 방을 마련하겠습니다.”

 

금성관이라면 최고급의 방이 있는 건물을 말함이었다. 

 

이미 방이 각 등급에 따라 다르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용이었지만 굳이 방을 옮길 필요까지는 없었다.

 

“아닙니다. 남의 눈길을 받아 좋을 것 없으니 그냥 이곳에 있도록 하지요.”

 

제갈민이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야… 좌우간 그 사람을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런데 제갈민이 방을 나서려 할 때다. 진용이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손님이 온 것 같군요. 그 일은 조금 늦춰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다급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오더니 방문을 두드렸다. 제갈민의 수하였다.

 

“부관주님, 천제성의 위지홍 대협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위지홍? 흑성묵검 위지홍?’

 

제갈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다 언뜻 든 생각에 진용을 돌아보았다. 

 

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예? 예, 공자.”

 

제갈민이 방문을 향해 나직하면서도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로선 위지홍마저 나타난 상황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안으로 모셔라.”

 

문이 열리자 위지홍이 오십대로 보이는 초로인과 사십대의 중년인, 그리고 한 명의 젊은이를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이네, 고 공자.”

 

“이렇게 일찍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위지홍이 조용히 웃으며 다가왔다. 진용도 빙그레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그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빠른 행보였다.

 

그런데 기이하다. 웃음이 어째 어색해 보인다.

 

‘무슨 일이 있나?’

 

굳이 묻지는 않았다. 말할 만한 일이라면 자신이 입을 열 것이고, 말할 수 없는 일이라면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을 테니까.

 

그사이 위지홍이 유태청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르신를 뵈오이다.”

 

“어서 오게.”

 

위지홍과 함께 들어왔던 세 사람 중 나이 든 두 사람이 정중한 자세로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굽혔다.

 

“적유가 어르신께 인사드립니다.”

 

“혁련상이 삼가 유 어르신을 뵈옵니다.”

 

“오랜만에 보는군. 적유, 이제 그대도 손자를 봤겠군. 허허허허.”

 

그 두 사람은 천제팔성 중 두 사람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보이는 초로인이 천지유사(天地儒士) 적유로 첫째였으며, 이제 사십 초반으로 보이는 자가 넷째 섬전신도(閃電神刀) 혁련상이었다.

 

“별말씀을. 성주님께선 어르신이 오지 않았다고 대단히 섭섭해 하셨습니다.”

 

유태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적유는 그 미소가 왠지 편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생활이 마음에 드신다는 건가?’

 

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으련만. 그랬다면 또 다른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유태청의 웃음을 단순하게 생각한 적유는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청년에게 말했다.

 

“어르신께 인사드리게, 공자.”

 

옅은 황색 비단옷을 입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을 한 청년이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백리군청이 삼가 숙조부님을 뵈옵니다.”

 

“백리군청? 하면?”

 

유태청이 조금은 놀란 눈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적유가 백리군청에 대해 보충 설명을 곁들였다.

 

“백리성 전주님의 둘째 공자십니다, 어르신.”

 

백리성이라면 천제성의 제검전을 맡고 있는 백리자천의 큰아들을 말함이다. 다시 말해 다음 대 천제성주의 둘째란 말. 

 

들리는 소문대로라면 백리성이 일이 년 내에 성주 위에 오를 거라 했다.

 

“호, 여기까지 어쩐 일이냐?”

 

“둘째 공자께서도 강호의 경험을 쌓을 때가 되었지요.”

 

적유의 말은 그랬지만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닌 듯했다. 유태청은 그 나머지 이유를 백리군청의 눈이 향한 곳을 보고 곧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용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나? 위지홍이 고 공자에 대해 말했다는 소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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