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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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02화
102화
흑의장한은 말없이 손인묵을 바라보았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군.”
“흥! 못하겠단 말이냐?”
흑의장한은 대답 대신 옆구리의 칼을 잡아갔다.
뜻밖의 상황에 손인묵은 싸늘한 표정으로 검을 내밀었다. 뇌옥에 갇힐지도 모르지만, 대신 이름이 알려질 것이다. 그것도 손해는 아닐 듯했다.
“호! 남자다, 이건가? 좋아! 후회는 하지 말도록!”
그때 한 사람이 구경꾼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소가주, 그런 자를 상대하면서 직접 검을 쓸 필요가 있겠소? 소가주 대신 제가 그자를 꿇리리다.”
손인묵은 호위책임자인 손가의 호령단주 강해송이 나서자 머리를 굴렸다. 자신이 직접 나선 것만 못하지만 손가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나서면 자신은 뇌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시오. 그대가 저자에게 우리 손가의 위엄을 보여주시오.”
강해송이 앞으로 나설 때쯤 흑의장한의 손에 들린 도를 둘러싼 가죽이 거의 다 벗겨졌다. 눈이 시릴 정도의 하얀 도광이 가죽 사이로 새어 나왔다.
‘어쩔 수 없나?’
화아악! 가죽이 벗겨진 도신이 설백의 광채를 뿜어냈다.
순간 사도굉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저 도는?!”
유태청이 눈빛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구유도.”
“예, 맞습니다. 구유설백(九幽雪白)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 도는 분명 구유도가 맞습니다. 십오 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도집이 없어 미처 몰랐습니다만…….”
구유도, 강호에서 가장 강한 도 중 하나. 구유탈혼도(九幽奪魂刀) 석추량, 그의 애도를 말함이었다.
유태청의 기억 속에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
‘그는 진짜 도객이었지. 오랜만에 보는군. 한데 왜 도집이 없지?’
바라보고 있는 사이, 흑의장한의 도가 새하얀 잔상을 남기며 허공을 일직선으로 갈랐다.
단 한 번이었다. 그 한 번으로 강해송의 움직임이 멈춰 버렸다.
그의 목에는 백설보다 더 하얀 도신이 닿아 있었다. 도신을 타고 새빨간 선혈이 한 방울 굴러 떨어졌다.
강해송의 떨리는 눈빛이 떨어지는 핏방울을 쫓아갔다.
“어, 어떻게…… 이런…….”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닫고 눈을 부릅떴다. 특히 손인묵은 손을 부르르 떨며 입술을 악물었다.
단순히 빨라서가 아니었다. 흑의장한의 도에서 뿜어져 나온 살 떨리는 기운에 솜털이 곤두선 것이다.
“마도(魔刀)?”
손인묵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굳어 있던 사람들이 천천히 일어섰다.
마도다! 마도(魔道)의 칼!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던가. 마도를 표방한 천혈교와 정천무맹이 싸울 경우 한팔 거들기 위해서 아니던가.
“너는 누구냐? 마도의 잡종이더냐?”
손인묵이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소리쳤다.
창!
누군가가 검을 뽑았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삼십여 명의 구경꾼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상대는 마검을 익힌 자. 그러나 강하다. 단 일 검에 손가의 호령단주를 제압할 정도로.
그때였다.
“모두 물러서시오!”
수명관과 화정관 사이로 난 통로를 통해 정천무맹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이곳이 어딘 줄 알고 감히 피를 본단 말이오!”
제갈민이 제법 무게를 잡고 소리쳤다. 손인묵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자는 마도의 고수요. 분명 마도의 첩자일 것입니다!”
제갈민의 눈이 흑의장한을 향했다. 그는 한눈에 흑의장한을 알아보았다.
“당신은 감숙 비인곡의 제자라고 했던 사람 아니오?”
흑의장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게다가 마도의 고수라니?”
“저자는 분명…….”
손인묵은 다시 한번 나서려다 제갈민이 싸늘하게 노려보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결론은 손 공자가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시지요.”
그 모습을 보고 정광이 한 소리 했다.
“어쭈? 제법인데? 눈빛만으로 저 머저리 같은 놈을 제압하다니.”
사도굉이 간단히 제갈민을 평했다.
“그래도 한때 제갈세가의 기재라 불렸던 사람인데 당연하지.”
“제갈세가요?”
그때 진용이 나섰다.
“일단 저자를 구했으면 싶군요.”
흑의장한을 말함이었다. 정광이 그 말을 듣고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투로 말했다.
“흠, 저 중에는 저놈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문제지요. 분명 쉽게 끌려가려 하지는 않을 테고, 그럼 싸움이 날 텐데, 많은 사람이 다치면 정말 마도의 고수가 한 명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하긴…….”
심심한데 잘됐다는 생각이 드는 정광이었다. 하지만 흑의장한을 구하는 일에 흥미가 동한 사람은 정광만이 아니었다.
“일단 구하고 보자고, 저놈이 칼을 휘두르기 전에.”
사도굉이 먼저 휙 신형을 날렸다.
“엇? 반칙을…….”
정광이 뒤질세라 급히 풍혼을 펼쳤다.
2
제갈민은 정무관의 입구에서 흑의장한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해서 두 사람으로 하여금 흑의장한, 비류명이라는 자의 뒷조사를 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손가의 멍청한 공자가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범의 코털을 뽑은 것이다.
일단 숨을 고른 제갈민은 침착함을 최대한 유지하며 비류명에게 물었다.
“정천무맹의 위세를 느끼고 싶어서 왔다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구려.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오?”
비류명은 주위를 훑어보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찾으러 왔소.”
“사람? 그게 누굽니까?”
“그건 말할 수 없소.”
“모든 것을 밝히지 않으시면 진짜 마도의 고수로 몰리게 될지도 모르오.”
제갈민도 그렇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리되면 분명 싸움이 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눈앞의 비류명을 막을 실력이 없었다. 아니, 자신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움켜쥔 손이 떨렸다. 자신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절대 부딪쳐서는 안 된다. 모두 죽어!
그런데 빌어먹을! 머저리 같은 손가가 또 나섰다.
“저놈은 분명 마도의 고수요! 저자의 마기가 꿈틀거리는 칼을 보지 않았소? 우리 모두 힘을 합해서 저자를 제압합시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호기가 이는지 몇 사람이 손인묵의 말에 동조하며 앞으로 나섰다.
“마도의 인물이라면 가만둘 수 없지!”
손인묵이 검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자신의 이름을 날릴 절호의 기회를 버리지 않겠다는 듯.
“마도의 무리에게 정의를 보여…….”
퍽!
“켁!”
갑작스런 비명과 함께 손인묵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앞으로 나서던 자들이 모두 제자리에 멈춰 섰다.
“바보 같은 자식! 죽으려면 저만 죽지, 왜 엄한 사람들을 저승 가는 친구로 삼으려는 거야?”
손인묵이 날아간 자리에 두 사람이 내려서고 있었다.
제갈민은 손인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두 사람이 내려서자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익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전날 자신의 정신 상태를 시험했던 자들 중 두 사람.
정광은 맹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갈민의 얼굴에 바짝 호안을 들이밀었다.
움찔, 뒤로 머리를 빼는 제갈민을 향해 정광이 말했다.
“잘했다. 하마터면 다 죽을 뻔했다. 아니지, 다는 아니어도 저 머저리들은 다 죽었을 거야.”
“예?”
때마침 사도굉의 질문이 제갈민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사도굉이 비류명을 향해 물었다.
“너, 석가 늙은이하고 어떤 사이냐?”
비류명은 도를 다시 가죽으로 감싸며 사도굉을 노려보았다.
창문으로 바라보는 자들 중에 예사 고수들이 아닌 자들이 있었다. 눈앞의 노인은 그 중 한 사람이다. 자신이 도를 펼치고도 상대의 목을 자르지 않은 것은 그들 때문이었다.
한데 석가? 분명 사부를 말하는 것 같다.
“너, 석추량 몰라? 알 텐데?”
비류명이 되물었다.
“그러는 노인장은 누구요?”
“나? 알아서 뭐 하게?”
정광이 사도굉의 대꾸에 어이없어하는 비류명에게 다가갔다.
“저 양반이 누군지는 알아봐야 도움 될 일도 없네. 그러지 말고 가지?”
비류명의 칼날 같은 눈썹이 더욱 가느다랗게 변하더니 눈 위에 달라붙었다. 싸늘한 눈빛이 눈썹과 어우러져 예리한 칼날처럼 번뜩였다.
그걸 보고 정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오! 재미있는 재준데! 그건 그렇고, 뭐 해? 가자니까.”
적의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러니 비류명으로선 더 헷갈렸다.
“어디를……?”
“엉? 사도 선배, 말 안 했소?”
사도굉이 정광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석추량에 대해 물은 게 다였다. 그런데 뭘 말 안 했다는 거지?
정광이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 어차피 곤란함에서 구하려 했으면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요? 고 공자에게 데려가면 되는 거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사도굉의 눈빛이 묘하게 빛을 발했다.
“그렇군, 맞아! 가세!”
‘흐흐흐, 곁에 강한 놈이 한 놈이라도 더 있으면 그만큼 위험이 줄어드는 거 아니겠냐구!’
사도굉까지 재촉하자 비류명은 얼떨결에 신형을 돌렸다. 우선 당장은 지금의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제갈민은 홱 돌아서서 걸어가는 세 사람을 막지 않았다. 아니, 막을 수가 없었다.
수하 하나가 말했다.
“부관주님, 저들을 그냥 보낼 겁니까?”
그냥 보내지 않으면?
그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구유탈혼도의 제자를 내가 무슨 재주로 막냐?”
순간 수하의 입이 조개처럼 꽉 다물어졌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정광의 뒤를 따라가려던 자들도 발이 얼어붙은 듯 일제히 서 있던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때 정광이 고개를 돌리더니 제갈민을 불렀다.
“자네도 와!”
* * *
“왜 나를 부른 것이오?”
비류명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비록 강제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행동을 남이 멋대로 좌우한 것에 대한 반감이었다.
진용은 그런 비류명을 바라보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앉지요. 서 있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좀 그러니.”
비류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진용과 유태청을 번갈아 보았다.
그 역시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풍모로 봐도, 이상한 도사와 풍채 좋은 노인이 한 말로 봐도 자신을 부른 사람은 조용히 앉아 있는 노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받는 사람은 젊은 서생 아닌가.
“앉으라잖아. 앉아, 지붕 무너지지 않으니까.”
정광의 말을 듣고서야 비류명은 탁자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본다. 특히 키가 큰 여인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뚫어지게 바라본다.
비류명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왠지는 몰랐다.
‘멋진 여자군.’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전 처음이었다, 여자를 보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는.
비류명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의아했다.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한 웃음이 나오려 할 정도였다.
그런 비류명을 보고 두충이 발끈했다. 좀 전에 비류명이 펼친 눈부신 도법만 보지 않았다면 당장 면상을 향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썩을 놈이, 왜 아영을 저런 눈으로 쳐다봐! …어? 그런데 내가 왜 화를 내는 거지?’
그때 유태청이 입을 열었다.
“석추량은 살아 있나?”
비류명의 눈썹이 조금 전처럼 가느다랗게 눈에 붙었다.
“구유탈백(九幽奪魄)은 완성됐는지 모르겠군.”
싸늘하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어떻게 구유탈백을?”
“이십삼 년 전인가? 그때 한 번 만났네. 그때만 해도 구유탈백은 완성되지 않았었지. 그래선지 내 검을 십 초도 받지 못했어. 언제고 구유탈백을 보고 싶었는데…….”
비류명의 눈이 더할 수 없이 커졌다.
“그의 검을 십 초도 받지 못했다. 구유탈백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나는 영원히 그의 십 검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부의 목소리가 뇌리 저편에서 울렸다.
그다! 눈앞에 앉아 있는 노인이 바로 그다!
사부에게 절망을 안겨준 절대고수. 사부가 죽기 전까지 진심으로 존경한 단 한 사람! 십절검존 유태청!
“노, 노선배님께서 혹시……?”
“이미 지난 이름이야. 그건 그렇고, 아직 내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 같네만?”
비류명은 천천히 일어서서 유태청을 향해 깊숙이 절을 올렸다. 마치 자신의 사부를 대하듯이.
그걸 보고 제갈민이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저 노인이 누군데 석추량의 전인이 저런 절을……. 가만? 석추량을 십 초에… 꺽, 꺽, 꺾.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