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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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00화
100화
“이십 년 만인가? 잘 지냈나?”
“예? 예…… 그야 잘 지냈습죠.”
“그러지 말고 앉게나. 사람들이 쳐다보는군.”
옆 좌석에 앉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던 세 사람이 합류하자 유태청이 질문을 던졌다.
“오천좌는 누구를 말함인가?”
월조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정보를 털어놓아야만 했다. 그에겐 십절검존의 앞에서 허튼수작을 부릴 배짱이 애당초 없었다.
“오천좌 중 한 사람은 북천의 하늘이라 불리던 북해빙곡의 곡주, 빙왕(氷王) 소리독현을 말함입지요.”
“빙곡?”
“지금은 빙왕궁이라 불리고 있는 곳이외다, 유 선배.”
“뭐라? 흠…….”
유태청이 깊이 생각에 잠기자 사도굉이 참지 못하고 넌지시 다음 사람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 자신조차 흥미가 동한 듯했다.
“또 다른 사람은 혈도진인(血道眞人)이우. 세상에는 그가 도인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아무도 그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고 합디다. 그의 손을 본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나 어쨌다나.”
도인이라는 말에 정광이 관심을 보였다.
“겁나게 살벌한 도인이었나 보군.”
“신발 들고 싸우는 도사보다 더 살벌했을라구요.”
끝내 두충도 한마디 했다. 그래도 다행히 맞지는 않았다.
“뭘 그렇게 노려봐요?”
운아영을 사이에 두고 앉은 덕분이었다. 정광이 노려보자 운아영이 간단하게 퇴치해 버렸다.
유태청이 다시 사도굉을 향해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그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은 없었나?”
“오호! 유 선배도 제법…….”
“실없는 소리 말고 아는 대로 말해보게.”
찔끔한 사도굉은 즉시 입을 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의 손을 죽음의 혈수(血手)라 불렀습지요.”
혈도진인, 도인, 혈수, 혈선인. 뭔가 맥이 이어진다.
유태청이 진용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진용이 사도굉에게 물었다.
“나머지 두 분에 대해서도 아시는지요?”
사도굉은 솔직히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저 어린놈은 누구일까? 누군데 유태청과 마주 앉아서 태연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단 말인가? 당금 천하에서 과연 십절검존 유태청과 저리 허물없이 지낼 젊은이가 누가 있을까?
오룡이 어쩌구, 십영이 저쩌구 해도 그놈들은 유태청과 마주 앉으면 바싹 마른 대나무처럼 부동자세가 될 놈들일 뿐이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경으로 진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름이 고진용이라 했던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천하에서 가장 해박하다는 자신의 머릿속을 뒤집어서 탈탈 털어 봐도 그런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환장할 일 아닌가 말이다!
‘으아아! 대체 저 고진용이라는 놈은 누구야?’
눈에 힘을 잔뜩 준 사도굉을 향해 진용이 다시 물었다.
“그들 중 악록산 근처에 살았던 사람은 없었습니까?”
얼떨결에 첫 번째 질문을 지나친 사도굉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악록산 근처? 어떻게 알았나? 장사(長沙)에 살던 사람이 하나 있네만.”
“그가 누굽니까?”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는데?
마음은 그런데도 입은 자동으로 열렸다.
“신왕(神王) 동방산운!”
“그의 무공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유태청이 끼어들어 묻자 고개를 모로 꼰 사도굉이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그는 본래 왕족이었기 때문에 그의 무공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죠. 다만 전해진 이야기로는 그의 무공은 워낙 난해해서 그의 후손들조차 제대로 익힌 자가 없었다 하더구만요. 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무공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고 사라지는 바람에 장사 신왕가의 맥이 끊겼다고도 하고…….”
사도굉은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는 몰라도 진용은 그의 말로 인해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얻은 무공은 동방산운의 무공이다. 천 년 전 오천좌 중의 한 사람이라는 신왕의 무공!
유태청도 같은 생각인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마지막 한 사람에 대해 물었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 한 사람은 누군가?”
사도굉이 곤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오직 하나, 당시의 절대고수들이 그를 백두선인(白頭仙人)이라 불렀다는 말밖에 남은 게 없어서…….”
그 말에 진용과 유태청이 서로를 마주 봤다.
3
그는 객잔에서 나오는 여섯 사람을 눈 한 번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최초의 실패를 안겨준 자가 거기에 있었다.
유태청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실패를 안겨준 자는 나이 스물의 어린놈이었다.
‘죽지는 않아도 병신은 면할 수 없다 생각했거늘.’
의외였다. 아니, 놀랄 일이었다.
분명 심맥이 뒤틀린 것을 느꼈었다. 자신이 그리 느꼈다면 그리되어야 맞았다. 지난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착오가 없었으니까.
사실 진용이 여주에 멀쩡한 몸으로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눈으로 본 진용은 서신에 적힌 대로 멀쩡하지 않은가 말이다.
완전한 실패! 치욕이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놈이 정천무맹으로 들어가면 더 어려워질 텐데요.”
암군은 상관욱의 말조차도 비아냥거림으로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날 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흥! 한 번은 실패했지만 두 번의 실패는 없다.”
상관욱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 번 실패하면 두 번 실패할 수도 있는 법이외다. 특히 이런 일은. 한 번의 실패도 없었던 당신의 가장 큰 약점을 이제야 알 것 같군.’
“주군께서 사람을 더 보내준다 하셨습니다만.”
“그들은 그들의 방법이 있을 것이고 나에겐 나대로의 방법이 있다. 나는 내 방법대로 한다. 그렇게 전해라.”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지요.”
상관욱은 나직이 답하며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진용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의 등이 더욱 크게 보이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망막에 가득 찼다.
웃음이 나온다.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에게 감탄을 하다니. 며칠 전만 해도 죽이지 못해 안달했거늘.
‘후후. 암군 선배, 미안하오만 내기를 한다면 나는 저자에게 모든 것을 걸 것이오.’
‘시르, 놈들이 근처에 있다.’
‘나도 알아.’
‘그냥 놔둘 거야?’
‘응. 그냥 놔둬도 당장은 못 움직일 거야. 여긴 여주거든.’
객잔을 나서면서부터 자신을 향한 미세한 마기를 느꼈다. 한 번 부딪쳐 본 적이 있는 기운이었다.
놈들이었다.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노인과 상관욱 일행.
진용의 입가로 하얀 웃음이 번졌다. 이전의 자신이 아니다. 그때에 비하면 적어도 삼성 이상의 공력이 늘었다.
그리고 마령의 기운이 조금씩 흡수될수록 하루하루가 다른 상황이다.
게다가 그때는 화인화를 구하겠다는 욕심에 서두르다 당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기다리는 입장이다.
‘구양무경, 어디 해보자. 하나하나 보내는 족족 무너뜨려 주겠다. 후후후.’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 웃는 진용이 실없어 보였나 보다. 정광이 물었다.
“고 공자, 뭐 기분 좋은 일 있나?”
“예, 드디어 본격적으로 강호에 뛰어들기 직전 아닙니까?”
“……?”
그게 그렇게 즐거운 일인가? 하긴 뭐,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는 게 재미있는 일이긴 하지.
정광이 고개를 비틀고 끄덕이더니 자신을 바라본다.
진용은 속으로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제가 드린 책은 다 보셨습니까?”
“열심히 보고 있네. 워낙 자세히 주석을 달아놓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군. 자네 아버님 정말 굉장한 분이야. 이 정광이 존경하기로 했네.”
풍림장에서 건네준 책을 말함이었다. 그동안 몇 글자를 해석한 성과는 얻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도 정광은 그 책을 계속 파고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언제 함께 풀어보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정광이 은근히 재촉했다. 사실 얼마간 고대문자의 해독에 너무 무관심한 측면이 있었다. 풍림장에서 함께한 것을 제외한다면 제대로 된 의견을 나누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정천무맹에 가면 시간을 내보도록 하지요. 아무래도 며칠의 여유는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쪽에서도 정천무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정천무맹으로 가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럴 생각이네.”
사도굉의 가늘어진 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빛이 번뜩였다.
“사실 저도 정천무맹에 가볼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말인데…….”
유태청은 사도굉의 속마음을 알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행 중 사도굉보다 강호의 일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아마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가득 채울 생각일 것이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겠지.’
단순한 계산으로도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유태청은 진용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지나친 행동만 자제하신다면야……. 비밀 엄수는 물론이고 말입니다.”
비밀 엄수? 뭔 말이지?
가만? 유태청의 저 태도는 또 뭐야?
사도굉은 어리둥절한 가운데에서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유태청의 태도로 봐서 이들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은 유태청이 아니었다.
고진용이라는 저 어린 서생, 저 서생이 모든 일의 결정권자였다.
사도굉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또다시 두통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끄응, 이거 괜히 끼어든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들자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니지! 어쩌면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진용은 천변만화하는 사도굉의 눈빛을 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리하지 않으실 거면 여기서 헤어지지요.”
사도굉은 결정한 듯 눈빛을 고정시키고 앞을 바라보았다. 삼 장 높이 정천무맹의 내성 담장과 정천무맹의 방문객을 위한 객사인 정무관이 저만치 보이고 있었다.
“뭘 지켜야 할지는 몰라도, 내 어찌 유 선배 앞에서 허튼짓을 할 수 있겠는가? 걱정 말게! 허허허허.”
4
정천무맹에는 온갖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주축을 이루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비주류라 할 수 있는 강호 대문파의 사람들도 쉼없이 정천무맹을 들락거렸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강호 중소문파의 제자들도 경험을 쌓기 위해 어느 정도 무예를 익히고 나면 정천무맹을 방문했다.
그 모든 사람들을 정천무맹 안에 기거하게 할 수는 없는 일. 정천무맹에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정문 앞에 임시 객사를 만들어두고 운영했다.
정무관(正武館).
이층 높이로 지어진 정무관은 모두 다섯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크기가 워낙 커서 억지로 밀어 넣으면 일천 명의 손님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십 년 전 처음 정무관을 지었을 때는 숙박을 위한 용도로만 쓰였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자 맹의 잡무를 관장하는 성무당의 한 간부가 멋진 안건을 내놓았다. 정무관에 인원을 파견해 정천무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기초적인 신원을 미리 조사하자는 것이었다.
성무당주 제갈종은 흔쾌히 그 안건을 받아들였다. 그는 정무관의 일층에 집무실을 만들고서 두 명의 서기를 파견했다.
그 일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한 정천무맹의 정문은 물론이고 내성마저 번잡함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맹의 간부들은 모두 그 일에 만족함을 표시했다. 개중에는 성무당주 제갈종에게 상을 줘야 한다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성무당은 정무관에 열두 명의 인원을 더 파견해서 그곳에 머무는 자들의 자세한 신원 파악까지 하는 업무를 해야만 했다.
좀 더 적극적인 조사 업무를 위해서라는 것은 허울 좋은 목적일 뿐, 실제는 남의 뒷조사나 하는 눈은 더욱더 줄어들어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각파의 이전투구 때문이었다.
그러다 삼 년이 지났을 즈음 성무당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이 밖으로 쫓겨났다. 제갈세가를 질시하는 문파들이 밖에서 일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며 밀어냈기 때문이었다.
제갈종은 처음에 안건을 내놓은 제갈민을 작신 두들겨 패서 쫓아내 버렸다.
조카만 아니었으면 패죽였을지도 몰랐다.
오늘도 제갈민은 책상 앞에 앉아 죄 없는 붓대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지난해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제기랄! 잘했다고 침 튀기며 칭찬할 때는 언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