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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99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99화

 

99화

 

 

 

 

 

 

 

유태청은 천천히 웃음을 지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나도 정확히 모르네. 그저 혈선인(血仙人)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네.”

 

“혈선인?”

 

“그럼에도 그를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의 흔적을 봤기 때문이네.”

 

“도대체 어떤 흔적이기에 노선배님께서……?”

 

유태청이 굳은 표정으로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혈혈구마 중 두 사람을 내가 죽인 걸로 알고 있지.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야.”

 

진용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예? 그럼 누가?”

 

유태청의 노안이 허공에 머물렀다. 오래전 일을 떠올리는 듯.

 

“혈혈구마 중 한 사람은 내가 죽였지만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죽이지 않았네. 내가 그를 찾았을 때는 이미 그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거든. 한데, 그가 죽기 전에 두어 마디 말을 남겼네. 혈선인… 악마의 손…….”

 

살짝 떨리는 목소리였다. 

 

의외였다. 무엇이 저 노웅의 목소리를 떨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가?

 

“그때 보았지, 혈심마의 가슴에 남은 자국을. 그것은…… 어린아이 손보다 작은 혈수인(血手印)이었어. 나는 그것을 보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지. 과연 내가 그 손의 주인을 이길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야.”

 

진용은 한동안 유태청을 바라보며 말을 잊었다.

 

두려움이라니! 천하의 십절검존이 두려움을 느끼다니! 도대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진용의 놀람에 아랑곳없이 유태청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천암산에 틀어박힌 지 오 년이 지나 검 하나를 완성했네. 그제야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검을 완성하고 나니 오히려 아무런 승부욕도 생기지 않더군. 아마 혈혈구마가 오지 않고 자네를 만나지 못했다면 영원히 천암산에서 나오지 않았을 거야.”

 

고요히 말을 맺는 유태청의 전신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진용은 치부나 다름없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유태청이 왠지 좀 전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어느 누가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고 싶어 할까. 더구나 삼태천이라 불리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마음이 더할 것이거늘.

 

그렇다면 이유가 있을 터. 진용은 어렴풋이나마 그 이유를 짐작하고는 깊은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 모르겠습니다. 왜 노선배님이 제 어깨에 만근 무게를 얹고자 하시는지.”

 

유태청이 입가에 조용한 웃음을 배어 물었다.

 

“사실 자네를 따른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자네의 내면에 도사린 힘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네. 하지만 이제는 다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알았다네.”

 

처음부터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막상 유태청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듣자 진용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자신이 흡취한 마기로 인해 마에 물들었다면? 

 

유태청은 아마도 자신을 제거할 마음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런데 그런 품 안의 송곳이, 천하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이제는 든든한 호신갑으로 변한 것이다.

 

“왜 그리 생각하신 거죠?”

 

유태청이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늙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늙어선지 한 번 다치면 쉽게 낫지도 않아. 그래서 모든 것을 비웠더니 안 보이던 것까지 보이지 뭔가.”

 

진용의 눈가에 잔떨림이 일었다.

 

“혹시… 회복이 어렵다는 말씀? 이런! 그것도 모르고…….”

 

유태청이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겹친 내상으로 인해 선천지기마저 상당한 손상을 입었던 것이다. 회복이 불가능하게 생각될 정도로.

 

크게 상심했을 법한데도 매우 편안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연속으로 겹치니 더 심해졌어. 아마 십 년간 운기만 한다 해도 본래대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해서 이 늙은이는 아영이나 가르치면서 놀고, 대신 자네를 좀 귀찮게 하려는 거지. 허허허.”

 

어느 순간부턴지 유태청의 말투가 손자에게 말하듯 편하게 흘러나왔다.

 

“자네라면 그 혈수인의 주인을 제압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랬던 것이다. 유태청이 굳이 구름 속의 신룡 같은 열 명의 고수를 언급한 진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혈선인! 혈수인의 주인!

 

자신을 두려움에 젖게 만든 자, 그를 상대케 하기 위해서!

 

그런데 혈수인(血手印)?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용은 문득 무제의 책에서 봤던 혈수의 주인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왠지는 몰랐다. 알 수 없는 전율이 일었다.

 

진용의 눈이 유태청을 향했다. 유태청도 진용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설마……?”

 

“혹시 그게……?”

 

천 년 전의 이야기 속에 나오던 이름. 혈수의 주인!

 

터무니없는 생각 같았지만, 그토록 무서운 무공이 오랜 세월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유태청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을 떼었다.

 

“아무래도 전에 자네가 말했던 그 이름들에 대해 알아봐야겠군.”

 

“알 만한 분이 있겠습니까?”

 

“천하에서 벌어지는 온갖 시시콜콜한 일을 간섭하고 다니는 괴팍한 친구가 하나 있지. 그의 성격으로 봐서 이번 일을 절대 지나칠 리가 없네. 아마 근처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누구신데요?”

 

유태청이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지.

 

“월조옹(越調翁) 사도굉이라는 자네. 그러고 보니 그도 이제 늙은이가 다 되었겠군.”

 

 

 

 

 

2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도에 차를 따라 마시는 그의 전신에선 알게 모르게 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홍안에 풍염한 백염, 깨끗한 백의, 단정한 자세. 누가 보아도 그는 명망 높은 대학자처럼 보였다.

 

순전히 겉모습일 뿐이지만.

 

그가 정천무맹의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월광루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두 시진째였다. 그는 두 시진 내내 구석에 앉아 귀를 활짝 열어두었다.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한 가지 주제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예외가 없었다.

 

도검을 찬 무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자들만 모인 곳에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남녀가 쌍쌍으로 앉아 있는 곳에서도 낯간지러운 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목청을 높인 채 침이 튀고 있을 정도였다.

 

 

 

“공자가 그렇게 겁이 많은 줄 몰랐군요.”

 

“무슨 소리요? 나는 다만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요.”

 

“그래도 마의 무리를 보면 검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흥, 내 실력으로 가당키나 한 소린 줄 아시오? 그자들의 우두머리는 십천존이오, 십천존! 낭자는 내가 개죽음당하기를 바라는 모양이구려!”

 

 

 

그런 자들은 그나마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았다.

 

 

 

“호호호, 공자가 나서면 그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갈 거예요.”

 

“음하하하! 물론이지요! 강호는 감히 마도 따위가 설칠 곳이 아니라오. 놈들이 나서면 내가 싹 쓸어버리겠소!”

 

 

 

한마디로 겁을 상실한 개구리들, 막상 천혈교의 무사들과 마주치면 찍소리도 못할 자들이었다.

 

그는 두 시진 동안 앉아 있으면서 그렇게 싸우다 각자 다른 문을 통해 나간 남녀를 세 쌍이나 봤다. 

 

어쩌면 객방으로 올라간 남녀가 훨씬, 몇 배는 더 많을지도 몰랐다. 직접 보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들에 비해 일반 무사들의 주제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이었다.

 

천혈교는 마도 집단이 분명하다, 아니다.

 

십천존 중 두 명이나 끼어 있으니 이제 강호에는 이십 년 만에 네 번째 거대 세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웃기지 마라, 정천무맹이 콧바람을 불면 훅 날아갈 허풍선에 불과하다.

 

그러다 자신이 직접 가서 천혈교의 허실을 밝히겠다는 자마저 나왔다.

 

‘미친놈들! 그렇게 간단히 결론지을 수 있으면 미쳤다고 내로라하는 천하의 종주들이 정천무맹으로 모이고 있겠냐?’

 

그가 잔뜩 실망한 채 건진 것 하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귓전으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황곡도 정천무맹으로 올지 모르겠군요.”

 

‘응?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봉황곡이라니?’

 

“온다고 봐야겠지, 봉황선자마저 나섰을 테니.”

 

‘헛! 봉.황.선.자! 이게 웬 떡이람? 오!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슬쩍 눈을 돌리니 백의를 입고 있는 젊은 서생과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 두 사람이 보였다.

 

간편한 서생복을 입은 서생은 조금 길어 보이는 얼굴에 선이 굵은 얼굴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반면 노인은 뒤돌아 앉아 있어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목소리로 봐서 제법 점잖은 노인 같았다.

 

‘흠, 대화할 만한 자격은 될 것 같군.’

 

자신의 기준으로 봤을 때 최상은 아니어도 중상(中上)은 될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좌석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그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주위는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 옆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잘 골라 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탁자 하나 건너에서 들려온 소리는 토씨 하나 놓치지 않을 정도로 명료하게 들리지 않았던가.

 

봉황곡이라는 단어에 혹한 그는 미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백의노인의 뒤로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허허허,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죄송하오만, 이 늙은이도 마침 봉황곡에 대해 아는 게 좀 있소이다. 하니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허락하시겠소이까?”

 

정중한 말투.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먼저 청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정도의 무게가 담긴 말투였다.

 

그러나 백의노인은 그의 말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엉뚱한 말을 했다.

 

“한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우리와 이야기 나눌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겠소.”

 

꿈틀거리는 눈썹을 간신히 제자리에 머물게 한 그가 여전히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 백의노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허허허, 그것도 재미있겠구려. 내 자랑은 아니오만, 강호사에 대해선 제법 안다고 자부하오이다. 어디 물어보시구려.”

 

‘뭐, 자격? 나 사도굉에게? 어디 말도 안 되는 것만 물어봐라. 확! 머리를 뽀개 버릴 테다!’

 

사도굉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의노인은 태연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천 년 전에 몇 명의 절대고수가 있었소. 세인들은 그들 중 한 사람을 벽공(碧公)이라 불렀소. 혹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소?”

 

움찔, 사도굉은 빠르게 기억의 편린들을 훑어봤다. 

 

십만 권의 서적에 적힌 것보다 많은 정보가 그의 뇌리를 번개 같은 속도로 지나쳐 갔다.

 

어느 순간,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벽공?”

 

경악한 눈이 백의노인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그렇소, 벽공. 모르오? 그럼 이야기는 끝났구려. 그만 돌아가 보시구려.”

 

백의노인의 축객령에 사도굉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누가 모른다고 했소?”

 

조금 전까지의 정중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직 지기 싫어하는 아집에 가득 찬 목소리만이 남았을 뿐.

 

사도굉이 말했다.

 

“벽공은 후한 말에 살았던 한 사람을 칭하는 것이외다.”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빠르게 이어졌다.

 

“후한의 절대자, 오천좌(五天坐)! 그중 한 사람, 벽안(碧眼)으로 인해 벽공이라 불렸던 벽안도제(碧眼刀帝) 기류한! 맞소? 아니, 분명히 맞을 것이외다! 그 외에는 벽공이라 불릴 만한 절대고수가 없으니까!”

 

사도굉은 답을 내놓고 백의노인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만일 이상한 소리를 하면 후려갈기기 위해서 주먹에 힘을 잔뜩 주고.

 

그때 백의노인이 서생을 향해 말했다.

 

“어떤가, 고 공자? 알 거라고 했지?”

 

진용이 빙그레 웃었다. 

 

유태청의 말이 아니었다면 겉모습만 보고 속았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사도굉의 급격한 변화는 뜻밖이었다.

 

“과연 유 노선배님 말씀대로군요. 월조옹께서 모르는 것은 천하의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시더니…….”

 

사도굉은 진용의 말에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그럼…….”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진용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어떻게 내 별호를……?”

 

그제야 유태청이 고개를 돌리고 사도굉을 바라보았다.

 

“거기 서서 뭐 하나? 앉지 않고. 이야기를 나눠보자며? 시간도 넉넉한데 잘됐군. 우리 아주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사도굉은 유태청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비명이라도 지를 듯한 표정으로 파르르 몸을 떨었다.

 

“다, 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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