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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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94화
94화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저런 확신을 심어주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눈빛으로.
<그가 바로 명옥의 주인이오, 장문인.>
단순한 전음 한마디에 요료는 경악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그가……?”
십절검존의 말이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요료가 격동하자 모두가 입을 닫았다. 한편으로는 공야무릉이라는 이름이 더욱더 가슴에 다가왔다.
잠시 후, 요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시지요, 유 시주. 그분의 마음이 움직일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찾아뵐까 하오이다.”
그러고는 황보가의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두 분께서는 돌아가셔서 가주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전해주시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불만을 표할 수 없었다.
일의 경과를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천불성승과 십절검존 사이의 일에 끼어들어 가타부타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장문인의 말씀, 허락으로 알아듣고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럼.”
여정이 일어서자 황보염도 일어섰다.
두 사람이 나가자 요료는 진용 일행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분 시주께서도 잠시 객사에서 기다려 주시구려.”
그러자 유태청이 말했다.
“고 공자만 나를 따라오도록 하고, 세 사람은 장문인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게나.”
정광이 요료를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가봐야 재미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그저 부처님하고 눈싸움이나 하고 있겠소이다.”
요료가 의외라는 눈으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유태청의 체면을 생각해 모두 안으로 들였지만 도복을 입은 도사를 제외하면 덩치 큰 여아가 조금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아예 마음에도 두지 않았던 서생을 남으라 하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그마저도 허락하기가 어렵다는 것.
“유 시주……?”
“이유가 있음이니 이해해 주시구려. 어차피 달마동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 않겠소?”
유태청이 저리 말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더구나 그의 말대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테니 사실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렵긴 하지만 절대 불가 또한 아닌 일.
요료가 진용에게 말했다.
“번거로운 일이 생기지 않게 주의해 주시게. 달마동을 지키는 호법승에게는 빈승의 명도 통하지 않는다네.”
함부로 행동하지 말란 말.
“그리하지요.”
조용한 대답. 그제야 요료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곳이 어딘가. 대소림의 장문인이 머무는 방장실이 아니던가?
이곳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격동을 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너무 고요하다. 더구나 장문인인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한 점 흔들림이 없다. 말투로 봐서 십절검존 유태청의 제자는 아닌 듯 보이거늘.
‘허, 대체 저 젊은이가 누구기에……?’
잠시 잠깐이었지만 요료가 진용에게 관심을 가지자 유태청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허허허, 그 정도로 놀라기는…….’
요료와 요양, 요선이 앞장서고 유태청과 진용이 뒤를 따랐다.
장문인이 움직이자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네 중년승이 자연스럽게 합류하더니 앞뒤로 호위를 맡았다.
진용은 유태청의 전음으로 그들이 소림의 자랑이라는 십팔나한 중 네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 엄정한 기세. 이름 모를 계곡에서 싸웠던 삼존맹의 살귀들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 고수들이다. 저들 하나하나가 저러할진대 열여덟 명이 모여 시전한다는 십팔나한진은 또 어떠할 건가.
‘과연 소림!’
진용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림은 잠을 자지도 늙지도 않았다네.
유태청이 결코 빈말을 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렇게 오 리를 산길을 타고 올라가자 거대한 암벽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은 가파르고 험하기 그지없었다.
유태청이 진용에게 나직이 말했다.
“저곳이 오유봉이네.”
달마동이 오유봉의 정상 아래에 있다 했던가?
반 각을 더 올라갔다. 끝도 보이지 않는 암벽은 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엄청난 장관에 진용은 자신이 무척 왜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처 그 느낌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가파른 길의 끝에서 갑자기 파란 대나무 잎이 살랑거리는 죽림이 나타난 것이다.
죽림 사이로는 좁은 오솔길이 나 있었다. 오직 그 오솔길을 통해서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요료와 소림의 노승들이 걸음을 멈춘 것은 바로 그 오솔길 앞에서였다.
걸음을 멈춘 요료가 죽림 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림의 요료가 삼가 요공 사형을 뵙고자 하오이다.”
쏴아아아…….
바람이 스치자 대나무 잎이 스산한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몰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진용의 이마에 깊은 골이 생겼다.
‘죽음의 기운. 왜지?’
죽림 안에 산 자의 기운은 없다. 있다면 오직 죽은 자의 기운뿐!
그런데도 요료는 마치 죽림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듯 입을 열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요료는 죽은 자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
진용이 옆에 있는 요양에게 물었다.
“죽림 안에 누가 있어야 합니까?”
요양은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지만 고승답게 곧 정상을 되찾고 진용의 물음에 답했다.
“안에는 수호법승인 빈승의 사제들이 있네.”
“혹시 두 분이셨습니까?”
“둘이 아니라 셋이네… 만……?”
요양은 대답을 하다 말고 의아한 눈빛으로 진용을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는 눈빛이다.
진용이 굳은 눈으로 죽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가 보셔야 할 것 같군요. 두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일 장 앞에 있던 요료가 홱 고개를 돌려 진용을 바라보았다. 노한 눈에는, ‘감히 그대가 소림을 능멸하려는 건가?’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유태청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고 공자가 그리 느꼈다면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군.”
요료가 유태청을 보며 굳은 눈으로 말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유 시주는 아시지 않습니까?”
유태청이 말했다.
“노부도 죽을 뻔했다가 겨우 살아났네.”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그 말에 오십 년 정진을 한 요료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십절검존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다니, 그게 무슨 말?’
그때 눈을 반쯤 감고 주위의 기운을 탐지하고 있던 진용이 눈을 번쩍 떴다. 세르탄이 입을 연 것이다.
‘시르, 저 안에 죽은 인간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아직 혼령이 완전히 육신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거든.’
세르탄의 말이 뜻하는 말은 하나였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직은 진행형이라는 말이다.
“혹시 성승께서 저 앞에 계십니까?”
“그건 아니네. 달마동까지는 아직 더 들어가야 하네. 이곳은 관문일 뿐…….”
요료의 말을 끊으며 진용이 다급히 말했다.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르니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성승께서 앞에 계시지 않다면 아직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뇌성벽력이었다.
요료는 진용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태청이 옹호하고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나한은 안으로 들어가라! 요양, 요선! 안으로 들어간다!”
네 명의 나한승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요양과 요선이 움직였다.
요료는 유태청과 진용을 번갈아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도 됩니다만, 제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나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림의 일. 그것도 소림 최고의 금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외부인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요료는 자신의 재량을 모두 내놓았다 할 수 있었다.
유태청과 진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요료가 한 걸음에 오 장을 미끄러져 들어갔다.
진용이 따라 들어가려는데 먼저 안으로 들어간 사람 중 누군가가 떨리는 음성으로 불호를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미.타.불……. 요근 사숙과 요안 사숙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장문인.”
요료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죽 뻗어 날아갔다. 진용은 유태청과 함께 그 뒤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죽림의 오솔길은 삼십 장이나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오 장은 평지로 변해 있었다. 대나무는 물론이고 바위조차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쪼개진 대나무들이 가루처럼 부서져 수북이 쌓여 있는 곳, 그곳에 두 노승이 얹어져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채.
네 나한승은 버릇처럼 네 방위를 선점한 채 사방을 쓸어 보고, 요양과 요선은 침통한 표정으로 두 노승의 전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오! 맙소사! 어찌 이런 일이! 한데 요경은?”
죽림을 지키는 사람은 셋. 그중 둘이 죽고 하나가 사라졌다.
요료의 얼굴에 근엄한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경악과 분노의 표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재빨리 명을 내렸다.
“나한 둘은 이곳에 남아 두 사제의 법신을 지켜라! 나머지 둘과 두 사제는 나를 따라 달마동으로 간다!”
일은 이미 벌어진 상황. 요료의 결정은 정확하고도 신속했다.
요료가 먼저 신형을 날렸다. 그만큼 그는 마음이 급했다.
이번에는 오고 감을 정하지 않았는지라 진용은 지체없이 그 뒤를 따랐다.
달마동은 암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백여 장을 더 올라가야 했다.
전력을 다해 달마동 앞에 도착한 사람들 눈에 보인 것은 부서진 석문과 쓰러져 있는 노승 하나뿐이었다.
요료가 쓰러져 있는 노승을 보고 소리쳤다.
“요경!”
그가 바로 죽림에 있어야 할 요경이었다.
요료를 앞질러 요선이 요경에게 다가갔다. 그는 요경의 혈맥을 짚어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런데 곤혹한 표정이다. 그는 요경의 가슴을 한차례 더 바라보고는 벌려진 옷자락을 덮으며 요료에게 전음으로 자신의 곤혹한 마음을 전했다.
<보리무상공에 당했습니다, 장문인.>
요료의 몸이 폭풍을 만난 듯 거세게 떨렸다.
보리무상공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분명하더냐?>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라 있는데, 혈맥이 심장 부위부터 굳었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무상연화지(無常蓮花指)의 흔적이 있습니다.>
요선은 백의전주였다. 의술에 관해선 약왕당주에 뒤처지지만 무공의 흔적을 알아내는 능력은 가장 뛰어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요료는 급히 요선의 옆으로 다가갔다.
요선이 살짝 가슴의 옷자락을 들쳐 보여줬다. 그곳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 자국이 붉은 연화 문양처럼 찍혀 있었다.
분명히 무상연화지였다. 보리무상공을 익혀야만 펼칠 수 있다는 소림의 최고 절예 중 하나.
요료는 놀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석문이 부서진 달마동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서 나한 둘이 자신의 명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보리무상공을 익힌 사람은 본 사에 셋뿐이다. 나와 각은 사숙… 그리고 요공 사형. 대체…….’
그때 문득 든 생각에 요료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효망은 어디 있느냐?”
그제야 나한과 요 자 배의 두 노승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효망은 단 하나뿐인 요공의 제자다. 오직 요공의 수발을 드는 그만이 달마동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하거늘 그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그가.
그럼 그도 죽었단 말인가?
“조사께 죄를 짓는 한이 있더라도 안으로 들어간다. 나머지는 밖에서 지키도록 하라!”
요료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명을 내리고는 천천히 달마동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즉시 두 나한이 요료가 들어간 달마동 앞을 가로막았다. 요양과 요선은 요경의 시신을 한쪽으로 옮겨놓고는 석상처럼 굳은 채 달마동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정적이 오유봉의 거암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의 마음은 이미 달마동 안에 있었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편, 진용은 조금 전부터 뒷머리가 묵직해짐을 느꼈다. 달마동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그 느낌이 강해졌다. 세르탄이 뭔가를 느끼고 격동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세르탄, 무슨 일이야?’
세르탄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세르탄? 대답 안 할 거야?’
두 번째 부르자 그제야 들릴 듯 말 듯 나직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마기…… 원초적 마령…….’
‘뭐?’
그때였다.
쾅!
달마동 안에서 굉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