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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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92화
92화
화인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일단 곡에서 사람들이 오면 그분들하고 상의를 해보고 움직일 생각이에요. 들으니 별원에서 은향단원을 죽인 자들이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라고 들었어요. 무리하게 복수를 한다고 했다가 더 많은 사람을 잃을까 겁이 나요. 그렇다고 참고 있을 수도 없고 말이에요.”
유태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놈들은 강하다. 봉황곡 전체가 나선다 해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물론 놈들을 잡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화인화의 봉목이 밝게 빛났다.
“조부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에 유태청도, 진용도 움찔거렸다. 그러나 뜻이 다른 몸짓이었다.
유태청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호칭에, 진용은 그제야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놀란 것이다.
은서령의 태도를 보고 단순히 십절검존이라는 위명에 고개를 숙인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조부라니!
‘그랬었나? 어쩐지…….’
진용이 내심 ‘두 사람이 친혈육일까, 아닐까’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고 있을 때쯤, 유태청이 보일 듯 말 듯 흔들리는 눈으로 화인화를 보며 말했다.
“내 힘으로는 놈들을 어쩔 수 없다.”
“예?”
화인화뿐만 아니라 은서령까지 놀라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유태청이 누군가! 삼태천의 일인인 십절검존이 아니던가!
그런 유태청이 도와줘도 안 되다니.
그때 유태청이 진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놈들이 천제성과 여기 고 공자를 적으로 삼은 이상 복수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곡주가 오거든 나를 찾아오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여인의 동그래진 눈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진용을 향했다. 천제성이 그들과 적이라는 말도 놀랍지만, 우선 당장은 눈앞에 있는 진용을 천제성과 같이 놓는 유태청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두 여인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진용은 무슨 소리냐는 듯 손까지 저으며 말했다.
“무슨, 노선배님께선 잘못 말씀하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두 여인의 눈빛이 푹 가라앉았다.
그럼 그렇지, 저 서생이 강하다는 것은 수하들의 말을 들어 알지만, 아무렴 십절검존조차 어려워하는 일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때 진용이 과장된 몸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들이 저를 적으로 삼은 게 아니고 제가 먼저 그들을 적으로 삼았지요.”
어이가 없는지 화인화가 픽, 웃었다. 은서령도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두 여인을 향해 진용이 고개를 쓱 내밀고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정말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천수무적 구양무경은 제가 죽여주기로 제 조부님하고 약속했거든요.”
순간 두 여인의 얼굴이 딱딱하니 굳었다. 그리고 유태청도.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적이 누군지를 정확히 안 것이다.
“설마 그들이 삼존맹의 무사들이었단 말이에요?”
화인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진용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봉황곡의 금창약 덕분인지, 다음 날 정광은 걸어다니면서 절뚝거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먼 길을 가기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두가야, 마차 하나 사자.”
“좋죠. 그런데 도장님 돈으로 사는 겁니다?”
“내가 돈이 어딨냐? 알잖아! 그 양반이 전부 고 공자 줬다는 거.”
“녹봉은 따로 받았을 거 아닙니까!”
“녹봉?”
그러고 보니 깜박했다. 돈 쓰는 것은 무조건 진용에게 맡겨놓다 보니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옳았다. 원래 돈에 대한 개념도 좀 희박했고.
근데 왜 자신에게는 녹봉을 안 줬지? 공짜로 부려 먹으려 했단 말인가?
홱 고개를 돌리고 방에서 나오는 진용을 바라보았다.
“고 공자, 자네는 녹봉 받았나?”
“받았죠. 어떤 멍청한 사람이 공짜로 일해줍니까?”
멍청!
화가 나도 알 건 알아야 했다.
“근데 나는 왜 안 줬지?”
“무슨 말씀이세요? 도장님 녹봉을 왜 안 줘요?”
“나는 안 받았는데?”
“그야 저한테 다 줬죠. 요즘 쓰는 돈, 도장님 돈과 제 돈 반반씩 쓰는 거예요. 물론 임무 수행을 위해 나온 경비도 함께 말이죠.”
정광의 입이 슬며시 벌어졌다.
“그, 그럼… 반이 내 거란 말이네?”
“그렇죠.”
“여태 내가 돈을 반씩 내고 다녔단 말이지? 두가 밥 먹는 것까지?”
“맞습니다. 뭐, 두 형 앞으로 나온 경비도 쓰긴 했지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정광의 고개가 다시 두충에게로 홱 돌아갔다.
“들었지? 여태 내 돈 썼다잖아. 마차는 니 돈으로 사!”
“내 앞으로 나온 경비도 썼다잖아요! 그리고 마차가 어디 한두 푼이에요?”
두충은 끝까지 우겼다. 아니면 또 자기의 돈으로 마차를 사야 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분명 자신에게 또 마차를 몰게 할 거란 점이다.
그런데 그때.
다그닥, 다그닥.
마차 한 대가 객잔의 뒷문 앞으로 다가와 서더니 운아영이 마부석에서 내려섰다.
“뭐 해요? 안 갈 거예요? 고 공자님, 마차 사 왔어요.”
결국 두충은 또 마부석에 앉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의 허름한 마차에 비해서 엉덩이도 아프지 않고 훨씬 편하다는 것이다. 햇빛가리개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운아영과 함께 앉아서 마차를 몬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부러운지 정광이 한 시진도 되지 않아 고개를 내밀었다.
“두가야, 내가 몰아볼까?”
“그냥 안에 있으슈!”
4장. 소림사 달마동
1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기운이 머물러야 할 곳에 시커먼 마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한 명의 중년승 때문이었다.
중년승을 바라보는 노승의 눈에 회한이 서려 있었다.
“효망아… 네 어찌…….”
중년승의 전신은 이미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마기의 침습이 골수에까지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노승은 안타까움이 물든 눈으로 중년승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중년승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랴.”
수백 년간 풀리지 않았던 마령의 봉인을 제자인 효망이 풀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선대의 조사들이 목숨을 던져 봉인한 마령이거늘.
그러나 어쨌든 마령의 봉인은 풀렸고, 풀린 마령의 기운이 제자의 몸을 침습했다.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 방법은 하나뿐이다. 제자보다 뛰어난 내력을 지닌 사람이 제자의 마기를 뽑아내는 것.
그러나 제자인 효망보다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결국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노승은 망설이지 않고 마기를 받아들여 자신의 육신 한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뭉친 마기는 나중에 시간을 두고 해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령의 기운은 생각보다 더 지독했다. 시간이 지나자 노승의 전신도 새까맣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기가 어느 정도 빠져나가자 중년승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을 뜬 중년승 효망은 자신의 몸에서 마령의 기운을 뽑아내고 있는 스승을 바라보았다.
‘누구 말이 옳은지는 모릅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당신께서 나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것.’
갈등의 눈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뿐이었다.
눈의 흰자위 전체가 시커멓게 물든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서 새카만 연꽃이 피어났다.
다섯 개의 묵련(墨蓮). 전설의 오지묵련화(五指墨蓮花)가!
그렇게 피어난 묵련화가 향한 곳은 노승의 가슴이었다.
손짓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푹!
묵련화가 스승의 가슴에 깊숙이 꽂혔다. 그제야 효망의 어깨가 보이지 않는 동요를 일으켰다.
‘굳이 용서해 달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용서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은 제가 지고 갈 업이니……. 지옥타불!’
순간 노승의 눈이 잘게 떨렸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운기가 마지막 정점에 이르렀기에.
그런데 하필 가격당한 부위가 마기를 뭉쳐 놓은 곳이다. 설마 알고 친 것인가?
뭉쳐 놓은 마기가 혈맥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간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려 한다.
“효망아……?”
노승의 표정이 거세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했음에도 그의 표정에는 안타까움뿐이다.
그런 노승을 향해 효망이 말했다.
“저는 이제부터 효망이라는 법명을 버릴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고뇌를 했었지요. 그러니 제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아마 저보다 더 잘 아실 터.”
절대무변할 것 같던 노승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네, 네가… 어찌…….”
중년승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노승을 향해 합장을 했다.
“더 이상 소림에 죄를 묻지는 않겠습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소림은 스스로의 힘으로 오늘의 일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노승은 달마동을 나서는 제자의 등을 바라보며 혼신을 다해 입을 열었다.
“안 돼… 너는 그래선 안 된다…….”
하지만 돌아서서 나가는 효망의 발길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는… 잘못 알고……. 끄어억!”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마기가 꿈틀거리며 눈을 뜨기 시작했다.
2
강호에 나와 태산북두라는 소림을 가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이다.
진용도, 정광도, 두충도 그러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운아영은 틈만 나면 북쪽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숭산을, 마치 그곳에 사모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열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유태청이 진용에게 숭산에 들렀다 가자고 하자 괴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렇게 등봉현을 그냥 지나친 말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자 유태청이 말했다.
“세상은 소림을 잠자는 늙은 거인이라고 말하지. 하지만 소림은 결코 잠을 자지도, 늙지도 않았다네.”
“성승을 만나뵈려 하시는 겁니까?”
“꼭 그 이유만은 아니네. 사람들은 소림에 성승만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성승은 소림의 일부분일 뿐이지. 아마 가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네.”
숭산은 준극봉을 중심으로 동쪽의 태실산과 서쪽의 소실산으로 나뉘어져 동서로 백오십여 리를 뻗어 있었다.
태산북두 소림은 그중 소실산의 깊은 수림에 엎드려 천하를 굽어보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마차가 소실봉으로 향하는 관도로 들어섰다.
숭산은 삼 리에 사찰이 하나씩 있다 할 정도로 수많은 사찰을 품고 있었다. 그래선지 겨울임에도 넓은 관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생각보다 무인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정천무맹이 창설된 이후로 소림의 위상이 많이 쇠퇴했다고 하더니 헛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유태청이 한 말이 있어서 진용은 실망하지 않았다.
‘가보면 알겠지.’
마차는 소림을 앞두고 넓은 공터에서 멈추어야만 했다.
하마(下馬). 소림에 대한 예의였다.
일행이 마차에서 내리자 두충은 마차를 한쪽에 세워놓은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보따리를 짊어졌다.
마침내 일행이 소림을 향해 산을 오르자 사람들의 눈길이 진용 일행을 향해 몰렸다.
칼을 찬 노인, 부리부리한 눈을 크게 뜬 도사, 괴상한 지팡이를 옆구리에 꽂은 서생, 남자들보다 훨씬 키가 크고, 큰 키만큼 커다란 검을 멘 여인,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진 청년.
사실 구경거리가 될 만도 했다.
미처 자신들이 구경거리가 될 줄은 몰랐던 일행은 점점 발걸음을 빨리 놀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경공을 펼치지 않았는데도 얼마 되지 않아 소림의 산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림의 이대제자로 두 사형제와 산문 앞을 지키고 있던 원정은 저만치서 오인오색의 사람들이 다가오자 눈을 빛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행들이군.’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소림이었다. 요즘에야 찾아오는 무인들이 뜸하지만 십 년 전만 해도 무인들이 자주 찾아왔었다.
청년승이었던 원정은 그때도 산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잘 안다, 강호에는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노인과 아이와 여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을 무시하다 큰코다친 사람들이 사형제들 중에도 몇 있었다.
그런 만큼 원정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더구나 노인과 여자가 검을 차지 않았는가 말이다.
원정이 정중하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시주 분들.”
정광이 제일 먼저 대답했다.
“구경하러 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그런데 말투가 왜 저래?
원정은 기분이 조금 안 좋았지만 그래도 검을 찬 무인이 섞여 있으니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어느 문파에 계신 분들이신지, 혹 본 사에 아는 분이 있으신지요?”
문파?
문파에 속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문파에 속해 있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거유?”
“허허허,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미리 알아두자는 거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혀를 찼다.
‘참 덜떨어진 시주구만.’
할 수 없이 유태청이 나섰다.
주위에서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더라도 빨리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듯했다.
“성승을 만나러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