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87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87화
87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광이 방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고 공자, 무슨 일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던데.”
“화 낭자가 어디 아픈 모양입니다. 해서 유 노선배님과 함께 가보려던 참입니다.”
“그래? 그럼 같이 가보자구.”
정광이 후다닥 방을 나서자 옆방의 운아영도 자신의 장검을 들고 방을 나왔다.
“저도 같이 가요.”
결국 네 사람이 방을 나섰다. 고단한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두충만을 남겨놓고.
그들은 회랑을 따라 별원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회랑은 이십여 장에 이를 정도로 제법 길었다. 회랑을 지나 별원의 입구에 당도한 순간, 진용의 얼굴이 굳어졌다.
급격한 속도로 사방을 조여오는 기운이 느껴진다.
극한으로 억제된 살기!
“이런!”
진용은 외마디 다급성을 내지르며 땅을 박차고 별원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거의 동시, 유태청과 정광도 별원으로 뛰어들었다.
운아영마저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별원으로 뛰어들 즈음, 별원 안에서 여인의 비명이 울리며 밤하늘을 갈랐다.
“아악!”
“웬 놈이냐?!”
별원으로 내려선 진용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극히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흑의인 하나가 홍의 경장 여인의 가슴 사이를 뚫고 나온 검을 빼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닥에는 이미 세 명의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눈을 치켜뜬 그녀들의 갈라진 가슴과 반쯤 잘라진 목에서 뿜어지는 핏물!
진용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흑의인들. 그들이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독한 놈들이구나!”
진용은 일갈을 내지르며 홍의 경장 여인들과 그녀들을 향해 소리없는 공격을 날리고 있는 흑의인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분노의 힘이 양손에 모아졌다. 뇌전의 기운에 건곤의 기가 합쳐지자 일순간 양손에서 시퍼런 기운이 넘실거렸다.
진용은 찔러오는 흑의인의 검을 그대로 움켜쥐어 부숴 버리고,
쩌정!
뒤이어 일권을 흑의인의 가슴에 틀어박았다.
쾅!
항거할 수 없는 일권!
가슴이 가루로 뭉개진 흑의인이 칠공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훌훌 날아간다.
동시에 진용의 신형은 잔상을 남기며 또 다른 흑의인을 향해 옆으로 흘렀다. 동시에 뻗어나가는 손에선 여전히 시퍼런 기운이 넘실거렸다.
느닷없이 커다란 손이 코앞에 들이닥치자 흑의인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콰직!
잡아 비튼 일수에 흑의인은 오른팔이 으스러진 채 뒤로 비틀렸다.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나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조심하시오!”
멋모르고 휘두르는 홍의 경장 여인의 검을 피하며 진용이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인은 진용을 알아보고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사이 진용의 뒤를 따라 들어온 유태청이 흑의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줄기줄기 뻗친 검강이 흑의인들을 휘감았다.
찰나간에 두 명의 흑의인이 허리를 접으며 꼬꾸라졌다.
뒤이어 정광이 날아들며 전력을 다해 쇠 신발을 던졌다.
퍽! 흑의인 하나가 머리가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운아영도 자신의 넉 자 장검을 치켜들고 흑의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여인들이 공격을 받은 것도, 세 명이 쓰러진 것도, 그리고 진용 일행이 들어서며 살귀처럼 날뛰는 흑의인들을 무너뜨린 것도.
진용 일행이 뛰어들면서 상황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있었다.
촌음의 여유. 진용은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강기의 폭풍이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유태청과 정광이 손을 쓸 때마다 흑의인들은 물러서기에 정신이 없었다. 바닥에는 봉황곡의 여인 셋과 흑의인 대여섯 명이 쓰러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진용의 고개가 별원을 향해 홱 돌아갔다. 강기의 폭풍에 가려져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주의를 기울이자 기이한 기의 파동이 방 안에서 느껴진 것이다.
진용이 방 쪽으로 다가가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기이한 소성이 들려왔다.
삐이익!
소성이 들려오자 남은 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뒤로 몸을 날려 담을 넘어가 버렸다.
공격을 하자마자 도망갈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 사람들은 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니 흑의인들이 사라진 곳만 쳐다보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소련이 다급히 외쳤다.
“소곡주님이 계신 방을 보호하라!”
너무나 빠르게 닥친 상황. 쓰러져서 핏물을 쏟아내고 있는 수하들만 아니라면 꿈이라 치부했을 일이었다.
진용은 곤혹한 표정으로 자신들에 의해 쓰러진 흑의인들을 바라보았다.
‘약해! 내가 느낀 기운은 저들이 아니었어. 가만? 그럼 혹시?’
머릿속에서도 세르탄이 소리쳤다.
‘시르! 그 계집아이의 기운이 방에서 느껴지지 않아!’
번쩍 정신이 들었다.
흑의인들을 치는 사이 방 안의 기척이 바뀌었다.
기이한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느낀 기의 파동이 수상하다.
진용은 생각이 정리되자 별원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두 명의 홍의 경장 여인이 앞을 막아섰다. 진용이 소리쳤다.
“놈들이 노린 것은 그대들이 아니라 저 안이야!”
두 여인이 멈칫하는 사이 진용의 신형은 빨리듯 별원의 문을 차고 들어갔다. 소련이 뭐라 말릴 틈조차 없었다.
우지끈! 별원의 문이 터져 나갔다.
사람들의 눈이 방 안을 향했다.
보였다. 쓰러져 있는 궁장 여인들이. 그리고 한쪽에서 정좌한 채 이를 악물고 있는 은서령이.
다급한 표정에 절박한 눈빛을 담은 채 그녀의 악 다물린 입술이 가까스로 열렸다.
“인화를… 구해…….”
조금 전이었다.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화인화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기이한 냄새가 맡아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화인화의 몸에서 나는 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향을 깊게 들이마신 순간, 띵하니 머리가 어찔해졌다.
그녀의 감각이 경고를 보냈다.
‘아차! 독이다! 위험!’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 소리.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호흡은 멈추고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펴보았다.
화인화를 수발드는 은향단의 아이들이 비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뒷문이 소리없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괴한이 그림자처럼 안으로 스며들었다.
은서령이 그걸 느꼈을 때는 이미 그들이 은향단의 아이들을 덮쳐 가고 있을 때였다.
입을 열어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독기가 빠르게 내공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 뒷북치며 소리를 지르느니 기운을 한 줌이라도 아껴 자신을 공격해 오는 적을 물리쳐야 했다.
입술 끝을 깨물자 짜릿한 통증이 전신을 치달린다. 몇 번의 공격은 펼칠 수 있을 듯하다.
‘간악한 자들! 와라!’
그녀는 남은 기운을 모조리 끌어올리고 공격해 오는 자를 맞이해 쌍장을 내쳤다.
쿠웅!
억눌린 격돌음. 단 일격에 은서령은 뒤로 주르륵 물러섰다.
어지러움이 다시 심해졌다.
미향에 당하지만 않았다면 어림없었을 텐데 너무 방심했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시간이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물러서는 와중에도 채대를 풀어서 손에 쥐었다.
내공은 잠깐 사이 반 이상이 흩어졌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상대를 노려봤다.
이미 은향단의 아이들은 대부분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 대체 이들이 누구기에 자신들을 공격한단 말인가?
그때 또다시 가공할 힘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부릅뜬 그녀의 눈에 조금 전 자신을 물러서게 만든 자가 보였다. 그가 하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고 있다. 그의 손에서 밀려오는 막강한 경력.
자신이 정상이라 해도 당해낼 수 있을지 모를 정도다.
‘맙소사! 은향단의 아이들이 소리없이 당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은서령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채대에 혼신의 공력을 쏟아 부었다.
자신은 죽어도 화인화만큼은 지켜야 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절대 깨져서는 안 되는 약속!
깨문 입술의 비릿한 혈향을 느낄 시간도 없이 그녀는 밀려오는 경력을 향해 채대를 휘둘렀다.
웅웅!
소리없이 두 가닥 경력이 맞부딪쳤다.
“크읍!”
내장이 흔들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울컥 솟은 핏물이 입가를 타고 흐른다.
강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강해도 너무나 강하다.
그런데 왜일까? 공격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한 번만 더 손을 쓰면 자신을 죽일 수 있을 텐데도.
그제야 은서령은 어렴풋이 상대의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저들은 소리가 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그리고 다급해하고 있다. 왜?
눈이 마주치자 상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카랑카랑한 전음이 귀청을 파고든다.
“계집, 제법이구나. 갈길이 급하니 살려주마.”
은서령은 그의 말을 새겨들을 정신이 없었다. 다른 자가 혈도를 제압한 화인화를 어깨에 걸치더니 자신이 어찌할 새도 없이 방을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안 돼…….’
절박한 외침이 입 안을 맴돌았다.
그때 어디선가 짧은 소성이 들려왔다.
삐이익!
소성이 들리자 자신을 바라보던 자도 몸을 돌리더니 유령처럼 사라져 버렸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곧이어 소련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방문이 터져 나갔다.
부서진 방문 앞에는 석양이 지기 전에 보았던 서생이 서 있었다.
순간 은서령의 흐릿해져 가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저 사람이 있다면 그분도 있을 것이다.’
“인화를… 구해…….”
쥐어짜듯 한마디를 내뱉고서 옆으로 쓰러진 은서령을 보고는 유태청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는 진용을 따라 방으로 들어오더니 방 안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흠칫 이마를 찌푸렸다.
“산공독? 은서령이 당한 것이 그래서였나?”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 이유는 그만이 알 일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손녀가 납치라도 당한 듯 다급히 서둘렀다.
“화가 아이가 납치된 것 같군. 추적해야겠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진용이 먼저 신형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갔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추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상대가 내공으로 소리를 가둘 정도의 고수라면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진용에게는 추적할 방법이 있었다. 실피나가 있으니까.
“실피나!”
부르자마자 실피나가 튀어나왔다.
―주인아! 불렀어?
진용은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적을 쫓는다. 여자를 납치한 놈들이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빨리 찾아봐!”
―여자를 납치해? 알았어!
웬일인지 화를 내는 것 같다.
납치된 사람이 여자라서 그런가?
좌우간 엉뚱한 정령인 것은 분명했다.
진용은 실피나를 앞장세우고 신형을 날렸다. 유태청과 정광이 뒤를 따라 움직였다.
운아영은 백여 장을 쫓아가다 말고 유태청의 목소리가 들리자 뒤따르는 것을 포기했다.
“영아는 객잔에서 기다리거라!”
사실 단 백여 장 만에 세 사람과의 실력 차를 절실히 깨닫고 있던 터였기에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걸음을 멈췄다.
“휘유… 뭐 저리 빨라. 저 도사도 순전히 엉터리인 줄 알았는데…….”
오 리를 가지 않아 실피나가 납치범들의 행적을 확실히 찾아냈다.
놈들의 행적은 숭산 줄기의 서쪽 끝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유봉산 산줄기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진용을 비롯한 세 사람이 유봉산 입구에 다다랐을 때 실피나가 나타났다.
―나쁜 놈들이 저 앞에 있는 계곡 안으로 들어갔어, 주인아!
“수고했어. 가서 놈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지 살펴봐.”
―응. 걱정 마. 그리고 주인아, 그 나쁜 놈들 실피나가 혼내주고 싶은데…… 그래도 돼?
나쁜 놈들, 운운하며 슬며시 욕심을 부리는 실피나를 보고 진용은 흠칫 말을 조심했다.
“상황 봐서.”
폭주하면 또 천암산에서의 일이 재발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비록 그때에 비해 강해졌다곤 해도 겁나는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실피나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진용이 유태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놈들이 계곡 안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놈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제법 강한 자들인 듯합니다. 조심하시길…….”
“계곡이라면… 어느 계곡을 말하는가? 아무리 봐도 근처에 계곡은 없는 것 같은데.”
진용이 앞을 가리켰다.
“저 앞에…….”
곳곳에 솟은 나무들에 가려져 정확한 거리는 진용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실피나가 저 앞이라 했으니 얼마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다.
세 사람은 삼백여 장을 나아가서야 겨우 계곡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둠에 잠긴 계곡을 보며 유태청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용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먼 곳에서의 기척을 느꼈단 말인가?’ 꼭 그렇게 물어보는 눈빛이다.
진용은 못 본 척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멀 줄 누가 알았나?’
그러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앞만 노려보며 걸음을 옮겼다.
유봉산은 겉으로 보기엔 완만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깎아지른 절곡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험산이었다.
화인화를 납치한 자들이 들어간 계곡은 그러한 절곡 중의 한 곳이었다.
세 사람은 조심하면서도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