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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80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80화

 

80화

 

 

 

 

 

 

 

* * *

 

 

 

문사복 차림의 중년인과 부인으로 보이는 중년 미부가 나란히 절을 했다.

 

깊숙이 절을 하는 중년인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감격으로 인한 떨림이었다. 생전에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사람을 만난 기쁨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방을 나서면서도 오랜만에 개인적인 일로 손님이 찾아왔구나 하는 정도였다.

 

누굴까? 어떤 친구가 나를 찾아왔을까?

 

하지만 그는 정문이 보이자마자 얼어붙어 버렸다.

 

거기에 꿈에서조차 잊지 못한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절을 하고 일어선 그는 감격에 찬 얼굴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그의 어깨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숙부님을 다시 뵐 수 있다니…… 그저 하늘에 감사할 뿐입니다.”

 

유태청은 아무런 말도 않고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은 지병으로 이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유태청의 눈이 잘게 떨렸다.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숙부님을 뵙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랬… 나? 그 친구… 조금만 더 살지…….”

 

“그래도 숙부님 같은 분을 친구로 두었으니 생에 후회는 없다 하셨습니다.”

 

그랬을 것이다. 밤새 함께 술을 마신 그날도 그랬었다.

 

 

 

“자네가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친구로 생각해 주다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네.”

 

 

 

그는 결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진 능력이 대단함에도 결코 남 앞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던 사람이었다. 천제성의 군사로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에도 일언지하에 거절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친구가 된 것을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죽다니…….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이 아픈 것은 다른 누구와 다르지 않았다.

 

‘운 형, 정말 미안하오.’

 

유태청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아이들은 몇이나 되느냐?”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셋을 두었습니다.”

 

“허허허, 그 사람 그래도 손자 복은 나보다 훨씬 낫구나.”

 

유태청이 고졸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였다.

 

“아버님, 소자 현이옵니다.”

 

문밖에서 나직하면서도 청량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중년인, 운가명의 말이 떨어지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제 스물이 조금 넘어 보이는 청년과 먼저 들어온 청년보다 체구가 훨씬 커 보이는 소년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로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운가명이 차례대로 두 아들을 가리켰다.

 

“이 아이는 문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문강이라고 합니다.”

 

그사이 운가명의 부인인 소씨가 두 아들을 향해 말했다.

 

“그리 서 있지만 말고 숙조부님께 인사 올리거라.”

 

형인 운문현이 먼저 절을 했다. 그러자 운문강도 분위기에 휩쓸려 멋도 모르고 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뭔가를 눈치 챈 듯 유태청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 보구나.”

 

“아버님께서 그리하라 하셨습니다. 자칫 숙부님의 이름에 누가 될까 해서…….”

 

“원, 운 형도…….”

 

절을 마치고 고개를 든 운문강이 운가명을 바라보았다, 뭔가 설명을 기다리는 눈빛으로.

 

그때 유태청이 운문강을 보며 물었다.

 

“산운팔검(散雲八劍)을 얼마나 익혔느냐?”

 

운문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표연산광(漂燕散光)은 익혔느냐?”

 

운문강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예, 숙조부님.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시는지……?”

 

그 모습에 운가명이 슬며시 나서서 말했다.

 

“이 아이들은 그 무공이 십절검존의 열 가지 검학 중 하나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숙부님.”

 

“흠, 그래? 조금 서운하구나. 나 유태청의 무공을 익히면서도 나에게 조금도 고마워하는 눈치가 아니지 않느냐?”

 

그제야 뭔가를 눈치 챈 운문현과 운문강이 뜨악한 표정으로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십절검존? 그리고 유태청?

 

맙소사! 자신들의 숙조부라는 분이 그럼……?

 

운문현과 운문강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해 있을 때였다.

 

“아버님, 차를 가져왔습니다.”

 

밖에서 가녀리면서도 차분한 목소리가 옥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이 들려왔다.

 

순간, 두충과 정광의 고개가 동시에 문 쪽으로 돌아갔다. 실피나의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에 한번 데인 진용만 그러려니 하고 있을 뿐.

 

마침내 문이 열리고,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안으로 들어서자 두충과 정광의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진용의 눈도 커졌다.

 

세상에……!

 

얼굴은 목소리만큼이나 예뻤다. 

 

그런데 키가 컸다. 그것도 많이! 

 

자신들 중 제일 큰 두충보다 더 커 보였다. 

 

거기다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러 가는 장수처럼 날 선 기세. 

 

그리고 결정적으로, 입고 있는 옷이 무복이었다.

 

그들은 똑같이 생각했다.

 

‘어째 보통 여자가 아닌 것 같은데?’

 

세르탄만 조금 다르게 생각할 뿐.

 

‘우와! 진짜 멋진 여자다!’

 

운아영은 방 안으로 들어서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에 놀람이 담겨 있자 싸늘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거의 동시에 세 사람의 눈동자가 번개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자들이란…… 똑같다니까. 흥!’

 

운가명이 그런 운아영을 가리키며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아이가 아영입니다, 숙부님.”

 

“아! 그래?”

 

표정을 보니 유태청도 놀랐나 보다. 

 

그가 알까, 운아영이 조금 전에 한 생각을? 결국 그도 똑같은 남자 중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운아영은 아버지가 노인에게 숙부라 칭하자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눈치로 봐서 아버지나 어머니도 그렇고, 오빠나 동생이 긴장한 표정으로 숙연하게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 것이다.

 

“아영이에요, 숙조부님.”

 

그래도 목소리만은 애교 만점이었다. 

 

유태청은 정말 즐겁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정말 아이들을 잘 키웠구나.”

 

잠시 후.

 

운문현에게서 앞에 있는 숙조부가 바로 십절검존이라는 말을 귓속말로 들은 운아영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예에? 수, 숙조부님이…… 십.절.검.존…… 요?”

 

그러더니 잠깐 나가 있으라는 운가명의 말에도 애걸복걸하며 남아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평소의 그녀 모습을 알고 있는 운가명은 도대체 눈앞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딸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유태청이 나섰다.

 

“내 조금 있다 너희들을 따로 보고 싶구나. 그러니 잠깐만 나가 있도록 해라.”

 

누구의 명인데 듣지 않으랴. 

 

더구나 따로 만나겠다는 말에 숨은 뜻을 나름대로 짐작한 그녀는 환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호호호! 그럼 할아버지, 아버지하고 얘기 나누세요. 어머니, 오빠, 강아, 뭐 해? 빨리 나가지 않구.”

 

자식들이 모두 나가자, 운가명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숙부님. 평상시에는 절대 저러지 않는 아인데…….”

 

“아니다. 정말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구나. 허허허허…….”

 

유태청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 같자 운가명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하의 절대자가 즐거워한다. 그것도 자신의 자식들을 보고서.

 

자식을 잘못 키우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내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운 형의 지혜를 빌릴까 해서였다. 돌아가신 것도 모르고 말이다. 허…… 참으로 민망하구나.”

 

유태청의 씁쓸해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운가명이 물었다.

 

“그리 생각해주신 것도 아버님의 능력을 높이 봐주셨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숙부님께선 너무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운가명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무엇을 알고자 하시는지 모르지만, 소질에게 말씀해 보시지요.”

 

“너에게?”

 

유태청의 눈빛이 깊은 곳에서 빛을 발했다. 

 

자신이 아는 운가명은 매우 뛰어난 서생이었다, 이십수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은 풍림장의 대를 이어받은 풍림장주다.

 

당금 재야의 유문(儒門) 중에서 가장 그 세력이 크다는 풍림당의 본산, 풍림장의 장주.

 

“내가 깜박했구나. 네가 바로 당금의 풍림당주인 풍림장주라는 걸.”

 

“소질이 미욱해서 숙부님을 도울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한다면 아니 한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되옵니다.”

 

곁에서 유태청과 운가명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용은 그제야 왜 유태청이 정주로 가자고 했고, 정주에 들어서자마자 이 고색이 창연할 뿐 별다른 특색도 없는 자그마한 장원으로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풍림당(風林堂)!

 

고가장도 학자의 가문이었기에 진용도 그 이름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다. 비록 어릴 때 들어서 가물거리기는 했지만.

 

그리고 조금 더 알게 된 것은 문연각에 있을 때였다. 그들 중에도 풍림당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몇 있었으니까.

 

‘놀랍구나, 저 유순해 보이는 사람이 풍림당주라니.’

 

그때 유태청이 진용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이야기해 보게,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유태청이 진용을 돌아보며 하는 말에 운가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행이라고 해도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었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오히려 젊은 서생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사가 조금 신경 쓰였을 뿐.

 

그런데 유태청은 도사가 아닌 젊은 서생에게 말을 넘기지 않는가. 

 

그리고 옆의 두 사람, 특히 자신이 나름 주시하고 있던 도사조차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진용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이런 사람을 그저 평범한 장원의 주인 정도로만 봤다니. 진용아, 진용아. 아직 멀었구나.’

 

반면에 운가명은 하마터면 경악성을 내지를 뻔했다.

 

한없이 깊어 보이는 눈. 자신의 능력으로도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 지경이다. 기껏해야 자신의 아들 나이밖에 되지 않는 젊은이이거늘.

 

내심 놀라움과 자책이 뒤섞여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운가명에게 진용이 물었다.

 

“혹시 십이 년 전, 고씨 성의 학자가 동창의 밀옥에 갇혔던 사건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신지요?”

 

흠칫, 정신을 차린 운가명은 진용의 물음을 곱씹어봤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십이 년 전이라면, 삼왕과 양 태감에 의해 학자 한 사람이 무고하게 갇혔던 그 사건을 말함인가? 그 사건은 몇 달 전 밀옥이 부서지고 학자가 사라지면서 끝난 것으로 알고 있네만.”

 

풍림당의 정보력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는데, 과연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말하기가 좀 더 쉬워졌다.

 

하지만 그전에 밝혀야 할 것이 있었다. 

 

상대는 풍림당의 당주. 자신조차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얼마나 도우려 할 것인가. 

 

문제는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그 한계를 정해야 했다.

 

그때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상대는 풍림당의 당주임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유태청을 믿고서. 

 

그런데 자신은?

 

‘잘못되면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

 

진용은 조금 더 편해진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선 저를 정식으로 소개하지요. 저는 금의위의 천호, 고진용이라 합니다.”

 

순간 운가명의 크게 뜨인 눈이 일시지간 흔들렸다.

 

금의위의 천호라고? 저렇게 젊은 사람이?

 

“그리고 밀옥에 갇혔던 분이 바로 저의 아버님 되십니다.”

 

흔들리던 눈빛에 더할 수 없는 경악이 곁들여졌다.

 

“어찌 그런……?”

 

그런 운가명을 바라보며 진용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또한…… 임시로 수천호령사의 지위를 맡고 있습니다.”

 

쿵!

 

그 말에 운가명이 벌떡 일어섰다.

 

경악으로 물든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격렬히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그런 눈빛.

 

결정이 쉽지 않은 듯 그는 입술마저 깨물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유태청조차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자신이 이곳으로 온 것이 혹시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나 싶어서 곤혹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잠깐의 시간이 억겁처럼 흘렀다.

 

진용은 기다렸다.

 

자신은 모든 것을 내놓았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반 각이 지났다. 

 

진용은 찻잔을 들어 식은 찻물의 향기를 음미하고는 천천히 입술을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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