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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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79화
79화
팽기한은 팽호중의 시신에서 찾아낸 목갑을 가지고 직접 호가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팽무중과 팽호중의 복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녀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팽가가 계속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위지홍과 교은형은 각자 회의인의 시신을 한 구씩 짊어졌다. 그들은 태원으로 가지 않고 바로 하남성 노군산에 있는 천제성으로 가기 위해 남하하겠다고 했다. 복수의 염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적이 누구냐!
“나중에 낙양에서 봤으면 싶군. 이월 초하루를 전후해 낙양의 성화객잔에서 기다리겠네.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네.”
한 가지 의아한 일은 유태청이 위지홍을 따라가지 않고 진용을 따라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유태청만이 알 일이었다.
진용도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하긴 했지만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3
두충은 단 하루였지만 세상이 온통 분홍빛으로 보였다.
정광이 없는 세상이 이렇게 밝을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태원에 남아 있게 된 것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며 얻은 행운 중 가장 큰 행운 같았다.
“음하하하! 따르라니까?”
그래서 한잔 걸쳤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솔직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까짓것 술 좀 마셨다고 설마 패 죽이랴?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옆구리에는 분단장한 기녀까지 끼워져 있었다.
보드랍고 나긋나긋한 데다 만지면 분이 묻어나올 것 같은 살결, 미치도록 기분 좋은 날이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장포를 비집고 들어와 가슴의 꼭지를 간지를 때면 두충은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냥 정광이 천암산에서 콱 뒈져 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눈물 한 방울 흘려주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닌가 말이다!
“호호호! 공자님은 정말 멋진 몸을 가지고 계시네요.”
기녀의 목소리가 간드러진다. 초희라고 했던가? 부벼대는 가슴이 제법 단단하다.
옷 밑으로 살짝 손을 넣어봤다. 호박보다는 작지만 조롱박보다는 큰 것 같았다.
이게 바로 세상 사는 맛이거늘! 그 미친놈의 도사 때문에 황사 바람을 씹어 먹으며 마부를 해야 하다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바로…….”
“아주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이다, 그 말씀이시죠?”
여인이 말을 끊는데도 밉지가 않았다. 밉기는커녕 알아주는 것이 대견하기만 했다.
“음하하하! 그럼! 어이구, 이쁜 것!”
“아이, 너무 세게 주무르면 터져요.”
“우흐흐흐, 걱정 말아라. 아무리 세게 눌러도 터지지 않는 것이 세상에 딱 하나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아니까.”
“으흥!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신다면 공자님은 아주 높으신 분…… 아이…….”
“그럼 높으신 분이지……. 우흐흐흐, 내가 바로…….”
그때 문이 제법 세차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들은 죽을 둥 살 둥 일하러 다니는데 술이나 퍼마시는 돼먹지 못한 놈이지. 그렇지?”
정신이 반쯤 이 세상을 떠나 천국을 노닐던 두충은 그 말을 금방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 내가……. 어떤 놈이냐?”
나중에야 이상함을 느낀 두충은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감히 대금의위의 위사에게 개가 풀 뜯다 재채기하는 소리를 하는 놈이 있다니!
순간, 그는 고개를 돌린 그대로 툭 때리면 깨져 버릴 것 같은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석고상 같은 얼굴은 숨 한 번 쉴 동안에 색깔이 열두 번도 더 변했다. 팔색조가 울고 갈 정도로 빠르게.
하루 동안의 행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악몽의 시간이 도래했다.
“도, 도, 도, 도장님.”
“내가 네놈 때문에 기루엘 다 와보는구나.”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고, 찢어진 곳이 멀쩡한 곳보다 더 많아 보이는 정광의 도복. 흉신악귀가 따로 없었다.
그것이 아니라도 두충에게는 아무리 무서운 흉신악귀도 정광의 발끝을 따라오지 못했다.
“흐.흐. 어떻게…….”
“벌써 왔냐고?”
“그게 아니고…… 켁!”
정광의 손바닥이 두충의 뒤통수를 내갈겼다.
“가서 죽었으면 펄펄 날아다닐 정도로 기분이 좋았겠지?”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귀신이 따로 없네.’
속마음이야 정광이 귀신처럼 보였지만 겉으로까지 표를 낼 수는 없는 일. 두충은 재빨리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헤헤, 이제나저제나 적들을 물리치고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술상을 봐놨는데, 안 오시기에 제가 그만 먼저……. 그러지 마시고 앉아서 술이라도 한잔…….”
하지만 정광은 여름날 쉰 옥수수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쫓듯이 손을 내저었다.
“아아, 냄새나는 입 그만 벌리고, 일단 이리 와봐라.”
그러더니 옆에서 떨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기 조용한 데 없나, 여도우?”
여인은 겁먹은 얼굴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을 가리켰다.
“저, 저기…… 뒤쪽이 조용…… 밤에는 조금 시끄럽지만, 아직은 조용할 것입니다요, 도사님.”
잠시 후, 정광이 두충의 뒷덜미를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단지 얼굴색만 혈색 좋던 붉은 얼굴이 지붕 위에 쌓인 눈보다 더 하얗게 변해 있고, 다리를 약간 절 뿐.
안으로 들어선 정광이 두충을 향해 말했다.
“비밀 엄수. 알지?”
“당연합죠!”
“그럼 알아서 해. 내가 여기 들어오느라고 힘 좀 썼더니 기운이 많이 빠졌거든.”
두충이 절대명령이라도 받은 양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밖에 누구 없나? 술! 그리고 여기서 제일 예쁜 아가씨!”
“둘.”
두충의 하얗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둘!”
* * *
“어젯밤에 왜 그렇게 늦었습니까?”
진용이 태원부를 나서며 물었다. 정광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몸이 안 좋아서 보신 좀 하느라고…….”
“두 위사랑 같이요?”
“어, 두 위사가 내 상처를 보더니 울면서 그러더군. 자기가 놀고 있는 사이 하마터면 죽을 뻔한 도장님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그러면서 자신이 몸보신을 시켜주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왜 옷에서 이상한 냄새가 납니까? 여인의 분냄새 같은데…….”
‘개코같이 냄새도 잘 맡네.’
킁킁거리며 도복에 코를 갖다 댄 정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제 어떤 여자가 나에게 넘어졌는데, 그때 묻은 것인가?”
“그 여자, 분을 제법 많이 발랐더라구요.”
두충이 마부석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진용과 나란히 앉아 있던 유태청이 지나가듯이 입을 열었다.
“분 냄새가 아니라 향내 같군. 몸에 바르는 유향 말이야.”
‘진짜 개코는 따로 있었군. 이십 년 넘게 혼자 살았을 텐데, 그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니…….’
정광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나에게 넘어지면서 엉덩이가 내 발에 걸렸으니 그런가 보죠, 뭐.”
고개를 갸웃거린 진용이 의아한 어투로 중얼거려다.
“두 위사의 손에서도 그런 냄새가 나던데……?”
“…….”
진용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심지어 유태청까지.
그사이 두 마리 노마가 끄는 마차는 두충이 특별히 고삐를 잡아끌지 않아도 알아서 걸음을 옮겼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따뜻한 곳을 향해.
“정주에 마침 내가 아는 사람이 살고 있네. 그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유태청이 태원부를 떠나기 전 말한 정주를 향해서.
그리고 그 와중에 진용의 나이 스물이 되는 원단이 지나갔다.
9장. 배움에는 끝이 없다
1
구양무경은 차가운 표정으로 매화나무를 바라보았다.
매화나무는 낙엽마저 다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 속에서는 두 달 후에 필 백매화가 미리 피어나고 있었다. 서리서리 하얀 백매화가.
“네 명이 죽고 두 명이 부상을 당했다? 척천단원도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중상을 입은 상태고?”
구양무경의 뒤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상관욱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죽인 자에 대한 공은 나중에 논할 일이었다.
희생이 없었다면 그것은 대단한 전과가 되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전과를 자랑할 수도 없었다.
“그렇사옵니다.”
“그중 무영천귀 둘과 척천단원 둘은 한 놈에게 당했고?”
“다른 협조자가 둘 있었사옵니다.”
구양무경은 백매화 가지를 하나 끊어냈다. 나뭇가지는 벌레가 먹어 울퉁불퉁 홈이 파이고 썩어 있었다.
그는 눈도 돌리지 않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가지에 벌레가 먹었군. 네 생각에 벌레 먹은 가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벌레 먹은 가지는 누구를 말함인가. 나? 아니면…….
이를 악 다문 상관욱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자신의 주군은 망설이는 수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그는 구양무경이 화를 내기 전 입을 열어야 했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던 구양무경이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잘라 버려야지! 단호하게!”
구양무경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가 창백하게 질린 상관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말이야,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으스러져라 쥐어진 상관욱의 손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기회를 주겠다는 말씀이신가?
“먼저 벌레를 잡는 게 순서 아니겠느냐? 그래야 다른 나무로 옮겨가지 못하지.”
“주군!”
“너는 무영천귀 여덟 명과 척천단 다섯이 있는 곳에 쳐들어와서 살아나갈 자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것도 셋을 죽이고 둘에게 부상을 입힌 채 말이다.”
등줄기로 흥건한 땀이 흘러내린다.
“많아야 스물 정도라 생각합니다.”
“스물이라…….”
구양무경은 상관욱의 말을 되뇌며 다시 백매화나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틀렸다. 잘 해야 열 정도야.”
뚝!
또 하나의 가지가 끊어졌다.
열! 십천존을 말함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욱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결코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러니 네가 쓸데없는 일로 방심하지만 않았다면 더 이상의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을 게야. 놈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고.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십천존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곳에서 놈이 빠져나갔다. 바로 너 때문에!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과 엽시랑과의 신경전을.
어떻게……?
“예, 주군.”
“이번에는 네가 공격자가 되어라. 인원의 충원은…… 없다.”
죽이지 못하면 죽으라는 말. 그만큼 죽을 각오를 하고 공격하라는 뜻.
상관욱은 비장한 표정으로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였다.
“반드시! 죽이겠사옵니다, 주군!”
구양무경은 습관처럼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리고는 손을 털고 돌아섰다. 그리고 걸어가며 말했다.
“어쨌든 임무는 훌륭히 수행했다. 공과는 분명히 해야겠지.”
“감사하옵니다, 주군!”
2
정월 열이틀, 태양이 천공의 한가운데 걸친 정오 무렵, 하남성 정주의 북문으로 네 사람이 들어섰다.
하얀 수염의 노인 하나와 중년 도사, 그리고 무복을 입고 등에 커다란 봇짐을 멘 젊은이와 그보다 더 젊어 보이는 서생.
바로 태원을 떠난 진용 일행이었다.
지난 보름 동안에 그들의 행색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정광이 찢어진 도복을 벗고 새 도복으로 갈아입었다는 것, 그리고 마차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마차는 황하를 건너기 전 반값에 팔아버렸다.
하는 수 없었다. 마차 값이나 마차가 황하를 건너는 도선비나 비슷했다. 마차 도선비를 자신더러 내라는 정광의 말에 두충은 두말도 않고 마차를 팔아버렸다.
‘내가 미쳤수?’ 하는 말과 함께.
그들은 북문을 통과하자마자 마치 목적지가 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일각 후, 그들은 작은 현판이 달린 한 채의 작은 장원 앞에 멈추어 섰다.
[풍림장(風林莊)]
유태청은 정문 위에 달린 작은 현판을 바라보고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장원의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