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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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69화
69화
격전이 벌어졌음을 말해주는 수많은 발자국. 그리고 그로 인해 흐트러져 있는 눈. 여기저기 핏물에 녹은 눈이 선홍빛을 발하고 있다. 아직 얼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오공혁이 재빨리 핏물을 살펴보고는 위지홍에게 말했다.
“한 시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령주.”
“비령단의 사람들도 모두 안으로 들어갔나?”
“그게 이상합니다. 몇 사람은 남아 있어야 정상인데…….”
위지홍이 점점이 이어진 핏자국을 바라보며 지그시 이를 깨물었다.
누구의 피인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 그를 찾으면 보다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장서라, 핏자국을 따라간다!”
핏자국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짙어졌다.
이십여 장을 들어가자 여기저기 덩어리져 뭉쳐 있는 핏덩이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언뜻 팔꿈치 부위에서 잘린 듯 보이는 팔 하나가 소나무 둥치 아래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는 사방 어디에도 피가 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쳤는지, 대체 누가 쫓기고 있는 것인지.
일단은 방향을 좌측으로 비스듬히 꺾어서 흔적이 가장 확실한 쪽을 따라가기로 했다.
첫 번째 시신을 발견한 것은 팔뚝을 발견한 곳에서 십여 장가량 더 들어갔을 때였다.
허리가 부러진 떡갈나무 아래, 후두부가 함몰된 채 거꾸러져 있는 자가 보였다.
삼십 초반으로 보이는 무사였다. 그는 팔 하나가 팔꿈치 아래로 잘려 있었는데, 아마도 조금 전에 본 팔뚝의 주인인 듯했다.
아는 자인 듯, 앞서 가던 오공혁이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비령단 이대주 휘하에 있는 사경삼이란 잡니다, 이령주!”
숨이 끊어진 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에는 매우 다급한 표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행은 그를 반드시 눕혀놓았다. 그러나 묻어주지는 못하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렇게 다급히 걸음을 옮기던 중, 십오륙 장 떨어진 곳에서 진용이 곧바로 몇 구의 시신을 더 발견했다.
“이런……!”
진용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목에 구멍이 뚫린 사람, 강한 충격에 눈알이 튀어나온 사람, 그리고 얼굴에서 가슴까지 길게 베인 채 죽어 있는 사람.
목에 구멍이 난 시신을 본 진용은 얼마 전에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팽가의 마차에 있던 여인의 시신.
“요마……?”
진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위지홍이 다가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요마의 요공마지(妖功魔指)인 것 같네.”
오공혁이 즉시 시신의 신분을 밝혔다.
“이자들 역시 이대주 휘하에 있던 자입니다, 령주!”
위지홍의 눈이 더욱더 차갑게 변했다.
아무래도 비령단의 이대가 괴멸당한 듯했다.
연락 임무를 맡은 자가 쫓기다 죽었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단 하나.
―고리가 끊겼다. 그리고 사냥감에게 사냥꾼이 쫓기고 있다.
“자네 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진용은 위지홍의 말에 깊어진 눈으로 숲 속을 바라보았다.
산 곳곳에서 끈적끈적한 기운이 감지된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시신이 되어 기다리고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봐야겠군.’
그때였다. 바람 소리에 비명이 섞여 메아리쳤다.
“으아아…….”
소리가 너무 작아 바람 소리로 착각할 정도다. 문제는 비명이 터진 위치를 알 수가 없다는 것.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진용이 한 걸음 나섰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자네가?”
“위지 대협도 아시다시피 저에겐 남다른 재주가 하나 있지요.”
“그렇군. 그럼 자네가 앞장서 주게.”
진용이 앞장서자 정광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크게 겁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진용의 곁이 제일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렇게 정광이 진용을 바짝 뒤따르자 위지홍과 오공혁이 움직이고, 그들 뒤로 팽기한과 팽호중, 팽무중이 뒤따랐다.
진용은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가볍게 미끄러졌다.
그러다 정광과의 거리가 이 장가량 떨어지자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실피나.”
앞에 서 있던 소나무에서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잔설이 흩날리는 가운데 실피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실피나가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 불렀어?
당연히 불렀으니까 나온 것 아냐?
진용은 한마디 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눈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실피나, 저 앞쪽 산속에 사람이 있는지 한번 살펴봐, 최대한 빨리.”
―알았어. 그것만 하면 돼?
“일.단.은!”
적으로 추정되는 자들의 기운이 근처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비록 여기저기 미세한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흔적을 토대로 적을 쫓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는 상황.
실피나라면 충분히 빠른 시간 안에 산속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실피나가 바람이 되어 사라지자 진용은 세르탄을 불렀다.
‘세르탄, 혹시 내가 느끼지 못하고 깜박 놓친 기운이 느껴지면 말해.’
‘캬캬캬, 걱정 마! 아무렴 내가 저 덜떨어진 실피나만 못하겠어?’
뒤통수에서 살짝 열이 오른다. 그러자 주위의 기운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느껴졌다.
기이한 느낌. 진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르탄에게 물었다.
‘세르탄, 혹시 나 몰래 뭐 숨기는 거 없어?’
‘어? ……뭘? 그런 게 어딨… 어?’
어째 말투가 수상하다. 분명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와서 말수도 적어진데다, 가끔씩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뒤통수에 열이 솟는 것이 분명 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세르탄에 대해 신경을 더 써야 할 것만 같다, 이 엉뚱한 말썽꾸러기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뭐 없다니까 일단은 믿겠는데, 혹시 숨기는 것 있으면 알아서 해.’
‘어… 진짜 없어…….’
진용이 혼자 고개를 흔들고, 중얼거리고, 눈을 번뜩이자, 뒤따라가던 정광이 넌지시 물었다.
“왜? 뭐가 느껴지는가?”
“별거 아닙니다. 만일 어떤 멍청한 작자고 간에 엉뚱한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을 뿐입니다.”
“응? 그게 뭔 말인가? 혈혈구마 말인가?”
“그런 게 있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죠.”
뒤통수가 화끈거린다. 제풀에 놀란다더니, 역시 뭔가가 있는 듯하다.
진짜 수상해…….
진용이 앞장서서 빠르게 전진하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를 따랐다.
그들은 진용이 뭔가를 느끼고 움직인다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나아가면서도 멈칫거림이 없는 발걸음이 워낙 자신에 차 있지를 않은가.
게다가 바람 소리와 섞여 잘 들리진 않지만 싸우는 소리가 점점 더 잦게 들리는 판이다. 그들은 다급한 마음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일행은 반 각도 지나지 않아서 능선 위에 도착했다.
휘이이잉! 챙!
“아악!”
바람 소리에 섞인 메아리가 좀 더 크게 들린다.
하나 그뿐이다. 방향을 종잡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메아리가 몇 번은 반사된 듯하다.
진용은 능선 위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추고는 사방을 살펴보았다. 그때, 몸속에서 익숙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실피나가 돌아오는가 보군.’
아니나 다를까, 실피나가 저만치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인아! 주인아!
뭘 봤는지 잔뜩 흥분한 얼굴이다.
진용은 왜 그런 얼굴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바로 뒤따라온 정광으로 인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
‘이거 미친놈 취급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실피나에게 말을 걸어야 하나?’
잠깐 망설일 때였다. 그때 문득 스치는 생각!
진용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전음! 그런데… 될까? 되면 좋은데……. 좋아, 까짓 것 한번 해보지 뭐.’
진용은 천천히 전음으로 실피나를 불러봤다.
<실.피.나.>
―…….
대답이 없다.
‘음, 역시 안 되나?’
진용은 실망한 표정으로 실피나를 바라보았다.
‘전음으로 부를 수만 있으면 진짜 좋을 텐데…….’
그때다. 멍하니 있던 실피나가 갑자기 귀를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으로 쑤시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 저거 혹시?’
<실피나, 내 말 들려?>
다시 전음을 펼쳐 실피나를 불러봤다.
그제야 실피나가 커다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귀를 쑤시던 손가락을 빼고는 방정을 떨며 웃어댔다.
―어머나, 어머나! 좀 전에 주인이 부른 거야? 오호호호! 신기해. 깜짝 놀랐잖아. 귓속에서 누가 부르기에 나는 내가 제정신이 아닌 줄 알았지 뭐야?
‘틀린 생각은 아니지 뭐. 하여간 방정맞기는…….’
어쨌든 대단한 수확을 얻었다. 이제는 남의 눈치 안 보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실피나, 뭘 보고 왔는지 말해봐.>
그러자 다시 실피나의 얼굴에 흥분된 기색이 떠올랐다.
―인간들이 여기저기 많이 죽어 있는데, 지금도 신나게 싸우고 있어.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는데 왜 저런 표정이지? 그리고 뭐라고? 신나게 싸워?
의문이 일었지만 우선은 급한 질문이 먼저였다.
<여기서 얼마나 되는데?>
―작은 산 세 개는 넘어야 돼.
<세 개? 좋아, 실피나, 가자!>
―또…… 가? ……귀찮은데.
<귀찮기는! 그동안 푹 쉬었으면서 뭐가 귀찮아!>
―알았어. 가지 뭐. 그런데…… 거기가면 나도 싸우게 해줘야 돼?
뭐? 저도 싸운다고?
진용은 어이가 없어 세르탄에게 물었다.
‘세르탄, 정령들도 싸워?’
세르탄이 별소리 다 들어본다는 투로 말했다.
‘당연하지.’
당연하단다, 정령이 싸운다는 게.
정령이라는 것이 단순히 정의 결정체로만 알고 있었던 진용으로선 어이가 없는 대답이었다.
‘설마…… 머리카락 잡아당기며 싸우지는 않겠지? 바람으로 날려 버리나? 어? 그건 말이 되네?’
전에 본 것처럼 나무의 뿌리를 뽑을 정도의 바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듯했다.
그때 세르탄이 득의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재빨리 끼어들었다.
‘시르, 여태 그것도 몰랐어? 쿠하하하! 그럼 이 위대한 마계의 대전사 세르탄님이 가르쳐 주지!’
완전 신이 났다. 그러면서 마치 큰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정령을 이용해 전투 하는 법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르가 아는 마법 중에서 바람에 관계된 마법을 구동시키면 실피나가 그에 맞게 움직이는 거야. 쉽게 말해서 시르의 기를 이용해서 실피나가 시르 대신 싸우는 거지. 그것도 귀찮으면 실피나가 능력껏 마음대로 싸우게 놔두던가. 간단해.’
생각해 보니 그도 그렇다. 정말 간단하다, 그렇게 간단한 것을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세르탄의 말투가 오히려 우습게 들릴 정도로.
‘난 또……. 세르탄이 하도 거창하게 말해서 대단한 건 줄 알았더니, 별것도 아니네 뭐.’
진용은 일단 세르탄의 가르침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 치켜세워 줘봐야 좋을 일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고는 세르탄이 반박할 틈도 없이 실피나를 향해 말했다.
<실피나! 천천히 앞장서 봐.>
―어, 알았어. 근데 주인아, 힘들면 내가 들고 갈까?
그 말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진용의 두 눈이 점차 크게 뜨였다.
뭘? 설마 나를?
진용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들고 간다고? 그럼 보는 눈만 없으면 힘들게 경공을 펼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내가 짐이냐, 들고 가게? 뭐 안고 간다면야…….
‘우흐흐흐,. 그러고 보니 실피나가 누구보다 쓸모가 많네. 이제야 그걸 알다니.’
그 말에 세르탄이 즉시 반응을 보였다.
‘누구? 시르, 설마……?’
‘왜? 솔직히 말해서, 엉큼하게 속에다 뭘 숨기고 다니는 말썽꾸러기보다야 예쁜 실피나가 훨씬 낫지 뭐. 세르탄이 다 털어놓는다면 몰라도.’
계속 대들지 않는 것이 아직은 털어놓을 생각이 없는가 보다. 그럴수록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용은 속으로 씩 웃으며 실피나에게 말했다.
<그냥 가. 내가 뒤따라갈 테니까.>
―응.
알았다는 듯 실피나가 바람을 살랑이며 둥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