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63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63화
63화
진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혹시 그 한 가지 일이라는 것이 저와 함께 범인을 잡아보자는 것인가요?”
“말하기가 쉽군. 바로 그거네.”
“그런데 왜 하필 저죠? 귀하 정도라면 강호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일 텐데, 굳이 저 같은 무명인을 동료로 삼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위지홍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하에 고수는 많지만, 백 장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나를 감지할 고수는 거의 없네. 나는 자네의 그런 능력이 필요한 것이야.”
진용은 잔잔하니 가라앉은 눈으로 위지홍의 강한 눈을 직시했다.
팽가의 일은 그에게 별 관련이 없는 일이다. 그리 생각하면 거절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그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강호의 일을 해결하려면 강호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번 일은 강호에 동화될 기회라 할 수도 있었다.
‘그리 무의미한 일만은 아닐 것 같군. 강호를 좀 더 알 기회도 될 것 같고…….’
진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제 할 일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바쁩니다. 그러니 만일 함께 합작을 하려면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위지홍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진용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짧으면 닷새, 길면 열흘 정도 걸릴 겁니다.”
“닷새에서 열흘 사이라…….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군. 그럼 그동안 함께 다니지.”
뜻밖의 말에 진용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함께 다닌다고요?”
“가는 방향을 보니 어차피 행선지가 차이날 것 같지는 않군. 왜, 싫은가?”
“방향이 같다면 태워드리지 못할 것도 없지요.”
같이 가다 보면 범인이 누군지, 누가 팽가의 고수를 그토록 쉽게 죽였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함께 다닐 거라면 이름 정도는 알아야할 것 같은데요.”
진용의 말에 위지홍은 잠시 머뭇거렸다.
밝히지 못할 것도 없었다. 조금 놀랄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될 테니까.
“나는…… 위지홍이라 하네.”
진용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는 고진용이라 합니다.”
정광도 시큰둥하니.
“정광이우.”
“두충이외다.”
두충이 이름을 말하는 사이 진용과 정광은 마차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걸 보고 멍하니 서 있던 위지홍은 얼떨결에 자신의 별호마저 밝혔다. 목에 잔뜩 힘을 주고.
“강호의 친구들은 나를 흑성묵검(黑星墨劍)이라 부르지.”
-내가 바로 흑성묵검 위지홍이란 말이다!
꼭 그런 말투로.
하지만 누구 하나 그의 이름과 별호에 관심을 갖고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위지홍은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천제팔성(天帝八星) 중 하나인 흑성묵검 위지홍이라는 이름 자체를.
위지홍은 문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하! 하하!”
두충은 별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눈빛으로 위지홍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생긴 건 멀쩡한데…….
“안 탈 거요? 아참! 안은 비좁을 텐데, 어떻수? 마부석에 타지 않겠수?”
5
용성에서 하루를 쉰 진용 일행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낭아산(狼牙山) 동남쪽 보정(保定)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당조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진용은 위지홍에게 어렴풋이 팽가의 무인들을 죽인 범인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을 죽인 자는 요마(妖魔)라고 하네.”
요마?
세 사람 모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는 듯 위지홍의 설명만 기다렸다.
위지홍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요마도 자신과 다름없이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 요마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는 혈혈구마(血穴九魔) 중의 셋째라네.”
그제야 진용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개개인의 별호는 모르지만 혈혈구마라는 이름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진용이 놀란 표정을 짓자, 정광이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며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놈들이 누군데 자네가 놀라나? 별호가 살벌하긴 하네만…….”
“잘은 모르지만, 혈혈구마라면 이미 이십 년 전에 종적을 감췄다는 자들입니다. 마도의 인물들로 그 당시에도 대단한 고수들이었다고 하더군요.”
위지홍은 정광의 말에 웃음이 목구멍까지 기어나왔지만, 겨우 눌러놓고 말을 조금 더 보탰다.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구마 중 셋이 일시에 모습을 드러냈지.”
“이십 년을 처박혀 있었다면 늙어 죽을 때가 다되었을 텐데, 그런 놈들이 뭐 처먹을 게 있다고 다시 기어나왔단 말이오?”
정광이 툭 쏘듯이 묻자 위지홍은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도장의 말대로 죽을 때 다 된 작자들이 뭐 하러 기어나왔는지 모르겠소.”
그의 형제들이 보았다면 기함할 일이었다. 흑성묵검이 저렇게 웃을 때가 있다니!
그때 진용이 질문을 던져서 위지홍을 떠보았다.
“그자가 무엇 때문에 팽가의 사람들을 죽였을까요? 그저 살인을 즐기기 위해서 죽인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이지. 그는 한 가지 물건을 빼앗기 위해서 그들을 죽였네.”
위지홍이 순순히 사실을 말하자, 진용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다섯 명을 죽이고 팽가와 원한을 지면서까지 빼앗아야 했던 물건이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위지홍은 본래의 냉막한 표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말했다.
“산서호가가 일 년 전에 자신들이 운영하는 옥광산에서 묘한 옥을 하나 캤네. 처음에는 그저 조금 특이한 옥으로만 생각했다가 나중에서야 그 옥이 화령옥이란 것을 알고는 암암리에 매수자를 찾았네. 그러자 때마침 화령옥을 찾고 있던 팽가가 가격에 상관없이 화령옥을 사겠다고 나섰지. 그리고 비밀리에 사람을 호가로 보냈네.”
“죽은 사람들이 그들인가요?”
“그렇다네. 요마에게 죽은 팽여중이 팽가의 대표로 호가에서 화령옥을 가져오던 중이었지. 그들은 설마 요마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사실 요마를 쫓던 우리도 그자가 팽가의 마차를 급습할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진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들? 요마를 쫓고 있었다고요?”
“나와 나의 동료들이 혈혈구마를 쫓은 지 일 년이 조금 넘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해주지. 어쨌든 그자의 꼬리를 거의 잡았다 생각했는데, 엉뚱한 일이 터져 버리는 바람에 일이 조금 꼬여버렸네.”
궁금하긴 했지만 나중에 말해준다는데 굳이 재촉하기도 그랬다. 해서 진용은 다시 화제를 화령옥이라는 물건 쪽으로 돌렸다.
“화령옥이란 게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인가요?”
위지홍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령옥은 그 자체로도 만금의 값어치가 있네. 하나 그게 다가 아니야. 일반인에게는 그저 제법 값나가는 보물에 불과하지만, 화령옥의 숨겨진 효능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천만금의 값을 치르고라도 얻고자 하는 천고의 보물일세.”
“대체 어떤 효능이 있기에……?”
“혹자는 장생의 비밀이 있다고도 하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화령옥을 지니고 있으면 노화를 막아준다고 하더군.”
“노화를 막아준다고요? 그럼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 늙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글쎄,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생각하네. 어쨌든 팽가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요마가 팽가의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이지. 요마는 늙어 보이는 것을 무척 싫어하거든.”
묵묵히 진용과 위지홍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광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미친놈!”
진용이 이마를 찌푸리며 위지홍에게 물었다.
“엄청난 값을 치르면서까지 팽가는 왜 그것을 필요로 했을까요?”
“팽가의 가주인 팽우중의 딸이 조로증(早老症)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네. 그 때문에 얼마 살지도 못하고 늙어 죽을 거라 하더군.”
6
약속 장소는 백검장이었다. 곽호가 미리 연락을 하기로 했으니 지금쯤이면 이미 와 있을지도 몰랐다.
위당조가 그곳을 연락처로 삼고 활용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한때 중원을 질타했던 강호의 고수가 금분세수를 하고 조용히 은거하고 있다는 자그마한 장원, 백검장. 그곳의 주인 백화검(百花劍) 위금조가 바로 위당조의 형이었던 것이다.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미시 무렵. 진용 일행이 탄 허름한 마차가 백검장에 도착했다.
“어째 조용한데요?”
여전히 마부석에 앉아 있던 두충이 굳게 닫힌 백검장의 정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바람이 잦아든 이후로 두충과 나란히 마부석에 앉아 있던 정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걱정 마라.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지만,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정광의 말이 끝남과 동시, 끼이익! 백검장의 정문이 경첩 끄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순간 안을 바라본 두충이 눈을 부릅떴다. 정광도 눈에 힘을 주었다.
“저거 뭐 하는 짓이다냐?”
활짝 열린 정문 안쪽, 위당조가 서 있었다.
그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근 이십여 명의 무사가 위당조와 함께 마당을 가득 메운 채 서 있었다.
어깨를 떡 펴고 눈에 힘을 잔뜩 주고서!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투기가 백검장의 마당 안에 가득 흘렀다. 정문 앞에 서 있던 두 마리 노마가 주춤거리며 들어가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그때 정광이 두충을 향해 말했다.
“들어가자. 안 들어가면 두들겨 패서라도 밀어 넣어.”
정광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두충이 채찍을 들자 눈치를 챈 것인지 노마는 즉시 장원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또각, 또각. 쿠르르…….
노마의 말발굽 소리, 마차 구르는 소리. 미묘한 화음이 백석으로 된 마당을 울린다.
정적이 한순간에 깨져 버렸다. 그러자 무사들이 흘리던 투기도 흐트러졌다.
그제야 위당조가 마차 앞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마차가 멈추고, 진용이 위지홍과 함께 마차 밖으로 나오자 위당조는 두 손을 맞잡고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오, 고 장주!”
“오랜만입니다.”
그 꼴을 보고 정광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이봐,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설마 겁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움찔, 위당조는 내심 찔끔했지만, 겉으로는 무슨 소리냐는 듯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음하하하! 무슨 소리를! 나는 단지 예의를 갖추려고 한 것뿐이오. 안 그런가, 길 조장?”
길근양은 상황이 이상하게 변하자 즉시 머리를 굴렸다.
위당조의 말뜻은 간단했다.
―그냥 굽히자.
한 시진 전만 해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겁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위대한 백마성의 힘을 알릴 수 있을까, 온갖 계획을 짰었다.
하지만 진용이 나타나는 순간, 길근양은 그러한 계획이 모두 소용없음을 예감했다.
다름이 아니었다. 우연히 눈길을 돌리다 위당조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였다.
결국 길근양도 힘차게 외쳤다.
“물론입니다, 당주님!”
그때, 눈치도 없는 조장 하나가 넌지시 위당조에게 물었다.
“그럼 처음 계획은 없던 것으로 합니까? 기를 팍 죽이자고…….”
위당조가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선 불길이 일고 있었다.
‘저런 눈치도 없는 놈이!’
위당조가 빽 소리쳤다.
“무슨 소리! 계획은 처음대로 한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모두 담장과 지붕 위로 올라가서 혹시 염탐자가 없나 지키도록 하고, 엉뚱한 놈들이 허튼짓 못하게 기를 팍 죽여!”
동시에 이십여 명 무사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분명 처음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그런데 바뀌었다. 이상하게.
그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
이십여 무사들의 눈이 지독히 눈치도 없는 조장, 지동희에게로 모아졌다. 그들의 눈이 말했다.
―당신 때문에 한겨울에 찬바람 맞으며 경비 서게 생겼잖아!
그리고 진용의 머릿속에서는 세르탄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늘 곰이 재주를 부리는 걸 제대로 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