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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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62화
62화
그로부터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전서구 두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 마리는 팽가가 있는 동쪽으로, 그리고 한 마리는 개방의 총타가 있는 남쪽으로.
3
석양이 고루거각의 지붕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던 시각, 팽가의 중심부 천도전에 장로 십여 명이 급박하게 모여들었다.
그로부터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일성이 전각을 뒤흔들었다.
“뭐라? 여중이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가주! 개방의 북경 분타에서 조금 전 급보를 보내왔습니다. 이미 개방 방산 분타의 사람들이 시신까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팽가는 하북의 삼대세력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수백 년간 강호에서 이름을 떨쳐 온 오대세가 중 하나로도 유명했다.
사실 하나의 가문이 수백 년 이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대문파조차 하루아침에 멸망하기도 하는 강호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그러기에 강호의 무인들 중 오대세가를 무시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거의…….
“누가 감히 본 가를 무시하고 본 가의 사람들을 죽였단 말이냐?”
쾅!
분노한 팽가의 가주 팽우중의 주먹에 커다란 자단목 탁자가 부서져 버렸다.
탁자 주위에 둘러서 있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 역시 표현만 안 했다 뿐이지 팽우중처럼 분노하고 있었다.
탁자가 산산이 부서지며 주저앉자, 팽우중이 조금 전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해봐라, 무중!”
그러자 개방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팽가의 다섯째 팽무중이 차근차근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모두 말했다.
“그 소식을 전한 자는 고진용이라는 자입니다. 그는 북경을 떠나 남하하던 중 부서진 마차를 발견했는데, 그때는 이미 살아 있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시신들을 마차에 넣고 오호단문도를 입구에 꽂아 본 가의 마차임을 표시한 후, 곧바로 방산으로 가서 개방의 제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고진용?”
“개방의 소식에 의하면 그는 관인 같다 했습니다, 가주!”
“관인이라고?”
“그렇습니다. 다만 그들이 평복을 한 데다,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려 하지 않아서 더 물어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자의 말에 의하면, 여중과 다른 네 사람은 제대로 저항다운 저항도 못하고 죽은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무엇이? 다른 아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여중이 누군데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죽었단 말이냐?”
“개방에서 간단하게 조사를 했는데, 그들 역시 그런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조사할 것을 생각해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뒀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형님.”
개방조차 그리 결론을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으음…….”
끝내 팽우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를 지그시 깨물고 팽무중에게 다시 물었다.
“물건은?”
“아무것도…….”
“그렇겠지. 하면 그 소식을 전했다는 자들이 발견했을 확률은?”
“지금으로선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본 가에 소식을 전하려 한 자들인 만큼, 그들이 그 물건을 발견했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옳은 말이었다. 팽우중은 팽무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에 서 있는 팽가의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직접 가볼 것이다. 넷째와 다섯째만 따라오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내 명령을 기다리도록!”
“가주, 가주께서 직접 움직이실 필요는…….”
사촌 아우이자 팽가의 멸도단을 맡고 있는 팽목의 말에 팽우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우와 조카들이 죽었다. 그리고 호가의 아이들까지. 게다가 물건도 잃어버렸어. 자만하고 소수만 보낸 내 잘못이 크다. 처음부터 삼단 중 하나를 통째로 움직였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자들이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움직였어야 했다, 그래도…… 아니면 최소한 마중이라도 보내야했어.”
그는 결심을 꺾지 않겠다는 듯 말을 끝맺자마자 오른쪽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 장가량 옆에 있던 도가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령아의 목숨이 걸린 일, 놈이 누구든 가만두지 않겠다!”
그때였다. 천도전으로 한 사람이 들어서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가보겠네, 가주.”
그를 본 팽우중의 눈이 한껏 커졌다.
하얀 머리칼을 쓸어 넘긴 칠순이 다 되어 보이는 노인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보며 들어서고 있었다.
“숙부님께서요?”
노인은 팽가의 원로 중 한 사람인 팽기한이었다.
강호인들이 벽력도(霹靂刀)라 부르는 고수.
십 년 전까지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벽력도는 강호에서 가장 강한 다섯 개의 도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죽은 팽여중의 부친이었다.
팽기한이 나직이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중이 자네에겐 아우지만 내겐 아들이 되네. 그러니 내가 가겠네. 가주는 가문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잊지 마시게.”
“하오나…….”
“죽기 전에 마지막 강호행이 될지 모르네. 허락해 주게, 가주.”
“숙부님……. 후우, 숙부님께서 정 그러시겠다면……. 하나, 아우들은 대동하고 가셔야 합니다.”
“물론이네. 나도 나 혼자 뛰어다닐 생각은 없다네. 이제 나도 늙었거든.”
4
개방의 방산 분타주 화충개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팽가의 무사들은 비밀리에 어떤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방조차 그게 어떤 물건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팽가가 장로까지 동원하고서 비밀리에 움직인 것으로 봐서 그만큼 중요한 물건 같다고만 했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했지만, 어쨌든 팽가에 소식을 전했으니 진용은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할 일이 태산인 마당에 신경 쓸 시간도 없고.
그런데도 왠지 개운하지가 않았다. 마치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방산으로 돌아가자 두충이 한 대의 마차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두충이 산 마차는 겨우 눈바람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허름한 마차였다.
정광이 마차를 보고 한마디 했다.
“이게 마차 맞아?”
“그럼 이게 마차가 아니면, 뭘로 보입니까?”
“달리기나 하겠냐? 말도 영 부실해 보이는데…….”
“걱정 마시고 타기나 하십시오.”
진용과 정광이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마차에 들어가자 두충도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차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휘이이잉!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자 두 마리의 노마가 고개를 돌려 마차 안쪽을 바라보았다. 웃기는 인간들 다 본다는 듯.
그때 두충이 마차 안에서 튕겨져 나왔다.
“이놈아! 다 들어오면 어떡해?”
튕겨져 나온 두충은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마차 안을 노려보았다.
“제 돈으로 산 마찬데, 저보고 마부까지 하라는 겁니까?”
“네 돈 주고 샀으니 네가 몰아야지!”
“…….”
쿠르르…….
낡은 마차는 생각보다 잘도 굴러갔다. 늙은 말들도 노망들 때는 아직 되지 않았는지 제법 빠르게 달렸다.
두충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방산을 떠난 지 한 시진이 흘렀다. 그런데도 자신은 여전히 마부석에 앉아 있지를 않은가 말이다.
“도장님, 교대 좀 합시다요.”
좀 전에 교대를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정광이 말했다.
“나는 마차를 몰아본 적이 없거든? 그러니 네가 계속 몰아.”
힘이 없는 것이 죄다. 두충은 그때만큼 자신이 무공에 소홀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지미, 내가 힘만 있으면 저 미친 도사의 수염을 다 뽑아버릴 텐데.’
엉뚱한 상상을 하니 기분이 조금 풀어진다.
‘그리고 옷을 홀라당 벗겨서 대로를 뛰어다니게 만들어 버려?’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진다.
‘발발 기면서, 두 위사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 발로 등을 콱 누르고…….’
“낄낄낄…….”
갑자기 두충이 괴상한 웃음을 터뜨리자, 정광이 고개를 내밀었다.
“너, 미쳤냐? 왜 그래?”
두충은 급히 웃음을 멈추고 앞만 주시했다.
‘미친 건 내가 아니고 당신이야, 미친 도사!’
정광을 향해 속으로 욕을 퍼붓던 두충의 눈이 크게 뜨인 것은 그때였다.
어느덧 석양이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황금빛 석양을 가슴에 안고 한 사람이 저만치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차가 지나가는 관도의 한가운데를 막고서.
거리가 십여 장으로 가까워지자 눈을 치켜뜬 두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켜라!”
하지만 황금빛으로 물든 그는 비킬 생각이 없는지 뒷짐 진 자세 그대로 마차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충은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언뜻 보기로는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두충은 자신의 신분을 믿었다. 설마 정광만 하랴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정광에게 쏟아 부을 화를 저자에게 쏟아 붓기로 했다.
“이놈! 비키라는 소리가…….”
하지만 두충은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가 없었다. 마차 안에서 진용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두 형, 그만하고 마차를 세우세요. 그는 두 형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움찔, 진용의 말에 두충은 입을 닫고 마차를 세웠다.
진용이 아니라면 아니다. 지금까지 그것은 언제든 옳았다. 분명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자신이 아는 진용이라면.
그때다. 두충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홱 돌렸다. 진용의 마지막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리자 진용이 보였다. 그는 어느새 마차 안에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정광도.
“미친놈, 죽고 싶어 환장했냐? 건드릴 사람을 건드려야지.”
왠지 긴장한 목소리다.
세상에! 천방지축 미친 도사 정광이 긴장하고 있다니!
두충의 놀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용은 석양을 받아 흑의가 황금빛으로 물든 중년인을 응시했다.
이제야 알았다. 왜 그리도 뒤가 개운하지 않았는지.
‘바로 저자 때문이었어.’
한 번쯤 실피나를 시켜 주위를 둘러볼 것을. 그랬다면 저자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비록 당장 위험한 상황을 겪진 않았지만 오늘의 경험으로 또 하나의 배움을 얻은 셈이었다.
“왜 따라다니신 겁니까?”
위지홍의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에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호! 알고 있었나? 어떻게 알았지?”
자신은 백 장 전후의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천하에서 그 정도 떨어진 자신의 기척을 눈치 챌 사람은 몇 없다. 그런데도 저 젊은 서생은 두 번이나 자신의 기척을 눈치 챘다.
둘 중의 하나다. 저 젊은 서생이 천하에서 몇 안 되는 고수 중에 하나든지, 아니면 특별한 능력을 익히고 있든지.
자신의 생각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어쩌면 그가 모습을 보인 것도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제가 남들보다 기를 좀 잘 느낍니다. 겉으로 뿜어지는 기뿐만 아니라 안으로 갈무리된 기까지 말이죠.”
역시 두 번째였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군.”
“그리 자랑할 만한 능력은 아닙니다. 설마 그걸 알아보려고 나선 것은 아니시겠죠?”
위지홍은 즐거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내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자네와 한 가지 일을 함께 해보고 싶어서이네.”
진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함께 일을 해보고 싶다고요?”
“맞네. 아마 자네도 매우 흥미 있어 할 것이라 생각하네.”
자신이 흥미 있어 할 일이라니. 진용은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위지홍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리 자신하시죠?”
“팽가의 사람들을 죽인 범인을 알고 싶지 않은가?”
진용은 물론이고 정광과 두충마저 놀란 눈으로 위지홍을 바라보았다.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네. 어떤가, 그래도 흥미가 없다고 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