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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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61화
61화
“억! 설마, 팽가?”
그의 크게 뜨인 눈은 중년인의 손에 쥐어진 한 자루 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도의 손잡이. 엎어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진용이 뒤집자 보인 것이다.
도의 손잡이에는 두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음각된 글자에는 팔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고인 채 굳어 있었다.
[혼원(混元)]
“혼원도는 오호단문도와 함께 팽가의 상징과 같은 도입죠.”
두충의 입에서 팽가라는 말이 떨어졌을 때부터 이미 진용의 표정도 굳어졌다.
하북의 삼세 중 하나이자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무가가 바로 팽가다. 그런 팽가의 중진 고수가 외딴 곳에 죽어 있다. 다른 몇 명의 젊은이와 함께.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세 명의 청년 중 두 명의 옆에도 팽가의 오호단문도가 떨어져 있었다.
반면 다른 청년과 여인의 무기는 도가 아니었다. 그 두 사람은 팽가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진용은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모두가 달랐다.
상처는 너무 단순했다. 그저 구멍이 뚫리고 목뼈가 으스러져 있을 뿐. 너무 단순해서 어떤 무공에 당했는지 정확히 알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 후로 세 사람은 일단 마차를 비롯해서 주위를 이각 정도 더 살펴보고 나서야 다섯 명의 시신을 모아 마차 안에 넣었다.
그리고 다섯 사람의 물품을 모두 모아 땅을 판 후 묻어놓았다. 한 자루 오호단문도만을 마차의 앞에 꽂아놓은 채.
혹여 누가 이 시신들을 발견하든 팽가의 상징인 오호단문도를 본다면 결코 이 시신들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팽가의 추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진용은 잠시 마차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방산에 가서 팽가에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그리 작은 마을이 아니니 분명 개방의 제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말하면 아마 해지기 전에 팽가의 사람들이 시신을 챙겨갈 수 있을 겁니다. 듣기로 개방의 소식통은 천하에 따라올 세력이 없다더군요.”
정광도 진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지들이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어디서 먹을 거 없나 기웃거리는 게 일이지. 그래선지 정보 전달 속도가 말보다 훨씬 빠르다고는 하더만…….”
시신을 그냥 놔두고 가는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는 수 없었다.
진용은 신형을 돌리기 전, 저 멀리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밀집한 숲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가시죠.”
세 사람이 떠난 지 반 각가량이 지났을 즈음, 마차 앞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내려섰다.
어둠보다 더 새카만 흑의를 입은 그는 냉막한 얼굴로 인해서 사십대인지, 오십대인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자였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잠시 주위를 훑어보고는 바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한발 늦었군.”
그러고는 굳이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다는 듯 오연한 표정으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삼존맹이나 정천무맹이 관심을 갖기 전에 끝내야 할 텐데…….”
그때였다.
허공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떻.게…… 됐.수? ……찾.았.수?”
그가 누군지를 아는지 처음의 흑의인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한발 늦었어. 팽가의 무사들만 죽이고 도망쳤다.”
경악한 음성이 허공에서 다시 울렸다.
“그…… 미.친.놈……. 도.대.체. 어.떻.게. 알.고…….”
“아무래도 작전을 새로 세워야 할 것 같다.”
“그.럼…… 어.떻.게……?”
“너는 일단 주군께 보고를 올려라. 나는 계속 요마의 뒤를 쫓겠다.”
“위.지. 형, 혼.자……?”
“두 놈 이상만 만나지 않으면 밀리지 않으니 걱정 마라. 요마 혼자서는 나, 위지홍을 어쩌지 못한다.”
오만함이 느껴지는 말투다. 그럼에도 자연스럽다.
그만한 실력이 받쳐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기세.
그 기세에 눌렸는지 허공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조금은 떨려 나왔다.
“그.건 그.렇.지.만……. 좌.우.간 알.았.수. 그.럼 나. 먼.저 가.겠.수.”
그것을 끝으로 허공에서 울리던 목소리는 두 번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떠난 듯했다.
위지홍은 다시 한번 마차를 바라보다가 조금 전의 일이 떠오르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까 그 어린 서생……. 후후후, 아주 묘한 기분이었어. 그런데 진짜로 백 장 밖에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일까? 중간에 아무 것도 없었으니 분명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본 것 같은데…….”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을 배어 물었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군. 진짜 그런 능력이 있다면 나 혼자 쫓는 것보다 낫겠지. 후후후, 어디 너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보자, 꼬마야.”
2
마차가 있던 곳에서 이십 리쯤 가자 커다란 마을이 나왔다. 방산이었다.
방산에 도착할 때까지도 진용의 표정이 풀어질 줄을 모르자 정광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고 공자, 강호에 나가면 더한 경우도 많다고 들었네.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너무…….”
하지만 진용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지 모르겠군요?”
“응? 누구라니? 그 사람들을 죽인 자 말인가?”
여전히 진용이 말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정광이 엉뚱한 반문을 하자 진용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좀 전에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던 자가 있었는데, 범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정광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누가 우리를 보고 있었단 말인가?”
“예, 대단한 고수인 것 같더군요. 상당히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자의 기운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마치 고의로 자신의 기운을 드러낸 것만 같았었다. 그러나 진용은 굳이 정광에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을 드러낸 자라면 언젠가는 모습을 보이겠지.’
방산의 길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개방의 거지들도 보이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 모래바람마저 부니 그들도 걸행을 하지 않는 듯했다.
“일단 객점에 들어가 쉬면서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게 좋겠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정광과 두충의 쌍수합장에 세 사람은 근처의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때였다. 객점에 들어가는 그들의 뒤로 모래바람이 이는 길을 따라 누군가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맨 뒤에 처져서 주렴을 젖히려던 두충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소리쳤다.
“어? 거지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선 진용과 정광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서 밖을 바라보았다.
급한 소식을 가지고 용수객잔 앞을 지나던 거지도 고개를 삐딱하게 꼬고 두충을 바라보았다.
일순간 네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경공에 능해서 ‘나는 꽃’이라 불리는 비화개는 개 같은 날씨에 갑자기 일거리가 터져서 그러잖아도 엿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얼굴이나 아니나 허여멀건 한 날건달 같은 놈이 자신을 쳐다보더니 대뜸 거지라 부르는 것 아닌가.
사실 거지를 거지라 부른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기분이 최악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비화개는 바쁜 와중에도 자신을 향해 거지 운운하는 두충을 향해 빽 소리쳤다.
“뭘 봐! 거지 처음 봐?”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두충은 멍한 표정으로 거지를 쳐다보았다.
“뭐야? 여자 거지잖아?”
그랬다. 비화개는 방산에 있는 개방의 거지 중 유일한 여자 거지였다.
“내가 여자라서 밥 한 그릇 보태준 것 있어? 별 그지 같은 게……. 에이, 재수 없어.”
“그, 그지……?”
두충은 갑작스런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거지에게 그지란 말을 듣다니!
비화개는 한바탕 소리를 내지르고 나자 기분이 조금 풀린 듯, 멍하니 서 있는 두충을 한 번 째려보고는 신형을 돌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잠깐, 할 말이 있소.”
앞에서 나직이 들리는 목소리. 자신이 느끼지도 못한 사이, 두 사람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뭐지? 이 사람들……?’
경공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강호의 내로라하는 일류고수들과 겨루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그런데 기척도 알아채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만일 죽이려고 했다면? 아마 자신의 몸은 이미 땅바닥을 구르고 있다고 봐야 했다.
등골이 짜르르 울렸다.
“무슨…… 일이죠?”
부리부리한 눈에 꺼칠한 수염을 한 도사는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말라 보이는 듯한 서생에게 물었다. 할 말이 있다는 말도 그가 했으니까.
솔직히 선 굵은 얼굴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개방의 제자인가요?”
보면 모르나? 눈알은 멋으로 달고 다니나?
생각은 그래도 말은 조심스럽게 했다.
어쨌든 잘생겼잖아?
“그래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제 앞을 막은 건가요? 바빠 죽겠는데…….”
“개방의 제자라면 잘됐군요. 이곳의 분타주를 만나고 싶은데, 안내 좀 해주시겠습니까?”
잘 봐줘도 스물 정도다. 그런 서생이 자신더러 길 안내를 하라 한다. 바빠 죽겠다고 말했는데도.
비화개는 기가 막혔다.
“내가 뭐 당신들 길 안내나 하는 사람처럼 보이나요?”
그때다. 비화개에게 그지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있던 두충이 무게를 잡고 입을 열었다.
“안내하라면 안내할 것이지, 강호의 잡배가 말이 많구나!”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친 비화개의 눈썹이 역팔자로 치켜 올라갔다.
“뭐야? 잡배?”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멈칫했다.
‘가만? 강호의 잡배라는 말은 관부의 사람들이 쓰는 말인데…….’
그랬다. 두충이 쓴 말투는 관인들이 강호인을 칭할 때 일반적으로 쓰는 말투였다.
북경 인근에 있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인지라 개방의 제자인 비화개는 그 말투만으로도 진용 일행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들, 관인인가요?”
진용이 질책하는 표정으로 두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비화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개방의 분타주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관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대체 관인들이 개방에는 무슨 일로……?”
진용이 직접적으로 말했다.
“팽가의 무사들이 몇 명 죽었는데, 그 소식을 팽가에 전했으면 합니다.”
“예?”
비화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갖고 가는 소식도 팽가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관인으로 보이는 이자들도 팽가 때문에 분타주를 만나려 한다고 하지를 않는가.
그런데 뭐라고? 팽가의 무사들이 죽었다고?
이제는 자신이 전할 소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서……? 가만, 이럴 게 아니라 저를 따라와요.”
비화개는 세 사람을 영정하의 지류인 작은 하천 가의 사당으로 안내했다. 그곳이 바로 개방의 방산 분타였다.
비화개가 먼저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오세요.”
비화개를 따라 사당 안으로 들어가자 거적 위에 앉아 있던 중년 거지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급히 물었다.
“팽가의 사람들이 죽어 있다 했소?”
“그렇습니다. 오호단문도와 혼원도가 있는 것으로 봐서…….”
“혼원도까지 있었다고?”
진용의 말에 중년 거지는 대경한 표정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벼룩과 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화들짝 놀란 두충이 뒤로 재빨리 서너 걸음 물러섰다.
정광은 쇠신발을 번개처럼 벗어서 휘두르고, 진용은 가만히 있어도 벼룩이 알아서 미끄러졌다.
중년 거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거지생활 삼십 년, 그보다 더한 반응도 숱하게 봤으니까.
“위치가 어디요?”
“이곳에서 북경 쪽으로 이십 리쯤 될 겁니다.”
“가봅시다. 공자.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용은 장소만 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중년 거지의 반응으로 봐서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닌 듯했다.
보다 더 정확한 것을 알고 싶어진 그도 개방 거지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앞장서지요.”
그때 두충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고 공자님, 마차는…….”
“두형은 이곳에 남아서 마차를 구해보도록 하세요. 저와 도장님만 갔다 올 테니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한데 돈은…….”
정광이 말했다.
“일단 네 돈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