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57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7화
57화
뭔가가 눈에 밟혀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뱅뱅 돌았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쓴 평범하지 않은 글.
그가 남긴 인연은 뭐고 혈신은 또 뭐란 말인가?
게다가 하늘은 하늘이 아니고, 땅은 땅이 아닌 것을 알면 저주를 풀 수 있다니. 그것은 또 무슨 뜻을 담은 말인지…….
진용은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지만 글이 너무 단편적이어서 당장은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풀어지지 않는 글을 붙잡고 씨름할 필요는 없겠지. 더구나 천 년 전의 글인데. 어쨌든 이것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고…….”
일단 책을 내려놓은 진용은 석함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보면 양피지 글보다 그 석함 속의 물건이 더 궁금했다.
그는 석함 속에서 울퉁불퉁하게 생긴 두 자 길이의 시커먼 지팡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제나가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팡이.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목적 두 가지 중 하나가 이 지팡이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흠, 이것이 있어야 마법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단 말이지? 근데 너무 못생겼네.”
‘아마 마법이 걸려 있어서 일 거야. 너무 화려하면 괜히 욕심내는 놈들만 생기니까, 마법으로 본모습을 감춘 거지.’
그럴 듯한 말이었다.
“하긴, 견물생심이라 했으니까.”
시험 삼아 가볍게 지팡이에 내력을 흘려 넣어봤다.
우우웅!
지팡이가 즉시 반응을 한다. 끝에 매달린 둥근 구슬이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사용하라며 재촉하는 것만 같다.
“호! 좋은데?”
기분이 좋아진 진용은 지팡이를 옆구리에 꽂고서 한쪽에 놓아둔 세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가지고 나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망설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진용은 책자 중 일권과 삼권을 석함 속에 집어넣고서 석함을 본래대로 벽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무공서로 추정되는 이권만 품속에 넣고 천천히 고대 문서가 쌓인 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두 번째 목적, 태산의 석벽에서 본 글씨를 해독할 수 있는 책이 있나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근 한 시진에 걸쳐 찾은 책은 다섯 권, 그중 세 권은 원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기에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두 권은 제법 도움이 될 듯했다. 두 권 모두 아버지가 주석을 달아 새롭게 적어놓은 책자였던 것이다.
비록 원문이 석벽의 글씨와 많이 다르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아쉬운 대로 그것만 제대로 파고들어도 석벽의 문자를 조금은 해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용은 지팡이와 세 권의 책자를 갈무리하고는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지하 서고를 둘러봤다.
그러기를 얼마, 구석구석을 눈에 새기듯이 둘러본 진용은 아쉬운 마음을 떨치고 지하 서고를 빠져나왔다.
유등불이 꺼져 컴컴해진 지하 서고를 바라본 그는 천천히 다섯 개의 줄을 한꺼번에 잡아당겼다.
쿠르르르…….
지하 서실이 두 번째로 봉쇄되는 소리에 진용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오늘은 혼자 왔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4
진용은 싸늘하게 식어 있는 차를 따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품에서 세 권의 책을 꺼내 들고는 그중 무공서라 생각한 책을 탁자 위에 펼쳤다.
책을 펼치자 첫눈에 복잡하게 어우러진 선과 점이 보였다. 진용은 일단 첫 번째 그림부터 천천히,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림이라고 해봐야 일곱 개에 불과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 부른 오판이었다. 진용이 그 점을 느끼기 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우습게도 첫 번째 그림에서부터 막혀 버린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어.”
지하서고 안에서 대충 살펴봤을 때는 분명 고정되어 있던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자 그때부터 선과 점은 진용을 비웃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집중하지 않고 그냥 보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러나 집중해서 보면 거짓말처럼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선의 강약이 달라져 보이고, 점의 위치가 바뀌는 듯했다.
“뭐, 뭐야, 이거?”
‘시르, 그림이 미쳤다!’
세르탄이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럼에도 진용은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뭐라 할 것인가.
그렇게 첫 번째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진용이 고개를 쳐든 것은 책을 펴든 지 이각이 지나서였다.
고개를 쳐든 진용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늘 밖에 하늘이라더니…….”
처음에는 단순히 장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뭐가 뭔지 자신할 수가 없다. 분명 장법 같은데 꼭 그것만이 아닌 듯했다.
분명한 것은 하나, 일곱 개의 그림을 모두 이해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려야만 할 것 같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군. 횡재를 한 기분이야. 실피나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군.”
‘흥! 그 말썽꾸러기에게 상은 무슨!’
세르탄이 뾰로통하게 퉁퉁거렸다.
‘세르탄, 너도 상 받고 싶어?’
‘…아니.’
-그래 놓고 또 뭐 빼앗아가려고? 헹! 내가 속을 줄 알고?
진용은 세르탄이 잠잠해지자 두어 번 목을 돌리고는, 천단심법을 운용해 모든 신경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정신을 집중한 그는 다시 그림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림이 다시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장을 넘길수록 꿈틀거림은 더욱 심해졌다. 마치 그에게 대항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한 시진, 두 시진…….
잠깐인 것만 같았다.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무한의 바다를 건너 끝 보이지 않는 바다로 사라져 가고, 희미한 어스름을 밀어내며 동창이 환히 밝아왔다.
창문 틈을 파고든 햇살이 그림을 황금색으로 물들였을 때서야 진용은 고개를 들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날을 꼬박 셌는데도 눈빛은 어느 때보다 맑고 힘이 넘쳤다.
“후우우우……. 대체 이것을 지은 사람이 누군지, 다 보고 나니 더 궁금해지는군.”
2장. 초연향의 부탁
1
밤새 내렸는지 집 밖 골목길에는 하얀 싸리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진용은 유모가 깨끗하게 빨아놓은 서생복을 입었다. 머리를 건 대신 하얀 무명끈으로 질끈 묶은 그는 제나의 지팡이를 옆구리에 차고 집을 나섰다.
정광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팡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뭔가?”
말해준다고 알 물건도 아니기에 진용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제 무깁니다.”
“무기? 곤도 아니고…… 그렇게 웃기게 생긴 무기는 처음 보는군. 꼭 애들 장난감 같은데?”
실제 용도를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떠오른다.
그때 두충이 정광의 아래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래도 쇠 신발보다야 낫죠 뭐.”
“뭐? 내 신발이 어디가 어때서?”
정광이 두충을 노려보며 쌍심지를 켰다. 괴상하게 생긴 지팡이를 감히 자신의 쇠 신발과 비교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이다.
자신의 신발을 최고의 무기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 통할까? 괜히 한마디 했다가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결국 두충은 정광의 눈빛을 피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모습에 진용은 피식 웃으며 문 앞까지 따라 나온 유모를 향해 말했다.
“임무 때문에 당분간 들어오지 못할지 몰라요, 유모. 그동안 혼자 계시지 말고 시비라도 하나 구해서 같이 있도록 해요.”
“에구, 내 걱정 말고 도련님이나 몸조심하고 다녀오세요.”
꼭 길가에 내놓은 아이를 걱정하는 말투다. 진용은 보다 더 강하게 말했다.
“유모가 아프면 내 마음도 아프니까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알았죠?”
‘그리고 돌아올 때는 아버지하고 함께 돌아오도록 할게요.’
지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 아니면 몇 년이 될지…….
“알았으니 걱정 마세요, 도련님.”
진용은 웃는 얼굴로 유모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단호하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유모의 눈에 맺힌 눈물을 더 볼 자신이 없었다.
세 사람은 싸리눈이 하얗게 쌓인 길을 따라 내성으로 들어섰다.
일 각여, 대로를 따라 남문 쪽으로 내려가자 저 멀리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구룡상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구룡상방의 정문과 장원의 건물들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용의 눈에 비친 구룡상방의 모든 것은 전날에 비해 그 거대함이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문득 드는 씁쓸함에 진용은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자금성의 성문을 얼마간 봐왔다고, 황궁의 거대한 궁전들을 보름 남짓 들락거렸다고 구룡상방의 거대한 장원이 눈에 와 닿지 않다니. 자신의 마음이 간교함만 같은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군, 훗!’
씁쓸한 고소를 입에 달고 정문으로 다가가자 하군상이 보였다.
그는 정문 안에서 하늘빛 청삼을 입은 삼십 초반의 키가 큰 장한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구룡상방주의 아들이라는 그가 쩔쩔매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봐서 그 청삼인의 지위가 보통이 아닌 듯했다.
‘누구지?’
때마침 고개를 들던 하군상이 진용 일행을 발견했다. 그는 청삼인에게 뭐라 몇 마디를 더 듣고 난 후에야 진용에게 다가왔다.
“오셨군요.”
“예, 너무 늦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늦기는요. 마침 출타하시려는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들어가시죠.”
형님이라면 둘째인 하군명을 말함일 것이다. 첫째인 하군석은 키가 작다고 알려져 있으니 하군상보다 키가 큰 청삼인이 첫째 하군석일 리는 없었다.
그런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던 듯하다. 표정이 밝지 못하고 목소리에 힘이 없다. 자괴감마저 느껴지는 표정.
‘뭔가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군.’
진용이 정문을 들어서려는데 마침 정문을 나서던 하군명의 눈이 진용을 향했다.
조금은 얕보는 눈빛.
구룡상방에서 하루를 보냈을 적에는 서로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하군명은 진용을 알지 못했다.
눈이 마주치자 하군명이 하군상에게 물었다.
“손님과 약속이 되어 있다더니, 이 사람들이냐?”
“예, 형님.”
하군명은 다시 한번 두충과 진용과 정광을 차례대로 흘겨보고는 하군상에게 말했다.
“건달만 사귀는 줄 알았더니, 서생이나 도사들도 사귀는 모양이구나. 비루해 보여 그렇지, 그래도 날건달보다는 나은 것 같아 안심이긴 하다만.”
건달? 비루해 보여?
두충과 정광이 발끈하려는 것을 진용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대신 싸늘한 눈으로 하군명을 쳐다보았다.
‘초 소저를 봐서 한 번은 참지.’
하군명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하군상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묘한 표정으로 나직하게 말했다.
“형님만 알고 계십시오. 이분들은 금의위의 백.호.장.들이십니다, 형.님!”
순간 진용과 정광을 향해 한마디 더 하려던 하군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의위 백호장이라고?”
금의위라면 아무리 말단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 함부로 하기는커녕 조심해서 대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말썽만 피우는 걸로 알고 있던 하군상이 그런 금의위의 일반 위사도 아닌 백호장과 친분이 있다니.
믿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거짓 또한 아닐 것이다. 그런 거짓말의 후환이 어떤 것인지 모를 하군상이 아니니까.
그때다. 하군상의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하군명은 문득 자신이 조금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비루…… 날건달…….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이런……. 진짜 금의위 백호장이면 내가 큰 실수를…….’
하군명은 당황한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의 싸늘한 눈빛에 오금이 저렸다.
그런 하군명을 보며 하군상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안 가십니까? 바쁘시다면서요?”
“음? 아, 가야지.”
엉거주춤 돌아서는 하군명에게서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린 하군상이 씩 웃으며 진용을 재촉했다.
“들어가시죠, 고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