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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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3화
53화
육두강은 검집에 꽂힌 자신의 검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왜? 이 검이 정말 마음에 안 드는가?”
진용은 물끄러미 육두강을 바라보다가 무엇 때문인지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기를 얼마, 어정쩡해진 상황이 지속되자 육두강이 집무실 쪽을 가리켰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그제야 진용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다른 검을 익힐 생각은 없으십니까?”
“다른 검? 이십 년을 익혀온 검을 버리고 다른 검을 익히란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도 오래 입고 다니면 친숙한 느낌 때문에 다른 옷을 입을 수 없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몸에 맞는 옷을 찾으면 금방 그 옷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검과 옷이 다르다는 것은 자네도 잘 알 텐데?”
“다르긴 해도 몸에 맞지 않는 검을 익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음…….”
자신도 요즘에 와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바였다.
그럼에도 사십 중반이 되어서 새롭게 검을 익힌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포기하다시피 한 일이었다. 그런데 진용의 말을 들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지 않은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자, 들어가세.”
안으로 들어가자 육두강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남진무사 양호경이 자네의 무공을 시험하겠다고 했다더군.”
“두 위사에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고 나면 바로 황궁을 떠나야 할 것 같네. 형식상으로는 군에 대한 감찰 임무가 될 걸세.”
그 말에 진용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잘되었군요. 그렇지 않아도 나갈 때가 되었다 싶었는데.”
어차피 황궁 안에서 뭔가를 더 얻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사실 입궁하면서 공손각을 만나면 떠나야겠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서든.
강호에 나가 아버지를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구나 삼왕이 강호의 문파와 관련되었다지를 않던가.
진용이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육두강은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와 정 백호, 그리고 두 위사까지 세 사람만 떠나게 될 걸세.”
육두강의 말이 떨어지자 두충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저도 간다고요? 어디를요? 제가 왜……?”
정광이 황궁을 떠난다는 말에 춤이라도 추고 싶었던 두충이다. 이제야 저 악귀 같은 미친 도사의 손에서 벗어나는가 보다, 하면서.
그런데 뭐라고? 자기도 같이 나가야 한다고? 왜! 왜에에!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하늘이시여, 왜 나를 이리도 못살게 구는 것입니까?
그때 정광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멍청한 화상을 데리고 다녀야 하다니. 육 천호, 꼭 저놈을 데려가야 하는 거요?”
“연락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두 위사가 조금 털털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제법 눈치도 빠르고, 일을 처리하는 것도 일반 위사들 중에는 괜찮은 편이외다.”
두충은 육두강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육 천호장님, 연락 임무를 맡을 사람이라면 굳이 제가 아니라도…….”
하지만 육두강은 그의 소원을 간단히 뭉개 버렸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여기 있는 우리와 도독, 그리고 고 천호의 일을 도와줄 북진무사밖에 없다. 그러니 네가 가지 않겠다면…… 나는 너를 고 천호가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뇌옥의 독방에 집어넣는 수밖에 없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할 거냐? 아무도 없는 독방에 들어갈 거냐, 아니면 고 천호를 따라가 임무를 맡을 거냐?”
뇌옥? 독방? 그것도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두충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부릅떠졌다.
“제가 언제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까? 그냥 다른 사람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안 그렇습니까, 고 천호장님? 도장님?”
부릅뜬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독방만큼은 가고 싶지 않았다. 이 년 전, 헛소리를 지껄였다 경험한 딱 이틀 동안의 독방 생활은 그에게 지옥이었던 것이다.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지 정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죄없는 너를 어찌 독방에 있게 하겠느냐? 그동안 정도 들었는데.”
“그, 그렇죠, 도장님?”
“그리고… 너라도 있어야 내가 심심하지 않지.”
“…….”
두충은 그 말을 듣고 나자 어째 온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미친 도사가 무슨 생각을. 설마……?’
4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유난히 매섭게 몰아쳤다. 황궁의 곳곳을 쓸고 지나가는 찬바람에 지나던 궁인들이 모두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쳤다.
그러나 오직 한 곳만은 예외였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금의위의 연무장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접근을 하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지 한 시진이 지난 미시 무렵. 마침내 남진무사의 위장들과 최근 황궁에 폭풍을 몰고 온 고진용 천호와의 비무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비무가 시작된 지 채 이각이 지나기도 전, 연무장을 둘러싼 위사와 위장들은 놀라서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남진무사의 고수 중 한 사람인 백호 안창이 다섯 수를 넘기지 못하고 꺼꾸러졌을 때만 해도 그저 단순한 놀라움뿐이었다. 백귀를 이겼다 했으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남진무사의 백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추종명마저 다섯 수를 넘기지 못하고 진용의 손에 검이 잡힌 채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진용의 무위를 송시명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이 진용에게 비무를 청하자 사람들은 환호하는 와중에도 손에 땀을 쥐었다.
“대단하군. 저 두 사람도 그리 약한 사람들이 아니거늘. 나는 천호 장대중일세. 최선을 다할 것이니 그대도 힘을 아끼지 말도록.”
장대중의 날카로워 보이는 눈빛에는 오만함과 냉혹함이 가득했다. 조금 마른 체형의 그는 진용을 향해 걸어가면서 한쪽을 흘낏 바라보고는 가볍게 눈짓을 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남진무사 양호경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진용은 장대중과 양호경이 눈짓을 주고받는 걸 보고도 태연했다.
양호경이 송시명에 비해 뒤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하지만 진용이 보기에는 꼭 그렇지 만도 않은 듯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자.
공손 도독은 무엇 때문에 저자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왜 저자에게는 수천호령사에 대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자신이 지금 신경 써야 하는 상대는 그가 아니다.
‘상대를 앞에 두고 쓸데없는 생각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양호경에 대한 상념을 접은 진용은 다시 담담한 눈으로 다가오는 장대중을 직시했다.
‘저자가 마지막인가?’
제법 강해 보인다. 하나 자신의 상대는 아니다. 백귀 좌사응에 비해 그리 나을 것이 없는 자다.
한편 진용의 뒤쪽에 정광과 나란히 서 있던 육두강은 장대중이 나올 줄은 몰랐던 듯 눈살을 찌푸린 채 비무장을 지켜보았다.
“장 천호가 직접 나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때.
“그렇게 상황 판단이 안 되나? 얼마나 당해야 정신들을 차리려는지. 쯔쯔쯔…….”
정광이 심드렁한 말투로 중얼거리며 혀를 차자 육두강은 옆을 돌아보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 천호가 이길 수 있겠소?”
정광이 부리부리한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상대가 되어야 이기네 지네, 말하는 재미라도 있지. 이거야 원…….”
한마디로 말할 건덕지도 없다는 투다. 그러더니 간단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정광이었다.
“삼 초. 봐주면 오 초. 뭐, 지금까지 한 걸로 봐서는 오 초에 끝낼 것 같은데…….”
그 말에 육두강의 표정이 굳어졌다. 말인즉, 지금까지 오 초에 상대를 물리친 것도 상대를 봐줘서라는 말이 아닌가?
육두강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물었다.
“만일 전력을 다한다면?”
피식! 정광이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삼 초 안에 죽일 수 있을 거유.”
“설마?”
“그것도 저 인간의 본실력을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평가한 거외다. 어쩌면…… 에휴,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수. 그만 합시다, 육 천호.”
육두강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천호 장대중은 자신보다 더 강한 고수다. 그런 장대중이 고진용의 삼 초 상대라니. 정광을 모르고 있었다면 절대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따당!
연무장 쪽에서 격렬한 격돌음이 터져 나왔다.
급히 고개를 돌린 육두강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장대중이 흐트러진 자세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진용이 그런 장대중을 따라 미끄러지듯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육두강은 자신도 모르게 숫자를 세었다.
‘일 초!’
진용은 뻗어오는 검신을 손가락으로 내리찍고는, 그 충격에 뒤로 물러서는 장대중을 따라 한 걸음 내디뎠다.
순간적으로 위기를 느꼈는지 뒤로 물러서던 장대중이 이를 악물고 검을 흔들었다. 그러자 급격히 흔들리는 그의 검신에서 매화가 피어올랐다.
하나, 둘… 일시지간 모두 다섯 송이의 매화. 매화를 피워낸 장대중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수에 검신이 가격당한 순간, 그는 자신의 검신으로부터 전해지는 충격에 팔이 저려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 한때 화산의 정식 제자로서 기재 소리를 들으며 매화검수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이놈!”
다가오는 진용을 향해 매화를 떨쳐 내는 장대중의 입가에 싸늘한 살소(殺笑)가 맺혔다.
‘죽여 버리겠다!’
그 웃음이 진용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조용히 마무리 짓고 황궁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순수하게 비무를 하자고 해놓고 살심을 품다니!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찰나 간에 다섯 송이의 매화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진용은 내력이 실린 두 손을 쫙 펴고서 검기로 이루어진 매화를 망설임없이 감싸 버렸다. 팔성 이상의 내력이 뭉쳐진 두 손은 이미 골육으로 이루어진 손이 아니었다.
쩌저적!
매화가 손가락 틈바구니에서 비명을 지르며 부서져 나간다.
동시에 장대중의 눈도 더할 수 없이 커져 버렸다. 설마하니 검기로 이루어진 매화를 맨손으로 움켜쥘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표정이다.
“헛! 이런!”
하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매화를 부숴 버린 진용의 커다란 손이 검신마저 움켜쥐어 버린 것이다.
무식하게까지 보이는 수법! 그러기에 상대는 더욱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장대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진용은 좌수로 장대중의 검신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장대중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당황한 채 주르륵, 빠르게 뒷걸음치는 장대중. 그러나 그가 아무리 빨라도 정광의 풍혼을 익힌 진용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석 자의 간격!
진용의 우수가 독수리의 발톱처럼 장대중의 어깨를 찍어간다.
철판조차 꿰뚫어 버릴 가공할 힘이 실린 채!
장대중은 찍어오는 손을 피하기 위해 어깨를 틀며 붙잡힌 검을 빼내기 위해 혼신을 다해 비틀었다.
그러나 장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어깨를 찍어오는 손가락은 피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어깨를 스쳐 간 손이 본래부터 그리 움직이려 했던 것처럼 옆으로 틀어지더니, 장대중의 어깨를 단번에 움켜쥐어 버렸다.
장대중은 믿을 수 없는 각도로 휘어진 진용의 손이 어깨를 움켜쥐자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처절한 극통!
“크윽!”
결국 장대중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어깨를 털어내려는 장대중을 향해 진용의 무릎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파고들었다.
쾅!
자신도 모르게 검을 놓고 손을 들어 가슴으로 파고드는 무릎을 막아보지만 그 충격은 상상 밖이었다.
가슴부터 시작한 충격이 전신으로 치달림과 동시, 장대중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그대로 일 장 밖으로 튕겨져 버렸다.
환호하던 모든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