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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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52화
52화
뜬금없는 대답에 황태자는 물론이고 공손각마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진용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사옵니다. 팔자지요, 팔자.”
사실 진용의 그 말은, 진용이 그냥 황태자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용이 미래를 알아서 한 말은 더더욱 아니었고.
아버지를 찾고 구양 할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선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것이다.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물론 그 일이 일찍 끝난다고 해도 진용은 황궁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쨌든 진용이 딱 부러지게 ‘팔자 때문에 안 된다’라고 하자 황태자는 어이없어하는 와중에도 더 이상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쉬움이 깃든 표정으로 공손각을 향해 물었다.
“도독, 수천호령사에 대한 것은 언제까지 윤허를 받아내면 되겠소?”
“빠를수록 일이 빨라질 것이옵니다, 전하.”
9장. 두충의 선택
1
한 가지 소문이 황궁에서 검을 쥔 모든 사람들을 들썩이게 했다. 백귀 좌사응을 물리쳐 충격을 던져 준 진용에 대한 소문이었다.
그 진용이 동창의 본거지에 들어가서 왕효와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고 돌아왔는데, 그 일로 동창에 비상이 걸렸단다.
그 일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금의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당연히! 두충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동창의 번역을 붙잡고 떠들기까지 해서, 이틀이 지났을 때는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던 동창의 사람들조차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즈음, 또 다른 소문 하나가 은밀하게 금의위의 위장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고진용 백호장이 도독과 함께 황태자 전하를 알현했다고 하는데, 황태자 전하께선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도독께 명해 그를 천호장에 임명하라 지시했다고 한다.
찬바람이 문틈 사이를 비집고 스며들던 그날, 공손각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위장들을 맞이해야 했다.
“도독, 정녕 그를 천호로 임명하실 것인지요? 말도 안 됩니다. 들어온 지 보름밖에 되지 않는 자에게 천호라니요?”
“그렇습니다, 도독. 자칫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천호장들이 서로 나서서 입에 침을 튀기며 떠들어대자, 공손각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이미 예견했던 반발이었다.
“그만. 그 일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네.”
공손각이 확언하듯 말을 맺자, 한쪽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오십 초반으로 보이는 초로인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오나 도독, 그 사실을 백호들이 알면 적지 않은 불만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깔끔한 모습에 검은 수염을 탐스럽게 기른 그는 눈이 매처럼 날카롭게 생긴 자였다.
북진무사 송시명과 더불어 금의위의 양대 축이라는 남진무사 양호경이 바로 그였다.
공손각은 그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결정된 사항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고진용을 천호에 임명했는지, 그 이유는 더더욱 알려줄 수 없었다.
공손각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황태자 전하께서 명하셨고, 내가 결정한 일이야. 지금 자네는 나의 결정이 불만이란 것인가, 아니면 황태자 전하께 불충이라도 하겠다는 겐가?”
“속하가 어찌 감히……. 저는 다만 그토록 젊은 사람이 천호에 임명되면 금의위의 위장들이 흔들릴까 봐서…….”
“자네가 보기에 금의위가 기껏 한 사람의 임명 때문에 흔들릴 정도로 형편없다고 보는가? 자네는 너무 걱정이 많아, 양 진무사.”
“하오면 그를 그대로 천호로 임명할 생각이신지……?”
“이미 결정된 일이라 했네.”
“으음, 도독께서 그리 결정하셨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나 한 가지, 그가 과연 천호장의 위치에 오를 만한 자인지 시험을 해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공손각이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자네는 그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 그게 궁금한 거로군.”
“솔직히, 믿을 수 없는 소문이어서…….”
2
아침 일찍 정광과 함께 입궁한 진용은 동화문을 지나 구소로 향하면서 심상치 않은 공기를 감지했다.
사람들이, 특히 금의위의 위사들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호기심이 잔뜩 어려 있지를 않은가.
뒤따르던 정광도 그러한 기미를 눈치 챘는지 두충을 돌아다보았다.
“두가야, 너 뭐 소문 들은 것 없어?”
“예? 뭘요?”
“요즘 네가 떠들어댄 통에 황궁 안이 온통 우리 소장 이야기로 시끄럽다면서? 그렇게 돌아다녔으면 뭔가 주워들은 이야기라도 있을 것 아냐?”
“제가 무슨 청소붑니까, 주워듣게?”
“잉? 지금 반항하겠다는 거냐?”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감히…….”
“아냐, 아냐, 가끔씩 반항해도 괜찮아.”
“정…… 말요?”
“그래야 나도 손맛 좀 볼 거 아니냐?”
부르르, 몸을 떤 두충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정광을 한 번 흘겨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아! 어제저녁에 들은 이야긴데요, 남진무사의 위장들이 소장님께 비무를 신청한다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정광의 손이 번개처럼 허공을 가르며 호두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딱!
두충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에 소리를 빽 질렀다.
“아이고, 머리야! 제가 동네북입니까? 왜 때려요?”
“이놈아,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지! 왜 아까 물었을 때는 대답을 안 한 거야?”
“뭘… 요?”
다시 한번 소리치려던 두충은 정광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소리를 죽였다. 그러자 정광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남진무사의 위장들이 싸움을 걸려고 한다며?”
“에이, 도장님도. 그게 어디 싸움입니까? 비무라니까요.”
“이놈이! 그거나 저거나…….”
정광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그때 진용이 나서서 두충의 위기를 막아주었다.
“무엇 때문이라고 합니까?”
두충은 재빨리 진용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빠르게 입을 열었다.
“헤헤, 그야 소장님이 백귀를 패대기치고, 동창에 찾아가 한바탕 휘젓고 왔다고 했더니 시기를 하는 것이겠지요, 뭐.”
결국은 자기가 소문낸 일 때문이라는 말. 그런데도 말투에 조금의 미안함도 없다.
진용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남진무사의 사람들만 비무를 청했다고 했나요? 북진무사의 위장들 중에는 비무를 청한 사람이 없나요?”
“예. 제가 알기로는…… 그러고 보니까, 그거 참 이상하네…….”
두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찌푸리자 진용은 고소를 지었다. 난데없이 남진무사의 위장들이 비무를 하려는 이유를 그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게 천호는 안 하겠다니까, 그 영감 귀찮게 하시네.’
태자전을 나서며 공손각이 누누이 당부했다. 한 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 수천호령사에 대해선 절대 입을 열지 말라고.
그러니 수천호령사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다섯 사람, 자신과 황태자를 비롯해 공손각과 육두명, 그리고 북진무사 송시명뿐이다. 심지어 정광이나 두충조차 아직은 모르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천호에 대한 일은 비밀로 해둘 수 없는 일. 결국 남진무사와 나머지 천호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을 터, 그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마도 비무라는 명목으로 나를 시험하려는 것이겠지.’
귀찮기는 하지만 이미 소문까지 난 마당, 진용은 굳이 피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 한다고 합니까?”
“글쎄요. 오늘 미시, 점심을 먹고 나서 반 시진 후에 한다고 한 것 같던데…….”
당사자도 모르는 것을 잘도 알고 있다. 과연 금의위의 마당발이라 하더니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네. 왜 우리에게는 알리지 않은 거지?”
정광이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두충이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진용을 가운데 두고 정광과는 반대편으로 가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생각났는데요, 아침에 육 천호장님께서 소장님 오시는 대로 모시고 오라고 했는데…… 아마 그것 때문에…….”
그 말에 정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충을 불렀다.
“너 잠깐 이리 좀 와볼래?”
두충은 속으로 외쳤다.
‘내가 미쳤수?’
3
육두강은 자신의 집무실 뒤에 있는 공터에서 눈을 반개한 채 삼 척 장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섬광이 번뜩이며 그가 이십 년 넘게 익혀온 비연십팔검이 줄줄이 이어졌다.
사실 천호장이 된 이후 그가 직접 나서서 검을 펼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검을 연마해 왔다, 그때만큼은 자식을 잃고 부인을 잃은 아픔을 잊을 수 있었기에.
그렇게 검은 그에게 있어 또 하나의 인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는 자신의 검에 만족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고진용을 만난 이후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자식과 같은 나이의 고진용이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고진용이 집 안에 있던 석등에 격공탄지로 구멍을 내는 것을 보고도 그의 무위를 짐작치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그때 그가 최선을 다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휘이익!
허공을 쓸고 올라간 검세가 삼방을 제압하며 떨어져 내렸다. 비연십팔검에서 가장 정묘한 검초인 비연낙상(飛燕落想)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검초는 비연참마(飛燕斬魔). 빠르면서도 신랄하기 그지없는 검세가 전면을 난자하며 십여 개의 검화가 피어난다.
“핫!”
그의 입에서 짧은 기합이 터져 나왔다. 순간, 빠르게 나아가던 검세가 멈추더니 파란 기운이 검끝에서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일순간, 피어오른 검기가 검첨에 뭉쳤다. 검기성형의 경지.
강호에서도 일류고수들 중에 상급의 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다는 검기성형이 그의 검끝에서 발현된 것이다.
팟!
육두강은 검을 힘껏 내밀었다.
검첨에 뭉친 검기가 주욱 나아가더니 정면 허공에 하나의 구멍을 뚫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다였다.
검첨을 벗어난 검기는 한 자도 나아가지 못하고 소멸되어 버렸다.
“후우욱!”
깊게 숨을 들이켠 육두강은 안타까운 눈으로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기성형을 이루기는 했지만, 그를 이용해 검초를 펼칠 수는 없다. 결국 빛 좋은 개살구다. 남 앞에서 자랑할 것이 아니라면 펼칠 수도 없는 경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전에 송시명이 검을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검기를 유형화시켜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는 그를. 그것이 벌써 삼 년 전이었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 경지에 도달하리라 생각했거늘…….
“정녕 안 되는 것인가? 삼 년의 세월이 짧은 것인가, 아니면 나의 자질이 그만큼 되지를 못하는 것인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던 육두강은 저만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왔으면 기척이라도 낼 것이지!”
하지만 그들 중 조금이라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자는 두충뿐이었다.
오히려 말코도사 정광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그러게 누가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연무하라고 했남?”
그리고 진용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의 검을 평가했다.
“검이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렇죠, 도장님?”
“그건 자네 말이 맞네. 사람은 안 그런데 검은 저렇게 부드럽다니, 나원.”
뭐야? 내가 어디가 어때서?
육두강은 짐짓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래도 적도들에겐 인정사정없는 검일세.”
“그거야 천호장님의 마음이 강하니 그런 것이지요.”
진용은 담담한 말투로 말하며 육두강에게로 걸어갔다.
“금의위에는 뛰어난 검법이 많다는데, 왜 그런 검을 익히셨죠?”
“그게…… 본래는 다른 검법을 익혔었는데, 마누라가 이 검법을 제일 마음에 들어했거든. 나도 그리 싫지 않아서 이십 년째 이 검만 익혔지.”
한마디로 마누라 때문에 몸에 맞지도 않는 검을 익혔다는 말.
진용과 정광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육두강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이 보고 있는 육두강이 지금껏 봐온 육두강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럼 다른 검은 익히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