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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48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48화

 

48화

 

 

 

 

 

 

 

문득 진용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세르탄이 다시 말했다.

 

‘가로로, 이계의 문자를 읽듯이.’

 

‘가로, 좌에서 우로?’

 

책이 거꾸로 놓여 있으니 자연스럽게 첫머리부터 순서대로다. 

 

한순간, 진용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설마……? 이 책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진용을 여소문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거야…… 마음대로 하게. 한데 그 목록에 적힌 책 중 빠진 책은 없는 것으로 아네만.”

 

물론 없었다. 그러나 진용이 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책의 목록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그 책의 제목. 그리고 첫 번째 글자. 가로로 주욱…….

 

신서, 좌전, 시경, 서경, 논어, 문자궤범, 귀장 등등…….

 

진용의 얼굴에 슬며시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떠올랐다.

 

우습지 않게도 아버지가 고서를 바란 것은 그 책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바란 것은 바로 책의 제목이었다. 그것도 제목의 첫 글자.

 

 

 

신, 좌, 시, 서, 논, 문…….

 

새롭게, 좌측 시서의 글을 논하여…….

 

 

 

아버지는 문연각의 책이 들고날 때마다 철저히 기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만일 진용이 황궁에 들러 자신에 대한 것을 탐문할 경우를 생각한 듯했다.

 

그럴 경우 아들은 분명 고서에 대한 것을 알아보려 할 터. 고서의 목록을 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하신 것 같다.

 

아니면 종 숙부라도 알아보고 말을 전해주기를 바랐던지.

 

모두 삼백삼십 자의 글. 

 

솔직히 그 글이 전해질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희망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쨌든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이걸로 확실해졌다.

 

아버지는 이미 탈출할 생각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탈출했다.

 

밀옥의 시서화와 회벽에 쓰여 있던 글, 득(得), 결(訣).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십 년에 걸쳐 파고든 것이 건곤흡정진혼결인 것을. 게다가 그 시서화에 쓰인 글을 풀이하면 건곤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나는 하늘이요, 또 다른 하나는 땅이다. 그리고 둘을 얻으며 세 번째인 스스로의 몸도 깨우쳤다는 뜻.

 

그렇다면 아버지는 정녕 그 지독한 마공을 익히셨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신보다 월등한 경지까지?

 

하긴 자신처럼 망설이며 익힌 경우와는 또 달랐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익히고자 했다면,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익혔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자신보다 월등히 높은 경지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진정 스스로 탈출하셨다면, 왜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추적이 있을지 모른다 생각하셨을지라도 삼왕이 실권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 번쯤 들르셨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대체 어디로 가신 것일까.

 

답답하지만 그 이상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일단 그 정도 안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어디에든 살아 계시기만 하다면야…….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진용은 세르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세르탄이 아니었다면 아쉬움만 안고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세르탄.’

 

‘응?’

 

‘고마워. 정말이야.’

 

‘흐……. 뭘 그 정도야 이 세르탄님이 마음만 먹으면…….’

 

그럼 그렇지. 한 건 했으니 가만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세르탄이 고맙긴 고마웠다. 그래서 말했다.

 

‘뭐 먹고 싶어? 뭐든 사줄게.’

 

‘……시르! 먹는 건 네가 먹잖아!’

 

크크큭.

 

‘그럼 원하는 게 뭐야? 뭐든 말해봐.’

 

진용이 웃으며 다시 묻자 세르탄이 주저하며 말했다.

 

‘저기…… 저 엉터리 도사의 가슴속에 있는 소녀경인가 뭔가 하는 책 좀 보면 안 될까?’

 

그 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생각 같아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보여주기 위해선 자신도 봐야 한다. 

 

뭐, 그 정도야 감수한다 치자. 자신도 다 컸으니까. 

 

하지만…….

 

‘후우, 세르탄.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너는 안 보는 게 나아. 그렇게만 알아.’

 

‘……?’

 

 

 

한편 정광은 안타까워하는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이 목록을 적은 책을 보더니 갑자기 경극 배우처럼 천변만화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며칠간의 고생이 헛수고로 돌아가니 혼란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광은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아팠다. 저러다 미치는 것은 아닌지, 그로선 진정으로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봐, 괜찮은가? 너무 염려하지 말게. 별일이야…….’

 

“휴우우.”

 

“왜 나를 보면서 한숨을 쉬나?”

 

그러다 문득 진용의 눈이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정광은 고개를 숙여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에서 살짝 빠져나온 책의 제목 첫 글자가 옷깃 사이로 보였다.

 

소(小)…….

 

“어? 이게 왜 나왔지? 깊숙이 넣어놨는데.”

 

 

 

 

 

3

 

 

 

 

 

어둠이 자금성을 덮어오자 사방에서 불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지붕의 황금빛이 짙은 홍조를 띠며 빛나고 있다. 화려한 기둥과 백옥으로 빛은 조각상들은 마치 살아서 황궁을 지키기 위해 포효하는 것만 같다.

 

진용은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광경을 마주하며 문연각을 나섰다. 정광이 슬쩍 진용을 보며 물었다.

 

“어디로 갈 건가?”

 

“일단 구소로 가죠.”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며칠째 다니다 보니 구소와 문연각 사이를 지키는 황궁의 위사들은 모두가 진용과 정광을 알고 있었다.

 

일각이 지나 구소가 있는 전각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두충이 진용을 보더니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소장님, 잠깐만요.”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두충은 힐끔 전각 안을 바라보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창에서 첩형이 와 있습니다.”

 

“첩형? 지금 말입니까?”

 

제독태감 밑에서 실질적으로 동창을 움직이는 자들이 바로 두 명의 첩형이다. 금의위로 따지면 진무사와 동등한 지위. 

 

그러한 만큼 그들의 위세는 육부의 시랑이라 해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그런 첩형이 직접 자신을 찾아왔단다, 그것도 해가 지는 시간에.

 

“무엇 때문에 왔답니까? 혹시 저번 일 때문에?”

 

좌사응과의 일이 아니라면 올 일이 뭐가 있을까? 

 

“그게…… 그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다? 하긴 그런 일로 저녁에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게다가 이미 닷새나 지난 일이 아니던가.

 

진용의 표정이 의아한 가운데 기이하게 변했다. 마치 뭔가를 짐작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일단 들어가 보자구. 뭔 일인지 들어보면 알 텐데 뭐 하러 고민하는가?”

 

정광이 태평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일단 부딪쳐 보면 알 것 아닌가?

 

“들어가죠.”

 

 

 

안으로 들어가자 나이를 짐작키 힘든 중년의 환관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불빛 때문인지 분을 바른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보였다. 

 

그의 좌우로는 두 명의 당두가 서 있었다.

 

진용이 들어가자 앉아 있던 중년의 환관이 웃음 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구소의 소장인 고진용인가?”

 

가느다란 목소리. 마치 여인의 음성처럼 들려온다. 오만함이 몸에 배어 말꼬리가 흐트러진다.

 

“제가 고진용인 것은 맞습니다만…….”

 

“나는 동창의 첩형 조산명이라 하네.”

 

진용은 비례(非禮)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환관이라면 양 태감 때문에라도 그리 반갑지 않은 자들이다. 하지만 황궁에 있을 동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육두강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첩형께선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그렇다고 말투마저 공손히 나오지는 않았다.

 

약간 까칠한 말투에 두 당두 중 얼굴이 기다란 자가 싸늘한 눈으로 진용을 노려보았다. 진용의 말투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진용은 그를 본 척도 않고 조산명의 답을 기다렸다.

 

조산명은 물끄러미 진용을 바라보더니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백귀에게 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 저 쇠신발을 휘두르는 괴상한 도사와 그대에게 꼼짝도 못하고 당했다 하더군.”

 

역시 그 일 때문인가?

 

이 시간에 찾아온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 동창도 그리 대단할 것은 없어보였다. 다른 이유로 찾아왔기를 바랐거늘.

 

“그 일을 따지시러 오신 겁니까? 조금 늦게 오셨군요.”

 

눈빛을 빛내던 당두가 참지 못하고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 첩형께 예의를 차려라.”

 

진용의 눈이 그자를 향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내가 아는 대로라면 여긴 내 관할, 그대가 설칠 곳이 아니오.”

 

“뭐야?”

 

두 사람의 신경전이 점점 더해가자 조산명이 하얀 손을 치켜들었다.

 

“석 당두, 그만.”

 

그러자 발끈해서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던 석 당두란 자가 한순간에 순한 양이 되어버렸다.

 

말 한마디로 석 당두란 자를 제지시킨 조산명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흘흘, 조금 전에 그 일을 따지러 왔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미처 답을 못했군. 분명히 말하지, 나는 그 일을 따지러 온 것이 아닐세.”

 

아니라고? 그럼……?

 

의아해하던 진용의 눈빛이 깊숙한 곳에서 한순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조산명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탐색하는 눈빛을 번뜩이며.

 

“시간이 늦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자네가 고 학사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맞나?”

 

진용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조산명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속마음은 만족감으로 차 오르고 있었다.

 

‘역시 그것이었군.’

 

다른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 사실을 문연각의 학사들에게 흘린 것에는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이 서서히 씨앗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든 줄이 끊어져 있는 상황. 양 태감은 사라졌고, 삼왕도 구금되어 있어야 할 삼왕부에서 행방을 감춘 상태다. 그러니 자신이 누군가를 알려놓으면, 누군가가 찾아오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동창 역시 진용이 생각한 그 누군가 중에 하나였다. 다만 생각보다 빨리 온 것이 마음에 걸릴 뿐.

 

“과연 동창이군요. 그런데 제가 그분의 아들이라는 것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조산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 문제없네. 그 때문에 제독태감께서 자네를 보자 하셔서 찾아온 것뿐이네.”

 

“제독태감께서 저를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흠, 어떤가? 지금이라도 상관은 없네만.”

 

진용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금의위 소속이지요. 일단은 도독께 보고를 드리는 게 순서일 듯합니다. 그 정도는 제독태감께서도 이해하실 거라 생각이 드는군요. 게다가 시간이 늦었습니다.”

 

조산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겠지. 흠, 그럼 늦었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네.”

 

조산명이 일어서자, 한마디 말도 없이 제자리만 지키고 서 있던 얼굴이 검은 당두가 조산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산명이 그를 향해 귀를 기울이더니, 진용을 향해 말했다.

 

“이 사람은 우위양이라 하네. 사람들은 이 사람을 흑랑이라고 부르지.”

 

흑랑 우위양. 백귀 좌사응과 함께 흑랑백귀로 불린다는 자.

 

그가 짙게 그늘진 눈으로 진용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백귀 좌사응이 이토록 평범해 보이는 서생에게 졌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는 눈빛이다.

 

진용도 새삼스런 눈으로 우위양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좌사응보다는 한 수 위의 고수다. 하나 그뿐이다. 진짜로 강한 자는 따로 있다. 

 

바로 저자, 조산명!

 

진용의 눈길이 조산명에게로 돌아가자 조산명이 묘한 눈빛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이 밤에 찾아온 것은 꼭 좀 전의 일 때문만은 아니라네. 사실 자네란 사람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거든. 흘흘흘…….”

 

그는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일 보세.”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반 각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진용은 동창에 대해 최소한 한 가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곳이 바로 동창이라는 것.

 

“그놈 제법인데? 자신의 기운을 숨길 줄 알다니.”

 

정광도 조산명의 숨은 능력을 알아본 듯하다.

 

“그래도 도장님만은 못합니다.”

 

“그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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