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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47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47화

 

47화

 

 

 

 

 

 

 

7장. 배열

 

 

 

 

 

1

 

 

 

 

 

문연각은 황궁의 남동쪽에 있었다. 동화문에서는 거리가 멀지 않았다.

 

거대한 태화전의 지붕을 보며 좌측으로 꺾어지자 이층으로 지어진 몇 채의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궁을 수비하는 어림군이나 금의위들, 아니면 바쁘게 움직이는 품계가 낮은 관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두충은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했다.

 

그렇게 도착한 문연각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문연각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온통 책뿐이다. 수많은 문서와 서책들의 양이 가히 십만 권에 다다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질릴 만도 했다.

 

그 정도 서책을 관리하자면 한두 명의 학사로는 어림도 없는 일. 아니나 다를까, 안팎으로 십여 명의 학사가 여기저기서 서책을 정리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서 안을 한번 둘러본 진용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는 자에게 다가갔다. 

 

중년 학사가 붓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진용 일행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젊은 서생, 금의위 복장의 위사. 그리고 중년의 도사. 어느 누가 보아도 특이한 일행이었다.

 

“무슨 일이신가?”

 

중년 학사의 물음에 두충이 나섰다.

 

“이분은 금의위 제구소의 소장님이십니다. 도독의 명으로 몇 가지 알아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도독께서 전갈을 했다 들었습니다만…….”

 

금의위의 소장이라는 말과 도독의 명이라는 말에 학사는 안색이 급변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아침 일찍 연락을 받았네. 그래, 반출되었던 고서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셨던가?”

 

진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학사가 조금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부분이 고서들이라 보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

 

진용은 학사의 비웃음이 담긴 말에 주위에 쌓인 책들을 둘러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저 귀갑문자나 과두문 같은 글로만 적혀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요. 그 글자들은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해으니가요.”

 

진용의 말에 학사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진용의 말대로라면 귀갑문자나 과두문조차 조금은 익혔다는 말이 아닌가.

 

“허, 젊은 사람이 어찌 그런 고대 문자를…….”

 

“그 책자를 내간 사람은 양 태감이지만 읽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지요?”

 

학사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대 말이 맞네.”

 

진용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슨 마음에선지 자신의 정체를 순순히 밝혔다.

 

“그분이…… 제 아버님이십니다.”

 

순간 학사의 입에 떡 벌어졌다. 

 

정광도 놀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이 너무 쉽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하지만 학사의 놀람에 비하면 정광의 놀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 자네가 고 학사의 자식이란 말인가?”

 

뜻밖에도 격한 반응이다.

 

진용은 의아한 눈으로 학사를 바라보았다. 목적한 바가 있어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혔지만 이렇듯 감격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했던 터였다.

 

“제 아버님을 아십니까?”

 

“허, 허허허. 종 학사가 입에 침이 마르게 이야기를 해서 모르는 학사들이 없다네. 고 학사가 이 나라 최고의 고대 문자 전문가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이거 정말 반갑구먼.”

 

진용은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저는 고진용이라 합니다.”

 

“나는 여소문이라 하네. 종 학사와는 동문이지. 허, 정말 아까운 사람들이었는데……. 쯔쯔쯔…….”

 

혀를 차는 여소문의 표정에는 진정으로 고중헌과 종상현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인사만 나누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진용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밝혔다.

 

“아시겠지만 사실 제가 그 책들을 보고자 하는 것도 아버지의 일 때문입니다.”

 

“그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주겠네. 잠시만 기다려 보게.”

 

여소문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서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이보게들! 모두 이리 와보게나!”

 

안쪽에서 서책을 정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여소문을 바라보더니 웅성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여 공?”

 

그러자 여소문은 한쪽에서 제법 두터운 책자를 꺼내더니 빠른 손놀림으로 책장을 넘겨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옳지, 여기 있군.”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다가온 사람들에게 손에 들린 책자를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여기에 적혀 있는 책들을 찾아보게. 모두가 고서들이고 전에 나갔다 들어온 이후 다시 나가지 않았으니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고서요?”

 

“그렇다네. 하하하, 여기 이 사람이 누군지 아나? 놀라지 말게. 이 사람이 바로… 얼마 전에 사라진 고 학사의 아들이라는군. 자네들도 종상현이 말한 고 학사에 대해서 잘 알지?”

 

“예? 저 친구가 고 학사의 아들이라고요?”

 

“맞아. 그리고 금의위의 백호장이기도 하지.”

 

금의위란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소문이 말을 이었다.

 

“양 태감이 수년에 걸쳐 고 학사에게 고서를 가져다줬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알 거야. 자네들이 찾을 것은 바로 그 책들이네. 뭐 하나? 빨리들 찾아보게.”

 

“예, 알았습니다.”

 

 

 

일각이 넘어가자 진용의 앞에는 근 백여 권에 달하는 책자가 수북이 쌓였다.

 

설마 그토록 많으리라곤 생각을 못했던 진용이 난감한 표정을 지을 때쯤, 여소문이 책자 세 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흠, 대충 삼 할 정도는 찾아낸 것 같군.”

 

맙소사! 이게 삼 할이라고?

 

어떤 책은 십여 장 안팎에 불과하지만, 어떤 책은 두께만 족히 반 뼘이나 되었다. 

 

백여 권만으로도 탁자가 가득 찰 정도. 그런데도 책은 자꾸만 불어난다.

 

진용이 여소문에게 말했다.

 

“이 책들을 모두 살펴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한 번에 가지고 나갈 수도 없을 테니 일단 한쪽에 쌓아두고 이곳에서 천천히 보고 싶습니다만.”

 

여소문도 막상 책을 쌓아놓고 보니 너무나 많은지라 겁날 지경이었다.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맘대로 하게. 반출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걸세.”

 

그때 정광이 질린 표정으로 진용에게 물었다.

 

“정말 저 책들을 모두 살펴볼 생각인가? 으휴, 한 권 한 권 살펴보려면 장난이 아니겠는걸.”

 

“어쩔 수 없지요.”

 

그건 그랬다. 진용 자신만이 아는 뭔가를 찾아야 할 테니 다른 누구에게 도와달란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진용은 책과 씨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책 속에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시 이각가량이 지나서야 여소문이 마지막 책자를 내려놓았다.

 

“다 가져왔네. 제법 되는군.”

 

제법 정도가 아니다. 책자는 모두 삼백삼십 권에 달했다.

 

“이제 시작하죠.”

 

진용의 말에 정광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일단 크고 작은 것, 두텁고 얇은 것, 오래된 것과 최근 것 등으로 분류만 해주세요. 그리고 내용에 대한 것은 그 다음에 분류를 하고요.”

 

“내, 내용까지……?”

 

결국 조금씩은 다 읽어봐야 한다는 말, 끝내 정광의 눈은 질린 회색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2

 

 

 

 

 

사람들은 수북이 쌓인 책자를 하나하나 읽어가는 진용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자신들도 책을 좋아하는 학사들이지만 진용처럼 한자리에 앉아서 하루 종일 책만 들여다볼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책을 붙들고 한자한자 파고든다. 그러다 밤이 되어서야 문연각을 나섰다.

 

처음에는 하다 말겠지 했던 학사들조차 이제는 진용을 보는 눈이 달라져 있었다.

 

삼 일째 되던 날이었다. 진용이 점점 빠른 속도로 책을 읽자 그런 진용을 보고 학자 한 사람이 코웃음 쳤다. 

 

“저렇게 읽어서 한 자나 제대로 이해하겠나?”

 

그는 책의 내용에 대해 진용을 시험해 봤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진용의 맹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가 어찌 알까. 진용이 마법을 써서 책의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는 것을. 글자뿐 아니라 심지어 얼룩진 자국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용이 아니라 세르탄이 외웠다. 

 

학사들은 그런 진용을 가리켜 책귀신, 서귀라 불렀다.

 

닷새째 되는 날 저녁 무렵, 진용은 마지막 책을 내려놓고 허공을 올려다봤다. 옆에서 진용이 읽은 책을 정리하던 정광이 물었다.

 

“못 찾았나?”

 

“예, 아무것도…….”

 

힘없는 목소리가 진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오 일간 책과의 싸움은 별다른 소득 없이 끝이 났다.

 

너무도 허망했다. 나름대로 배운 것이 있으니 소득이 정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자신이 지식을 얻고자 책을 파고든 것이 아니질 않는가?

 

‘대체 아버지는 이 책들 속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신 걸까?’

 

혹시나 숨겨진 글이 있나 찾아봤다. 그러다 나중에는 여소문 몰래 촛불에 대고 비쳐 보기도 했다, 행여나 영문극 놀이처럼 숨겨진 글자가 없나 하고. 

 

그러나 그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한 가지 의문이라면 이 많은 책들 중 삼십여 권은 고가장에도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이미 몇 번씩 본 책들을 뭣 때문에 또 보신 걸까?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후우. 포기해야 하나?”

 

한참을 더 그렇게 앉아 있던 진용은 정광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하겠는가? 더 있을 건가?”

 

밖은 이미 어스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제 문연각의 문이 닫힐 시간이다.

 

진용은 씁쓸한 표정으로 탁자에 쌓인 책들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공연히 수고만 끼친 것 같습니다.”

 

“별말을……. 자네가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할 뿐이네.”

 

“어쩔 수 없지요. 제가 너무 쉽게 얻으려 했나 봅니다.”

 

“아니야, 그 정도 정성을 쏟았으면 자네로선 최선을 다한 걸세. 누구도 자네가 쉽게 얻으려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네.”

 

그래 봐야 뭐 하나, 결국은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진용이 일어서자 여소문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제가 찾고자 하는 것이 여기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런, 꼭 찾았으면 했는데…….”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진용은 여소문의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실망감, 아쉬움, 복잡한 표정을 안으로 갈무리하고 걸어가던 진용은 여소문이 일을 보는 책상을 지나치려다 무심코 돌린 눈에 책자 하나가 보이자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닷새간 본 책자들의 목록이 적혀 있는 바로 그 책자였다.

 

그 책자는 여소문이 보던 그대로인지라 당연히 이쪽에선 거꾸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용이 미련이 남은 눈으로 그 책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리려 할 때다. 한동안 조용히 있던 세르탄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어?’

 

처음에는 무시하고 그냥 나가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르탄, 왜 그래? 귀신만 볼 수 있는 뭐라도 봤어?’

 

“시르! 마계의 대전사를 꼭 그렇게 저급한 귀신 취급 할 거야?’

 

‘소리만 지르지 말고 말해봐. 뭐야? 말 안 하면 나 간다?’

 

진용이 말하며 바로 입구로 몸을 돌리자 세르탄이 빠르게 되물었다.

 

‘시르, 이곳에선 글자를 세로로 쓰지만 이계에선 가로로 쓰는 것 알지?’

 

‘나도 그쯤은 알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저 책에 적힌 목록을 잘 봐봐.’

 

진용은 슬쩍 고개를 돌려 여소문의 책상 위에 있는 책자를 바라보았다.

 

진용의 눈이 그 책자를 향하자 여소문이 입을 열었다.

 

“더 볼 것이 없다면 다시 정리해 놓으려고 하네. 언제든 다시 보고 싶으면 찾아오게나.”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진용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그 책이 놓인 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세르탄이 다시 말했다.

 

‘가로로, 이계의 문자를 읽듯이.’

 

그 책에는 빌려간 책의 제목과 누가 그 책을 가져갔는지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진용이 뚫어지게 그 책을 바라보자 여소문이 물었다.

 

“왜? 보지 않은 거라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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