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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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95화
195화 브뜨아 요새 (2)
***
“세인트 그런데 말이다. 조절 같은 건 안되는 거냐?”
초토화된 슬런더 요새를 바라보며 쓰게 입맛을 다셨다.
10미터 높이의 슬런더 요새는 돌산으로 변한 다음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진 돌이 얼마나 많았던지, 장벽을 뒤덮고도 모자라서 산을 만들었다.
“한번 발동하면 목표지역에 생명체를 모두 쓸어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세인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렇게 돌산이 만들어졌을 정도니, 프레하 제국군이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는 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저길 어떻게 지나가라고?”
“뭐가 걱정이야?… БЁЮБЁЮ! 필라 오브 파이어(Pillar Of Fire)!”
수인조차 생략하고서 주문과 함께 세인트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쿠구구구구!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면서 시뻘건 화염이 돌산으로 변한 슬런더 요새로 뻗어 나갔다.
화염의 기둥이 돌산에 부닥치는 순간, 정 중앙이 녹아내리면서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됐지?”
“저런 곳을 지나갈 수 있겠냐?”
기가 막혀서 혀를 끌끌 찼다.
돌산의 중앙이 뻥 뚫려서 길이 생겨난 것은 좋았다. 그러나 죽처럼 흐르는 용암을 밟고 지나려다가는, 병사들이 대번에 통구이… 아니 용암과 함께 녹아 버릴 터다.
“걱정도 팔자다! ЁЮДФБЁ… 아이스 스톰(Ice Storm)!”
한차례 코웃음을 친 세인트가 또다시 마법을 발휘했다.
뼈까지 얼려 버릴 듯한 한기가 쏟아져나와 지글지글 녹아내리는 돌산을 휘감았다.
“장난해?”
기가 막혀서 녀석에게 눈을 흘겼다.
뜨거운 열기가 사라진 것은 좋았으나 뻥 뚫렸던 돌산 중앙이 얼음으로 채워졌다. 힘 조절 따윈 전혀 안 되는 게 분명하다.
“걱정하지 마라! 이번엔…….”
“때려치워! 그냥 쉬었다가 간다.”
녀석이 또다시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을 막았다.
이러다간 끝없이 돌산을 얼렸다가 녹였다가를 반복할 것만 같았다.
염병…
돌산이 무슨 황태야? 얼렸다가 녹였다가 계속 반복하게?
이 녀석한테 해결되길 기다렸다간 한도 끝도 없겠다. 차라리 푹 쉬었다가 듀카스 대공의 명령을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나을 듯싶다.
***
한편,
베링 요새를 손쉽게 공략한 듀카스 대공은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아군이 도주해 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성문조차 열지 않고 도주하다니…….”
“아마도 추격을 경계한 듯합니다.”
엘란트 백작이 곁에서 눈살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베링 요새를 지키던 프레하 제국의 사령관이 도주하는 바람에 찜찜한 학살을 자행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적의 항복을 받아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왕을 피해 아이언 성에서 도주하듯 프레하 제국군의 뒤를 쫓았다.
끌고 온 병력은 겨우 4만.
그 때문에 포로를 관리할 여력이 없다.
잔인하지만…
모조리 죽이는 것만이 답이다.
“메시틴 제국의 배가 베링 요새 건너편에 정박했습니다. 그러니 이만 학살을 중단하심이…”
베르나 백작이 다가와 손을 뻗어 베링 요새의 해변을 가리켰다.
백여 척의 배가 다닥다닥 정박하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듀카스 대공은 더욱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르나 백작의 마음은 알겠소. 그러나 프레하 제국군을 살려 둘 수는 없소. 우리는 여세를 몰아 프레하 제국의 수도까지 진격해야 하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프레하 제국을 도모할 수 있겠소?”
“그러나… 너무 잔인합니다.”
베르나 백작이 고개를 돌려 베링 요새에 시선을 던졌다.
베링 요새의 장벽까지 몰린 프레하 제국군이 화살과 쿼럴의 비에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원래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가 잔인한 거요. 만약 저들을 살려 줬다가는 프레하 제국까지 진격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소. 자비를 베푸는 것도 좋으나, 자칫 놈들이 전쟁을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오.”
“으음… 총사령관 각하의 말씀 새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베르나 백작이 군례를 올리고서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듀카스 대공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놈들을 살려 두면 엘튼 제국의 군대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 차라리 잔인하게 학살해서 다시는 엘튼 제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독하지 않으면 사내가 아니라고 했소. 전쟁에서 적을 가엾게 여기기 시작하면 언제고 탈이 나게 마련이오.”
[명심하겠습니다. 총사령관 각하!]
엘란트 백작과 베르나 백작이 동시에 대답했다. 듀카스 대공의 말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난번 전쟁에서 엘튼 제국이 우습게 보였기 때문에 프레하 제국이 또다시 침략해 왔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으니까 말이다.
“조금 전 아이언 백작이 슬런더 요새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소.”
“과연, 아이언 백작입니다.”
엘란트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 성에서 보았던 거대한 마왕과 그에 맞서는 아이언 백작의 강철 거인.
도저히 현실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싸움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는군. 만약 아이언 백작이 그런 강철 거인을 가지고 딴마음을 먹는다면…….’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아, 엘란트 백작이 가볍게 경련을 일으켰다.
“마, 만약 아이언 백작이…….”
“그만!”
듀카스 대공이 정색하며 말을 끊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듀카스 대공의 눈에선 강렬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엘란트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 백작의 충성심은 그대가 함부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오. 황제 폐하께옵서 가장 신임하는 귀족 중의 하나임을 명심하길 바라오. 아이언 백작을 의심한다는 건 황제 폐하를 의심하는 것과 같소.”
듀카스 대공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엘란트 백작이 제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겨, 결코! 황제 폐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총사령관 각하!”
가슴이 떨려 엘란트 백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필립 황제가 황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전 황제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그 밑바탕에는 듀카스 대공과 모리스 공작, 그리고 아이언 백작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 아! 내가 멍청했구나! 입 밖으로 내뱉어선 안 될 말이었는데…….’
고개를 숙인 엘란트 백작이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이황자의 반란을 진압한 뒤로 아이언 백작의 입지가 달라진 것을 망각한 탓에 벌어진 실수다. 그만큼 마왕과 강철 거인의 존재는, 아이언 백작의 제국 내에서 지닌 역량을 잊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으니까.
“이번엔 넘어가는 것으로 하겠소. 다시는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하오. 우리 귀족이 단합해도 모자란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 총사령관 각하!”
엘란트 백작이 피를 토하는 듯한 음성으로 크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즉결처형을 당할 수도 있는 게 전쟁터다. 이제껏 전쟁터에서 대립하던 정적(政敵)이 가장 많이 죽었던 것이 전쟁 상황에서다.
가뜩이나 지난번 전쟁과 이황자의 반란으로 귀족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시기에 분란의 씨앗을 뿌린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 짓을 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는 엘란트 백작이었다.
“아이언 백작의 말에 의하면 프레하 제국에 또 다른 마왕이 존재한다고 하오.”
“…….”
“…….”
무릎을 꿇고 앉았던 엘란트 백작은 물론, 곁에서 숨을 죽이던 베르나 백작도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그, 그게 사실이옵니까, 총사령관 각하!”
무릎을 꿇고 앉았던 엘란트 백작이 말을 더듬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아이언 백작의 강철 거인을 보았을 것이오. 그가 프레하 제국의 마왕을 하나 맡아준다면, 다른 마왕이 있더라도 메시틴 제국의 소드마스터와 더글라스 용병왕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대할 만할 것이오.”
“하오나…….”
“헬리온 교단의 대신관이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소.”
반론을 제기하려는 엘란트 백작에게 듀카스 대공이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자 엘란트 백작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우리는 프레하 제국의 패잔병을 처리하고 브뜨아 요새로 곧장 진격할 것이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언 백작이 슬런더 요새를 통과해 브뜨아 요새의 뒤를 쳐야 하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 각하!”
베르나 백작과 엘란트 백작이 다시 한 번 주먹을 굳게 쥐고서 가슴에 대었다.
***
슬런더 요새를 지나쳐 프레하 제국의 ‘아멜리아 요새’에 도착했으나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요새를 지키던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기 무섭게 뒤도 안 돌아보고서 후퇴해 버렸다.
이해가 된다.
아멜리아 요새를 지키는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엘튼 제국을 도모하기 위해서 병력을 박박 긁어모아 출병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아마도 보급 거점 정도로 이용되었을 거로 예상한다. 이전에는 엘튼 제국의 침공에 대비한 요충지였을 테지만 말이다.
“자식들이 사람 귀찮게 하네.”
활활 불타오르는 아멜리아 요새의 모습에 입맛이 쓰다.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 둘 째치고 놈들의 군량을 탈취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슬런더 요새의 군량도 세인트 녀석이 홀라당 불태워 먹었다. 물론 아이언 영지에서 프레하 제국군의 군량을 털어 오긴 했지만, 군량이란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
그냥 곱게 도망이나 칠 것이지, 굳이 불을 지르고 도주하다니…
생각할수록 아멜리아 요새에서 퇴각한 프레하 제국군이 얄밉기 짝이 없다.
“윌슨, 통신이다.”
세인트가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다가왔다.
듀카스 대공이 통신을 위해서 코너를 데려간 탓에 통신 마법을 담당할 사람이 세인트밖에 없었다.
녀석의 입장에선 귀찮은 일이라 통신이 들어올 때마다 툴툴거린다.
“충! 총사령관 각하를 뵙습니다!”
수정구를 마주하기 무섭게 군례부터 올렸다.
듀카스 대공이 영상통신으로 연결한 까닭이다. 코너가 수호의 펜던트를 사용해 마나를 공급하고 있을 테니, 영상통신쯤은 쉬웠을 것이다.
―반갑네, 아이언 백작. 어디까지 진격해 왔는가?
“아멜리아 요새에 도착했습니다. 프레하 놈들이 불을 지르고 도주한 탓에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빠르군. 고생했네, 아이언 백작.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쑥스러워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슬런더 요새는 세인트가 박살냈고, 아멜리아 요새는 프레하 제국 놈들이 알아서 내주고 튀었다. 딱히 내가 활약한 게 없으니 어깨에 힘을 주기가 민망하다.
―자네가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른다네.
“과찬이십니다.”
어째 계속 칭찬하는 걸 보니 뭔가 시킬 일이 있는 모양이다.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렇게 사설이 길어지는 건지 불안하다. 듀카스 대공의 말이 길어질 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귀찮은 일을 떠넘겨 왔으니까.
―우리 1군단은 브뜨아 요새를 코앞에 두고 있네. 메시틴 제국의 지원군과 합류했고 용병왕국의 군대가 며칠 뒤에 합류할 예정이야. 그리고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지.
“어떤 소식입니까?”
―헬리온 교단의 다이안 대신관께서 도와주러 오셨다네.
“다행이군요.”
듀카스 대공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서 덩달아 기뻐해주었다.
다이안 대신관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니 이 이상 동조하는 건 무리다. 마왕과 상극이 신을 모시는 존재라고 했으니 그러려니 하는 정도다.
―그래서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네.
“명령하십시오. 총사령관 각하!”
듀카스 대공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곧바로 대답했다.
이미 각오한 상태였기에 망설일 이유도 없다.
―브뜨아 요새의 병력은 3만 정도로 추정되지. 공략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랬다간 프레하 제국으로 진격할 시기를 놓칠 수 있어.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총 사령관 각하.”
―병력을 이끌고 브뜨아 요새로 되도록 빨리 와주게. 자네가 이끌고 오는 병력으로 엘란트 백작이 브뜨아 요새를 포위하고, 자네와 세인트 경은 나와 함께 프레하 제국으로 진격하는 걸세.
“알겠습니다. 총사령관 각하!”
불만을 숨기고서 군례를 올렸다.
이제 막 아멜리아 요새에 도착했는데, 곧바로 행군하라는 지시였으니 기분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까라면 까는 거다.
군바리의 가장 큰 미덕(美德)이 그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