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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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42화
42화
그 말에 공손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런 빌어먹을 놈. 여태 아는 체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몰라봤단 말이냐?”
“…….”
모두가 벙 찐 표정으로 정광과 공손각을 번갈아 보았다. 정광마저도 떼굴떼굴 눈을 굴렸다.
“나를…… 아시오?”
“허! 이십 년이 넘었다고 나를 잊다니, 저런 때려죽일 놈이 있나!”
갈수록 장난이 아니다.
육두강은 처음 들어보는 공손각의 막말에 놀라 입을 쩍 벌리고, 진용은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경극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정광은…… 기억의 저편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가물거리자 눈을 부릅뜨고 말을 더듬었다.
“서, 설마…… 고, 공손 사, 사, 사숙?”
“에라이, 이 호랑말코 같은 놈! 저놈만 놔두고 두 사람은 나가 있어!”
서슬 퍼런 공손각의 말에 육두강과 진용은,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는 정광의 눈빛을 외면하고 후다닥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잠시 후.
또 곡소리가 들렸다, 벽하사에서의 그날처럼.
육두강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좀 걱정되는군.”
“설마 죽을 정도로 때리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사숙이라니……. 높은 자리에 있다는 말씀을 듣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 자네가 걱정된단 말이네, 저런 사람을 데리고 다니려면.”
그 말을 들으니 진짜 걱정이 된다.
진용은 한숨으로 육두강의 말에 대답했다.
“휴우, 어떻게 되겠지요.”
얼마나 지났을까, 정광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을 나왔다.
진용은 못 본 척하고 육두강에게 아버지가 머물렀던 곳을 물었다.
“지금 가봤으면 합니다.”
“험, 따라오게.”
두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정광을 쳐다보지 않았다. 눈이 마주쳐 봐야 서로가 어색할 뿐. 차라리 모른 척하는 편이 정광에게 낫지 싶었다.
동쪽 담벼락을 타고 빙 돌아가니 일전에 자신이 갇혔던 뇌옥이 나왔다. 진용은 굳은 표정으로 뇌옥의 입구에 장창을 들고 선 금의위를 한 번 바라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에만 해도 자신을 잡아 가둔 금의위거늘, 이제는 자신이 일시적이나마 금의위의 직분을 지니게 되었지 않은가.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틀린 말만은 아닌 듯했다.
뇌옥을 지나쳐 다시 반 각가량을 걸어갔다. 키 작은 나무가 무성한 정원의 한쪽 귀퉁이에 작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진용은 직감적으로 그 건물이 바로 아버지가 갇혀 있었다는 밀옥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육두강이 손으로 그 건물을 가리켰다.
“저곳이네.”
시일이 지나서인지 무너졌다는 건물은 완전히 보수가 끝나 있었다. 황궁 내에 무너진 건물을 그대로 방치할 리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일이었다.
진용은 건물로 다가가서 보수를 마친 외벽을 살펴보았다.
육두강이 설명해주었다.
“높이 여섯 자, 너비 석 자가량 무너져 있었네.”
한 사람이 서서 빠져나올 수 있는 형태로 무너졌던 것 같다.
“문제는 안에서 밖으로 무너져 있었다는 것이네.”
밖에서 부순 것이 아니고, 안에서 밖을 향해 부쉈다는 뜻.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벽을 부순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는 것.
아버지에게 이렇게 두꺼운 벽을 부수고 나올 만큼 강한 힘이 있었을까?
말도 안 되는 것은 분명한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눈앞에 증거가 있지 않은가.
문은 열려 있었다.
진용은 안쪽을 살펴보았다.
안쪽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침구가 있는 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놓여 있는 방이었다.
각 방마다 천정 가까운 곳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
진용은 잡동사니가 놓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제법 많은 서책이 쌓여 있었다.
진용이 대충 겉표지를 살펴보니 단순한 소일거리로 읽을 평범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읽던 책인가요?”
“이곳은 본래 동창의 관할 구역으로 직위가 높은 관리들을 일시적으로 구금하던 곳이었네. 저 책들은 그들을 위해 놓아둔 책이네.”
어쨌든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뇌옥보다는 나은 곳이었다.
“생활하시는데 큰 지장은 없었습니까?”
“그게 좀…….”
“하긴, 어렵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요.”
보지 않아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 공연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육두강이 뜻밖의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그랬네. 고 학사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드는지 윽박지르고 고문도 하고 그랬던 것 같네.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한 상황이 벌어지더군.”
“묘한 상황이요?”
“왠지 삼왕과 양 태감이 끌려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진용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육두강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중에는 고 학사가 이것저것 요구할 때마다 다 해주지 뭔가. 다른 사람을 일체 만나지 못하게 해서 그렇지,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후우, 그 바람에 종 학사가 아주 답답해했지. 아마 내가 가끔씩 소식을 전하지 않았으면 난리를 피웠을 거네.”
그러다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육두강이 자신의 이마를 쳤다.
“아! 한 가지를 깜박했군. 내가 듣기로는 황궁 서고의 고서까지 가져다줬다고 하던데…….”
진용의 눈빛이 찰나 간 반짝였다.
“고서요?”
“음, 상당량의 희귀한 고서를 양 태감이 문연각에서 가지고 나갔다 사나흘 후에 가져오곤 했다고 하네. 족히 수백 권이라고 하니 적은 양은 아니지. 설마 양 태감이 느닷없이 고서를 공부하려고 가져갔겠나? 뻔하지.”
진용은 그 말에 골똘히 생각을 정리했다.
정말 뻔했다. 수십 년간 공부한 학자들도 골치 아파하는 것이 고서의 해독이다. 그런 고서를 고문자도 모르는 양 태감이 봤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아버지라면 다르다. 오히려 고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할 분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 고서를 아버지에게 가져다줬을까?
그야 당연히 아버지가 원해서일 것이다.
그럼 아버지는 왜 고서를 원했을까? 왜?
진용은 육두강을 바라보았다.
“그 고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네. 문연각의 책자가 외부로 나가면 다 기록을 하게 되어 있지. 책자를 빼돌릴 생각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 양 태감도 그것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네.”
“그 책들을 볼 수 있을까요?”
“왜? 그 책자에 고 학사가 뭔가를 적어놨을 것 같아서 그런가?”
육두강이 핵심을 짚어 말하자 진용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그 책들을 원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을 겁니다. 저는 그것이 뭔지를 찾고 싶은 겁니다.”
“흠, 일리가 있군. 그러나 한 가지만 알아두게. 책자가 외부로 나갔다 오면 문연각의 학사들이 꼼꼼하게 점검을 하네. 책이 더럽혀지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훼손이 되었는지 알아야 하니까. 아마 새로운 글씨가 몇 자만 더 적혀 있어도 그들이 알아챘을 거네.”
“그렇겠지요. 게다가 양 태감부터도 행여 그런 일이 있을까 봐 철저히 조사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슬며시 진용의 입가로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때로는 백 명이 봐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지요.”
“……?”
4
황궁에는 두 곳의 서고가 있었다. 그중 일반적으로 알려진 황궁 서고가 바로 문연각이었다.
다른 한 곳은 비고(秘庫)로, 일반 관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황실의 가까운 인척들조차 허락받지 않고는 얼씬도 할 수 없다. 오직 황제와 황제의 직계만이 이용할 수 있을 뿐.
그렇다고 문연각을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적어도 황궁 내에서 정식 관직에 오르지 않고서는 그 문조차 통과할 수가 없는 곳이 문연각이었다.
물론 육두강의 지위는 문연각의 가장 깊은 곳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문제는 들고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지금은 늦어서 문연각에 간다고 해도 들여보내주지 않을 텐데.”
“저도 지금 당장 문연각에 갈 생각은 없습니다. 우선은 아버지가 계셨던 이곳을 더 살펴보고 싶습니다.”
“흠, 그래? 그럼 그렇게 하게. 나는 도독께 보고를 올리고 오도록 하겠네. 아! 내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이곳을 떠날 마음이 없었다. 아니,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었다.
“쳇, 길을 알아야 떠나던가 말던가 하지.”
정광의 투덜거리는 말대로였다. 황궁의 길은 미로와도 같았다, 헤매다 길을 잃기 딱 좋을 정도로.
어쨌든 육두강이 보고를 하기 위해 떠나자 진용은 방 안을 살펴보았다.
정광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는, 결국 책 더미 쪽으로 다가가서 책자들을 들추어보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느닷없이 킬킬대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책이라도 있습니까?”
“어? 어. 금병매.”
진용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정광을 노려보았다.
“진짜 도사님이 맞습니까?”
정광이 딴에는 무게를 잡고 말했다.
“도사도 사람일세.”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킬킬킬……. 어? 여기 소녀경까지…….”
완전 신이 난 정광이다.
진용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여간 겉으로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더한다니까.’
그러자 조용히 있던 세르탄이 잔뜩 궁금한 어조로 진용에게 물었다.
‘시르, 소녀경이 뭐지? 나도 좀 보여줘 봐. 재미있는 책인가 본데.’
단호한 어조로 진용이 말했다.
‘애들은 보면 안 돼!’
세르탄이 삐쳤는지 조용해졌다. 그제야 진용은 내력을 끌어올려서 눈의 감각을 최고조로 향상시키는 광안(光眼) 마법을 시전했다.
순간적으로 앞이 환해지더니, 사물이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 먹물로 그린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바닥을 보았다.
부러진 채 버려져 있는 숱이 반쯤 빠진 작은 붓 하나, 먹물을 닦았던 흔적, 아무렇게나 구겨진 헝겊 쪼가리 등 온갖 물건과 흔적이 다 보였다.
바닥을 다 살펴보고 고개를 들었다.
회벽 여기저기에 날카로운 뭔가로 긁은 것처럼 보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몇 개 보였다.
그 반대편에는 소나무 위에서 새 몇 마리가 노니는 조잡한 시서화가 걸려 있었다.
그 사이에는 평범한 나무 침상에 목침, 그리고 본래가 짙은 회색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지저분한 얇은 홑이불이 침상 위에 놓여 있었다.
문득 그 침상 위에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되자, 진용은 가늘게 떨리는 눈을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순간 마법을 건 상태로 주위를 살피던 진용의 두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이상한 느낌, 뭔가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잡히지가 않았다. 신경을 곤두세울수록 자꾸만 자신을 피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무얼까? 대체 뭐가 있어서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걸까?
눈을 감고 자신이 보았던 방 안의 광경을 조각조각 잘라서 떠올려 봤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두 개의 방을 살펴보고 뒤돌아서던 그때까지.
바닥과 침상과 벽과 천장에 널려 있는, 그려져 있는, 걸려 있는 그 모든 것을. 나뭇조각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마치 세밀한 그림을 그리듯이 하나하나.
다른 사람들이 이미 철저한 조사를 했을 테니 쉽게 눈에 뜨이는 것은 그것이 뭐가 되었든 모조리 긁어갔을 것이다. 그렇다고 따로 뭔가를 숨길만 한 비밀스런 장소도 없었다.
결국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은, 남들도 볼 수는 있으되 본다 해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없는 것.
그런데 분명 뭔가가 있기는 있다. 자신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봐선.
그게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