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32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32화
32화
2장. 태산의 인연
1
다음 날, 날이 밝자 유량과 다섯 무사는 태안에 머무르게 하고, 진용과 초연향만이 탁인효와 함께 하군상을 따라 태산을 올랐다.
태산을 오르는 길은 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르는 사람들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계단.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할 정도다.
하지만 진용은 뭐가 그리도 흥겨운지 시를 읊어대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태산은 어떠한가.
제나라와 노나라에 걸쳐 그 푸르름이 끝이 없어라.
천지간에 빼어난 것 모두 모았고,
산의 밝음과 어둠을 밤과 새벽으로 갈라놓았구나.
층층이 펼쳐진 운해, 가슴 후련히 씻어 내리고,
눈 크게 뜨고 돌아가는 새를 바라본다.
내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뭇 산의 작음을 한 번에 내려다보리라.
표정이 평상시에 비해 밝아 보이는 진용을 보고 초연향이 물었다.
“고 공자,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웬 두보의 망악(望嶽)이에요?”
“예? 아, 별거 아닙니다. 그냥 말로만 듣던 태산에 오르니 기분이 좋아서요.”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두 사람.
가진 것 많다고 한껏 위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고 있다.
물론 좋은 눈길은 아니다. 여기저기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보고 흠모의 눈길을 던질 사람은 없으니까.
헌헌미장부였다가 지금은 찌그러진 호박이 되어버린 탁인효의 얼굴도 그렇지만, 준 것 없이 얄밉게 굴던 하군상의 시퍼런 눈두덩은 보고 또 봐도 재미있기만 했다.
꼭 너구리를 닮은 눈두덩이다. 저렇게 골라 패려도 힘들 텐데, 용케도 탁인효는 하군상의 두 눈 가장자리를 시퍼렇게 만들어 버렸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대놓고 웃을 수도 없는 일. 하는 수 없었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 시라도 읊는 수밖에.
그나마 서로가 참고 심하게 손을 안 써서 다행이었다. 만일 내공을 끌어올리고 싸웠다면 누가 말리기도 전에 둘 중 하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상태에서도 자신들을 다스릴 줄 알다니, 제법이란 말이야.’
상대에게 맞으면 누구나 자신을 다스리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내공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최후의 상황만은 벗어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진용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강호의 후기지수라는 자들도 최소한 저 정도는 된다고 봐야겠군.’
일천문을 지나 계단을 오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저 멀리 태산의 정상 천주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곳곳에 새겨진 명필들의 글귀들이 진용의 눈을 사로잡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글을 남겼을까. 게다가 하나같이 명필 아닌 것이 없다.
진용이 석벽에서 눈을 돌릴 줄 모른 채 계단을 오를 때였다. 초연향이 조금은 지친 목소리로 뒤를 향해 물었다.
“언니는 어디 있나요?”
초연향의 물음에 하군상이 대답했다.
“주령은 벽하사에 있소.”
벽하사라면 산꼭대기에 있는 신전을 말함이다. 여신 벽하원군을 모시는 곳. 아직 까마득하다.
일행은 한숨을 쉴 시간도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중천문을 지나 남천문에 이르자 계단이 끝났다. 마지막 계단을 오른 초연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칠천 개가 넘는군요. 정말 굉장한 계단이에요.”
맙소사! 그걸 다 세었단 말인가?
“저곳인가 보군요.”
초연향의 말에 진용은 질린 표정을 지우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신전의 건축물이 붉은빛을 발하며 오만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벽하사(碧霞祀)였다.
2
“오느라 수고했어, 향 동생.”
화사한 하주령의 말에 초연향은 고개를 숙였다.
“저보다는 이곳에서 백일제를 올린 언니가 수고했죠.”
“나야 당연히 할 일이니까. 그런데…….”
막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하군상이야 어차피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그녀의 눈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있었다.
“탁 오라버니!”
탁인효가 이마를 문지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오랜만이오, 령 매.”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얼굴…….”
“하하하! 하 형하고 오랜만에 한 수 겨뤄봤소.”
그 말에 하주령은 싸늘한 눈으로 하군상을 일견하고는 다시 부드러운 눈으로 탁인효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얼굴 변화에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진용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속마음을 짐작키 힘든 여인이구나. 저 여인이 구룡상방의 지낭이라는 하주령이란 말이지?’
초연향도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그저 평범한 아름다움이다, 신비할 정도로 맑은 눈을 제외한다면.
그에 비해 하주령의 얼굴은 서시가 울고 갈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막힐 정도로.
하지만 진용에게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싸늘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눈빛 때문이었다.
“오라버니가 저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오시다니, 소매는 정말 감격했어요.”
“하! 하! 그게……. 그래, 어쨌든 반갑소.”
“좌우간 여기까지 오셨으니 편히 쉬세요.”
“흠, 오늘 떠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본래 그럴 생각이었는데, 아직 백일제 마무리가 안 되어서 내일 아침에 떠날 생각이에요.”
하주령은 탁인효에게 바짝 붙어 서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의 것이 된 것처럼.
하지만 그도 잠시, 그녀는 하군상을 싸늘한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말투만은 부드럽게 치장한 채.
“오라버니는 잠시 방에 가 계세요. 제가 곧 갈 테니까요. 향 동생도 일단 오라버니를 따라가. 내 할 말이 있으니까.”
“예, 언니.”
“그래, 먼저 가 있으마. 갑시다, 향 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서 있던 진용은 초연향이 돌아서자 그녀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붉은 벽을 따라서 서너 번 꺾어지자 객방이 나왔다.
진용은 한 걸음 뒤처져서 두 사람을 따라갔다.
가는 동안에도 하군상은 초연향에게 끊임없이 말을 붙였다. 그가 너구리 같은 얼굴로 끊임없이 말을 하는데도 초연향은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하군상은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태도로 마주 웃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참으로 속을 알 수 없는 자군. 어찌 보면 순수하게도 보이고, 어찌 보면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자 같기도 하고…….’
그런데 진용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다.
저만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에 뭔가를 긁적이고 있는 봉두난발의 중년인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누굴까? 도복을 입은 걸 보면 도인 같은데…….’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다름이 아니다. 벽하사에 저런 허름한 도인이 있다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 아닌가? 벽하원군께 제를 올리는 곳에 지저분하게 봉두난발의 도인이라니.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봉두난발의 도인을 바라보던 진용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쓸데없는 생각은……. 저자가 벽하사의 사람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다고…….’
그때였다. 뭔가 알 수 없는 느낌이 싸늘하게 뇌리를 찔렀다.
흠칫! 진용은 자신도 모르게 옮기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뭐지?’
그 느낌을 세르탄도 받았나 보다.
‘시르, 뭐야? 무슨 일이지?’
‘나도 몰라. 다만……. 아!’
진용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없다!
‘엇? 분명 조금 전만 해도 있었는데? 어디 갔지?’
미끄러지듯 도인이 있던 자리로 신형을 날린 진용은 모든 신경을 개방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행여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해서.
그러나 굳이 눈에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그곳에는 도인이 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분명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다. 도인은 있었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사라졌을 뿐.
‘강호에는 숨어 있는 기인이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묘한 전율이 짜르르 흐른다.
‘참 재미있는 일이야. 안 그래, 세르탄?’
세르탄이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들은 진짜 알 수가 없어. 아직 한참 멀었긴 하지만 시르의 능력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데……. 그런데 뭘 그린 거야?’
진용은 봉두난발의 도인이 긁적이던 흔적을 세밀히 살펴보았다.
기묘하게 얽힌 선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글을 써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림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진용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하하! 이거 진짜로 궁금해지는데?”
방으로 들어가자 초연향에게 바짝 붙어 있던 하군상이 진용을 째려봤다. 자신의 일을 방해당했다는 눈빛이다.
그러든 말든 진용은 두 사람이 있는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눈이 마주치자 초연향이 고개를 숙이고, 두어 걸음을 더 다가가자 탁자 아래로 초연향의 손이 보였다.
떨리고 있었다, 하군상에게 한 손이 잡힌 채.
진용의 눈빛이 싸늘히 굳어졌다.
“군자는 그 행실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했는데, 하 공자는 스스로를 군자라 생각하시는지?”
하군상의 기다란 눈썹이 꿈틀 굽어졌다.
“그대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호위무사면 호위무사답게 굴어! 썩 밖으로 나가지 못할까!”
언뜻 진용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글쎄… 호위무사답게라……. 그럼 그대도 구룡상방주의 자식답게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나?”
“뭐야? 건방진 놈이 감히 누구 앞이라고!”
진용의 반말에 벌떡 일어선 하군상은 초연향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향 매! 내 저놈의 버릇을 고쳐 놔야만 하겠소. 이해하시구려!”
“하 공자…….”
“미안하오. 이번에는 향 매가 내 뜻에 따라줘야겠소.”
화를 누그러뜨리기에는 늦은 상황. 초연향은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용은 초연향의 눈빛을 못 본 척, 하군상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뒤탈은 없을 겁니다.”
“흥! 그래, 뒤탈 없게 확실히 뭉개주마!”
휘이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군상은 신형을 날리며 일 장 앞에 있는 진용을 항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집안에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큰형과 둘째 형이 있는 이상 상단의 우두머리가 되기는 틀렸다 생각했다. 그래서 어릴 대부터 무공 쪽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열 살 무렵, 자신이 친아들이 아닌 양자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더욱더 미친 듯이 무공을 익혔다. 서러움을 잊기 위해서. 그것만이 삶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성격이 살짝 비뚤어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러던 중 자신의 의지를 높이 산 사부를 만나 의발까지 이어받았다.
그때가 십 년이 넘었다. 그리고 이 년 전 사부가 죽기 전에 말했다.
“이제 네 실력이라면 강호에서도 일류고수 소리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앞에서 호위무사 같지도 않은 서생 따위가 깝죽대다니. 단번에 묵사발을 내버리리라!
“이놈! 누워라!”
휘이잉!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를 실은 주먹이 서생의 턱을 날려 버리려 하는데, 서생의 몸이 휘청이는가 싶더니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어쭈? 피해?”
초연향의 앞에서 멋들어지게 진용을 눕히려고 했거늘!
하군상은 자신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노성을 내지르며 쌍권을 연이어 뻗었다.
십여 줄기의 권영이 그물처럼 진용의 몸을 덮어갔다. 그러나 진용이 춤을 추듯 몸을 흔들자 주먹은 허공만 가르며 지나갔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이!”
하군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결국 그는 내력을 좀 더 끌어올린 채 권을 내쳤다. 어지간하면 벽하사의 건물에 충격을 줄까 봐 참으려 했는데,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자신의 권영을 뚫고 커다란 손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동시!
퍽!
가슴이 답답해지는 충격.
“어어억. 이익!”
뭐가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주르륵 물러선 하군상은 물러서는 자신을 따라 코앞에 닥친 진용을 향해 다시 쌍권을 휘둘렀다. 내력이 실려서인지 휘둘러지는 쌍권에서 바람 소리가 일었다.
귀전포행!
귀신조차 때려잡는다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자신만의 절초.
이번에는 틀림없이 놈의 코를 뭉개 버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