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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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9화
29화
진용은 실피나에게 장난처럼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만날 퍼자면서 잠은. 그러지 말고 실피나, 시원하게 바람 좀 일으켜 봐.”
―얼마나 세게?
“뭐, 몸이 날려가지 않을 정도로 세게.”
―아웅! 알았어.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한 번 한 실피나가 커다랗게 옷자락을 저었다.
―바람아 불어라! 언니의 뜻이다!
순간!
후우우…… 휘이이잉! 콰아아!!
우두둑, 와지끈!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나무들이 부러지고, 뽑히고, 난리가 나버렸다.
진용조차 황급히 천근추를 펼쳐 발을 무릎까지 땅에 박고 버틴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머, 멈춰!”
진용의 외침에 가까스로 바람이 멈췄다. 그러자 실피나가 말했다.
―주인아, 됐어? 이제 시원해? 그럼 실피나는 가서 잔다?
“어? 어. 어서 가서 자.”
그때 세르탄이 떨리는 소리로 말했었다.
‘저, 저, 저거, 중급 정령 맞아?’
때로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힘만 센 골칫덩이 말이다. 아무래도 실피나가 그런 정령인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한바탕 거센 바람이 야산의 산등성이를 폐허로 만든 직후, 사람들은 느닷없는 돌풍에 놀라 정신없이 허둥대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진용은 이틀 전의 일을 생각하며 고소를 머금고 슬며시 실피나를 불러봤다.
“실피나.”
스르릉…… 실피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그 난리가 났던 이틀 전 그 날 알았다, 세르탄이 말해줘서.
“사람들이 안 봤는지 모르겠군.”
“정령은 계약자의 눈에만 보여.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지.”
왜 이제야 알려줬냐고 세르탄은 진용에게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부스스한 모습이 아니다. 화사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름다운 모습의 실피나가 파란 눈을 진용에게 들이대며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인아, 불렀어?
말투는 여전했지만.
“음, 오늘 비가 올 것 같은데, 언제나 올 것 같아?”
잠시 바람을 따라 출렁이던 실피나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오겠어. 제법 많이 올 것 같아. 아이, 실피나는 비가 싫은데. 나 들어가도 돼?
목적했던 일은 끝났다.
“그래, 들어가 쉬…….”
실피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어가 버렸다. 나오라면 또 나올 테지만 보나마나 짜증내는 소리가 먼저 튀어나올 것이 분명했다.
진용은 실피나의 짜증내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봤지? 실피나도 비가 올 거라잖아.’
‘……치이.’
세르탄은 왠지 외톨이가 된 것만 같았다.
자기보다 실피나를 더 믿다니…….
다그닥, 다그닥. 드르르르…….
마차는 한 시진이 채 되기 전에 정림사로 통하는 산길을 만날 수 있었다.
산길은 마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도 될 정도로 잘 닦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토록 넓은 길에 아무도 지나다니는 이가 없다니. 정림사는 산동에서 몇 안 되는 대사찰이거늘.
유량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무사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게. 아무래도 이상하네.”
상황은 백여 장을 올라가도록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흐르는 공기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단순히 흐린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날씨 때문이라면 자연이 이리 숨을 죽일 이유가 없었다.
유량이 인상을 찌푸리고서 마차 안을 향해 말했다. 그의 목소리도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흘러나왔다.
“초 낭자, 고 공자,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네.”
유량의 말에 눈을 반쯤 감고 있던 진용이 나직이 말했다.
“십 리 전부터 사람들이 따라왔습니다.”
얼굴이 굳어진 유량이 의아한 표정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이 마저 말했다.
“백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매우 조심스럽게 따라왔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초연향이 진용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여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적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은 점도 있지만, 적이라 해도 일일이 쫓아다니며 상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미리 알려주었으면…….”
“그럼 저들 역시 우리가 자신들의 추적을 눈치 챘다는 걸 알게 되겠지요.”
“우리가 눈치 챈 걸 저들이 알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한 번에 끝내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ㅓ들이 알면 아무래도 공격방식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그럼 한 번에 끝날 싸움이 길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투는 담담한데 왠지 모르게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초연향은 부르르 몸을 떨고 진용을 다시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풍기던 서생 같던 분위기는 씻은 듯 사라지고, 너무 무심하다 못해 차갑게까지 느껴졌다.
초연향의 눈을 외면한 채 진용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낮게 깔려 불어온다. 짙은 비 냄새가 섞인 바람이다.
하늘을 시커먼 구름이 뒤덮은 것을 보니, 금방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져서 세상의 더러움을 쓸어버릴 것만 같다.
다시 한 구비를 돌아갈 즈음, 하늘을 올려다보던 진용이 나직이 말했다.
“불나방들이 나올 때가 된 것 같군요.”
그로부터 이십여 장도 채 나아가지 못했을 때였다. 굉량한 외침이 숲을 뒤흔들었다.
“걸음을 멈춰라!”
동시에 전면의 길이 꺾어지는 숲 속에서 세 중년인을 필두로 이십여 명에 이르는 무사가 쏟아져 나왔다.
“웬 놈들이냐?”
유량이 소리치며 몸을 일으키자, 말에 타고 있던 다섯 무사도 일제히 무기를 빼 들고 마차를 에워쌌다.
그러나 숲에서 나온 자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마차를 향해 다가왔다.
마부석에 서서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유량은 선두에 서서 다가오는 세 중년인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당신들은 영풍삼위?”
영풍삼위. 산동 남쪽 양림에 자리 잡은 영풍보(英風堡)의 고수들이다.
비록 말석(末席)이지만, 산동십세(山東十勢) 중 하나라는 영풍보에서도 능히 고수라 불릴 수 있는 자들로 셋은 친형제였다.
“당신들이 감히 구룡상방을 건드리겠단 말인가?”
강호의 세력이 상생관계인 상단을 건드리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해룡선단이 속한 구룡상방은 영풍보 따위가 건드릴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건드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유량은 해룡선단이 아닌, 구룡상방의 이름을 빌어 영풍삼위를 위협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자 세 중년인 중 가운데 서 있던 빼빼 마른 중년인, 영풍삼위 중 첫째인 동호청이 미간을 씰룩였다.
“굳이 여러 말 할 필요가 있을까, 유량?”
“흥! 영풍보가 천화상단과 연을 맺더니 간덩이가 부었나 보군.”
“글쎄, 그게 일이 좀 묘하게 되어서 말이야.”
언뜻 비웃음이 동호청의 입가에 떠올랐다.
“보주님의 명도 있으니, 초 소저만 내주면 나머지는 곱게 보내주겠다.”
“초 낭자를? 왜 그대들이 초 낭자를 노린단 말이냐?”
“이유는 알 필요 없고…….”
그때였다. 마차 안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를 노리는 무리라면 도적 중에서도 아주 질 나쁜 탐화도적들이군.”
졸지에 탐화도적이 되어버린 동호청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웬 놈이 감히 숨어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삐걱!
진용은 대답 대신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느닷없이 마차 안에서 서생이 걸어나오자 영풍삼위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진용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옷자락만 매만졌다.
“이거 조금 불편하군.”
“네놈은 누구냐? 누군데 감히 우리를 도적이라 하는 것이냐?”
무시당했다 생각했는지 영풍삼위의 둘째 동호강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진용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도적질을 하러 온 사람에게 도적이라 하지, 그럼 뭐라 합니까?”
“서생 따위가 감히!”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은 동호강이 단걸음에 진용을 향해 다가갔다. 남은 거리는 순식간에 다섯 걸음 남짓.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마!”
동호강이 소리치며 대뜸 진용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까지도 영풍보의 사람들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해룡선단의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 서생을 도와주려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찰나 간에 동호강의 손이 석 자 앞에까지 다가왔다.
진용은 그제야 왼손을 들어 동호강의 손을 마주 잡아갔다.
비릿한 조소가 동호강의 입가에 어렸다.
겁도 없이 자신의 손을 마주 잡다니, 어리석은 놈!
‘내가 바로 대응조 동호강이다, 이놈!’
동호강의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워가는 진용의 입가에도 싸늘한 냉소가 맺혔다.
자신이 서생의 복장을 한 이유는 한 가지. 능력을 숨기고 원활한 호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런데 태산에 당도하기도 전에 사건이 터졌다.
결국 초연향의 계획은 시작 전부터 어긋나 버린 셈. 그렇다고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 어쩌랴.
‘어차피 시작한 것.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충격을 주는 게 좋겠군!’
순식간에 두 사람의 손가락이 얽혀들었다.
우두둑!
얽혀든 손가락 사이에서 괴이한 소음이 울림과 동시!
눈을 부릅뜬 동호강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으으으아!”
오른손의 손가락이 으스러진 채 제멋대로 비틀려 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극렬한 통증!
동호강은 내공을 쏟아내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노, 놓아!”
구슬 같은 땀방울이 처절한 비명 소리를 따라 흘러내린다.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서생의 머리를 부숴 버리기 위해 왼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움직일 수가 없다.
으스러진 손을 통해 쏟아낸 기운이 상대에게 다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이, 이게 무슨…… 끄으으으…….’
뜻밖의 상황! 사위가 조용해졌다.
“이놈! 손을 놓아라!”
보다 못한 동호청이 일갈을 내지르며 자신의 삼환도를 뽑아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정식으로 무공을 겨룬 것도 아니다. 단지 손을 마주 잡았을 뿐.
자신 역시 저 서생의 손이 당연히 부러져 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느긋했었다.
분명 그래야 했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반대로 나타났다. 동생의 손이 바싹 마른 보릿대처럼 부서져 버린 것이다.
분노가 앞을 가렸다.
보주가 당부한 말도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최대한 피를 보지 말고 초연향을 데려오라고?
이제 그러기에는 늦었다. 동생이 당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모두 쳐라! 초가 계집만 사로잡고 모두 죽여도 좋다!”
동호청이 소리치며 날아오자 진용의 고개가 돌아갔다. 동시에 오른손이 들리고, 입에서는 내공이 실린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왠지 모르게 그의 목소리에서 살기마저 느껴졌다.
“힘있는 도적들에게 인정을 베풀면 가까운 사람이 다치는 법. 덤비면 모두 죽이겠소.”
고저가 없는 음성. 등줄기를 찌르르 울리는 오싹한 기분!
동호청을 따라 신형을 날리려던 영풍보의 무사들 대부분이 몸을 떨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나마 내공이 깊은 영풍삼위의 셋째 동호진과 대여섯 명의 무사들만이 이를 악물고 유량과 장운호 등을 향해 달려들 뿐이다.
대신 멈춰 선 사람들은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그 일은 나지막한 일갈이 진용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시작되었다.
“하늘의 불꽃이 내 손에 맺히니, 화염주, 출(出)!”
진용의 입에서 마법의 시동어가 나오는 순간,
화르륵!
시뻘건 불꽃이 진용의 손가락 끝에 맺히더니, 불꽃은 구슬이 되어 동호청을 향해 쏘아져 갔다.
“허억!”
대경한 동호청이 손에 들린 삼환도를 전력으로 내려쳤다, 일격에 반으로 쪼개 버릴 듯.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쩌적! 쾅!
삼환도와 정면으로 부딪친 불구슬이 굉음을 일으키며 터진 순간, 터져 버린 불구슬이 일 장 전면을 삼켜 버렸다.
화아악!
“뭐, 뭐야?!”
놀랄 틈도 없었다.
뒤로 물러서기에는 폭발한 불꽃이 덮치는 속도가 너무도 빨랐다.
눈 깜박할 사이 불꽃은 동호청의 온몸을 덮어버렸다.
“으허억!”
털어도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악마의 불꽃, 마법의 불꽃이다.
“불을 꺼! 흙이라도 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