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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28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28화

 

28화

 

 

 

 

 

 

 

두 번째 서(序)

 

 

 

 

 

열닷새. 보름달이 떴다.

 

크크크, 벌써 십 년인가?

 

악마의 입김처럼 스며든 기운이 나에게 속삭인다.

 

―나가! 이제 나가! 너에게는 힘이 있잖아!

 

악령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극성이다.

 

어제 놈이 찾아왔었다. 놈의 눈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때가 가까워왔다는 듯 차가운 살소가 입가에도 걸쳐 있었다.

 

하긴 죽일 때가 되긴 했다. 그동안 참느라 쌓인 화가 만장 하늘에 닿아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 듯하다. 악령들이 날뛰는 이유.

 

크크큭큭…….

 

이제 나갈 때가 된 것인가?

 

오기로, 호기심으로, 그러다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 이제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에게 이토록 거대한 힘이 생길 줄이야!

 

그래도 후회는 않는다.

 

아니,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나의 반은 이미 내가 아니다.

 

나가면 어디로 가지? 내가 갈 곳은 어디지?

 

…….

 

…….

 

그래! 그곳! 이 모든 것의 출발점!

 

악령들이여, 그곳으로 가자!

 

악령들이 환호한다.

 

놈들도 내 생각이 마음에 드는가 보다.

 

그래, 좋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1장. 화염주

 

 

 

 

 

1

 

 

 

아침을 먹고 나자 초연향이 다시 진용을 부르더니 옷을 건네주었다.

 

“이 옷을 입으세요.”

 

그녀가 건네준 옷은 서생들이나 입을 법한 옷이었다.

 

“이 옷을 입으라고요?”

 

“고 공자는 무기를 쓰지 않죠?”

 

“그거야…….”

 

“당분간 고 공자는 함부로 자신의 무위를 드러내선 안 돼요. 아주 급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그러니 이 옷과 이 옷에 맞는 신분이 당신에게는 가장 잘 어울린다 할 수 있어요.”

 

“서생이…… 되란 말인가요?”

 

“진짜 서생이 되라는 것이 아니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설마 천자문도 모르는 것은 아니겠죠?”

 

뭐? 감히 대고가장의 장손을 어찌 보고!

 

진용이 어깨를 떡 펴고 말했다.

 

“험! 이래봬도 족히 수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겨우 여덟 살일 때.

 

“풋!”

 

어? 웃어?

 

“정말입니다!”

 

초연향이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알겠어요. 누가 뭐라 했나요?”

 

그러면서도 어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하긴 스물도 안 된 나이에 이 정도 강한 무공을 익히려면 밤낮을 무공에 매달려도 요원한 일이다. 하니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는 일.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진용이 나직하면서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 왈(孔子曰)!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요, 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니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 했지요. 굳이 알아달라고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려 하지는 마십시오. 외진 산야라 해서 잡초만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고가장이 산야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천하의 그 누구보다 고대 문자에 정통했었다,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해야 했을 정도로.

 

게다가 천궁도의 구양 할아버지는 또 어떠하던가.

 

진용이 논어의 글귀를 들어 초연향의 불신을 질책함과 동시에 자신이 논어 정도는 꿰고 있다는 것을 알리자, 초연향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의심하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군자는 여자와 다투지 않는다 하지 않던가.

 

진용은 더 이상 뭐라 하기도 그랬다. 그런데 그녀가 한마디를 더 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면박을 주기예요?”

 

커다란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 그게 아니고… 내가 진짜로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이 말이지요.”

 

“알았어요. 고 공자 똑똑하다는 거, 명심할게요.”

 

누가 누구에게 뭐라 하는지, 상황이 거꾸로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맞받아치면 상황이 더 이상해질 것 같고.

 

새삼 여자와 싸우느니 돌벽과 싸우는 게 낫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진용은 하는 수 없이 문사복을 집어 들었다.

 

“이 옷만 입으면 됩니까?”

 

“건(巾)도 쓰세요!”

 

 

 

속으로 싱글벙글하며 방을 나서는 진용을 보고 세르탄이 빽 소리쳤다.

 

‘어휴! 시르가 그렇게 간사할 줄은 몰랐다.’

 

‘세르탄,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너무 숨겨도 안 되는 법이야.’

 

‘그래도 그렇지, 머리 좀 빗겨줬다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뭐라 할 땐 언제고.’

 

건를 쓰려면 머리가 단정해야 한다며 초연향이 머리를 빗겨줬다.

 

순전히 진용에게 빗이 없어서였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초연향이 뒤로 돌아가서 자신의 머리를 빗겨주자 아리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순간, 진용은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 크게 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세르탄도 좋았으면서 뭘 그래?’

 

‘내, 내가 언제!’

 

‘그럼 침 삼키는 소리는 왜 낸 거야?’

 

 

 

* * *

 

 

 

점심을 먹고 초연향을 찾아가자 두 사람이 진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당연히 초연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삼십 중반 나이의 검을 든 무사였다.

 

커다란 키, 평범해 보이는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그는 가볍지 않은 말투로 진용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유량이라 하네. 강호의 친구들은 파랑검이라 부르지.”

 

초연향이 유량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줬다.

 

“유 대협은 본래 황산검문의 제자였던 분이에요. 우리 선단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죠. 강호의 경험이 풍부해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진용은 초연향의 설명을 들으며 유량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언젠간 강호에 나가야 할 터. 그때를 위해 강호의 생활을 배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고진용이라 합니다.”

 

“곽 당주님을 이겼다는 말을 들었네. 함께 임무를 맡게 되어서 반갑군.”

 

“저 역시,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그런데 문사복 차림에 문사건까지 쓰고 허리를 숙이니 진짜 문사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초연향이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졌다.

 

“밖에서 우리와 함께 갈 무사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고 공자께서 원하는 정보는 일단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단편적인 것뿐이니,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아시려면 북경의 총방에서 알아보셔야 할 거예요.”

 

“그들이 순순히 말해주겠습니까?”

 

“제가 특별히 부탁을 해보겠어요. 지금은 그 정도 답변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이들에게서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북경에 가면 굳이 이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종 숙부에게서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숙부에게 별다른 일만 없다면.

 

그럼에도 이들과 계약을 맺은 것은 종 숙부의 현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빼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을 숙부를 그들이 가만 놔두었을까?

 

모른다. 지금 상황에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숙부와 숙모, 송 누님이 무사해야 할 텐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사는 총 다섯이었다. 그들은 초연향이 타고 갈 마차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진용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장운호와 왕이문.

 

바로 자신에게 덤벼들었다 일격에 꼬꾸라졌던 수룡당의 무사들.

 

그들은 문사복을 입은 진용을 괴물 보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진용이 그들을 향해 말을 걸자 절도있게 대답했다.

 

“몸은 괜찮나요?”

 

“예, 고 공자!”

 

힘에는 힘이 강호의 법칙이라더니,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자주 써먹어도 괜찮을 듯했다.

 

“갈 길이 멀다. 출발하자!”

 

진용과 초연향이 마차로 들어가자 유량이 묵직한 목소리로 출발을 알렸다.

 

 

 

“향아가 출발했습니다, 숙부님.”

 

“음,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구나.”

 

“잘…… 견딜 겁니다. 똑똑한 아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정명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향아야. 정말 미안하다.’

 

 

 

* * *

 

 

 

초연향과 진용이 탄 마차는 다섯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하루에 이백여 리를 달렸다. 

 

빠르지 않게 달렸음에도 태산을 가는 길은 순조롭기만 했다. 마부석에 마부와 함께 앉아 있는 유량이 등을 기댄 채 졸리는 눈을 억지로 잡아떼야 할 정도였다.

 

진용은 간간히 마차의 창문에 내걸린 주렴을 걷어 젖혔다. 그러고는 달그락거리는 마차의 바퀴 소리를 들으며 주위의 경치를 구경했다.

 

숨을 크게 들이켜면 육지의 진한 황토 내음이 콧속을 파고든다.

 

살랑이는 바람에 날리는 근처 야산의 푸른 내음이 상쾌하기만 하다.

 

진용은 그 내음이 좋았다. 십여 년 동안 맡지 못했던 땅 내음이. 천궁도의 비릿한 바닷바람에 찌든 바위 냄새와는 천양지차다.

 

진한 땅 내음을 음미하며 진용은 눈을 반쯤 감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초연향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은 될 듯했다.

 

 

 

“삼왕이 태자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쫓겨났다고 해요. 그 바람에 삼왕을 따르던 자들 역시 숨만 붙어 있다 뿐이지 모든 실권을 잃었구요.”

 

“환관들은……?”

 

“일반 관직에 있던 자들 중 그 죄가 경미한 자는 태자가 모두 끌어안았지만 환관들은 모두 고문을 받고 참수되었어요. 비록 몇 명이 살아남아 도망쳤다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요.”

 

“살아 도망친 자들이 있다고요?”

 

“그래요. 하지만 어느 정도 살아남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요.”

 

“으음, 혹시 한림원의 학사들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는 게 있나요?”

 

“그것까지는……. 아마 총단에서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황궁 뇌옥에 수감된 자들에 대한 것도 알 수 있을까요?”

 

“중요 인물이거나 그동안 이런저런 소문이 났던 사람이라면 알 수도 있을 거예요.”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결국 종상현에 대한 것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아버지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운 삼왕과 그를 따르던 환관이 실각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적어도 북경에 들어가 직접 조사해야 할 경우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던 셈이니까.

 

우선은 그 정도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머지야 구룡상방의 총단에 가서 알아보면 될 테니까. 아니면 시간이 걸리고 조금 위험하더라도 직접 알아보든지.

 

‘그자, 육두강이라 했었지?’

 

진용은 오래전에 마주쳤던 금의위 무사의 이름을 떠올리며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룡선단을 출발한지 사흘째.

 

그토록 쪽빛으로 푸르던 하늘은 어디로 가고, 아침부터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정오가 넘어 미시 중반에 이른 지금은 비라도 올 것처럼 하늘이 뿌옇게 흐려져 있다.

 

“비가 오려나?”

 

진용이 무심코 입을 열자, 유량도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염려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군.”

 

그때 초연향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 시진 안으로 비 피할 곳을 찾아야겠어요.”

 

응? 한 시진? 비가 한 시진 후에 온다는 말인가?

 

진용이 초연향을 바라볼 때 밖에서 마차와 나란히 달리던 장운호가 즉시 말을 받았다, 의문을 달 필요가 없다는 듯.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림사(定林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모실까요?”

 

“그래요. 아무래도 쉽게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으니 오늘은 그곳에서 쉬고 내일 출발해요.”

 

일행들은 즉시 방향을 틀어 정림사를 향했다. 정림사까지는 사십여 리. 산길을 타면 족히 한 시진 이상 가야 할 길이다.

 

 

 

정림사를 향하는 중에 세르탄이 퉁퉁거렸다.

 

‘자기가 무슨 신이라도 돼? 비가 언제 온다고 하게? 뭐? 금방 그칠 비가 아니라고?’

 

‘신이 아니라도 천기를 오래 연구한 사람은 알 수 있다고 했어.’

 

‘쳇! 그거야 하늘의 이치를 깨달은 인간 같지 않은 자들 말이지.’

 

‘초 소저는 신안을 지녔다잖아. 그럼 알 수도 있지.’

 

‘흥! 저 여자 말대로 한 시진 안에 비가 온다면 내가 장을 지진다.’

 

‘손도 없으면서 헛소리는. 그러지 말고 다른 걸로 내기하는 게…….’

 

은근한 진용의 말에 느닷없이 세르탄이 빽! 소리쳤다.

 

‘안 돼! 내기는 안 할 거야!’

 

어쭈? 눈치 챘네?

 

‘그럼 할 수 없지. 실피나에게 물어봐야겠군.’

 

‘그 멍청한 정령이 뭘 알아?’

 

‘그래도 바람의 정령이니 비가 오는 것 정도는 알 것 아냐?’

 

진용의 생각이 맞는지 세르탄이 입을 다물었다.

 

회심의 미소가 진용의 입에 떠오른다. 실피나가 비록 게으르고 성격이 요상해서 그렇지, 능력이 제법 괜찮다는 것을 안 것이 이틀 전이다.

 

 

 

그제 밤에 몰래 실피나를 불러보았다. 실피나는 역시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주인아, 왜 부른 거야? 잠도 못 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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