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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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5화
25화
‘저 사람은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도 흔들리지 않아.’
부모님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심지어 절정고수인 해룡선단의 단주 육대호조차도.
그뿐이 아니다. 오히려 신안이라 불리는 자신의 눈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자각한 이후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뛴다. 얼굴도 왠지 후끈 달아오른 것만 같고.
‘내가 왜 이러지?’
처음으로 느껴본 이상한 감정에 그녀는 어쩔 줄 몰랐다.
결국 그녀는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지 않는지,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서 자리를 일어나야만 했다.
“저, 저는 그만……. 쉬세요. 아버지, 그만 나가요.”
“그래, 우리도 그만 가서 쉬자꾸나. 그럼 편히 쉬게나.”
“예? 예…….”
두 부녀는 엉거주춤 대답을 하는 진용을 뒤로하고 방을 나갔다.
진용은 두 부녀가 나간 뒤에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들킬까 봐 혼났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얼굴이 빨개져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세르탄이 말했다.
‘시르, 어디 아퍼? 머리에서 열나는 것 같은데?’
바다를 하루 더 탐색한 비룡호는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선수를 육지 쪽으로 돌렸다. 순풍을 받고 하루를 나아가자 육지가 보였다.
바다를 띠처럼 두른 육지가 보이자 세르탄이 더 좋아했다.
‘시르, 오오! 육지다!’
하지만 진용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육지다. 아버지가 계신 곳. 아버지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이 저 어딘가에 있다.
아버지를 생각하자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살아 계실까? 아니, 살아 계셔야 한다. 살아 계셔야…….
“용아가 왔어요, 아버지……!”
진용의 입술을 비집고 낮은 으르렁거림이 새어 나왔다.
9장. 해룡선단
1
해안선을 따라 반나절을 더 가자 양쪽에 우뚝 솟은 두 산이 굽어보는 가운데로 넓은 만(灣)이 보였다.
비룡호는 거침없이 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도 백 리 정도 더 나아가자, 산동 동남쪽 천혜의 항만인 교주만(膠州灣)의 안쪽에 자리 잡은 포구가 옅은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때 동쪽의 신라와 고려의 상인들이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산동제일의 포구 교주포구였다.
포구에 들어서자 해룡선단의 사람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아마도 초정명이 미리 보낸 전서구를 받고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듯하다.
초정명과 초연향을 비롯해, 선원들이 진용을 둘러싼 채 배에서 내렸다.
어깨가 떡 벌어진 홍안의 흑염노인이 십여 명의 사람을 대동하고 다가왔다.
흑염노인, 그는 해룡선단의 단주로 교수해룡(鮫狩海龍)이라 불리는 육대호였다.
“다녀왔습니다, 숙부.”
초정명의 나직한 인사에 육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들어 초정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상심 마라. 너는 최선을 다했다. 그거면 되었다. 아까운 사람들이 죽긴 했다만, 바닷사람이 바다에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양 선장의 일은, 어쩌겠느냐, 마풍이 불었다는데.”
“숙부, 저는 그것도 모르고 편한 잠을 잤었지요. 친구가 사경을 헤매던 그 시간에. 그것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게다가 조사를 한답시고 나가서 형제들만 열 명을 넘게 잃었으니…….”
“후우, 놈들의 발호가 더욱 거세지는 것 같아 큰일이구나. 한데 두 척의 배를 순식간에 삼킬 정도의 마풍이라 했더냐?”
육대호는 한쪽에 조용히 서 있는 진용을 슬쩍 바라보고는 전음으로 물었다.
<향아가 확인했느냐?>
초정명도 전음으로 대답했다.
<예, 향아도 고 소협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
육대호는 몸을 돌려서 진용에게 다가갔다.
진용의 앞에 선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도와주었다 하니 해룡선단의 단주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네. 하나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고, 그대에게 들을 말이 있네. 일단 장원으로 돌아가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만.”
진용은 무심한 눈으로 육대호를 바라보았다.
‘이거, 잘못하며 귀찮은 일이 생기겠는데?’
그냥 지나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큰 배 두 척이 사라지고 혼자만 살아남았는데, 그냥 보내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자신이 정식으로 배를 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말해줄 것이 없다며 돌아설 수도 없다.
저 눈빛들을 보라, 어디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보내줄 사람들인가.
<간단한 질문 몇 가지만 대답해주면 되네. 거리낄 게 없다면 협조해주게나.>
초정명의 전음이 고막을 울렸다.
어차피 진용으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막무가내로 뚫고 나갈 것이 아니라면.
나중에 상황이 복잡해지면 그때 가서 대처하면 될 일.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것은 바라지 마십시오.”
진용은 담담히 말하며 초연향을 바라보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고맙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눈 하나만큼은 정말 예쁜 여자야. 그렇지 세르탄?’
‘흥! 재수없는 눈이라니까, 시르.’
하긴 선녀의 눈을 닮아서 재수없다고 말하는 마족에게 뭔 말을 기대할까?
-아마 너한텐 시뻘건 눈이 어울릴 거야, 세르탄.
2
대전 안에는 육대호를 비롯해 초정명과 초연향, 그리고 곽천중과 세 명의 무사, 그 외에 해룡선단의 주축을 이루는 간부들이 서 있었다.
진용은 중앙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먹이를 바라는 참새 새끼들처럼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자가 어떻게 해왕방의 무사들을 물리쳤을까? 그런 뜻이 담긴 눈빛도 있고.
둘러보던 중 초연향과 눈이 마주쳤다.
문득 초연향의 신안에 대해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남들이 못 보는 곳을 볼 수 있고, 진실을 가려낸다 했던가?
그런데 바로 그 신안이 문제였다.
물어보는 대로 모든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특히 자신과 관련된 것은.
그렇다고 거짓으로 인해 일이 커지는 것 또한 바라지 않았다. 두려울 것은 없는데 귀찮은 일이 생길 테니까.
어느 순간 진용의 눈이 번뜩였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세르탄, 초 소저의 신안을 가릴 만한 마법으로 뭐가 좋을까?’
‘흥! 저런 여자의 눈 정도야 마안(魔眼)을 조금만 익혔어도…….’
‘마안?’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맞아! 시르도 일루젼 이미징이라는 환각 마법을 익혔잖아. 저 여자의 눈에 잠시 환각을 심어주라고.’
환각을 심어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하지만…….
‘흠. 마안이 나을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하긴 지금 당장 배워서 써먹는 건 힘들 것 같고…… 할 수 없지, 나중에 배우는 수밖에.’
‘…….’
뒷골이 당겨온다. 아무래도 세르탄의 혈압이 조금은 올라간 것 같다.
진용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럴수록 더 가라앉은 눈빛으로 초연향을 바라보았다. 내공을 두 눈에 끌어올린 채.
‘그대의 눈에 진실과 거짓이 하나로 보이리니, 환각(幻覺)!’
언뜻 진용의 눈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는 듯했다. 마법의 빛이었다.
그러나 워낙 짧은 순간이어서 초연향의 눈동자는 미처 진용의 눈빛이 지닌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허공에 고정되어 버렸다.
그때 육대호가 물었다.
“흠, 그러니까 마운이 몰려오고 마풍이 불었다?”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두 척이 모두 침몰되었단 말이지?”
“거대한 해일이었습니다. 높이가 십 장이 훨씬 넘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자네만 살아남았다는 말이군.”
진용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선실의 문이 제 손에 잡혀 있었으니까요.”
“선실의 문짝이 마풍을 이겨내다니……. 거참, 정말 오직 문짝에만 의지하고 살아남았단 말인가?”
“물론이지요. 그 상황에 그것 말고는 의지할 것이 없었지요.“
태사의에 깊숙이 등을 파묻고 있던 육대호가 초연향을 바라보았다. 초연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이란 말.
고개를 돌린 육대호가 다시 물었다.
“임시선원으로 배에 탔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탔나?”
“그런 점도 있었지요.”
“임시선원이면 삯도 많지 않을 텐데, 돈을 벌기 위해서 탔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구먼. 그래, 얼마 받았는가?”
대충 대답하려던 진용은 멈칫했다.
이들은 선원의 임금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반면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
차이가 너무 크면 거짓말이라는 게 탄로날 터.
‘제길, 덩치는 큰 사람이 잔머리를 되게 잘 굴리는군.’
진용이 속으로 구시렁거리는데 육대호가 재차 물었다.
“임시선원도 소개를 받지 않고는 배를 탈 수 없네. 특히 천궁도에 가는 배의 선원은 철저히 가려서 태우지. 누구의 소개를 받았지?”
구석에 몰린 진용은 도리어 맞받아쳤다.
“뭐가 그렇게 의문인가요? 제가 살아난 것이 그렇게 기분 나쁘십니까?”
“누가 기분 나쁘다고 했나?”
“그럼 왜 제 말을 믿지 못하고 저를 죄인처럼 다그치십니까?”
“생각해 보게. 아무도 모르는 새 대 두 척이 사라졌네. 그것도 천궁도를 정기적으로 오가던 배가. 그런데 단 한 사람의 생존자가 마풍이 불었다고 하네. 문제는 그 사람이 경험했다는 마풍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거네. 심지어 당일 항해를 했던 사람들도, 제법 센 바람과 거친 파도가 일었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마풍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진용은 이마를 찌푸렸다.
초정명이 마풍에 대해서 모르는 것처럼 말할 때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다.
그렇게 센 태풍과 폭풍우가 몰아쳤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초정명 뿐만이 아니라 당시 항해했던 사람들도 마풍이 분 것을 몰랐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어떤 일이 떠올랐다.
‘세르탄, 혹시 차원의 벽이 갈라진 것과 마풍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 차원의 벽이 갈라지면 그 일대의 대기가 완전히 뒤집어지거든. 그럼 대기의 충돌로 생긴 회오리바람이 일부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마풍도 그 일대만 뒤집어버렸을 수 있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문제는 설명을 해봐야 알아들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미친놈이라고 하겠지. 아니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이 지금까지 한 말 모두 거짓말로 취급할지 모른다.
대답이 궁해진 그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솔직히 말씀해보시죠. 저에게서 뭘 알고 싶으신 겁니까?”
육대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솔직히 묻겠네. 우리는 자네가 무슨 목적으로 신룡호에 탔는지, 신룡호와 수룡호가 사라진 일에 자네가 어떻게 관여되었는지 알고 싶은 거네. 그리고…… 자네의 정체도.”
“설마 제가 혼자서 두 배를 침몰시켰다고 보시는 건 아니겠죠?”
“혼자서는 힘들겠지. 하나 동료가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네만.”
“무엇 때문에 제가 배를 침몰시키고 망망대해에서 혼자 표류한단 말입니까?”
“본래의 계획은 그게 아니었는데, 일이 잘못 되어서 배가 모두 침몰하고 자네 혼자만 살아남은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아예 소설을 쓰쇼.’
진용은 답답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임시선원으로 배를 타고 천궁도에 다녀오던 중 마풍을 만나서 배 두 척이 모두 침몰했다는 것. 그리고 선실의 문짝을 타고 사흘 간 표류하던 중 비룡호에 의해 구조되었다는 것. 그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그때 한쪽에서 장천운을 노려보고 있던 청삼중년인이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