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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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2화
22화
‘나타나긴 뭐가 나타나? 앞으로 그런 멍청한 의견 따위나 말하려거든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
진용은 빽, 소리치고는 파도 위에서 벌렁 몸을 눕혔다. 아무래도 고개를 들고 파도를 타는 것보다는 누워서 파도를 타는 게 힘이 덜 들었다.
그때였다.
“헉!”
몸을 뒤집은 진용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짠물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못 느낄 정도로 놀란 표정.
“뭐, 뭐야? 쿨럭!”
파도를 날려 보낼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허공. 그곳에서 커다란 두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녹색 보석처럼 신비하게 빛나는 여인의 두 눈이.
―여긴 어디죠? 그대가…… 나와 계약을 하자고 했나요?
힘없는 목소리. 기운이 다해서 쓰러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내뱉은 것처럼 나른한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눈도 조금 게슴츠레한 것 같았다. 꼭 졸다가 막 깨어난 사람의 눈처럼.
“누, 누구요? 설마 당신이?”
―아아아…… 시간이 없어요. 차원의 벽을 빠져나오느라 기운이 다 빠졌어요. 당신이 계약을 하고자 하는 당사자가 맞나요?
당연하지! 이렇게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자신 말고 누가 있다고!
진용은 세르탄의 말대로 정령이라는 신비한 존재가 나타난 것이 반가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랴, 계약을 하고자 불렀으니 계약을 해야지.
“나와 계약을 맺겠습니까?”
―그래요. 당신의 마나는 생긴 것에 비해서 충만하군요. 충분히 저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생긴 것에 비해서? 생긴 것이 계약과 무슨 상관인데?
‘내가 어디가 어때서!’
불안감이 조금 더 커졌다.
하지만 자신이 불러내놓고 계약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불러냈으면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닌가 말이다.
설마 파도가 미친 듯 쳐대는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야 되겠어? 진용은 그런 마음으로 계약을 수락했다.
“그럼 나 고진용은 바람의 정령인 그대와 영혼의 계약을 맺었음을 하늘과 땅의 신에게 맹세하겠소!”
―나 실피나, 그대와 계약을 맺었음을 인정하겠어요. 그건 그렇고…… 일단 좀 쉬고 싶군요. 아! 피곤해…….
“이, 이봐요…….”
―대체 여긴 어디야? 괜히 차원이 벌어지는 것 구경 나왔다가 이게 뭔 꼴이람. 그런데 얘는 또 어디 간 거야? 분명히 나보다 먼저 빨려 들어갔던 것 같았는데…….
허공에 떠 있던 여인이 투덜거리며 흐릿하니 사라져 간다.
진용은 손을 내밀다 말고는, 사라지는 실피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이 바람의 정령을 부른 이유는 코앞에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어떻게든 이 광란의 바다를 벗어나야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뭐? 피곤하다고? 괜히 왔어?
망할!
‘세르탄, 원래 정령이란 게 다 저러냐?’
‘나도 몰라.’
‘몰라?’
‘나도 정령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거든. 근데 어째 덜떨어진 정령 같다, 시르.’
진용은 기가 막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나만 해도 골치 아픈데, 또…… 냐?’
그런 진용의 몸 위로 커다란 파도 하나가 덮쳐 왔다.
언뜻 덮쳐 오는 파도 속에 시커멓고 네모난 뭔가가 섞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운데 희미한 용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문짝.
순간적으로 진용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자신이 배의 선실에서 떼어낸 문짝이었다.
4
“더 세게 밀어!”
휘이이이잉!
바람이 진용의 등을 거세게 밀었다. 그러면 진용이 타고 있는 선실의 문짝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진용은 스스로가 돛이 되었다. 인간 돛이라고나 할까?
실피나는 피곤하다며 사라진 지 만 하루가 지나서야 자신의 부름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진용은 차마 대놓고 화는 내지 못하고 빽 소리쳤다.
“내 등을 밀어봐!”
처음에는 너무 세게 미는 바람에 무려 십 장이나 날려가서 물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다시 문짝 위로 올라온 진용은 일단 손가락을 문짝에 박아 넣었다. 그러고는 허공에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는 실피나를 한참 꼬나본 후 말했다.
“너무 세게 밀지 말고, 물 위를 잘 미끄러지도록 적당히 밀란 말이야!”
―해보지 뭐…….
서너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다음부터는 제법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였다.
선실의 문짝 위에서 하루를 꼬박 지낸 것을 생각하니 존댓말도 하기 싫었다. 실피나도 어영부영하는 것 같고.
그래서 진용은 명령을 내릴 때마다 반말로 했다.
실피나는 말투야 아무 상관없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도 그게 편하다면서 반말을 했다.
―이곳의 대기는 내가 살던 곳과 너무나 달라. 주인아,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 너무 피곤해.
그런데 조금 밀더니 한다는 소리가 피곤하단다.
진용은 부글거리는 심정을 그대로 세르탄에게 퍼부었다.
‘세르탄! 다시는! 다시는 정령이 어쩌고저쩌고 하지 마! 알겠어?’
‘어.’
‘어디서 저런 이상한 정령이 나와서 힘만 빼는 거야? 세르탄, 혹시 정령이라는 것들이 다 저런 거 아냐? 하긴 네가 알면 뭘 안다고…….’
‘아닌데…….’
그렇게 또 이틀이 지났다.
아직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육지가 나올지…….
아니 그보다, 지금 제대로 가고는 있는 것인지…….
태양이 중천에 떠오를 때쯤, 진용에게 하도 구박을 당해서 입이 닫혀 버린 세르탄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시르, 실피나를 시켜서 주위를 둘러보라고 해.’
실피나에게 계속 밀어대라는 주문만 하고 있던 진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실피나가 그런 것도 알아볼 수 있어?’
‘어.’
‘그럼 왜 여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 설마 내가 고생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 아냐?’
‘아냐! 그동안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랬을 뿐이야. 하지만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거든. 실피나가 둘러보면 육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빠르게 말하는 것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진용은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실피나, 주위에 육지가 있나 찾아볼 수 있어?”
등을 밀던 실피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푸르스름한 얼굴색만 아니라면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귀찮은데…….
진용이 벌게진 얼굴로 다시 소리쳤다.
“일단 찾아봐!”
―알았어, 성질은……. 아아…… 어째 주인을 잘못 만난 것 같아.
진용은 투덜거리는 실피나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야, 실.피.나! 빨리 찾아보기나 해!”
실피나가 푸르스름한 옷자락을 휘날리며 휭 사라졌다. 미처 진용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진용이 고개를 내두르며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볼 때였다.
‘어? 시르, 저거 뭐지?’
진용은 세르탄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그도 본 것이다.
수평선의 끄트머리. 점 하나! 배인 듯했다.
“실피나!”
휘리리릭.
허공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뭉치더니 실피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빠 죽겠는데 왜 또 부르는 거야?
진용이 손으로 점을 가리켰다.
“명령을 바꾼다. 저게 배인지 가서 확인해 봐. 설마 배가 뭔지 모르지는 않겠지?”
―오호호호! 물론이지! 내가 뭐 멍청이 마족인 줄 알아?
실피나가 떠나자 세르탄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저런 게으름뱅이 정령 따위가 감히 마족을 능멸하다니!’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데?’
‘시, 시르!’
‘아아, 없는 데서는 황제에게도 욕할 수 있는 거야. 참아, 참으라구. 설마 실피나가 마계의 대전사 세르탄이 여기에 있는 줄 알고 그랬겠어?’
더 시끄러워질까 봐 진용은 재빨리 세르탄을 달랬다.
그랬다. 아직까지 실피나는 마계의 대전사 세르탄이 진용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과연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쨌든 그 일은 나중에 벌어질 일, 진용은 그보다 지금 당장 세르탄이 중얼거리고 있는 말에 더 관심이 갔다.
‘하긴 정령왕도 아니고 저런 덜떨어진 중급 정령을 상대해 봐야 내 체면만 구기지. 가만? 중급 정령이 말을 할 줄 알던가? 거 이상하네…….’
‘중급 정령이라고? 중급 정령은 말을 잘 못하나 보지?’
‘응. 적어도 영적으로 연결된 상급 정령 정도는 되어야 말을 할 수 있다고 들었거든. 좌우간 좀 이상한 정령인 것만은 분명해.’
‘하긴 내가 봐도, 세르탄이나 실피나나…….’
‘응? 뭐?’
‘콩이나 팥이나 깍지 속에서 나오는 건 마찬가지라고.’
‘글쎄, 그게 무슨 뜻이냐니까?’
세르탄이 진용의 중얼거림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집요하게 파고들 때다. 때마침 실피나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왔다.
―주인아! 배가 맞아. 인간들이 타고 있다. 근데 싸우고 있어.
“뭐? 몇 척이나 되는데?”
―둘.
“그래? 그럼 그쪽으로 밀어!”
5
실피나의 말대로 배는 두 척이었다.
출렁이는 물결을 헤치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두 척의 배 이름이 보였다.
노란 깃발을 매단 배는 비룡호, 붉은 깃발을 매단 배는 해웅호.
두 척의 배는 수십 개의 갈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비룡호? 가운데 룡(龍) 자가 들어가는 배는 대부분이 해룡선단의 배라고 신털보가 그랬는데.’
일단 실피나는 들어가서 쉬라고 하고 더 가까이 가보았다.
망망대해에서 사람들이 탄 배를 만나자 눈물이 나올 것처럼 반가웠다.
그런데 실피나의 말대로 싸움이 벌어진 듯했다. 고함 소리와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갈매기 울음소리와 어울려서 묘한 화음을 일으키며 들렸다.
“으악!”
“죽어라, 이놈들!”
“개새끼들! 에라이! 같이 죽자!”
보고 있는 사이 배 위에서 서로 엉킨 사람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파란 바다 한가운데서 사람의 비명 소리를 듣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천궁도를 떠나자마자 폭풍우를 만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싸우고 있는 자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대로 떠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좋아, 일단 가보자!”
진용은 문짝을 타고서 한창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비룡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진용의 눈에 바다 위를 오락가락하는 매끈한 물체가 보였다.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기도 한 그것은 십여 개가 넘을 듯했다.
물속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그림자가 유영을 하고 있었다.
‘뭐지? 엄청나게 큰 물고기 같은데…….’
그때 배 위에서 허리에 동강 난 칼이 박힌 선부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풍덩!
바닷물이 솟구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순간!
촤악!
갑자기 물속에서 시커먼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선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햇빛에 반사된 물고기의 이빨은 잘 갈린 도검처럼 날카롭게 보였다.
선부의 허리를 순식간에 낚아챈 물고기는 다시 물속으로 몸체를 처박았다.
그제야 진용은 천궁도의 사람들이 말하던 바다의 무법자가 생각났다.
‘맞아, 상어라는 물고기가 무척 크고 사납다고 했어!’
상어의 이빨에 걸린 선부의 몸은 단 한 번에 반쯤 잘려 버렸다. 상어가 머리를 한 번씩 흔들 때마다 뿜어진 핏물이 파란 바닷물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또 다른 상어가 달려들더니 선부의 머리를 물고 곤두박질쳤다.
순식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선부의 몸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진용은 자신의 주위를 도는 지느러미를 보고 몸서리쳤다.
만일 자신이 바다에 떠 있었을 때 저 상어들이 달려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문도 모르고 상어에게 물렸다면?
칼날에도 끄떡없는 몸이니 상처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상어의 이빨에 씹힌다면…… 기분이 더러울 것 같았다.
때마침 상어 한 마리가 진용이 타고 있는 문짝을 배회했다.
진용이 잔뜩 긴장한 채 상어를 노려보았다.
촤아악! 우지직!
상어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는 문짝의 한쪽 귀퉁이를 씹어 뜯었다. 그러자 톱에 잘린 듯 나무판이 한 자가량 잘려 나갔다.
등줄기가 오싹한 광경!
마침내 놈들이 공격하기로 한 것인가?
께름칙한 한편으로 화가 났다.
감히 자신이 타고 있는 문짝을 썩은 이빨로 물어뜯다니!
그때다. 자신을 얻었는지 상어 한 마리가 다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