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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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1화
21화
미처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감독관이 고개를 내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크게 놀라 당황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배가 왜 이러는 거지?”
“별것 아닙니다. 그냥 바람이 좀 세게 불 뿐입니다, 감독관님.”
선장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감독관은 선장의 말을 믿고 싶었다. 아니,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믿으려 노력했다.
“그, 그렇지? 곧 괜찮아지겠지?”
“걱정 말고 들어가 계십시오. 위험…….”
그때였다.
툭! 투두둑!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어찌나 굵은지 엄지손톱만 했다.
선장은 감독관에게 소리치다 말고 번쩍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그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진용도 선장의 눈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고 경악해 소리쳤다.
“뭐야? 하늘이 왜 저래?”
뿌옇던 하늘이 어느새 시커먼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단순한 먹구름이 아니다.
먹물을 뿌려놓은 듯 시커먼 먹구름이 광란의 춤을 춘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며 용암을 분출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다,
단숨에 세상을 뒤집어엎기라도 하려는 듯!
뒤늦게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들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서리를 쳤다.
바로 그때, 선원 중 누군가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악을 썼다.
“마, 마운(魔雲)이다!”
“마운? 저게 악마의 구름이라는 마운이라고?”
“이제 우리는 모두 죽었다! 마운이 나타났으니 마풍이 불어올 거야!”
“나는 죽기 싫어! 마누라가 내일모레 둘째를 낳는단 말이다! 안 돼! 나는 살아야 돼!”
절망의 목소리! 삶을 향한 절규가 처절하게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길함만이 가득한 이름. 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
수십 년 만에 한 번씩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는 대폭풍, 마풍(魔風)의 서곡. 그것이 바로 마운인 것이다!
바람에 염기가 없었던 것도 바람의 근원이 마운이기 때문이었다.
“모두 침착하게 행동해! 중심만 벗어나면 된다! 돛을 내리고 기둥을 붙잡아!”
선장이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황 상태에 빠진 선원들은 넋을 놓고서 엄청난 빗줄기가 쏟아지는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절대 살아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 표정으로.
그나마 정신을 놓지 않은 몇 사람이 달려들어 돛을 완전히 내렸다. 그러나 이미 바람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풍우를 대동하고 십오 장 길이의 상선을 가랑잎처럼 날려 버리고 있었다.
이제 생사는 운명에 맡겨졌다!
집채만 한 파도 사이를 누빈 지 일각이 지났다.
배가 갑자기 옆으로 반쯤 기울어지자 서너 명의 선원이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바다에 빠진 자들이 몇 명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부러진 돛에 깔려 죽은 자도 있었다.
진용은 양손의 손가락을 선창에 박고서 배와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본능이었다. 놓치면 죽는다는 삶의 본능!
쿠르르릉! 떠더덩!
갑작스럽게 천둥소리가 귀청을 터뜨릴 듯 울렸다.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도 더욱 거세졌다.
쩌저저적!
먹구름이 찢어지는 소리!
사방이 시커멓게 물들어서 광란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오오오…….
바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거나 붙잡아아아아!”
선장의 절규하는 목소리가 바람소리와 뒤섞여서 흩어졌다.
진용은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눈을 부릅뜨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물벽이 밀려오고 있었다. 바다가 우는 이유였다.
물벽은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거센 바람에 반쯤 기울어진 다른 한 척의 상선을 눈 깜박할 새에 집어삼켜 버렸다,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하지만 이쪽의 사람들 누구도 그들을 걱정할 정신이 없었다. 약간의 시간 차이만 날 뿐 이쪽 배도 같은 운명에 처하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젠장!”
진용은 이를 악물고 용이 그려져 있는 선실의 문짝 하나를 뜯어냈다.
찰나, 미처 어찌할 틈도 없이 거대한 물벽이 코앞에 들이닥쳤다!
콰아아아!
“으아아아!”
“살려줘!”
순식간이었다.
배가 허공에 붕 떴다 느껴진 순간, 거대한 해일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세르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마, 맙소사! 차, 차원의 벽이 벌어졌다!’
숨이 멎어버릴 듯한 충격에 눈앞이 아득하다.
손에 잡혀 있던 선실의 문짝은 언제 없어졌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소용돌이치는 탁류가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혼돈의 세상.
진용은 위로 떠오르기 위해 손발을 저었다. 얼마나 깊이 가라앉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한다.
두 손에서 뻗친 강력한 기운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자 진용의 몸이 탁류를 뚫고 위로 솟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푸아악!”
가까스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수면이라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거센 광풍폭우가 얼굴을 때린다. 눈을 뜨기조차 힘겨울 정도다.
안간힘을 다해 눈을 뜨고 사면을 훑어보았다. 입이 쩍 벌어질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파도.
뱃사람들에게 지옥의 인도자라 불리는 삼각파도가 자신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마, 맙소사!”
경악성이 떨리며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새삼 대자연의 위용 앞에 인간은 풀이파리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세르탄의 목소리가 귀청을 뒤흔들었다.
‘시르! 정신 차려!’
순간, 진용의 몸이 삼각파도의 가운데로 말려 들어갔다.
시커먼 먹구름이 파도 사이로 사라졌다.
고오오오……!
‘으아아아! 시르! 아무 마법이라도 써봐!’
겁에 질린 세르탄의 비명 소리에 머릿속이 터질 듯이 웅웅거렸다. 덕분에 진용은 아득해지는 정신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혼신을 다해 입을 열 수 있었다.
“부양(浮揚)!”
순간, 별다른 동작이 없었음에도 가라앉던 진용의 몸이 수면 위로 빠르게 떠올랐다.
‘된다!’
세르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용도 바짝 정신이 들었다.
마법이 효과를 보인다. 그동안 열심히 익힌 공격 마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공격 마법을 익히느라 소홀히 했던 상용 마법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잘하면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니, 살 수 있다! 무조건 살아야만 한다!
진용은 폭풍우와 자신의 몸을 사정없이 내동댕이치는 파도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세르탄! 방법을 생각해 봐!’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진용은 세르탄을 닦달했다.
‘플라이 마법을 쓰면…….’
‘멍청아! 백 장도 못 날아가는 마법이 무슨 소용이야! 그건 힘만 빠져! 다시 생각해 봐!’
‘운디네를 불러서 비부터 멈추게 하면…….’
‘여기에 정령이 어디 있어, 바보야!’
멍청이? 바보?
생각 같아서는 입을 다물고 싶은 세르탄이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선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뒷머리에서 열이 솟도록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때다. 번쩍 머리를 스치는 생각.
‘시르! 어쩌면…….’
세르탄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파도에 휩쓸리며 서너 번 몸이 뒤집어진 진용이 빽 소리쳤다.
‘어쩌면 뭐?’
또 멍청이라 할까 봐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진용의 내공이 고갈되면 부양 마법을 펼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끝장이다. 그나마 진기가 남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써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르탄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입을 열었다. 아마 눈이 있다면 눈을 감고 말했을 것이다.
‘저기…… 속는 셈치고 정령을 한 번 소환해 봐.’
아니나 다를까, 진용이 버럭 화를 냈다.
‘마법을 펼치느라 기운 빠져 죽겠는데 장난하는 거야?’
‘그게 아니고…… 아까 차원의 벽이 벌어진 것 같았거든. 혹시 모르니까……. 전에 마법사 제나도 바람의 정령인 실프를 부렸던 것 같은데…….’
‘차원의 벽? 제나?’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세르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었다. 차원의 벽이 열렸다고. 정말 알고 그런 말을 했는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좋아, 한번 해보자. 그런데 세르탄, 여기서 살아나면 다른 능력 가르쳐 줄 거지?’
목숨이 간당간당한 판에 끝까지 엉뚱한 생각만 하는 진용에게 세르탄이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살면 한 가지 가르쳐 주지.’
‘두 가지!’
‘지독한……. 알았어!’
아마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진용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세르탄만은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가지는 조금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세르탄의 그런 마음을 모를 진용이 아니었다. 어디 한두 번인가?
그래도 모른 척하고 물었다.
‘물의 정령이 좋을까, 바람의 정령이 좋을까?’
‘시르는 바람과 친화력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바람보다 물이 우선이야.’
‘좋아! 그럼 일단 물의 정령이 먼저다!’
세르탄에게 약속을 얻어낸 진용은 물 위에 떠 있던 몸이 파도의 정점에 이른 순간, 절박한 심정으로 혼신을 다해 기를 모았다. 그리고 폭풍우가 사정없이 온몸을 강타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공에 혼을 담아 소리쳤다.
“하늘과 땅, 대자연의 물을 관장하는 정령이여! 나 고진용이 그대와 영혼의 계약을 맺길 원하노라!”
순간 파도가 크게 출렁였다.
하지만 파도에 떠밀려가던 진용이 다시 파도의 계곡으로 떨어질 때까지도 물의 정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이 파도보다 더 크게 밀려왔다. 공연히 세르탄에게 화가 났다.
그때다. 세르탄이 중얼거렸다.
‘이계의 말로 해야 하는 것 아냐?’
아차! 그러고 보니 이계의 정령은 중원의 언어를 못 알아들을지 모른다.
진용은 다시 이계의 언어로 소리쳤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행여나 하고 조금 더 기다려 봤지만, 파도만 한 번 더 크게 출렁였을 뿐이다.
‘아무래도 공연한 짓거리를 하는 것 같아.’
정령 소환술을 시전하면 계약을 맺든 맺지 않든 정령이 반응을 한다고 했는데 이건 완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세르탄도 동의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실망한 진용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주위에 배의 파편이라도 찾아보았다.
그런데 세르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실프를 불러봐.’
진용이 힘없이 답했다.
‘물의 정령이 없는데 바람의 정령이 있겠어?’
‘그래도 불러봐. 해보기로 했잖아. 다른 방법도 없는데…….’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는데 어쩌랴.
진용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람은 여전하지만 엄청난 비를 쏟아 붓던 먹구름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공연히 하늘이 원망스럽다.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길을 하늘이 막을 줄 누가 알았으랴.
수십 년 만에 찾아온다는 마풍이 왜 하필이면 오늘 분단 말인가!
천궁도를 떠나는 오늘 말이다!
진용은 눈을 감은 채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늘아 무너져라 혼신을 다해 소리쳤다. 이번엔 처음부터 이계의 언어로.
“하늘과 땅, 대자연의 바람을 관장하는 정령이여! 나 고진용이 그대와 영혼의 계약을 맺기를 원하노라!”
그때였다.
휘이이잉!
덮쳐들던 파도가 옆으로 휘어질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파도의 정점에 올라 있던 진용의 몸이 붕 허공으로 떠올라 날아갈 정도다.
진정 바람의 정령이란 말인가!
하지만…….
풍덩!
기대와 달리 진용의 몸은 건너편 파도에 처박혀 버렸다.
그 바람은 바람의 정령과 아무런 상관없는 단순한 돌풍이었다.
‘빌어먹을!’
정녕 이 세상에 정령은 없는 것인가?!
없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래도 부양 마법 덕분에 진용의 몸은 물속으로 가라앉진 않았다. 그나마 부양 마법이 있기에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상용 마법을 좀 더 파고들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 할까?
진용은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몸 상태를 점검해 봤다. 두 번에 걸친 정령 소환술 때문인지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결국 정령 소환술은 실패하고 힘만 빠진 셈이다.
진용은 세르탄을 향해 잔소리를 퍼부었다.
‘뭐? 정령? 괜히 힘만 낭비했잖아!’
‘이상하네…….’
‘뭐가?’
‘분명 뭐가 나타났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