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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19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19화

 

19화

 

 

 

 

 

 

 

4

 

 

 

 

 

“이번에 오는 배를 타거라.”

 

석실에 들어간 진용이 자리에 앉자마자 구양 노인이 지나가는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문을 열었다.

 

진용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든 하고는 싶은데, 마땅하게 입 밖으로 표현할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격정만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달릴 뿐.

 

그러자 구양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도주하고는 이야기가 다 되어 있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그 어떤 아쉬운 감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저 오늘 갔다가 내일 돌아올 사람에게 건네 듯 담담한 말투였다.

 

그러나 진용은 느낄 수 있었다. 말소리는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지만, 주름진 눈꺼풀에 반쯤 묻힌 눈빛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파도처럼 거세게 떨리고 있다는 걸.

 

진용이도 입술의 떨림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그냥 그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담담히 말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심심하시지 않겠어요?”

 

마치 내일 돌아올 텐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냐는 투로.

 

진용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구양 노인이 진용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구양 노인은 풀썩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허! 너를 내보내는 대가로 열 개의 특별한 물건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게다가 신웅이도 가르쳐야 하고. 어쨌든 당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겼는데 심심하긴…….”

 

열 개의 특별한 물건. 구양 노인이 유자형에게 만들어주기로 약속한 석조상을 말함이었다.

 

유자형도 이제 천궁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갈 시기가 다 되었다. 열 개의 특별한 물건은 그를 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줄 터. 결국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구양 노인과의 계약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가만히 구양 노인을 바라보던 진용은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말씀을 해주셔야죠, 부탁이 뭔지…….”

 

이후로 한동안 두 사람의 입이 다물어졌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날벌레의 날갯짓 소리만이 요란할 뿐이다.

 

조금 전의 담담함은 무저의 바다에 깊숙이 가라앉아 버렸는지, 침묵의 벽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막은 채 숨소리조차 가늘어진 두 사람 앞에 세워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각이 억겁처럼 흘러갔을 때다.

 

“내 이름은 구양무백이다.”

 

침묵의 벽이 뜬금없는 한마디에 깨어졌다.

 

진용은 동그래진 눈으로 구양 노인을 바라보았다.

 

구양무백? 구양 할아버지의 이름이 구양무백?

 

우습게도 처음 듣는 구양 할아버지의 진짜 이름이다. 전에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이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이름은 멀건 죽만도 못한 것이지.”

 

 

 

답을 한다 해도 기껏해야 그 정도가 다였다. 그 이후론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구양 할아버지면 족했으니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천궁도에서 구양 할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도주는 알겠지?

 

군병들은? 

 

군병들은 모를지 모른다. 군병들 중 구양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럼 죄수들은? 

 

그들 역시 그저 구양 노인이라고만 불렀다. 그리고 자신도 구양 할아버지라고만 불렀다.

 

생각해 보니 십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단 한 번도 구양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양 노인의 말에 진용은 입마저 크게 벌렸다.

 

“도주도 내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한 분, 양 어르신뿐이었다.”

 

“그, 그럼……?”

 

“천궁도의 명부에도 구양 노인이라 적혀 있을 뿐이다.”

 

“왜 그동안 이름을 밝히지 않은 거죠?”

 

구양 노인이 진용을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구양무백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자신의 이름 때문이라니?

 

구양무백이라는 이름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단 말인가?

 

강호에 대해 나름대로 안다는 죄수들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거늘, 왜 그 이름을 밝혀선 안 되었단 말인가.

 

“내 이름이 만에 하나 밖으로 새어나갔다면, 천궁도의 모든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곳은 황궁의 유배지인데, 누가 감히?”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진용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구양 노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설령 이름만 같을 뿐 사람이 다르더라도, 그는 일단 섬에서 사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지우고 봤을 것이다.”

 

진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

 

그 말은 다름이 아니다. 그가 그러한 일을 지시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가졌거나, 아니면 그러한 일을 저지르고도 죄를 추궁당하지 않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어쨌든 그에 대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면 물어보지 않아도 헤어지기 전에 알려줄 터, 진용은 궁금함을 접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 같군요.”

 

구양 노인은 또다시 진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럴 거란다. 구양 할아버지의 성격으로 봐서 허튼소리가 아니다.

 

진용은 짓눌리는 가슴속의 무게를 털어버리려는 듯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말씀해 보세요.”

 

순간 구양 노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천천히 열리는 입술마저 떨리는 듯했다.

 

“강호에 나가거든…… 한 사람을…… 죽여다오.”

 

 

 

 

 

4

 

 

 

 

 

진용은 천궁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귀향봉에 올랐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며 서쪽 수평선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의 두 눈동자도 붉게 달아올랐다.

 

저 해가 다시 동쪽에서 떠오르면 자신은 천궁도를 떠날 것이다, 천궁도에 발을 디딘 지 십일 년 만에.

 

“아버지…….”

 

대륙으로 돌아가면 두 가지의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아버지를 구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구양 노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직도 황궁 뇌옥에 계시는지, 아니면 돌아가셨는지…….

 

풀려나셨다면 자신도 풀려났을 텐데, 자신이 아직 유배지인 천궁도에 잡혀 있다는 것은 적어도 아버지가 풀려나시지는 않았다는 말과도 같았다.

 

진용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갇혀 계신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낼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돌아가셨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게 누구든! 설사 하늘이라 해도!

 

“삶이 지옥보다 더한 고통임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제발 죽여달라 할 정도로, 처절하게!”

 

반드시!

 

“아버지…….”

 

석양에 물든 붉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굳이 참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울고 싶었다.

 

그동안에는 그리할 수가 없었다. 울고 싶어도 참아야만 했다. 가슴이 아파도 참아야만 했고, 그리움에 목이 메어도 참아야만 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오늘만 지나면 아버지에게 갈 수가 있다. 오늘만 지나면…….

 

흐르는 눈물에 그동안의 모든 고통을 모조리 쏟아냈다.

 

진용은 석양이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서쪽 바다로 완전히 가라앉자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가슴에 쌓인 것을 쏟아내서인지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듯했다.

 

‘차근차근……. 아버지를 구하는 일도, 구양 할아버지의 일을 처리하는 것도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8장. 마풍 속에서

 

 

 

 

 

1

 

 

 

 

 

죄수를 빼낸다는 것. 그것도 황궁의 양 태감이 직접 집어넣은 죄수를 빼돌리는 일은 유자형이 아무리 도주라 해도 결심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들통이 나면 삭탈관직은 물론이고 목숨을 내놔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유자형이 구양 노인과 계약을 하고 고진용이라는 어린 죄수를 빼돌리기로 결심한 것은, 얼마 전 황궁으로부터 한 가지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은 그로 하여금 아무런 걱정 없이 그 일을 하게끔 만들었다. 설령 죄수를 빼돌린 것이 나중에 알려진다고 해도 그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선 당장 운송 감독관의 눈만 피할 수 있다면.

 

‘그 돼지새끼만 배불러지겠군.’

 

 

 

배가 들어오는 날은 매월 보름이었다. 보름만 되면 성질 사납기로 유명한 천궁도 일대의 파도가 잔잔해지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는 배는 두 척, 배가 머무는 시간은 세 시진이었다. 그 시간 안에 천궁도에서 한 달간 쓸 물자가 모두 내려지고, 황궁으로 가야 할 석조 제품들이 배에 실려야만 했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물건이 많다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특히 이번처럼 고급 석조품이 반출될 때는 조심을 기해야 하기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봐! 조심해서 다루라고! 그거 하나 부서지면 자네 평생 벌어도 못 갚으니까 말이야!”

 

“그건 따로 쌓으라니까! 어이! 자네 뭐 해? 누가 그걸 그리 가져다 놓으라고 했나?”

 

웅성웅성. 북적북적…….

 

두 척의 배에서 내린 선원은 사십 명 정도였다. 그들 중 일부는 배에서 내린 물건을 한쪽에 쌓고, 일부는 선창 끝머리에 뚫린 동굴에서 석조상을 들어내고 있었다.

 

기다란 석조상은 나무와 넝쿨로 칭칭 감긴 채 밧줄로 동여매져 있었다. 선원들은 석조상을 묶은 밧줄에 통나무를 끼워서 매고 네 명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머리를 다쳤는지 피 묻은 낡은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서 겨우 눈과 입만 드러낸 자.

 

그가 같은 조원 세 명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봐, 양 선장!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저런 환자를 데려와서 어쩌자는 거야?”

 

“헤헤헤, 감독관님. 그래도 일은 잘하지 않습니까? 다친 곳이야 얼굴만 다쳤는데요, 뭐. 그리고 임금이 반값이니 돈도 아끼고 말입니다.”

 

“흥! 그 돈 벌어서 금방 떼부자 되겠구먼.”

 

감독관의 코웃음에 양 선장이라는 자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그 돈을 제가 법니까? 감독관님께서 버시는 거지요.”

 

“응? 큼! 거…… 뭐, 나야…….”

 

요즘처럼 황궁의 사정이 살벌하게 돌아갈 때는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한다. 자신 같은 일개 운송 감독관 정도는 황궁에서 불어오는 콧방귀에도 날아가는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 큰돈을 챙길 수 없는 요즘 작은 돈이나마 감지덕지였다. 더구나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라도 덤은 언제든지 기분 좋은 수확이었다.

 

“어쨌든 다음부터는 좀 제대로 된 사람을 쓰게나.”

 

“물론 그래야 합죠. 헤헤헤, 그런데 감독관님, 묘족들을 데리고 있는 자가 있는데, 그들의 임금이 싸다고 하더군요. 반도 안 된다고 하던데…….”

 

묘족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 하지만 자신이 눈감아주면 들킬 염려가 없다. 

 

물론 그 임금 차액 중 일부는 자신에게 떨어질 것이고.

 

나중에 들통 나면 선주에게 다 뒤집어씌우면 될 일.

 

“험! 뭐… 몸 건강하고 말썽만 피우지 않는다면야……. 어험!”

 

 

 

동굴로 들어온 사람들은 석조상을 밧줄로 묶고서 통나무를 끼웠다. 그때였다.

 

“어이구, 소변을 좀 봐야겠는데 아무 데나 볼 수도 없고…… 금방 나오게 생겼는데……. 으으음…….”

 

소변이 마려운지 머리를 낡은 천으로 감싼 자가 안절부절못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동굴 안에는 군병들이 지켜보는데다가, 밖에 나가 바닷가까지 가기에는 너무 급한 표정이었다.

 

한쪽에서 석조상 반출을 지켜보고 있던 군병 하나가 그 모습을 보더니 묘한 눈빛으로 턱짓을 했다.

 

“이봐! 오줌 마려우면 저쪽에 통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싸게. 이곳은 동굴이라 아무 곳에나 싸면 냄새가 배니까.”

 

“예? 예, 나으리. 감사합니다요.”

 

머리를 낡은 천으로 감싼 자는 굽신거리며 동굴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시원한 표정으로 허리띠를 묶으며 일행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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