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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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8화
18화
혈양천이 있는 동굴을 빠져나온 진용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슥, 가볍게 한 발을 내딛으며 손을 뻗는다.
츠츠츠…….
한 마리 나비가 허공을 휘저으며 나풀거린다.
그러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옆으로 떨어져 내린다.
순간 진용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고, 하늘에 십여 개의 푸르스름한 발 그림자가 새겨졌다.
빠르다. 부드러우면서도 빠르다.
빠르면서도 어디로 휘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다.
나비의 날갯짓, 그 사이를 제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한 마리 나비가 제비와 어울려 춤을 춘다.
그러다 뻗치는 손에선 강맹하기 이를 데 없는 권풍이 쏟아지고,
쿠르릉…….
호랑이처럼 도약하더니 곰처럼 내려친다.
학처럼 내려섰다 싶은 찰나,
츠츠츠…….
격류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서너 걸음을 나아가던 진용의 신형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타앗!”
동굴을 떨어 울리는 낭랑한 기합성!
이 장 허공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쾅!
튕기듯 물러서는 진용의 발아래 뚫린 다섯 개의 구멍.
단단하기 그지없는 화강암 바닥이 밀가루 반죽에 구멍 뚫리듯 뚫려 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것만이 아니다.
구석에 꽂힌 횃불로 인해 동굴 바닥이 희미하게 보인다.
족히 수천 개의 구멍들. 세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구멍이 마마자국처럼 동굴 바닥을 가득 메운 채 뚫려 있다.
게다가 사방에는 칡넝쿨로 감아놓은 괴목 수십 개가 곰보처럼 구멍이 뚫린 채 널브러져 있다.
그 모든 것은 고통과 희망이 어우러진 지난 삼 년 세월의 흔적들이었다.
“후우우욱…….”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쉰 진용이 원을 그리며 손을 모았다. 깊어진 두 눈에선 차가운 한광이 번뜩이다가 사라지고, 어느새 진용의 얼굴에는 붉은 열기가 떠올랐다.
“맨 몸으로 펼치니 시원해서 기분은 좋군. 좀 덜렁거려서 그렇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동굴 입구로 걸어나가자 붉은 태양이 동쪽 산머리 위로 떠오른다.
진용은 철푸덕, 동굴 입구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따스한 햇살이 모공을 통해 전신 피부로 스며든다.
“후우우웁…… 후우우우…….”
길게 들이켜고 길게 내쉬는 숨결 사이로 붉은 기운이 희미하게 뱉어지다 다시 입 안으로 빨려든다.
건곤흡정진혼결이 삼성 수준에 이르렀다.
흡수한 기운은 태양의 양기와 달의 음기, 그리고 혈양천의 기운 등 대자연의 기운들뿐. 아직은 탁한 기운을 흡수하지 않아서인지 혈맥을 타고 흐르는 기운은 정갈하기 그지없다.
천단심법은 그런 대자연의 기운과 그 기운에 대항하려는 마령석의 기운을 적절히 융화시켜 주고 있었다.
진용은 태양이 산머리 위로 둥실 떠오르자 오른손을 들어 유난히 굵은 검지로 허공을 천천히 그어 내렸다.
스으윽…….
찰나 간, 대기에 옅은 혈선이 그어졌다.
순간! 진용은 혈선을 비집고 우수를 밀어 넣었다.
건너편 십여 장 밖의 절벽을 향해!
퍽!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건너편 벽에서 풀썩 먼지가 일었다.
격공장이라 할 수도 없다. 그저 공간을 건너뛰어 건너편의 석벽에 충격이 전해졌을 뿐.
바로 환상타공지의 괴이한 능력으로 인한 공간의 왜곡이었다.
세르탄의 말대로라면 능력이 강해질수록 먼 거리의 공간이 열린다 했다. 그렇게 열린 공간을 통하면 순간적인 이동이 가능하다나?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었다.
‘지금 농담해?’라고.
하지만 마령석의 기운이 흡수되고,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르탄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이제는 그 말을 믿고 있었다.
더구나 마법에도 순간 이동을 하는 마법이 있지를 않던가 말이다. 비록 마법진을 그리든지, 아니면 미리 주문을 만들어놓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러다 보니 뇌전의 능력이란 것에 더욱 욕심이 나는지도 몰랐다.
비슷한 위력이라면 일반 마법보다 훨씬 간편한 것이 마계의 능력이다. 그런 마계의 십대능력 중 하나라면 환상타공지보다 훨씬 강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일전에 세르탄이 말하길, 진용의 능력으로는 아직 배울 수 없다 했었다.
적어도 마령석의 기운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심장이 타지 않고 견딜 수 있다나?
하지만 진용은 요즘에 와서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르탄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쩌면 자신에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세르탄이 자꾸 말을 돌리는 것을 봐도.
‘세르탄 이제는 뇌전의 능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안 돼. 마령석의 기운을 다 흡수하지도 못했잖아? 그보다는 환타지나 더 열심히 익혀. 마법도 이제 겨우 사단에 들어가기 시작했으면서 욕심은…….’
‘마법은 어차피 내공이 늘어야 하잖아? 그러니 일단 뇌전의 능력 중에서 기초를 먼저 배우자는 말이지. 혹시 알아? 내가 마법이나 환타지보다 뇌전의 능력에 더 소질이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르 몸에 뇌기를 받아들이려면 적어도 십 년은 더 있어야 할걸?’
‘십 년은 무슨…….’
‘아무튼! 아직은 안 돼!’
아무래도 이상하다. 저 떨리는 목소리.
한번 억지라도 써봐야 할 것 같다.
‘세르탄.’
‘왜?’
‘뒤통수에 벼락 맞으면 기분이 어떨까?’
‘…미친놈!’
‘안 가르쳐 주면 뇌전의 힘을 건곤흡정진혼결로 흡수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어?’
‘에, 에라이! 너 확실히 제정신이 아냐! 이 미친노, 놈아!’
왠지 세르탄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크크크, 세르탄, 어디서 잔머리를……!
‘곧 우기가 올 것 같군. 우기가 오면 벼락이 많이 칠 텐데……. 그때 한번 해봐야겠어.’
‘…….’
2
쏴아아아아…….
콰르르릉! 콰광!
쩌저저적!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하늘을 하얗게 가르며 벼락이 떨어졌다.
대낮임에도 천궁도의 하늘을 가득 메운 새카만 구름.
그 구름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떨어지는 뇌전의 창!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빛나는 뇌전의 창은 세상 그 무엇이라도 꿰뚫을 것처럼 살벌하게 지상으로 내리꽂힌다.
절로 오금이 저릴 정도의 광경!
대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만물이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였다.
들리는 것은 오직 하늘을 울리는 굉음과 광란하는 폭풍우의 비명 소리뿐.
한여름의 우기가 절정을 향해 치달린다.
그런데 올해의 우기는 유난히 벼락이 자주 친다. 천궁도와 하늘을 하나로 이으려는 듯.
천궁도의 사람들은 행여 벼락을 맞을까 두려움에 떨며 하늘의 분노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병사들도 감히 밖으로 나다니지를 못했다. 죄수들은 작업을 못하는 대신 식사가 한 끼 줄어들어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 그만은 벼락이 멈추면 오히려 아쉬운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흠, 올해 번개는 좀 약한데? 빨려드는 기운이 별로야.’
진용이었다.
짜릿한 기운이 전신혈맥을 치달리고 있는데도 진용이 투덜거리자 세르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잘못하면 심장이 타버린다니까! 차라리 약한 것이 나아!’
‘그래도 기왕이면 강한 게 좋잖아.’
‘강한 거 좋아하다 죽은 놈이 하나둘인 줄 알아?’
‘에이, 설마 마계의 대전사 세르탄이 엉터리 기술을 가르쳐 줬겠어?’
‘……그래도 너무 센 것은 아직 안 돼. 시르, 제발 말 좀 들어, 응?’
세르탄은 애원하듯이 달랬다. 속으로는 이가 득득 갈렸지만.
-빌어먹을! 그때 안 가르쳐 줬어야 하는데!
이 년 전 어느 여름 날. 진용이 천궁도의 석산 위로 올라가서 벼락을 맞겠다며 설쳐 대는 통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뇌전의 능력.
그것은 음과 양의 힘을 조화롭게 키우고, 필요 시 음과 양의 기운을 부딪쳐 뇌전을 방출하는 기술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절대 간단치가 않았다.
인위적으로 뇌전을 일으키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음기와 양기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 자체가 인간의 육체로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저 망할 놈은 전격계 마법이나 열심히 익혀보라는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뇌전의 능력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
환장할 일이었다.
자칫 두 기운이 내부에서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분명 연약한 인간의 육신으로선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음양의 힘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키우는 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이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비록 직접적으로 벼락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실수라도 해서 벼락에 직격을 당하면 그날로 끝장이었다.
시르는 인간이지 자신처럼 마족이 아니니까.
‘시르가 갑자기 죽으면…… 망망대해를 떠도는 표류선처럼 차원의 아공간을 떠돌다 스러지겠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몸서리가 처졌다. 또한 그래서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벼락 맞아 죽겠다고 미쳐서 날뛰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흐이그! 할 수 없지.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그래도 가슴에 심어진 마령석의 기운과 자신이 빙의하며 전해진 기운, 그리고 건곤흡정진혼결로 모아진 대자연의 기운이 있으니 어쩌면 기초적인 것 정도는 익혀도 될 듯했다.
저 미친놈이 또 벼락을 맞겠다고 설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뇌전을 받아들이는 기초 기술을 가르쳤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 년 만에 감당도 못할 강한 힘을 무리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가!
아! 미칠 일이다.
-망할 놈의 시르!
그렇게 세르탄의 불안감 섞인 한숨 속에, 빌어먹을 우기는 느리게도 지나갔다.
한 달 보름. 세르탄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3
온 세상을 무너뜨리기라도 할 것 같았던 우기도 시간의 흐름은 이기지 못했다.
우기가 지난 하늘은 금방이라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푸르렀다. 너무도 파래서, 하늘이 바단지 바다가 하늘인지 바라보고 있으면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진용은 파란 하늘 아래 자기 키만 한 석상과 나란히 서서 한 시진째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툭! 툭!
정이 지나가는 곳에서 돌 조각이 마치 비늘처럼 떨어져 나간다.
한순간의 멎음도 없이 울리는 소리. 크기 또한 자로 잰 듯 일정한 크기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의 신기였다.
진용은 구양 노인이 조각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제야 구양 노인은 망치질을 멈추고 깊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냐?”
“예, 어떻게 결을 치지 않았는데도 돌 조각들이 비늘처럼 떨어져 나간 거죠?”
진용의 물음에 구양 노인의 눈빛이 무저의 심해처럼 더욱더 깊어지더니,
“느껴진 것이 없느냐?”
난데없는 물음.
그런데도 진용의 표정엔 의아함이 없다, 이미 많이 겪어온 일인 듯.
“글쎄요. 분명 기가 그물처럼 바위를 덮은 것 같은데…….”
진용의 답에 구양 노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것뿐이더냐?”
그때다. 진용의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웃음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양 어르신의 육십 년 공부를 제가 어찌 한 번에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말은 그리하면서도 반쯤 완성된 조각상을 쓰다듬는 손길이 묘하게 흘러간다. 스치듯 흘러가는 손길에 부스스 떨어져 나가는 모래 알갱이 같은 돌가루들.
한순간, 구양 노인의 날카롭던 눈빛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능글맞은 놈. 네놈이 알 줄 알았다. 어째 갈수록 능구렁이가 돼가는구나?”
진용이 고개를 들고는 입꼬리를 묘하게 비틀었다.
“능구렁이는 능글능글하다면서요? 이렇게 무뚝뚝한 능구렁이도 있습니까?”
이번에는 구양 노인이 고개를 모로 비틀었다.
“나도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대체 왜 너의 성격이 그렇게 괴이하게 변한 건지, 나원…….”
당연히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진용이 최대한 조심하며 그토록 깨끗한 정기만 흡정했음에도 무의식중에 사람의 성격조차 변화시킬 정도의 마공이 건곤흡정진혼결이다. 그러니 건곤결을 신공으로 알고 있는 그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진용 본인조차 자신의 성격 변화를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철그렁!
한 번 손을 멈추자 흥이 안 나는지 구양 노인은 망치와 정을 한쪽에 내려놓고 진용을 올려다봤다.
초연한 눈빛, 근래 들어 처음 보는 눈빛이다.
“어차피 끝날 시간이 다 된 것 같구나. 들어가자. 할아비가 할 말이 있다.”
구양 노인이 간단한 말 한마디만을 던지고 일어서서 걸어간다.
이 역시도 처음 보는 행동이다. 구양 노인은 절대 일반 죄수들보다 먼저 일어서는 법이 없었다.
그 모습에 진용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눈썹 한 올 꿈쩍하지 않는 진용이로선 자신조차 깜짝 놀랄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구양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저토록 초연한 눈빛을 던지며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오직 하나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