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9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9화
9화
진용이 굳은 표정으로 소리치며 걸음을 옮기자 육두강은 감탄한 표정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하, 진정 어린 나이라 생각하기 힘든 아이로구나.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그가 어찌 알까, 어리광 한번 부리지 못한 채 책을 벗하며 혼자서 사는 법을 이미 다섯 살에 깨달아 버린 아이가 진용이란 것을.
하지만 자신은 법을 집행해야 할 사람. 감정은 감정이고 일은 일이다.
육두강은 종상현을 바라보고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저만한 아이가 있는 사람이오. 내 최대한 저 아이의 편의를 봐주겠소. 그리고 저 아이가 한 말에 대해서도 약속하겠소. 마침 저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관리하는 곳에 투옥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종상현은 불안한 눈으로 진용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육두강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직 죄인의 죄목이 확정된 것은 아니니 일단 판결을 기다려 보시오. 도망가다가 참살을 당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이오.”
이미 도망갈 길이 막힌 이상 육두강의 말이 옳았다.
종상현은 처연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녕 길은 없는 것인가? 고 형, 내가 못나서…… 정말 미안하오.’
잠시 후, 종상현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용아야…… 조금만 참고 이 숙부가 손을 쓸 때까지만 기다려라. 알았지?”
“예, 종 숙부.”
3
금의위의 옥사는 악랄함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북진무사가 관장하는 옥사는 들어간 자의 반이 죽어 나오고, 살아 나온다고 해도 병신이 되어 나온다는 생지옥으로 소문난 곳이다.
육두강은 약속대로 고중헌이 갇혀 있는 북진무사의 옥사로 진용을 데리고 갔다.
음습한 습기와 썩은 혈향이 코를 찌른다.
고통에 찌든 눈들, 삶을 포기한 눈들, 절망에 가득 찬 눈들이 자신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살려달라는 소리.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며 울어대는 소리. 넋이 반쯤 나간 채 용서해 달라며 비는 소리.
악에 받친 울부짖음이 끊임없이 귀청을 울린다.
진용은 겁이 났다.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손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눈에 힘을 주고 앞만 보았다.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설마 저 사람들처럼 많이 다치지는 않았겠지?
그럴 거야. 분명 그럴 거야. 아버지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
그곳까지 어떻게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육두강이 뒷덜미를 잡은 뒤에야 걸음을 멈췄다.
잔뜩 굳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나쳐 온 곳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그곳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갇혀 있었다.
아버지!
진용은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앞을 바라보았다.
나무에 철갑을 덧댄 옥사 안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 찢어진 옷자락, 그리고 여기저기 말라붙어 있는 피.
아버지는 고개를 뻣뻣이 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기다란 혈흔이 입술에서 목까지 이어져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두 손과 발에는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아… 버지, 아버지! 아버지!”
진용은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아버지를 불러봤다. 아버지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더니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누가! 왜 아버지를 저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아버지, 저예요. 용아가 왔어요. 흑흑!”
진용의 울음 섞인 말소리에 고중헌의 몸이 거세게 떨렸다.
“용, 용아? 용아란 말이냐?”
“예, 아버지.”
“네가 왜…… 네가 왜 이곳에 왔단 말이냐?”
“아버지를 보려고 왔어요. 그런데 왜 아버지가 그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왜!”
진용의 울부짖음에 고중헌은 고개를 돌리고 한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안 돼! 이보시오! 왜 내 아들을 가둔 것이오! 내 아들은 살려주기로 했었잖소?”
무슨 말일까? 살려주기로 했다니?
진용은 의아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잘못해서 갇힌 것이 아니죠? 그렇죠?”
“용아야! 어서 나가거라! 이곳은 너 같은 어린아이가 올 곳이 아니다. 어서 나가!”
고중헌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육두강을 올려다봤다.
“이보시오! 이 아이가 뭘 잘못했단 말이오? 어서 풀어주시오! 어서!”
육두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힐끔 진용을 바라보았다.
그도 이런 어린아이를 잡아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 황궁을 모욕하면 경우에 따라 삼족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이 황법이긴 했다. 그러나 아직 죄인의 죄목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까지 잡아 가둬야 한단 말인가?
법대로 하면 일단 잡아와야 한다, 도망갈지도 모르니. 실제로 그럴 뻔했고.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우……. 젠장!’
“나도 어쩔 수가 없소. 위에서 잡아들이라 하니 잡아온 것일 뿐이오.”
“무슨 소리요? 윗사람들이 내 아들은 살려주기로 했소. 한데 이제 와서 약속을 어기다니, 정녕 약속을 어길 생각이란 말이오?”
그때였다.
“누가 약속을 어긴단 말이냐?”
뇌옥의 입구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육두강이 상대를 보고는 마지못한 듯 고개를 숙였다.
“양 태감을 뵈오이다.”
그는 삼왕의 심복이라는 동창의 첩형 양 태감이었다.
“음, 그대는 물러가 기다려라. 내 저 죄인에게 할 말이 있느니라.”
육두강은 고개를 숙인 그대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비록 동창의 첩형이라 하지만 금의위 뇌옥만큼은 그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함부로 직분을 남용하는 양 태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하는 죄인들을 관리하는…….”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 정 천호와 이야기가 되어 있다. 그러니 너는 물러가 있거라.”
정 천호라면 자신의 직속상관인 천호장 정태숭을 말하는 것. 육두강은 하는 수 없이 고진용을 끌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하시다면 속하는 물러가 기다리겠소이다.”
진용은 발버둥치며 소리쳤다.
“아버지! 안 돼요, 나를 놔줘요! 아버지하고 같이 있게 놔줘요!”
“일단 나가자. 나중에 다시 만나면 되지 않느냐?”
질질 끌려 나가면서도 진용은 아버지만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무사하셔야 해요! 용아가 다시 올게요! 아버지!”
육두강이 진용을 데리고 나가자 양 태감은 고중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네가 나머지를 최대한 빠르게 해석한다면, 너는 물론이고 너의 아들도 무사할 것이다.”
고중헌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양 태감을 쏘아봤다.
‘다 알려주면 무사할 거라고? 개 같은 소리! 누가 속을 줄 알고?’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해석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 옥에 가두고서 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무슨 수를 쓰던 그 내용을 알아내고 죽일 게 뻔하니까.
고중헌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둘러댔다.
자신이 미처 해석하지 못한 글자가 있는데, 추궁을 받을까 두려워 말하지 못했다고.
그러자 놈들은 의심을 하는 한편으로, 심한 고문에도 한결같이 답하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사이, 알게 모르게 한 가지 소문이 황궁 내에 퍼지고 있었다, 죄 없는 학자가 뇌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종상현이 동분서주하며 학사들의 입을 통해 퍼뜨린 소문이었다.
결국 다급해진 놈들은 자신을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해석하지 못하면 황궁모독죄를 그대로 적용하겠다!
황궁모독죄에 걸리면 삼족이 모두 죽는다. 진용이도 죽는다.
고중헌은 그것이 두려웠다. 자신은 죽어도 아들은 살아야 한다.
결국 고중헌은 협상안을 제시했다. 아들을 살려주면 나머지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해석하겠다고.
자신의 의견은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놈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아들을 잡아들인 것이다.
개만도 못한 놈들!
“이놈들! 약속도 지키지 않으면서 네놈들이 어찌 남자라 할 수 있단 말이냐?”
고중헌의 외침에 양 태감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감히 자신에게 남자 운운하다니!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네놈이 감히……!”
“흥! 어쨌든 그대도 남자가 아니더냐? 어디 말을 해봐라!”
순간 노화가 일렁이던 양 태감의 눈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천하의 누가 환관을 남자로 인정한단 말인가?
그런데 말뜻이 묘하긴 하지만 고중헌의 말에는 자신을 남자로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기분이 나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중헌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양 태감이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약속은 어기지 않는다. 너의 아들은 죽지 않을 것이야.”
고중헌의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나의 아들을 죽이지 않는다고?”
“그렇다.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은 묘한 뜻이 담긴 말. 고중헌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물었다.
“말해봐라.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고 건드리지 않을 것이냐?”
“물론 그렇게도 할 수 없지. 우리가 약속한 것은 죽이지 않겠다는 것뿐이었으니까,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지 않느냐?”
“이, 이……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입술을 깨물었는지 고중헌의 입에서 다시 피가 흘러내렸다. 그걸 본 양 태감은 눈살을 찌푸리며 넌지시 말했다.
“네 아들을 유배지에 보낼 것이다. 그럼 나로선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이지.”
고중헌의 창백한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무슨……. 저 어린것이 어떻게 유배지에서 생활하라고…….”
“아아! 너무 그렇게 염려할 것은 없다. 그래도 특별히 생각해서 유배지 중에서는 제일 편한 곳으로 보낼 것이니까.”
고중헌은 양 태감의 능글능글한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지도 않은 놈의 심경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진용이 잘못될지도 몰랐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비록 유배라지만 그나마 일단은 용아의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지를 않은가. 더구나 편한 곳이라면…….
“정말…… 그리할 것이오?”
말투도 바꿔서 존대를 해줬다. 그러자 양 태감이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남자는 약속을 어기면 안 되지.”
‘개 같은 놈, 꼴에 남자이고 싶다는 건가?’
“좋소. 정 그렇다면 나도 약속을 지키겠소. 단, 그 약속을 내 친구인 종상현에게 글로써 남겨주시오.”
양 태감은 고중헌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좋다. 네 친구인 종상현에게 글로 남겨 전해주겠다. 제일 편한 유배지로 보내겠다고 말이다.”
‘비록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지만 말이다. 후후후.’
양 태감의 심중을 알 길 없는 고중헌은 그제야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들이 약속을 지킨다면, 나도 나머지를 해석하겠다는 약속을 꼭 지킬 것이오.”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
‘시일에 대한 약속은 하지 않았으니…… 어디 일 년이고 십 년이고 한번 해보자, 환관 놈아!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살아 있을 것이다. 고씨가 얼마나 끈질기고 독한지 내가 확실하게 보여주마!’
* * *
“어찌 되었느냐?”
“놈이 순순히 해석하겠다고 했사옵니다, 삼왕 전하.”
“그래?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으냐?”
“일 년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있사옵니다만, 고가 놈이 해석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곤란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라…….”
“곤란한 것이라니?”
“일단 단서를 찾기 위해서 황궁의 고문서를 보고 싶다고 하옵니다.”
“흠, 고문서? 그게 뭐 문제될 일이 있겠느냐? 일단은 놈이 원하는 대로 해줘라. 어차피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놈이 아니더냐?”
“알겠사옵니다, 전하.”
4
사흘이 흘렀지만 다시는 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육두강에게 울고불고 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를 만나게 해줘요!”
“음, 네 아버지는 밀옥(密獄)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은 금의위의 관할이 아니라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밀옥요?”
“그곳은 동창이 관할하는 곳이다. 그래도 그곳이 이곳보다는 훨씬 편한 곳이다. 감옥은 아니거든?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라.”
하루 후에 찾아온 종 숙부도 육두강과 비슷한 말을 했다.
“아버지의 몸은 이제 괜찮다. 갇혀 있기는 하지만 당장 염려할 정도는 아니니라. 고 형보단는 오히려 네가 더 걱정이구나.”
언뜻 보이기로 종 숙부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 같자 억지로 힘을 내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종 숙부. 용아는 남자잖아요.”
“그래, 너는 남자다. 남자가 어디 나이를 따진다더냐?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이 숙부가 어떻게든 꺼내주마. 이 숙부를 믿지?”
“그럼요. 제가 숙부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어요.”
그 말에 종 숙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말도 없이 걸어갔다.
걸음마다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이 보였다.
자신에게 눈물 흘리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은가보다.
자신도 목이 메었다. 하지만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자신이 소리 내 울면 숙부가 더 슬퍼할지 모르니까.